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서비스기업의 혁신 사례
21세기 들어 경제의 가장 큰 변화는 ‘서비스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제조기업이 주도하던 전통적인 제품 중심의 시장 경제가 이제는 시장 전체가 서비스 역량과 수준에 의해 지배된다고 할 정도로 서비스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국내 전자기업이 미국, 유럽시장에 진출해서 초기 시장점유율을 지금처럼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유통, 배달, 설치, 애프터서비스 등을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팟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MP3플레이어인 제품과 음원을 제공하는 아이튠즈의 콘텐츠 서비스를 융합시킨 전형적인 서비스/제품의 융합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함께 제공되는 금융 서비스와 차량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애프터서비스가 차의 디자인이나 품질 못지 않은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다. 메인프레임 등 컴퓨터 산업을 이끈 IBM의 사업 모델도 서비스 중심으로 바뀐 지 오래다. 고객에게 하드웨어 제품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아웃소싱을 통해 고객에게 하드웨어 운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중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 IBM의 매출 중 컨설팅, IT 서비스, 아웃소싱 서비스, 소프트웨어 사업 등 서비스 부문 매출의 비중은 전체의 80% 정도에 이른다. IBM이 글로벌 경제 불황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 중심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편성하고 서비스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고객의 행동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개인이나 기업 고객들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재테크를 포함한 금융 서비스를 구매하며, 정수기를 사는 게 아니라 정수 서비스를, 학습교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녀 학습 서비스를 산다. 스마트폰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앱을 통해 제공받는 콘텐츠를 산다고 할 수 있다. 집카(Zip Car) 회원들은 차를 사지 않고 차량 서비스만을 산다.
세계적인 산업의 흐름을 볼 때 한국도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했고 경제구조도 제조업에 치우쳐 있지만 앞으로는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서비스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06년부터 시작된 서비스 사이언스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주요 연구 주제의 하나가 서비스 생산성이다. 하지만 투입된 자원 대비 산출물로 단위 생산성을 올리려는 시도로는 서비스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궁극적으로 서비스 생산성을 강화하려면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전사적 관점의 서비스 혁신(Service Innovation)이 필요하다. 서비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서비스 혁신은 크게 1)서비스 모델 혁신 2) 서비스 유형화/시스템화 3)서비스 인력 운영의 글로벌 최적화 4)서비스 딜리버리 포커스의 4대 혁신 영역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각각의 혁신 영역을 IBM의 사례를 토대로 소개한다. [그림] 4대 서비스 혁신 영역
1 서비스 모델 혁신
서비스 모델 혁신이란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창출하고 기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전환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 기업도 내부에 서비스 연구개발(R&D) 기능을 두고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서비스는 제품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비스를 연구하는 조직을 가진 기업이 많지 않다. 서비스도 제품처럼 연구개발해야 하고 제품보다 훨씬 아이디어가 중요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IBM은 전 세계의 많은 연구소와 컨설팅 조직에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동시에 기존 고객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혁신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내놓은 ‘온 디맨드(On-Demand)’ 서비스부터 최근의 스마터 플래닛 솔루션(Smarter Planet Solution)까지 IBM이 내놓은 서비스 솔루션이 모두 이런 서비스 R&D의 결과다. 이는 기존 서비스 영역과 IBM의 제품을 한데 섞어 만들어진 유/무형의 서비스와 제품의 융합상품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IBM의 기술, 하드웨어 제품, 소프트웨어, 컨설팅 역량이 집결된 서비스 솔루션이다. IBM은 이를 통해 국가나 도시 전체를 더 똑똑하게 디자인하고 구현하는 스마트 솔루션들을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융복합 서비스는 기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제공되던 가치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렸다. 이 결과 서비스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대폭 증가했다. 인력을 늘리지 않고도 성과를 극대화해 서비스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다. IBM은 소프트웨어를 ‘판매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기업 고객의 비즈니스 성과 창출을 위한 도구로 본다. 즉 소프트웨어 제품 자체의 완결성보다는 소프트웨어의 구현 과정에서 창출되는 고객 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컨설팅 및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 제작에 필요한 엔지니어링 역량을 고객과 상호 교류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 역량으로 바꾸고 있다. 이 또한 기존 자원을 유지하면서 서비스로 창출되는 성과를 전사적으로 극대화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서비스 유형화 및 시스템화
무형의 서비스를 유형화, 자산화하고 시스템화하는 것도 서비스 혁신의 주요 영역이다. 서비스를 유형화하고 자산화한다는 것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모든 과정을 프로세스화하고 그 과정상에 필요한 지식을 회사가 정형화된 자산으로 관리하고 필요할 때 적시에 서비스 인력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서비스 인력에 대한 인적 역량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일정 수준의 성과와 품질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IBM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는 서비스 종료 이후 내부적으로 자산화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A라는 국가에서 지금까지 진행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주제의 IT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하자.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를 수행했던 접근방법(approach)과 적용됐던 모든 노하우(know-how)들이 내부 자산관리 시스템에 등록된다. 자산관리팀은 국가별로 수행된 사례 중 유사한 프로젝트들을 모아 새로운 서비스의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과정을 방법론화한다. 예를 들어, 일을 하는 절차, 필요한 지식, 도구를 모아 최대한 정형화된 프로세스로 정리하고 이를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 유사한 서비스 공급 요청이 있을 때 해당 서비스를 제공했던 경험이 없는 현지 컨설턴트도 그 절차와 노하우를 쉽게 습득하고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유형화, 자산화 과정을 통해 동일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서비스 딜리버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적은 인원을 투입해 목표한 성과를 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사례는 다른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용 대형 프린터 아웃소싱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자주 발생하는 간단한 고장을 유형화해서 매뉴얼을 제작하거나 프린터 모니터의 지시에 따라 고객이 쉽게 오류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해서 유지보수 인력의 운용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직원 수는 줄이고 직원당 서비스 대응 건수를 끌어올려 생산성을 강화하는 식의 대응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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