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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조사의 한계와 극복 방안

말 못하는 아이와 소통하는 엄마의 지혜 배워

황경남 | 55호 (2010년 4월 Issue 2)

많은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다양한 시장 조사를 활용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는 경영자가 많다. 한국 기업에서는 ‘시장 조사? 하면 도움이야 되겠지만 꼭 해야 하나? 조사를 하지 않고 경험에 의존한 결정을 내려도 큰 문제가 없던데…’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영자가 상당수다.
 
실제 최근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한 회사의 직원은 필자에게 “시장 조사를 통해 과연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느냐를 알고 싶었는데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시장 조사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을 확인시켜줬을 뿐,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히토쓰바시대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가 쓴 <씽크 이노베이션>에서는 시장 조사가 ‘백 미러’에 불과하다고 표현한다. 즉 시장 조사는 지난 과거만 알려줄 뿐,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을 주지는 못한다는 비판이다. 실제 전구, 자동차, 워크맨, 아이팟 등 세계적인 히트 상품은 대부분 시장 조사 결과에서는 실패가 예상됐지만 개발자의 신념에 의해 탄생했다.
 
시장 조사의 한계가 나타나는 이유
그렇다면 시장 조사는 왜 이런 한계를 지니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사안을 잘 모른다. 아무리 정교한 질문 기법을 적용한다 해도 자신이 모르는 사안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MP3를 만들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얇고, 가볍고, 음질이 좋고, 저장 용량도 크고, 가격도 싸고 배터리도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할 뿐이다. 그 어떤 응답자도 터치 스크린이라는 개념을 얘기하며 이런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답하지는 않는다. 아이팟이 나오기 전 터치 방식의 제품을 써본 소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도 이를 지적한 사람이 있다. 현대 자동차 산업의 기초를 닦은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리는 말을 원한다고 얘기할 뿐, 길거리에 배설물을 흘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즉, 아무리 우수한 조사법을 사용해도 자신의 경험만을 얘기할 수 있다는 인간의 한계를 바꿀 수는 없다. 물론 인간의 경험에 근거한 자료는 이미 출시되어 있는 제품 성능을 개선한다거나, 사용 경험 및 만족도 등을 파악할 때는 상당히 정확한 지침을 제공해줄 수 있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문제다. 시장 조사는 소비자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사람은 대부분의 정보를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바로 눈을 통한 시각적 정보다. 하지만 저장된 시각 정보를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장면을 볼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셋째, 심리적인 왜곡이다. 심리적인 왜곡은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만큼 응답자가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거짓 응답을 할 때가 많다는 의미다. 우리는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거나,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런 응답이 사회가 선호하는 응답이고 자신이 답하기에도 편해서일 뿐 응답자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비자 역시 심리적 제약 때문에 솔직한 응답을 내놓지 않을 때가 많다.
 
1989년 창간된 여성 월간지 <마리안느>를 보자. <마리안느>는 창간 전 철저한 시장 조사를 한 잡지로 유명했다. 당시 사전 시장 조사 결과에서는 주부들이 낯 뜨거운 섹스 이야기, 연예인 루머 일색의 기존 여성 잡지에 상당한 식상함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려 95%의 응답자들이 ‘만일 유익한 정보만을 담은 잡지가 나온다면 이를 구독하겠다’고 답했다. <마리안느>는 이런 고객의 욕구에 맞춰 3無(無 섹스, 無 루머, 無 스캔들) 잡지라는 콘셉트를 고수했다. 하지만 불과 17호만 발행된 끝에 1991년 1월 폐간됐다. 이유는 자명하다. 어떤 주부가 조사원 앞에서 섹스, 스캔들, 루머가 많은 잡지를 원한다고 얘기하겠는가?
 
시장 조사의 방법이 낳는 한계
시장 조사를 수행하는 방식에서도 많은 한계점이 드러난다. 첫째,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한꺼번에 한다는 문제다. 미국의 소규모 렌트카 회사였던 엔터프라이즈의 사례를 보자. 돈이 없어 임대료가 비싼 공항 인근에서는 대리점을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회사였던 엔터프라이즈는 여러 혁신을 통해 허츠나 에이비스와 같은 쟁쟁한 대기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엔터프라이즈의 성공 비결 중에는 이 회사의 독특한 고객 만족도 조사법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엔터프라이즈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드류 테일러는 다른 기업처럼 오랫동안 고객 만족을 목표로 노력해왔지만 실제 경영 성과와 고객 만족도에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에 의문을 가졌다. 이에 엔터프라이즈는 렌터카 서비스의 가격이 마음에 드느냐, 차량의 상태는 어땠느냐 등 잡다한 질문들을 다 포기하고 ‘엔터프라이즈와 다시 거래하시겠습니까’라는 단 하나의 질문만 하기로 했다. 복잡하고 유사한 질문은 응답자에게 고통만 안겨준다는 생각에 테일러는 오직 하나의 질문만 했고, 그 결과만을 고객 관리 지표로 활용했다.
 
질문 방식 또한 조사 결과의 한계를 낳는다. 최근 국내 한 결혼 정보 회사에서는 전국의 미혼 여성이 바라는 이상적인 남성 배우자 상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975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여성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랑감은 연봉 4600만 원, 자산 보유액 2억 1600만 원, 키 177cm로 나타났다. 이는 원하는 남성 배우자의 연봉과 자산, 키 등을 개별적으로 물은 후 이를 평균해서 제시한 수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질문과 답변은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된다. 이렇듯 질문을 분할해서 조사하는 ‘구성 요소적 접근(compositional approach)’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얻은 평균치를 고객들이 실제로 원하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실제 결혼 의사결정에서는 질문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요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두세 개 요인의 결합이 전혀 다른 효과를 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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