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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통합성,기업 지배구조의 효율성 찾자

김주태 | 9호 (2008년 5월 Issue 2)
최근 경영자의 부실이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면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란 주주를 대신해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 인해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영통제장치를 갖추고 이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를 극대화려는 연구 영역이다. 가장 대표적인 미국식 기업지배구조는 분산된 소유구조와 전문경영자에 의한 강력한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이런 지배구조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국가마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국제 기업지배구조는 보통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미국 및 영국의 시장중심적인 메커니즘(market-oriented mechanism)과 독일이나 일본의 관계중심적인 메커니즘(relationship-oriented mechanism)이 그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자본시장이나 경영권시장이 잘 발달돼 있다. 따라서 이사회에 의한 내부 통제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고 외부 세력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도 상존하고 있다. 통상 지배구조를 논할 때 소유구조가 분산돼있다는 점을 기본 전제 조건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분산된 구조는 미국과 영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다른 지역에서는 지배주주(controlling shareholder)가 존재하는 집중화한 구조가 훨씬 일반적이다. 경제대국인 독일이나 일본에서조차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이해당사자 간 관계에 기초한 통제 시스템이 형성돼있다. 즉 독일에서는 종업원과 은행이 경영 통제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계열기업의 상호 주식소유에 기초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경제 환경이 글로벌화하면서 각국간 기업 조직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제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도 ‘다양성’과 ‘통합성’이라는 두 축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다양성이란 각국이 처한 제도적 환경이 상이해 지배구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설명한다. 반면 통합성이란 글로벌화 등으로 여러 나라의 기업지배구조가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는 관점이다.
 
국제기업지배구조의 다양성
기업지배구조가 국가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 나라의 제도적 환경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환경이란 법률 시스템이나 시장 메커니즘, 문화 등과 같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 요소로서, 인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요인들을 전체적으로 의미한다. 최근 새 정부가 규제개혁이나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제도적 환경을 개혁해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경제활동의 주체인 기업의 조직구조도 제도적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지배구조란 그 사회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 논문에서는 각 나라별로 주주를 보호하는 법률체계가 얼마나 잘 갖춰졌는가에 따라 기업지배구조가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주를 보호하는 법체계가 잘 갖춰진 경우, 소액주주들이 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려 하기 때문에 자본시장이 발달하게 된다. 이런 제도적 환경과 기업지배구조의 관계에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 존재하는데, 이는 특정 제도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기업지배구조의 특징은 한번 형성되면 관성이 생겨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적 환경에 초점을 맞춰보면 경영자, 자본제공자, 종업원이라는 세 이해관계자의 상호작용에 따라 기업 지배구조의 특성이 형성된다. 개별 국가의 제도적 환경은 이 세 집단의 성격에 영향을 끼쳐 각기 다른 기업지배구조를 형성한다. 우선 국가별 재산권 관련 법체계나 금융 시스템이 서로 다르므로 자본 제공자에도 차이가 난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하고, 이에 따라 자본시장이 활성화돼 시장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형성했다. 반면 일본이나 독일에서는 은행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또 경영자 교육 과정의 특성에 따라 지배구조도 차이를 나타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재무적 지식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식을 경영자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기술적 훈련에 좀 더 치중하는 독일에 비해 권위주의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 노조의 형태, 노동시장의 개방성과 같은 조건들도 종업원의 경영 참여 수준에 영향을 끼쳐 지배구조의 차이를 유발한다. 실제 미국의 경우 노동자의 경영 참여 수준이 낮은 반면, 일본이나 독일에서는 종업원의 경영참여 수준이 높다.

국제 기업지배구조의 통합성
최근 많은 나라에서 지배구조의 개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 국제적으로 기업지배구조 통합성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강화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미국식 지배구조를 도입했다. 이사회 및 인수합병 시장을 활성화하고 경영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런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제도적 압력에 순응해 국제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채택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제도적 압력이란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경제적 동기와 사회적 동기라는 두 차원을 전제로 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동기란 기업의 내부 자원과 능력 개선 및 이로 인한 경쟁력 제고라는 면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회적 동기란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특정 사안에 대해 경제적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외부의 압력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압력을 잘 소화해야 이해관계자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고, 조직의 생존을 위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경영자들은 때로는 사회적 동기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린다. 지배구조 개혁은 결국 기업 경영진을 감시하는 것이므로 경영진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기보다는 외부 압력과 여론에 순응하는 면이 강하다.
 
