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X & 서비스 디자인

“이젠 서비스도 디자인!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하게 하자”

106호 (2012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철순(서강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가치란 혼자서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거쳐야 더 크고 질 좋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UX는 한 명의 개인과 한 개의 기기 사이에서만 논의됐다. 참여자 숫자는 물론 영역과 의지를 제한해 의미 있는 가치 창출의 통로를 협소하게 정의했다. 하지만 디지털 컨버전스가 확산되면서 오늘날 개인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소비자는 다른 소비자와 경험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며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낸다. CX(Co-experience)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제품에만 한정됐던 UX를 서비스 분야까지 확장시키는 일도 불가피하다. 이미 글로벌 선두 기업들은 소비자와 서비스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가치사슬에 반영하고 있다. 김진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를 만나 CX와 서비스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들었다.

 


 

 

사용자 간 상호작용에 중심을 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칭한다. 공동경험은자신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같거나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지각으로 정의된다. 즉 사용자가 공동경험을 느끼기 위해서는 기술을 통해 다른 사용자와 동일한 일에 참여하거나 동일한 대상을 공동으로 소유해서 동일한 반응인 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Thompson Fine은 공동경험을 다음과 같이 범주화했다.

 

CX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UX와 비교해 다른 점은 무엇인가.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분야가 태동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UI였다. 당시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컴퓨터를 좀 더 편히 쓰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등장했던 이슈다.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의 연구소 PARC에서 산업용 컴퓨터 UI를 보고 개인용 컴퓨터에 적용해 애플 컴퓨터의 Operating System을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UT(Usability testing)였다. 이전까지는 대기업에서만 고민하던 UI가 독립적인 컨설팅 회사들에서도 적극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일반인의 사용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단계가 UE(Usability Engineering)였다.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컴퓨터를 쉽고 편하게 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1990년대 말 모바일이 급속히 전파되면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Interaction Design의 단계다.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와 교감이 이때부터 연구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cyworld) Interaction Experience Design의 대표적인 사례다.

 

2006∼2007년 기존 기계 중심적인 인터페이스만으로는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겠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좀 더 큰 개념의 UX가 등장했다. 정량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성적인 부분까지 포함한,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개념이다. 현재 국내외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초창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발전했다.

 

하지만 UX는 크게 세 가지 면에서 한계를 지닌다. 첫 번째는 사용자 경험을 여전히 single user를 대상으로만 분석한다는 점이다. 한 명의 사람과 하나의 핸드폰, 한 명의 사람과 하나의 컴퓨터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상호작용만 연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명의 사용자가 하나의 기기를 동시에 사용하거나 여러 명의 사용자가 여러 개의 기기를 쓰면서 경험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두 번째는 사용자를 지나치게 수동적으로만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기업이 알아서 잘 만들 테니 사용자는 그냥 쓰기만 하라는 식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용자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이다. 기업에서 만든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피동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맞게 고치고 보완하고, 이제는 아예 새로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올라 갔다. 더 중요한 점은 이 같은 사용자의 활동이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철학적 한계다. UX의 기본 명제는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사용하기 전, 혹은 사용한 이후 좋은 경험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경험이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를 포괄한다.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게임 중독을 생각해보라. 게임을 하는 그 순간에는 그 사용자도 좋고 즐거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간 게임에 빠져 있다가 인생 자체를 망가뜨린 경우, 그것을 과연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UX라는 개념이 가치(value)나 의미(meaning)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갖는 문제다. 그냥좋은 경험이 아니라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 착안해 만들어낸 개념이 CX. CX는 한 명이 아닌 다수의 사용자를, 수동적이거나 피동적이지 않은 능동적인 사용자를 가정하며 나아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개인적으로는 소셜 이노베이션 플랫폼(Social Innovation Platform)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부터 미국 하버드와 MIT, 스탠퍼드 등 유수 대학들이 잇따라 SI(Social Innovation) 센터를 만들고 있다. 이때 SI는 좋은 플랫폼과 더불어 CX가 잘 이뤄져야 가능하다.

 

UX의 다음 단계 혹은 대안으로 이해할 수 있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CX는 다소 이상적인(ideal) 측면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방법 또는 목적 정도로 두면 좋겠다. 그보다 UX의 다음 단계로 예상되는 것은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이다. UX는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제품과 사용자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에 초점을 두는 개념이다. 반면 서비스 디자인은 손에 만져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비자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진료받는 모든 과정에서 경험하는 서비스, 극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겪는 모든 서비스, 음식점에 갔을 때 종업원 응대나 음식 서빙 등 식사를 하고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서비스가 전부 해당된다.

 

UX와 구별되는 또 다른 점은 UX는 사용자와 제품 사이의 상호작용만 관찰했다면 서비스 디자인은 서비스 제공자가 사용자에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기까지 후선에서 뒷받침하는 시설이나 기능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점에 방문했다고 하자. 이제까지 논의된 UX는 내가 음식점 종업원으로부터 받는 서비스, 즉 사용자와 제품 사이의 관계만 살폈다. 하지만 서비스디자인은 종업원이 나를 응대하기 전까지 해당 종업원이 주인과 혹은 그 음식점과 맺는 관계를 포괄한다. 이를테면 종업원이 고객에게 친절히 대하려면 주인이 종업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어간다.

