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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 on Japan

독자 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라

이지평 | 58호 (2010년 6월 Issue 1)

독자 기술 지닌 강소 기업의 5대 금기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일본 내 많은 대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남들이 따라잡기 힘든 독자 기술을 보유해 승승장구하는 일본 기업이 있다. 바로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마니(Mani)다. 이 회사는 다른 기업이 대체할 수 없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어서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고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마니는 일본 증시에 상장된 기업으로 독자 기술을 활용해 수술용 바늘, 안과용 나이프, 치과 치료기를 만들었다.
 
마니는 ‘환자를 위하고 의사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개발, 생산, 공급하고 세계 각국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경영 이념을 세웠다. 마니는 이런 이념하에 어떤 경영 환경에서도 해서는 안 될 5가지 원칙, 이른바 ‘5대 금기 원칙’을 세웠다. 이 기업은 의료기기 이외 분야에 진출하지 않는다 독자 기술이 없는 제품은 다루지 않는다 세계 1위 품질 이외의 목표는 삼지 않는다 세계 시장 규모가 1000억 엔 이하의 틈새시장이 아니면 뛰어들지 않는다 세계 각국에 판매할 수 없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는 등 5가지 기본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철저하게 자사의 핵심 역량에 기초한 전략을 펼치면서, 경영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이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전술적 경쟁력보다 전략적 경쟁력을 키워라
수준 높은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많은 일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현장에서의 ‘전술적인 경쟁력’이 뛰어나더라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방향타를 잡는 ‘전략적인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마니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켜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고유한 기술적 강점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평판 디스플레이 필름을 비롯해 반도체, 자동차, 건자재, 태양전지 백시트 등 각종 산업용 접착테이프를 제조하는 일본의 린텍도 비슷하다. 린텍은 특수 기술 분야의 강점에 힘입어 2010년 3월 결산에서 경상이익이 53.9%, 당기순이익이 82.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린텍은 연구개발(R&D) 역량을 기초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신제품 개발에 주력했고, 신제품의 개발 비율도 25%를 웃돈다.
 
일본 현지 언론은 교량 공사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지닌 요코카와 브릿지 홀딩, 조용하고 쾌적한 고속철도 차량을 생산하는 일본 차량 제조사, 화상 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無)공장 비즈니스 모델로 액정표시장치(LCD)의 결함 검사 장치를 공급하고 있는 브이테크놀로지 등도 매출과 이익이 계속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일본경제신문>. 2009년 11월 13자).
 
서비스 분야에서도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내수 침체를 극복하고 있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도쿄 도심에서 개당 500엔 미만의 메뉴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체인인 사이제리야는 이공계 출신 정규직 직원들이 만든 과학적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노하우를 기초로 고수익을 구가하고 있다(일본경제신문, 2009년 12월 21자). 사이제리야는 과학적 분석 능력을 기초로 청소의 업무 효율을 2배로 올리고, 수학적 분석 능력을 음식 서비스 제공 방식에 접목시켰다. 이와 함께 농장을 직접 운영해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조달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 종업원에게 시간당 1200엔이나 주면서도 수익성을 높였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다른 체인점을 훨씬 능가하는 약 8%에 이른다.
 
독자 기술로 다품종 소량 생산에 주력하라
독창적인 기술력을 갖고 틈새시장을 노리는 일본의 독자 기술 기업과 달리 최근 일본 대기업들은 선진국 경기 침체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뒤늦게 신흥 시장에 도전하면서 독자 기술보다 거대 소비 계층을 공략하기 위한 원가 절감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신흥 시장의 범용 저가 시장을 노리는 일본 기업의 전략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특수한 고객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독자 기술력이 가장 큰 경쟁 우위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들의 원가 절감은 과거 경쟁 우위 요인과 거리가 있다.

<그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일본 기업은 제품이 개발되는 도입 단계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양산 기술이 중요해지는 성장기 단계에서는 대개 한국 기업에 밀리고 있다. 또 제품이 보급되면서 가격이 급락하는 제품의 성숙 및 쇠퇴 단계에서는 산업의 주도권이 점차 중국 기업으로 넘어가는 패턴을 보인다.
 
<그림>과 같은 동아시아 분업 구조의 이점을 고려한다면 일본 기업은 독자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의 독특한 ‘모노즈쿠리(고품질 제조)’ 능력을 살릴 수 있는 분야는 대량 생산보다는 다품종 소규모 생산이다. 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최근 호조를 보이고 있는 기업도 중소형 틈새시장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이다.
실제로 일부 일본 대기업은 모든 시장과 제품에 주력하기보다 첨단 독자 기술로 승부를 걸고 있다. 예를 들면 철강 산업에서는 ‘고베제강소’가 대형 고로에서 8시간이나 걸렸던 철강 생산 프로세스를 10분으로 단축하는 기술을 개발 (<닛케이비즈니스>. 2010년3월8자)했다. 이 회사가 15년간 R&D에 매달린 끝에 개발한 차세대 공법(ITmk3)은 직경 60m의 회전식 용광로에 석탄과 철광석을 투입해 약 10분 만에 철강 원료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는 철강 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기술이다.
 
또 섬유계 화학 기업인 도레이는 LCD 등에 사용되는 투명 필름을 생산할 때 기존 희소 금속인 인듐을 사용하지 않고 나노 기술을 이용한 카본나노튜브를 이용하는 공법을 개발했다. 후지전기도 탄소 재료를 이용해 태양전지의 투명 전극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탄소는 금속에 비해 자원이 풍부하고 일본 기업이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해온 분야다. 이 기술이 전기전자, 자동차 등 각 분야로 응용될 경우 일본 기업의 입지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이 독자적인 기술 및 서비스로 틈새시장을 개척한다면 앞으로 아시아 각국 기업과의 효과적인 분업이 가능해지면서 중장기적으로 기업 성과도 좋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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