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 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사례 1 밥솥 온도의 딜레마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있다. 밥이 푸슬푸슬 퍼석하다. 밥을 빨리 맛있게 지으려면 고온으로 가열해야 한다. 그런데 고온으로 가열하면 물이 밖으로 빠르게 증발해버려 밥이 퍼석하게 된다. 그렇다고 저온에서 가열하면 밥알이 잘 익지 않거나 익히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온도를 올려야 할까? 내려야 할까?
사례 2 면도날의 힘에 관한 딜레마
안전 면도기의 창시자 질레트는 면도를 할 때 면도날에서 자꾸만 수염이 빠져 나와 삐뚤삐뚤하게 깎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시간 고민했다. 털을 깎자면 면도날로 털에 어느 정도 힘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털은 부드럽고 가는 섬유질이기 때문에 면도날로 털에 힘을 가하면 털이 눌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털을 잘 깎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털은 잘 깎이고, 어떤 털은 면도날에 눌려 잘 깎이지 않게 된다. 털에 힘을 강하게 가해야 할까? 약하게 가해야 할까?
사례 3 태양전지 광(光)효율의 딜레마
빛을 전기로 바꾸는 시스템인 태양전지는 여러 소재로 만들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소재가 실리콘으로 반도체 성질을 가진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대역이 좁아 이론적 변환 효율이 30% 미만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매우 넓은 파장대를 가진 태양 에너지 중 실리콘 태양전지는 극히 일부 파장대에만 반응해 태양광 가운데 고작 30%만 전기로 바뀐다는 소리다. 이 점에 주목해 엔지니어들은 변환 효율을 높일 목적으로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파장대의 태양광까지 발전에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방법 중 하나가 흡수 대역이 넓어지도록 반도체 조성을 아예 바꾸는 일이다. 하지만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 물질의 조성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좀 더 빠른 방법으로 흡수 대역이 각각 다른 물질을 겹겹이 배치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여러 층을 쌓는 이 공정은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겹겹이 쌓은 층에 태양광이 흡수돼 전기로 변환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여러 층을 쌓아야 할까? 쌓지 말아야 할까?
문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밥솥에도 면도기에도 태양전지에도 있다. 각 분야의 어려운 문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전문가에게도 똑같이 어렵다. 어려운 문제를 대하는 전형적 태도 중 하나는 자신에게만 그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려운 문제들은 문제의 본질과 해결안이 서로 닮아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위 세 가지 사례에서 문제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면, 해결안의 기본 원리 역시 한 가지란 것을 통찰할 수 있다.
사례 1 해결안 밥솥 온도의 딜레마
밥솥에 존재하는 문제의 본질을 기술적 모순의 서식, 즉 ‘어떠한 접근(app-roach)을 하거나 특정 조건(condition) 하에서는 시스템에 유익한 효과(good)가 나타나지만 동시에 다른 유해한 효과(bad)도 발생한다’는 형태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밥솥의 온도를 높이면(approach or condition), 쌀이 잘 호화돼 밥맛이 좋아지나(시스템의 본질적 기능 수행 원활, good), 쌀을 호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인 물이 제거돼 호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밥이 퍼석해진다(역기능 발생, 시스템의 본질적 기능 수행 원활하지 않음, bad).” 이 문제의 해결안은 온도를 ‘적당하게’ 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밥맛을 좋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도는 100도 이상으로 가열을 하면서도 물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압력(반작용)을 걸어주는 해결책은 어떨까? 이런 고압을 걸어주는 장치를 우리는 압력솥이라고 부른다. 압력솥이 없던 시절엔 허황된 소리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상식이다.
사례 2 해결안 면도날의 힘에 관한 딜레마
이번엔 털과 면도날 사이에 일어나는 기술적 모순을 정의해 보자. 털을 깎기 위해서는 면도날로 털에 힘을 가해야 한다. 그런데 털은 힘이 없어서 잘 눌린다. 털을 잘 깎기 위해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털이 더 눌린다. 그렇다고 약한 힘을 가하면 털은 잘 깎이지 않는다. 기술적 모순으로 통찰해 보면 이렇게 쓸 수 있다. “털에 힘을 강하게 가하면(approach or condition), 털은 잘 깎이나(good), 털이 눌리기 쉽다(bad).” 이런 문제를 만나면 ‘적당히’ 힘을 가한다는 해결안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그러나 질레트의 성공 사례가 말해주듯이 더 적절한 해결안은 털이 면도날에 눌리지 않도록 반작용 역할을 해 주는 가로대(전기면도기에서 털을 잡아주는 철망 형태의 구조물)를 설치하는 방법이었다. 질레트 이전에는 털이 눌리지 않는 면도기란 웃기는 소리였지만 질레트 이후에는 상식이다.
사례 1과 사례 2를 비교해 보면, 반작용의 구체적인 종류는 다르지만 역기능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능의 ‘대상물(사례 1은 물, 사례 2는 털)’에 ‘미리 반작용을 가해둔다(사례 1은 가압, 사례 2는 눕지 않도록 하는 가로대)’는 해결안의 본질은 동일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문제의 본질도 두 사례 모두 같다는 점이다. 두 사례 모두 문제는 다르지만 시스템의 기능 수행을 위해 가하는 작용이 오히려 시스템의 본질적 기본 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갈등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문제의 본질이 같다면 분야는 다르더라도 해결안의 본질은 같을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문제와 해결안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다.
사례 3 해결안 태양전지 광(光)효율의 딜레마
이제 태양전지 광효율의 딜레마를 살펴보자. 이 문제에 존재하는 기술적 모순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각각의 파장에 대응하는 태양전지를 만들어 층층으로 부착시키면(approach or condition), 여러 파장의 빛을 발전에 활용해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으나(good), 여러 층이 빛을 흡수해 중간에 광(光)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에 전기 생산 효율이 감소할 수 있다(bad).” (악영향은 생산 효율 저하 외에도 제조 공정이 매우 까다롭다거나 제조 비용이 높아진다는 점도 있지만, 기술적 모순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한 가지나 주요하게 다루는 이슈에 집중해 하나만을 선정한다.) 사례 3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면, 비록 사례 1, 2와 다른 분야의 기술이지만, 기술적인 해결안이 기능성과 효율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악영향도 함께 발생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