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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론적 접근법

협업의 패러다임에 조직을 맞춰라

김동철 | 51호 (2010년 2월 Issue 2)
LG전자는 최근 온라인 게임 ‘아이온’ 마니아들을 위해 ‘엑스노트(X Note) R590 아이온 에디션’ 노트북을 선보였다. 아이온 인증 로고와 함께 바탕화면에 아이온을 상징하는 게임 이미지와 색상을 적용한 이 제품은 약 2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에도 초기 공급 물량만 1000대가 넘을 정도로 마니아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제품으로 LG전자만 웃은 게 아니다. 아이온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는 LG전자의 생산 및 판촉 활동을 이용했고, LG전자는 아이온 게임 마니아를 새로운 고객으로 얻었다. 엔씨소프트의 최고경영자(CEO)가 왜 신년사에서 기업 간 협업을 화두로 던졌는지 알 만하다.
 
때로는 경쟁사들끼리도 협업한다. HP는 프린터 사업의 라이벌인 캐논으로부터 프린터 엔진을 공급받기도 했다. 삼성과 소니는 소비자 가전제품 시장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지만 한국의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공장에 20억 달러를 공동으로 투자했고, LCD 부품 및 생산 프로세스와 관련해 2만 4000건의 기본 특허를 공유했다.
 
왜 기업들은 서로 협업(Collaboration)을 하는 것일까? 한국의 성장 동력인 게임 업계가 협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따라잡기 어려운 변화들이 사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경영 환경이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정형화된 경쟁 구도에서는 우리 회사가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가 분명했다. 너와 내가 구분되고, 경쟁 기업 대비 우리의 전략적 우위가 무엇인지 명확했다. 경쟁 기업이 모방하기 어려운 핵심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면 상당 시간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가정들이 상당 부분 깨지고 있다. 기업이 알아채지 못한 변화가 어느 순간 기업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경쟁 구도가 더는 정형화되지 않고, 산업의 경계를 넘어 진행되고 있다. 통신사와 카드사가 협업을 하고, 나이키 신발과 아이팟이 연결되는 상황에서 정형화된 경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구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기업 간 협업은 왜 어려울까
협업이란 둘 이상의 동등한 사람이나 조직이 공통의 목표로 만나는 영역에서 지식과 학습을 공유하며 함께 일하는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말한다. 원래 ‘Collaboration’이라는 단어는 2차 세계 대전 직후 유럽에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었다. 조국을 배신하고 나치 점령군에게 부역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기업 간 협업이 어려운 것은 단어의 부정적 의미 때문이라기보다는, 협업이 ‘동등한 당사자 간의 활동’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협업의 당사자는 동등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업관에 따르면 상대가 나와 동등하다면 경쟁을 해서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해져야만 했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해지면 우월한 당사자가 상대 기업을 합병하거나 협력 업체로 두고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기업관에서는 우리 회사에 필요한 일을 우리 회사가 직접 수행하지 않고 다른 기업에서 찾는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협업이 왜 현실적으로 어려운지를 보다 구조적으로 설명한다.(표1) 죄수의 딜레마는 동등한 당사자들의 선택 가능한 전략과 그 전략에 따른 각자의 이익 배분(Payoff)을 고려한다. 먼저 당사자들이 모두 협력하면 각각 3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협력하고 나는 협력하지 않으면 내 이익은 4가 되고 상대방의 이익은 0이 된다(이러한 이익 배분 구조는 상대방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와 상대가 모두 협력을 하지 않으면 각자의 이익은 1이다. 이때 상대방이 협력할 때나, 협력하지 않을 때나 내가 협력하지 않는 것이 항상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우월한 전략(strictly dominant strategy)이 된다. 결국 모든 당사자는 어느 상황에서도 우월한 전략인 ‘협력하지 않음’을 택하게 되고, 양측 모두 1의 이익만 얻게 된다.
 