 

세계 최대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IDEO를 비롯해 Engine이나 Continuum 등 유수 디자인 컨설팅 회사들이 제품을 하나하나 디자인하는 일은 그만두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디자인하는서비스 디자인에 초점을 두겠다고 밝힌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아예 서비스 디자인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는 의료, 금융, 교통, 통신 등 UX에서 다뤄야 할 분야가 대폭 확대됐으며 앞으로의 흐름이 서비스디자인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들도 서둘러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지금보다 확장된 개념의 UX는 인터넷 회사가 검색 서비스를 만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핸드폰 제조회사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비스 디자인은 이제까지와는 매우 다른 형태로 굉장히 다양한 업종에서 활용될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접근하고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등은 모두 기획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전문가의 자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회계나 재무 전문가라고 한다면 관련 학과를 나와서 CFA CPA 같은 자격증을 땄다면 어느 정도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 분야에는 아직 합의된 기준이나 원칙이 없다. 학계에서도 추가 연구를 계속해야겠지만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기업이나 정부 같은 조직에서 인력 관리와 접근 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원칙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영국이 이 분야에서 선두 국가다. 영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미래 경쟁력을 디자인에서 찾았다. 이번 런던 올림픽도 디자인 올림픽이라고 내걸었다. 디자인 산업을 구분할 때 서비스디자인 분야를 독립적으로 분류해놨을 정도다. 이 분야를 좀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표준화해야겠다고 해서더블다이아몬드 프로세스를 만들기도 했다. HCI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서비스디자인에 접목시켜서 프로세스 단계별로 원칙을 세운 것이다. 그것을 공공서비스는 물론 기업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에 적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조사하고 분석해서 점점 더 정밀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국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아직 태동기 단계다. 일부 대기업에서만 관심을 갖고 IDEO 등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장은 디자인 컨설팅 회사와 손을 잡고 일하는 것이 빠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내부 인력을 만들고 육성해야 한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은 UX부서에만 몇 백 명씩 확보하고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결국 HCI UX가 갖고 있는 기본 명제들을 접목하는 것이기 때문에 UX 파트에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IDEO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단순한 제품 디자인을 넘어 의료, 은행, 쇼핑, 통신 등 각종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컨설팅그룹이다. IDEO의 대표인 팀 브라운(Tim Brown)은 저서 <디자인에 집중하라>에서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강조하기도 했다. IDEO가 수행한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ATM 리디자인

스페인 은행 BBVA ATM을 리디자인하는 업무를 IDEO에 맡겼다. 은행은 많은 소비자가 이용하는 대표적인 서비스 기관이지만 정작 소비자는 창구를 직접 이용하기보다 기계를 통해 은행 서비스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 IDEO ATM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아닌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조명했다. 통장이나 카드를 넣고, 현금을 찾고, 영수증을 빼내는 구멍이 제각각이었던 기존 ATM을 버리고 모든 구멍이 하나로 통합된 새로운 ATM을 만들어냈다. 또한 모든 버튼을 없애고 풀 터치스크린을 도입해 편의성을 높였다.

 

② 금융 서비스 디자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서 내걸었던잔돈은 가지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IDEO의 작품이다. 이 서비스는 BOA의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거스름돈이 발생했을 때 그 차액을 저축 계좌에 바로 입금해주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금융이라는 분야를 디자인하겠다는 파격적인 개념으로 접근한 이 프로젝트는 시행 첫해에만 250만 명의 고객을 끌어들이는 성과를 냈다.

 

③ 병원 서비스

보건의료회사인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는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찰 받고 돌아가는 모든 과정을 환자 입장에서 관찰해 개선을 시도한 사례다. IDEO 담당 팀원들은 실제로 환자복을 입고 병원을 돌아다녀보기도 했다. 환자들은 접수 후 장시간 대기해야 하거나 보호자와 떨어져 있는 경우, 반나체로 20∼30분이나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에 불쾌함을 느꼈다. IDEO는 편안한 대기실을 고안하는 한편 환자와 가족 3∼4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진료실을 만들고 간호사들의 교대시간을 바꿔 환자 응대 서비스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하는 등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도록 했다.

 

④ 드레싱룸(dressing room) 서비스

프라다(Prada)의 뉴욕 대형 매장 드레싱룸에는 마법의 거울이 걸려 있다. 옷을 고른 소비자가 입어보기 위해 룸에 들어서면 달려 있는 카메라가 소비자를 인식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옷을 갈아입은 후 뒷모습을 촬영해 4초 후 화면을 보여준다. 소비자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거나 고개를 힘들게 돌릴 필요가 없다. 이것 역시 IDEO의 아이디어다.

 

인터뷰 및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

 

김진우 연세대 학술정보원장 인터뷰

김진우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 UCLA에서 경영학 석사를, 카네기멜론대에서 이학 석사를 받았다. 이어 카네키멜론대에서 HCI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94년부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내며 현재 연세대 학술정보원장과 한국HCI협회장을 맡고 있다. HCI 기술을 이용한 인간 중심의 혁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