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브라질에서 개최된 세계국가경쟁력 회의(Global Federation of Competitiveness Councils·GFCC)에 기조강연자로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기조강연 이후 각국 대표들이 자국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토론 중에 필자는 아르헨티나 대표와 매우 흥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가 아르헨티나 대표에게 ‘아르헨티나는 한때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이었는데 무엇이 잘못됐는가’라고 질문했더니 “과거 아르헨티나에서는 돈 벌기가 너무 쉬었기 때문이다”라고 매우 의미 있는 답을 해줬다.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대표가 필자에게 물었다. “한국 경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필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과거 한국에서는 돈 벌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상의 대화 내용은 매우 역설적이지만 경제발전의 핵심 원동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같은 나라는 천연자원이 많기 때문에 크게 고생을 하지 않아도 돈 벌기가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을러 지기 쉽고, 또한 소수만 부자가 되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진다. 천연자원이 겉으로는 축복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선진국이 된 경우는 별로 없다. 이를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고 한다.
한편 한국과 같이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돈 벌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경제발전 전략을 기초로 꾸준히 노력하는 국민성을 함양하면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 결국은 잘사는 국가가 된다. 천연자원이 없기 때문에 더욱 부지런해야 하고 모자란 것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고난이 재앙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감춰진 축복(Blessing in Disguise)’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대부분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갖고 있던 것을 잘 지킨 것이 아니라 약점을 보완하고 모자란 것을 채워 넣으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
한국이 제2의 아르헨티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일본이 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많이 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아르헨티나 모델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 모델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최고경영진과 도요타자동차와 현재 자동차의 경쟁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도요타의 경영진은 기술 등 여러 면에서 도요타가 뛰어난 것 같은데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왜 그렇게 잘하는지 이해를 잘 못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현재 일본과 한국 국민의 정신자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은 확실이 뛰어나지만 “이제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라는 ‘안주하는 우월성(Complacent Superiority)’에 빠져 있다. 한편 한국은 이 정도 발전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기저기 시끌시끌하고 부작용도 많지만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지속적인 동기 부여(Continuing Motivation)’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책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던 유럽이나 미국 경제도 최근에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어 우리의 직접적인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는 없으나 이들의 실패로부터 경제발전 전략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경제가 실패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국민경제 생산측면에서 근로자들이 생산하는 것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아 간다면 그 경제는 결국 파산할 것이다. 이는 비용에 비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생산성 문제(Productivity Problem)’다. 둘째, 국민경제 소비측면에서 소비자들이 자기가 벌어 들이는 소득보다 소비를 더 많이 한다면 언젠가는 파산할 것이다. 이는 소비가 소득을 넘어서는 ‘소비성 문제(Consumption Problem)’다.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했을 경우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도와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막아줄 수는 없고 결국 정부마저 파산하게 된다. 현재 유럽 경제의 근본 원인은 생산성 문제이고 미국의 경우는 소비성 문제다.
유럽은 미국에 비해서 생산성이 낮았다. 분석의 편의상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세계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을 전후로 해서 유럽과 미국의 생산성을 비교해 보자. 오일 쇼크 때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인 1973∼1995년 미국의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2%였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위기 전까지인 1995∼2006년 이 비율이 2.3%로 늘어났다. 이에 비해서 15개 유럽연합(EU) 국가는 이 두 기간에 오히려 증가율이 2.4%에서 1.5%로 감소했다. 또 다른 통계를 보자. 1995∼2006년 EU 국가의 노동생산성은 미국 대비 98.3%에서 90.3%로 크게 감소했는데 1인당 평균소득은 74.9%에서 74.1%로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을 미국과 비교하면 소득에 비해서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문제가 불거져 급기야 2010년도에는 국가부채가 15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미국의 GDP 총액과 대등하게 됐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981년에는 32.5%에 불과했었는데 이제 100%를 넘어섰으니 GDP 성장률보다 부채성장률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살펴보자. 문제의 시작은 지난 십 수년간 있었던 비정상적인 부동산 붐이었다. 부동산, 특히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미국인들은 이를 담보로 은행대출을 얻어 소비를 늘렸다. 소비지출이 늘어나면서 GDP도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러한 GDP의 상승은 개인부채가 늘어나면서 성장이 되는 ‘부실성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러한 부실이 현실로 드러났고 가계와 정부 모두 큰 빚을 지게 됐다.
건강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이 소득보다 높아야 하고 소득은 다시 소비보다 높아야 한다(생산성 > 소득 > 소비). 만약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받거나 자기가 버는 것보다 더 소비한다면(생산성 < 소득 < 소비) 언젠가는 당연히 파산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에 비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에 비해서 소비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유럽과 미국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 첫째, 생산성을 충분히 높이기만 하면 소득과 소비가 어느 정도 늘어도 문제가 없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거나 기술수준을 높여야 한다. 둘째, 생산성을 높이기가 어렵다면 소득과 소비를 줄여야 한다. 생산자는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들여야 하고 소비자는 자기의 실질적인 소득을 넘지 않은 수준에서 소비해야 한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생산성을 높이는 첫째 전략을 추구해야 하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이 심각하다면 둘째 전략을 우선 시행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의 현재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안의 대부분은 이쪽의 부채를 저쪽의 부채로 갚고 현재의 부채를 미래의 부채로 갚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경제문제는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문휘창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현)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
- (전)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