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세계 최대 M&A 시장은 단연 미국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후 미국 기업들 간 M&A나 미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모두 주춤하다. 반대로 중국 및 인도 기업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M&A 시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로 헐값에 나온 알짜 미국 기업들을 사들이는 데 열심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아직 이 흐름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 듯하다. 미국 M&A 시장의 매력과 미국 기업을 인수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알아보자.
왜 Buy America인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의 전 세계 M&A 시장 규모는 약 2조8000억 달러였다. 2007년 4조 달러에 비해 약 30% 감소한 수치다. 2008년 미국 M&A 시장 규모 역시 2007년 1조7000억 달러보다 46% 줄어든 9000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 감소 추세는 2009년까지 이어졌다. 2009년 세계 M&A 시장 규모는 1조 9000억 달러, 미국 시장 규모는 7000억 달러에 그쳤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진원지였던 미국 기업들의 가치 하락은 불가피했다.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외 지역 기업들이 미국 기업을 인수하려는 시도가 증가하면서 Buy America 열풍에 불이 붙었다. 사실 이는 매우 흔치 않은 기회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런 움직임이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 2008년 한 해 동안 미국 기업 인수를 위해 투입된 외국 자본은 1172억 달러가 넘었다. 미국 내 M&A 시장 규모는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이 와중에 해외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금융위기 후 해외 기업이 미국 주요 기업을 인수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일본 도쿄해상화재는 서브프라임 부실 자산이 거의 없는 알짜배기 보험회사 필라델피아를 460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는 일본 보험회사의 해외 M&A 사상 최대 규모다. 올해 3월엔 영국 보험회사 프루덴셜이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의 아시아 생명보험 사업부 AIA를 355억 달러에 인수했다. 비슷한 시기 독일 화학 및 의약회사 머크도 제약 장비업체 밀리포어를 720억 달러에 사들였다. 일본 생명과학업체 아스텔라스는 OSI를 350억 달러에 적대적 인수합병하기로 했다.(표1)
한국 기업의 해외 M&A 현황
국내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규모가 큰 미국 기업을 인수한 사례가 몇몇 있다.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가 미국 잉거솔랜드 산하의 소형 중장비업체인 밥캣을 포함한 3개 사업부를 49억 달러에 인수한 게 좋은 예다. 동원그룹의 스타키스트 인수, LS전선의 수피리어 에섹스 인수 등도 있다. 인수 금액도 수천 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기업 인수 목적은 주로 시너지 창출을 위한 전후방 다각화나 동종 업계의 기업 인수를 통한 신시장 개척이다.
두산 인프라코어를 보자. 두산은 아시아 지역에선 발달된 유통망을 갖추고 있었으나, 선진국 시장에선 그렇지 못했다. 이에 동종 분야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밥캣을 인수해 미국 및 유럽 유통채널의 취약점을 해결함과 동시에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동원그룹은 미국 1위 참치캔 유통업체인 스타키스트를 인수해 자사에서 수확하는 참치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 LS전선도 수피리어 에섹스 인수로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비록 인수가 무산되긴 했지만 삼성전자의 샌디스크 인수 시도, SK텔레콤의 스프린트 넥스텔 인수 시도, LG전자의 GE 가전사업부 인수 시도,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 시도 등도 한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해외 기업 인수 시 유의 사항
이처럼 해외 기업 인수 시도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M&A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해외 M&A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살펴보자.
1)인수 목적에 대한 점검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일은 상당한 모험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인수 대금 이외의 추가 비용도 국내 기업을 인수할 때보다 훨씬 더 든다. 때문에 인수 목적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고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궁극적인 시너지 요소와 해당 시너지의 창출 방안에 대한 사전 전략이 마련돼야 하고, 이 전략들이 합리적이며 실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관한 논의도 선행돼야 한다.
인수 주체의 관점에선 독자적인 인수를 할 것인지, 전략적 투자자나 재무적 투자자의 참여를 통한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추진할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만약 인수 주체의 해외 진출 경험이 일천하다면 관련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사모펀드와 함께 진행하는 일도 대안이라 하겠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직후 인수를 검토하던 산업은행 또한 이 단계에서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당시 산업은행의 목적은 비교적 분명했다. 리먼 브러더스와 같은 선진 투자은행이 한국 기업의 손에 들어온다면 엄청난 일이며 그들이 가진 노하우와 수많은 인재들을 한꺼번에 얻어 비즈니스 모델을 선진화하고 나아가선 전체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선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낙 거래 규모가 크고 시급한 사안이었던 만큼 산업은행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애물에 부딪혔다.
산업은행은 부실자산이 모두 정리된 ‘깨끗한 회사(clean company)’를 인수하기 원했다. 하지만 이에 관한 리먼 브러더스와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산업은행 안팎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명목 하에 그 많은 위험을 감당해야 하느냐는 회의론도 많았다. 산업은행과 같은 공기업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한다면 과연 제대로 감독할 수 있을지,리먼 직원들이 금융 공기업의 조직 문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이에 산업은행은 민간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하려 했다.하지만 이 또한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결국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직전에 협상이 결렬, 산업은행은 인수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