웅진그룹
웅진코웨이 매각대금 입금을 불과 며칠 앞두고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금융시장에 충격이 컸다. 정수기와 학습지, 음료 등으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주로 다뤘던 회사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체감적인 충격의 정도가 컸을 것이다. 특히 웅진그룹은 외환위기 당시 경영상 어려움을 업계 최초 렌털서비스 도입과 코리아나화장품 매각 등 과감한 전략으로 극복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웅진코웨이 매각이 마무리되면 그룹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래서 충격이 더했다.
기업 경영의 세계는 냉정하다. 한때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대상으로 여겨졌던 리먼브러더스나 베어스턴스 같은 금융회사들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IT 업계를 호령하던 샤프, 노키아 등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평온하게만 보였던 웅진그룹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일부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내려진 것일까.
한때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불릴 정도로 안팎의 신뢰가 두터웠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밝혔듯 웅진그룹이 어려워진 직접적인 이유는 건설과 태양광에 대한 잘못된 투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표면적인 원인에 불과하다. 건설이나 태양광 산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산업에 속해 있는 여러 기업들이 어려워진 국내외 여건에도 불구하고 건실하게 버티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웅진그룹이 어려워진 본질적 이유는 ‘과도한 욕심’이라고 봐야 맞다.
기업이나 산업은 일반적으로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를 거쳐 결국 쇠퇴기를 맞게 된다. 이런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 기업 수명이 연장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제품은 물론 기업, 더 나아가 그룹도 안전하지 못하다. 따라서 정상적인 경영자라면 기존 사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며 시장 지위를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 경쟁사를 사들이거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해 성장 욕구를 해소하려고 한다.
이 같은 성장 욕구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기업가의 야성이 사회에 역동성을 제공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웅진그룹 역시 성숙기에 접어든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그 정도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어떤 점에서 과도했는지 기업 신용 분석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① 너무 많은 ② 비관련 다각화를 ③ 짧은 기간 동안 ④ 높은 재무 레버리지를 사용해 추진했다는 문제점들이 있었다.
먼저 웅진그룹은 건설, 태양광, 저축은행업이라는 무려 세 가지 분야에 새로 진출했다. 과식하면 체하기 마련이다. 신규 사업에 한 분야 한 분야씩 차근차근 진출하면서 내실을 다졌어야 했는데 웅진그룹의 경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했다. 그룹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이 같은 신규 사업들이 웅진그룹의 기존 사업들과 연관성이 낮았다. 보통 성공 신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서의 성공 비결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여전히 작동해야 한다. 웅진그룹의 강점은 우수한 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인적 네트워크 관리 및 운용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렌털이나 학습지 사업은 공통적으로 인적 자원의 유지 및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신규 사업들을 보면 기존 강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성격의 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다른 회사를 인수한 후 제대로 된 통합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1980년 헤임인터내셔널 설립 이래 30여년을 이어온 웅진그룹에 부실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불과 6년 전이다. 2006년 11월 웅진에너지 설립을 시작으로 2007년 8월 극동건설 인수, 2008년 1월 웅진케미칼(구 새한) 인수, 2008년 7월 웅진폴리실리콘 설립 등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기간 동안 그룹의 굵직한 신규 사업 진출 및 M&A가 줄줄이 단행됐다. 2010년 10월에는 서울상호저축은행을 계열에 편입시키기도 했다. M&A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수후통합(PMI·Post-Merger Integration) 작업이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 서로 다른 분야의 기업들을 계속 인수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사업 확장을 꾀했다는 점이다. 재무 레버리지가 높았다는 의미다. 이자비용보다 더 많이 벌 자신이 있다면 차입금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약이 될 수 있겠으나 웅진그룹의 경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기업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주로 사용되는 것이 차입금/연간EBITDA 배수다. 차입금의 절대 금액이 늘어나더라도 차입금/EBITDA 배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하락한다면 기업의 원리금 상환능력이 유지 또는 개선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2>를 통해 웅진그룹 신규 사업들의 이자부채(차입금)와 EBITDA(영업활동 현금창출능력) 추이를 살펴보면 대체로 EBITDA가 횡보 내지 감소하는 가운데 이자부채가 오히려 늘어나는 모습이 확인된다. 재무 레버리지 확대가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신규 사업을 크게 건설과 태양광으로 나눠 살펴보면 건설은 인수 후 곧바로 건설경기 둔화에 따른 원리금 상환능력이 나빠지기 시작된 데 반해 태양광은 경쟁 격화와 관련 보조금 축소 등이 본격화된 최근에야 원리금 상환능력 악화가 시작됐다는 차이가 있다. 즉 건설에서 시작된 어려움이 태양광에서 결정타를 맞았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경영 활동은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응해가는 연속이다. 어제의 성공 비결이 오늘이나 내일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기술의 발달로 어제는 나와 상관없던 기업이나 산업이 어느 날 갑자기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일도 허다하다.
경영자라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할 수 없다. 경영의 방향에 대한 고민은 물론 고민의 결과를 현실화할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실패했을 때 예상되는 충격과 대응책에 대해서도 스스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외부 컨설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 결과에 책임져주지 않는 컨설팅 결과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웅진 사례가 주는 교훈 중 하나다. 웅진그룹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경영 컨설턴트 출신의 젊고 의욕적인 인사들이 주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너가 경영 활동을 영위할 때 외부 컨설팅 내용을 참고하는 것은 제3자의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자신의 사업을 평가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장점이 있다. 하지만 참고를 넘어 의사결정 권한을 넘기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권한을 넘긴다는 것은 경영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주인이 카운터를 지키지 않는 가게는 오래 가기 힘든 법이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 hj.lee@ibks.com
이혁재 애널리스트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와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를 거쳐 현재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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