실제 현실에서도 어느 특정 사안에 국한해 기업 간 협업을 진행할 때 이 같은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한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한 번 협업하고 다시는 안 할 수 있는 ‘일회성 게임(one shot game)’이므로 각자가 이번 한 판에서 가장 유리한 전략을 택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각자 이익이 어느 정도 될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협업을 더욱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이렇게 어려운 기업 간 협업을 현명하게 추진한다면 해당 기업들에게 매우 높은 가치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기업 간 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잘 해야 할까?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업관과 리더십으로 경영하라

시대가 바뀌고 있다. 교과서가 너덜해질 때까지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던 세대들은 지나가고,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쉽게 획득하며, 지식의 암기보다는 활용이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 자신이 가진 노하우나 의견을 온라인상에서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공유하며, 이를 사회적인 영향력으로 승화시키는 세대들이 기업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각 회사에 흩어져 있는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 간 장벽을 넘어선 지식 공유와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업무 방식에 맞춰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즉 기업관도 변해야 한다. 웹 2.0 시대에 걸맞게 보다 열려 있고, 유연하며, 기업의 핵심 역량을 다른 기업과 연계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업무 방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리더십이 필요해진 것이다. 즉, 조직원들이 경쟁을 당연시하는 전통적 기업관에서 벗어나 협력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기업관으로 무장해야 하고, 경영진은 이를 장려해야 한다.(표2)
 
전통적인 기업관에서는 리더들이 조직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해 상생보다는 경쟁에 익숙하도록,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도록 가르쳤다. 논리를 바탕으로 순차적이고 단선적인 사고(sequential and linear thinking)를 하는 능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등한 당사자를 전제로 하는 기업 간 협업은 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기업 간 협업을 위해서는 양쪽 기업 모두 협상력과 조율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 모순된 것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패러독스 관리(paradox management) 역량을 가져야 한다. 특히 양 회사의 리더는 상대를 신뢰하며 보다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즉 병렬적이고 비선형적인 네트워크적 사고 능력(parallel, non-linear, network thinking)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제너럴일렉트릭(GE)이 21세기에 필요한 새로운 리더십을 △크게 생각하는 사람(Big Thinker) △자신과 타인을 개발하는 사람(Developer of Self and Others) △글로벌 인재(Globalist) △경청하는 사람(Listener) △소통을 잘하는 사람(Communicator) △네트워킹을 잘하는 사람(Networker)라고 정의한 것도 기업 간 협업을 통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 간 협업을 촉진하는 조직 관리 방법론
리더가 새로운 기업관과 리더십을 갖췄다면, 이제 임직원들의 DNA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때다. 임직원들에게 모든 걸 혼자 다하려 하면 안 된다는 걸 인식시키는 게 그 첫걸음이고, 이로부터 서서히 임직원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채용과 교육 훈련 방식을 바꿔 협업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하고, 업무 시간 및 공간, 연구개발(R&D) 및 혁신 방법 등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며, 협업을 촉진하는 조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내부 협업에 익숙한 인력이 외부 협업도 잘할 수밖에 없다. 부서 간 벽을 없애 내부 협업을 장려하는 것이 기업 간 협업 활성화에도 좋은 연습이 될 것이다.
 
①인재 채용:인재를 채용할 때 협업을 촉진하는 태도와 자질,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연성과 변화 적응력, 창의성, 커뮤니케이션 및 협상 능력 등의 역량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그동안 다양한 인재를 채용해서 그 기업의 사람(‘맨’)으로 만드는 일은 잘해왔다. 이제는 다양한 인재가 보유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역량을 받아들이고 협업을 촉진해 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
 
②일하는 방식:프로젝트나 모듈 단위로 업무 단위를 구성하는 게 협업에 적합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 중심으로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큰 그림에서의 이합집산이 가능하다. 기업 외부와의 협업을 추진할 때도 리스크를 줄이면서 기대 효과를 높이는 데 적합한 방식이다.
 
