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경쟁상대는 동종업계의 자동차회사일 수도 있지만, 노키아(NOKIA)가 될 수도 있다. 소니의 경쟁상대는 삼성전자이기도 하지만 싸이월드일 수도 있다.
왜 일까. 노키아의 비즈니스 콘셉트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connecting people)’시켜 주는 데 있다. 자동차는 교통수단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준다는 점에서는 휴대전화와 동일하다. 제품은 다르지만 제품이 고객에게 제공해주는 가치의 유형은 비슷하기 때문에 자동차와 휴대전화는 경쟁 제품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소니에서 만드는 게임기를 갖고 게임하는 시간보다 싸이월드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다면 소니로서는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소니는 싸이월드보다 더 가치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벤치마킹은 동종 또는 유사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넘어서서 콘셉트(concept)와 가치(value)를 중심으로 한 벤치마킹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을 해석할 때 안경에 해당하는 ‘개념’이 필요하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거나 기존 개념의 재개념화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한때 유행했던 벤치마킹을 전혀 다른 콘셉트로 재개념화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직결되는 학습을 통한 창조 전략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논하고자 한다. 이른바 창조적인 모방을 통한 벤치마킹으로 ‘벤치마킹 2.0’이다.
1. Benchmarking 2.0: 창조적 모방과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벤치마킹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보다 잘하는 기업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창조적으로 모방을 하는 데 있다. ‘전대미문의 창조’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을 남다른 방식으로 모방하면서 기존에 없던 것을 추가하거나 빼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시켜 탄생하기 때문이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힘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낯설게 보여주는 데 있다.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된다. 전례 없는 새로운 창조는 없다.
창의성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이다(김정운, 2007).1
창의성은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의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거나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이다. 훌라후프를 허리에 걸면 운동기구가 되지만 화초나 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는 지지대로 변신한다. 훌라후프가 비닐하우스 지지대로 변한 것은 뭔가를 새롭게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도구의 사용 맥락을 바꿨을 뿐이다.
“인간은 늘 주어진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서 모든 창작물은 모방이며 표절이다. 바이올린의 격렬한 현은 폭풍과 파도소리를 모방하고, 풍경화가의 유려한 붓은 들판과 숲을 표절한다.”(남경태, 2007, p.179)2
이런 점에서 창작물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은 창작물 자체에 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창작물과의 관계에서 부각되는 차이다. 차이를 드러내는 노력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기존 창작물과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거나 기존 창작물이 갖고 있는 의미의 맥락을 바꿈으로써 다르게 느껴지는 차이인 경우가 더 많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임무도 무엇인가를 늘 새롭게 창작하는 데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도전해 낯선 경험과 자극을 제공하는 데 있다. 창의와 창조는 결국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노력이자 결과물이다.
솔로몬이 탄식(歎息)하면서 말했던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해 아래 관계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탄성(歎聲)으로 바꾸면 창조가 시작될 수 있다. 모든 창조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이상을 조합하거나 융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창조는 기존의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엮어서 각각의 ‘유’가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유’를 만들어 내는 이종결합(異種結合) 또는 잡종교배(雜種交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과정을 통해, 또는 동일한 정보라 할지라도 정보가 쓰이는 맥락을 달리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관계없다고 관심을 갖지 않거나 포기하면 창조적 연상 작용은 멈추게 된다. 전혀 관계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 연결시키려 노력하면 각각이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할 수 있다. 창의와 창조의 문제는 결국 내 주변과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연결돼 있고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 이상을 엮어서 세상에 내 놓느냐의 기회선점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벤치마킹은 우리보다 단순히 잘하는 기업이 아니라 우리와 색다르게 경영활동을 전개하는 기업을 창조적으로 모방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기업, 즉 솔로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 아래 모든 기업’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정 기업이 특이한 제품개발 과정에서 차용했던 아이디어 발상법이나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는 변화관리 기법, 제품 콘셉트 창조 과정이나 마케팅 방법 등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배움의 원천이다.
벤치마킹 2.0에는 창조적인 모방 외에도 상상력이 수반돼야 한다. 벤치마킹을 통해 경쟁기업의 차별화 전략을 철저히 분석, 자사에 적용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경쟁기업을 능가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사의 미래 발전 모습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는지에 따라 상상한 대로 회사의 미래가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벤치마킹에서 상상력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흔히 상상력하면 밑도 끝도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상력은 구체적인 현실과 일상에서 출발한다. 일상에서 출발한 상상이어야 비상할 수 있다. 상상력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경쟁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어떤 불편함, 불만족스러움, 불안감을 느껴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구상했는지 포착할 필요가 있다. 모든 혁신과 창조는 고객과 제품이 만나는 접점에서 고객이 느끼는 불편, 불만족,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의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따라서 벤치마킹 2.0은 ‘상상하는 벤치마킹(Imaginative Benchmarking)’과 ‘창조적인 벤치마킹(Creative Benchmarking)’의 합성어인 ‘Im-Creative Benchmarking’으로 정의할 수 있다. ImCreative Benchmarking은 경쟁기업을 단순히 모방하는 따라잡기식 학습전략을 넘어서서 제2의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창조적 모방학습전략을 강조하기 위해 창안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