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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21세기에 모순은 없다” 패러독스 경영 시대

하정민 | 48호 (2010년 1월 Issue 1)
지식기반 경제의 부상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 글로벌화의 진전,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 경영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980년대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기업이 저원가와 차별화 중 하나의 경쟁 우위만 달성해도 얼마든지 세계 최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10년 전 견해를 바꿨다. 도요타 자동차 때문이다.
 
도요타는 저원가와 차별화를 동시에 달성한 거의 최초의 기업이다. 과거 생산관리 교과서에서는 품질을 높이면 원가가 올라간다고 했다. 품질을 대폭 향상시켜 차별화를 이뤄냈는데도 생산 원가는 더 떨어졌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혁신과 차별화를 위한 혁신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저원가와 차별화를 동시에 달성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4년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사업부의 경쟁력의 원천을 분석한 적이 있다. 경쟁기업에 비해 생산 원가는 20% 저렴한데, 납품 단가는 20% 이상 비싸게 받고 있었다.
 
저원가와 차별화에 성공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거듭난 도요타와 삼성전자처럼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과거에 양립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안들을 잘 양립시켜야 한다. 이게 바로 패러독스 경영이다.

 

 
패러독스 경영, 왜 중요한가
패러독스 경영은 차별화와 저원가, 창조적 혁신과 효율성, 글로벌 통합과 현지화, 규모의 경제와 빠른 속도 등 얼핏 보면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요소들을 동시에 달성하는 경영 전략을 의미한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효율성, 즉 저원가를 중심으로 경쟁했다. 남이 만든 기술을 베껴 경쟁자보다 싼 제품을 만들어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제 기술을 베껴오는 일도, 제품을 싸게 만드는 일도 힘들어졌다. 과거보다 로열티도 훨씬 비싸졌다.
 
차별화와 저원가, 창조적 혁신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일이 말로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저원가를 먼저 달성한 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 번 돈으로 차별화를 위한 연구개발(R&D), 디자인 역량, 마케팅 역량 강화에 집중 투자했다. 창조적 혁신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은 더 어렵다. 삼성의 기업 문화를 보자. ‘월화수목금금금’은 삼성을 비롯한 많은 한국 기업들의 전통적인 문화다. 중앙집권적이며 통제를 강조하는 기업 문화는 상당 부분 유교 전통과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이는 삼성만의 문화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게다가 삼성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철저하게 규율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에서 갑자기 창조적 혁신을 이뤄내기가 쉽지는 않다. 또한 갑자기 바꾼다고 해서 쉽게 성공할 수도 없다.
 
창조적 혁신이나 창조 경영을 하려면 다양성, 개방성, 유연성,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조직원들이 단기 성과에 익숙해져 있고, 그간 해오던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젖어 있다면 어떻게 하루아침에 창조적 기업을 만들 수 있겠는가. 결국 ‘양손잡이 조직’이 필요하다. ‘기존 조직’은 하던 일을 계속 잘 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점진적으로 창의성을 높이고, ‘왼손잡이 조직’을 만들어 세상에 없는 창조적인 상품, 서비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폐쇄적 혁신 시스템을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한 개방적 혁신 시스템으로 전환시켜야 창조적 혁신을 적시에 하기 쉽다. 요즘처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복수의 기술이나 프로젝트에 조금씩 투자한 후 단계적으로 투자를 강화하거나, 투자 중단을 결정하는 소위 리얼 옵션(real option) 방식의 ‘양다리 걸치기’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
 
스피드는 한국 기업의 핵심 역량이다. 과거에는 소유 경영 체제를 채택한 한국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가 유달리 빨랐다. 신규 사업을 할 때 오너 경영자가 전 계열사의 역량을 결집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단행했기 때문이다. 삼성과 LG가 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뀜에 따라 과거처럼 기업의 소유주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기가 어려워졌다.
 
지배구조의 변화가 한국 기업의 강점, 즉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결정을 저해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능력 없는 오너 경영자가 무리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 기업을 나락에 빠트린 사례도 많다. 반드시 소유주와 경영자가 동일 인물일 필요는 없다. 오너 경영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오너 경영자가 능력이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검증 장치나 견제 장치를 두면 된다. 전문 경영인의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의사결정의 속도도 빨랐지만 이를 실행하는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삼성전자가 두드러진 성과를 낸 이유는 차별적 기술력, 디자인, 마케팅 역량 이외에도 글로벌 SCM(supply chain management)을 잘 했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 세계에 생산 라인을 재배치하고, 재고를 줄이고, 생산 및 판매의 시차를 줄였다. 아웃소싱, 전략적 제휴, 개방형 혁신도 한국 기업의 실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적극 고려해야 할 방안이다.
 
삼성전자의 혁신: 신경영을 넘어 패러독스 경영으로
삼성은 1990년대 초 신경영을 선언하며 우량 기업으로 거듭날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에는 패러독스 경영을 통해 지금 위치로 올라섰다. 대규모 조직이면서 일본 경쟁자에 비해 신속하게 움직였고, 소유 경영자와 전문 경영자 간의 역할 분담이 잘 이뤄져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를 모두 높일 수 있었다.
 
다각화와 전문화의 조화도 빼먹을 수 없다. 삼성은 전자산업의 각 분야에서 차별적인 제품력 등을 바탕으로 전문화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면서 그룹 계열사의 다각화를 통한 시너지 창출도 동시에 이뤄냈다. 다각화와 수직적 계열화를 잘 이뤄냈기에 원자재 수급 안정, 주요 기술 공동 개발이 가능했다. 구미 기업들은 수직적 계열화가 그룹 내 납품업체의 의존성 강화로 이어져 품질이 못한 제품을 비싸게 사야 하는 문제점에 부딪힌 적이 많다. 이는 수직적 계열화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이러한 의존성을 깰 수 있다면 수직적 계열화도 얼마든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수직적 계열화의 역기능을 줄이고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 삼성은 내부 거래에서의 일방적 협력 원칙을 ‘경쟁적 협력’ 원칙으로 변화시켰다. 무조건 계열업체에서만 납품을 받지 않고, 내부 납품업체와 외부 납품업체를 경쟁시키는 ‘듀얼 소싱’을 많은 부문에서 정착시켰다. 각 부문을 맡은 전문 경영인들의 치열한 내부 경쟁도 유도했다. 부문별, 계열사별 이익분배제(profit sharing)도 도입해 각자의 사업 성과를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도록 유도했다. 품질이 안 좋은 제품을 비싸게 사면 당연히 해당 사업부의 성과가 나빠진다. 경영진의 평가, 보상, 승진에도 악영향이 있기에 계열사의 제품을 무조건적으로 구매하기보다는 외부 납품업체 못지않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생산 현장에서는 철저한 품질 관리와 규율 중심의 일본식 경영을 존속시키고 본사 전략과 평가, 보상에는 미국식 경영을 도입함으로써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의 장점만을 잘 취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삼성은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던 패러독스 경영을 통해 후발주자에서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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