③업무 시간 및 공간:물리적인 업무 공간이 반드시 회사 내 주어진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업무 장소가 다른 기업의 회의실 또는 집, 카페일 수도 있다. 업무 시간도 ‘9 to 5’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유연한 근무 형태와 시간제는 협력 중심의 업무를 수행하는 특정 임직원에 한해 허용하는 게 좋다.

1) Ming Kwan, ENTERPRISE 2.0 :Building Trust in Online Communities, May 2008.
2) Anna Claudia Pellicelli, Strategic Alliance, 2003.
3) Michael Y. Yoshino, U. Shrinivasa Rangan, Strategic Alliances: an entrepreneurial approach to globalization, 1995
Mockler R.J., Multinational Strategic Alliances, 1999
Don Tapscott, Anthony D. Williams, Wikinomics – How Mass Collaboration Changes Everything. 2006.

 
④R&D와 혁신:모든 R&D를 내부에서 진행하지 말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과학자들이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검증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자사의 기술 플랫폼을 개방해 다양한 혁신 기술을 발굴하는 ‘대단위 협업(Mass Collaboration)’을 추진할 수도 있다.
 
⑤정보 비밀 유지:타 기업과 협업 중이라 하더라도 자사의 비밀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협업에 참여하고 있는 임직원들이 정보 보안 정책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발생 가능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각각의 경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기업의 윤리 강령과 비밀 유지 정책에 맞는 것인지를 인식시켜야 한다.
 
⑥교육 훈련:전통적인 집체 교육보다는 개별화된 교육과 다양한 외부 시각을 교류할 수 있는 외부 교육 프로그램이 보다 효과적이다. 또 지식 전달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보다는 실제 업무나 프로젝트를 통해 얻는 경험을 통한 훈련이 더 좋은 효과를 낸다. 다른 집단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기업 간 협업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⑦조직 문화:‘반드시 우리가 다해야 된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조직 문화에서는 기업 간 협업은커녕 내부 협업도 활성화되기 어렵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배우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여기서 단지 “실패는 값진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혁신 기업의 대명사인 혼다는 임직원들에게 아예 “실패를 하라”며, “대신 제대로 된 실패를 하라”고 전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기업 내의 모든 임직원들이 기업 간 협업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관리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주로 R&D, 상품 개발, 신사업추진, 마케팅, 영업 인력이 기업 간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거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데 적합한 인력이다.
 
좋게 만나 잘 헤어져야
협업은 대등한 당사자들이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함께 일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남과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쓰비시처럼 70년간 협업하는 경우도 있고, 다우케미컬과 코닝처럼 50여 년간 협업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합작 법인의 평균 수명이 7년 정도에 머문다고 한다.
 
최적의 파트너를 찾는 것은 좋게 만나 잘 헤어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연히 예측하지 못했던 파트너와 함께 협업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상호 간에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상대 파트너의 역량과 우리 기업의 역량이 협업의 영역에서 상호 보완적이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지, 상대 파트너와 함께 신뢰를 형성할 만한지, 서로 장기적인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상대 파트너도 우리와 협업해야 할 충분하고 지속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는 부분도 기업 간 협업을 공고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죄수의 딜레마를 볼 때, 파트너와의 협력이 ‘일회성 게임(one shot game)’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는 ‘반복 게임(repeated game)’이라는 것을 서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서로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배분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아울러 상대방이 협력 내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이로 인한 불이익이 무엇인지를 서로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제3자가 제공하는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활용해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성과를 모니터링해서 결과를 배분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협력 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전적으로 헤어지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합의한 기간이 종료되면 추가적으로 협업 기간을 연장할 것인지, 그렇다면 상호 이익을 위해 어떤 조건들을 새로 합의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합의된 협업 기간 중에도 부득이 헤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결별 조항(divorce clause)’을 만들어놓는 것이 좋다. 이는 어떤 조건과 상황이 되면 기업 간 협업 관계를 청산한다는 내용을 담는 조항이다. 협업의 시작 시점에 이런 조항을 만들면 당사자들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면서 동시에 협업 파트너들이 합의한 내용을 지키도록 유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의도했던 협업 기간에 신뢰를 쌓으며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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