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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튼의 통찰력, ‘피라미드 맨 아래의 부’를 주목하다

윤성원 | 65호 (2010년 9월 Issue 2)
2004년 와튼 MBA스쿨 출판부는 당시만 해도 낯선 개념을 담은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머징마켓 저소득층도 상당한 구매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을 새로운 세분시장으로 정의하고 공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인도 출신의 저명한 경영학자 CK 프라할라드 교수가 집필한 ‘피라미드 맨 아래의 부(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다. 적절히 설계된 상품과 사업 모델을 통해 이들을 공략하면, 규모의 경제 효과로 기업은 상당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역시 자생적으로 개선된다는 주장이었다.
 
출간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신선한 경영 전략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 등장한 다양한 글로벌 또는 현지 기업들의 저소득층 공략 성공 사례는 대다수 기업들의 이머징마켓 전략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필자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동남아시아 소재의 한 대기업에서 지속가능 개발 전략(Sustainable Development Strategy)을 주제로 한 인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 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머징 기업들의 저소득층 공략 기법 및 전 세계 지속가능 개발 전략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아직 이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차별화의 기반, 이머징마켓 저소득층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 각지에서 저소득층 공략을 위한 다양한 사업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선진국 기업이 아니라 이머징 국가의 현지 기업들이 오히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글로벌 기업들과 차별화시키고, 저소득층을 자신들의 안정적 성장 기반으로 전환시켰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기업들처럼 정형화된 사업 모델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창의적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있었다.
 
필자가 일했던 대기업에 소속된 시멘트 사업 부문 역시 이러한 사업 모델을 갖추고 있었다. 언뜻 시멘트 사업의 주요 고객으로 대형 건설회사만 떠오른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시멘트 사업부는 스스로 집을 짓는 DIY(Do it yourself) 소비자, 소규모의 영세 시공업자들을 주 고객층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동남아에서는 이런 소비자 층이 대형 건설회사 못지 않은 비중을 지니고 있었다. 이 회사는 우리가 흔히 보던 대형 레미콘 트럭의 4분의 1에 불과한 소형 트럭을 보유하고 있다. 이머징마켓 국가의 열악한 사회 인프라 때문에 이들 나라의 도로는 대부분 비좁다. 또 단위 소비량이 적은 지역에서도 폭넓은 배송 체계를 구축하려면 트럭의 크기가 작아야만 한다. 이 회사는 동시에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소형 편의점을 통해 시멘트 구매 주문을 받고 있었다. 소량으로 정규 시멘트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제품을 별도 판매하기도 했다.
 
이 분야의 세계적 기업이자 역시 이머징마켓 출신 기업인 세멕스(CEMEX)를 보자. 멕시코의 시멘트 회사인 세멕스는 저소득층 삶의 질 개선과 동시에 이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하우징 솔루션(Housing solution)을 설계, 큰 성공을 거뒀다. 세멕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하루 소득 5달러 이하의 저소득층 3가족을 하나의 유닛으로 묶어 시멘트 비용을 공동의 책임으로 장기 분납하는 ‘시멘트 계’의 형태다. 대금 납부에 맞춰 시멘트를 배송하거나, 납부 실적에 따라 마이크로 파이낸싱을 제공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시멕스는 멕시코 시장의 40%를 차지하던 저소득층을 수익을 창출하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로 전환시켰고, 동시에 이들의 수요를 기반으로 건설 경기에 덜 민감한 사업 구조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인도 소비재 업체들도 비슷하다. 이들은 서구식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체인이 아닌, 여성 인력들을 활용한 ‘방문 판매’ 모델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유통망 접근성이 낮은 대규모 저소득층 시장을 효과적으로 장악할 수 있었다. 이는 프라할라드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예견한 혁신 원칙과 동일하다.
 
빈곤층에 대한 삶의 질 개선과 더불어 기업의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의 성공은 온실가스, 물 부족 등 전세계적 환경 문제들과 맞물리면서, 기업의 지속가능 개발 전략(Sustainable Development Strategy)을 새로운 단계로 진화시키고 있었다. 과거 기업들이 추진하던 사회 공헌(CSR) 활동들이 해당 기업의 성장 전략과는 별개였다면, 이제 두 영역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지속가능 개발 전략 수립 및 추진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필자는 크게 네 가지 변화를 예상하고 있다. 먼저, 전략적인 지속가능 개발 활동이 늘어날 것이다. 월마트는 과거 저임금 정책으로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CSR에 주력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이후 월마트는 ‘그린(Green)’ 이라는 한 단어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월마트는 제품 포장의 최소화, 지속가능한 원료를 통해 생산된 제품 판매를 선언했다. 이 전략이 월마트의 강력한 구매력과 결합한 결과, 월마트는 지속가능 개발 분야의 선도 업체가 될 수 있었다.
 
둘째, 규제를 앞설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환경 관련 각종 규제는 산업 내 경쟁 구조에 큰 영향을 끼쳐, 이를 잘 활용하는 기업에 큰 기회를 준다. HP는 2000년 유럽에서 유해물질의 전자제품 사용 규제 안이 도입되자, 기존에 축적된 친환경 대체 물질 및 예상 규제 방향 연구에 기반해 유럽 의회를 설득, 법규 집행 시기를 4년 늦췄다. 이 기간 중 HP는 부품 공급업체들의 대체 물질 개발을 지원, 이후 대체 부품의 저가 공급을 보장받았다. 동시에 소니, 브라운처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기업들을 설득, 대규모 유해물질 폐기물 처리 시설에 공동 투자했다. 그 결과 HP는 경쟁사 대비 폐기 비용을 50% 이상 절감했다. 축적된 친환경 규제에의 연구 성과를 고유의 경쟁 우위로 전환한 셈이다.
 
세 번째, 적극적이고 창의적 기업 홍보가 점점 중요해진다. GE는 친환경 전략 과제 중 특이하게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린다’는 과제가 있었다. 자화자찬이 아니었다. 환경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려 관심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환경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한다는 것. 이들에게 적극적 홍보는 환경 문제 해결의 촉매제이자 수익창출의 원동력이었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인 맥(MAC)도 창의적 홍보를 통해 자사의 에이즈(AIDS) 캠페인을 이용했다. 비바 그린(VIVA Green)이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은 맥이 제품 한 개를 판매할 때마다 약 14 달러를 에이즈 펀드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맥은 자사의 화장품을 쓰는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을 집중 이용해 이 펀드를 전 세계 에이즈 관련 기금 중 두 번째 큰 펀드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업무 영역을 커버할 수 있는 지속가능 경영 조직 인프라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듀폰에는 최고 지속가능 경영 책임자(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가 존재한다. 이 CSO는 듀폰의 지속가능 개발 전략 수립 및 집행을 주도하고, 전략, 마케팅, R&D, 홍보 등 타 업무 영역과의 협력 프로세스를 조정한다. 동시에 지속가능 개발 부서와 타 부서 간의 인력 교환을 통해 전략 및 홍보 업무 연계, 환경 규제 모니터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한국 기업은 이러한 추세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을까?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 개발 전략은 과거의 비용 절감 및 위기 관리 중심이 아니라 이익 창출의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기업의 성장 전략과 지속가능한 개발 전략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모범 사례를 보유하지 못한 한국 기업이 이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시기가 왔다.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윤성원 | - (현) 펜실베니아대 와튼 MBA CLASS OF 2011
    - 베인&컴퍼니 컨설턴트
    - 금융, M&A, 항공, 산업재 부문 컨설팅 프로젝트 수행
    sungwony@wharton.upen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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