실제 최근 지배구조가 변한 SK그룹의 경우도 내부 경영진의 자발적인 참여보다는 외부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에 의해 지배구조 개혁이 촉발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업들은 이처럼 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제도적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식 지배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수렴할 가능성이 있다.
 
이론적으로 기업이 사회적인 정당성과 지지를 얻기 위해 수용하는 제도적 압력은 세 경로로 구분된다. 첫째, 강압에 의한 것이다. 정부나 기업의 본사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곳에서 특정 제도의 도입을 강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이후 사외이사제가 법에 의해 강제 도입됐으며, 특히 자산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강제규정이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둘째는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모방이다. 기업 경영자는 불확실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인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선두기업이 추구하는 해결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 셋째는 규범에 의한 확산이다. 많은 경영자가 학교나 대중매체로부터 비슷한 경영교육을 받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대안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경영자가 사외이사제도나 스톡옵션에 대한 교육을 받을 경우 실제 경영에서 이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배구조의 개혁이 이런 외부 압력과 이에 대한 순응 과정으로 이뤄질 경우 자칫 잘못하면 원래 목적과 달리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다. 제도화 이론은 이런 현상을 디커플링(decoupling) 또는 트랜스레이션(translation)으로 설명한다. 디커플링은 도입된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를 의미하며, 트랜스레이션은 형식적으로는 새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이전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사외이사제도가 외부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도입된 경우 당초 경영자 통제라는 목적에 맞지 않게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경영자를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 수 있다.
 
한국의 지배구조 문제
한국기업의 지배구조는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미국식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제도적 압력에 따라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우선 한국에서는 전문경영자보다는 지배주주가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대리인 문제는 전문경영자와 주주 사이의 관계라기보다는 지배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1970년대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룬 원인은 정부 관료들의 치밀한 기획력과 기업가들의 적극적인 사업운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기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경유착이나 비자금 같은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한국기업은 정경유착, 문어발식 다각화, 글로벌 경쟁력 결여 등의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지배구조 문제가 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앞서의 설명에 입각하면, 과거 한국에서는 자본시장과 시장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기업 생존을 정부에 의존했으며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부족했다. 따라서 제도적 환경이 매우 후진적인 수준을 보였다. 이에 따라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갖추지 못했고 대주주에 의한 전횡 등 부정적 측면이 누적됐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경쟁 체제가 형성되면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갖추라는 강한 압력을 받았다.
 
한국의 대표적 재벌그룹들은 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압력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SK그룹이 소버린의 개입으로 경영권 상실 위협까지 겪었는데 이후 지배구조를 꽤 개혁할 수 있었다. 현대도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 형제간 갈등이 노출됐다. 삼성도 지배구조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특히 이재용 전무의 3세 승계 문제는 삼성 특검에서 핵심 사안으로 다뤄졌다.
   
선진적 지배구조의 정착과 관련해 몇 가지 짚어볼 점이 있다. 첫째, 기업지배구조가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라고 보면, 현재 문제가 되는 경영자의 전횡은 개선돼야 하지만 그 해결방법은 우리의 토양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지배구조 개선=전문경영체제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소유구조의 분산과 전문경영인 체제가 보편화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뿐이다. 유럽 우량기업의 경우에도 주인인 대주주가 경영하는 곳이 많다. 또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은 사회의 제도적 환경 개선과 병행돼야 한다.
 
둘째, 이번 삼성 특검 결과에 따라 총수의 퇴진을 비롯한 여러 경영쇄신안이 나온 것은 앞서 설명한 대로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는 제도적 압력이 작용했고 사회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삼성 경영진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외부 압력에 의한 변화는 디커플링 같은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삼성 경영진은 경영투명성 제고와 함께 자체적으로 노력해온 핵심역량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20년간 핵심역량을 개발했고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등 경제적 측면에서 큰 성과를 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삼성은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위상을 갖춰야 한다. 내부적으로 축적된 이익으로 사회에 긍정적으로 공헌한다면 결국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서 MBA, 서울대에서 국제경영전략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등에 논문을 게재했고 <디지털시대의 글로벌 경영 사례> 등의 저서가 있다. 주 연구 분야는 기업지배구조, 다국적기업의 현지화 전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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