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나 신제품 개발 등 ‘혁신 과정(innovation process)’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프론트로딩 혁신(front loading innovation·상류화 혁신)’이 급부상하고 있다. 프론트로딩 혁신이란 후속 절차에서 발생할 잠재적 문제를 앞 단계에서 미리 확인하고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즉 프론드로딩 활동의 핵심은 신제품이나 신기술 개발 과정에서 고객 중심의 가치를 창조하는 한편,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미리 사전 점검을 벌여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 혁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예전에 비해 프론트로딩을 보다 쉽고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프론트로딩은 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프로세스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 글에서는 프론트로딩을 활용한 상품 개발(front loaded product development)의 개념과 혁신 과정의 디지털화, 고객 중심의 가치 창조, 그리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나가는 린 제품 개발(lean product development) 개념을 소개한다. 또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한 도요타자동차와 타타자동차 사례를 분석한 후,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을 제시했다.
혁신 프로세스의 혁신
기업이 기존의 ‘혁신 프로세스’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후속 문제를 미리 확인하고, 사전에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프론트로딩을 활용한 제품 개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전통적인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는 대개 시제품 이후의 단계, 심지어 제품 양산 단계 이후에서도 관리 활동이 활발히 이뤄진다. 하지만 시제품 제작이나, 제품 양산 단계에서의 관리 활동이 최종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최종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력은 초기 지식 습득 단계(knowledge acquisition)와 개념 탐색(concept acquisition) 단계가 훨씬 강하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서는 관리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여기서 다양한 기회를 놓친다. 따라서 기업 경영진은 개념 탐색이나 기초 디자인 등의 초기 단계에서 충분한 시간 및 관리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알면서도 실제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톰키와 후지모토(Thomke and Fujimoto 2000)의 프론트로딩 신제품 개발 방법론은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도요타의 신제품 개발 방식에 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었다. 그들에 따르면 프론트로딩 문제 해결 방법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과거 프로젝트에서 얻은 지식을 다음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혁신적인 신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자사가 직접 수행한 프로젝트 경험은 물론이고, 다른 기업이 활용한 방법과 경험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후자는 새로운 혁신 기술, 예를 들어 시제품을 신속하게 만드는 기술(Rapid Prototyping)이나 CAD(Computer Aided Design), PLM(Product Life Cycle Management) 등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혁신 프로세스의 디지털화
‘혁신 프로세스’의 혁신은 한마디로 ‘프로세스를 철저하게 린(lean)하게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기업은 이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반드시, 또 적극적으로 디지털화해야 한다. 린한 프로세스는 종종 자동화되었거나,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장치가 있어야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지털화는 설계 과정과 제조 과정의 디지털화로 구분할 수 있다. 설계 과정의 디지털화는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를 형상 및 이미지로 표현하고, 이를 설계도면화해 컴퓨터 스크린상에서 시제품을 제작하는 것을 뜻한다.
제조 과정의 디지털화는 ‘생산정보화(E-manufacturing)’라 불리며, 보통 3D 설계 정보를 제조 공장에 전달해 제품의 가공 및 조립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전에는 주로 자동차 및 항공 산업에서 자주 활용됐다. 박동현(2001)과 돗슨 등(Dodgson et al. 2005, p. 170)은 보잉사를 제조 과정 디지털화를 실천한 대표적인 기업 사례로 들었다. 보잉사는 3D CAD 1
를 이용해 컴퓨터상으로 3차원 제작 및 조립을 해보고, 신제품 공정의 문제점을 미리 확인하며 개선한다. 여기서 활용된 3D CAD는 제조 부서는 물론이고 하청업체서도 활용한다.
3D CAD가 출현하기 전에는 신제품 디자인 정보가 주로 텍스트나 수치, 기호, 혹은 2D 그래픽 정보로 디지털화됐다. 이런 정보는 주로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3D로 작성된 제품 정보는 엔지니어는 물론, 공학적 지식이 없는 경영자나 마케팅 담당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더 많은 조직원들의 의견 제시가 가능해졌으며 제품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사소통 부재로 인한 문제들을 축소할 수 있었다.
3D CAD 외에 CAE(Computer Aided Engineering)나 DM(Digital Manufa-cturing) 같은 해석 소프트웨어나 기타 시뮬레이션 기술도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자주 활용한다. 해석 및 시뮬레이션 기술은 현실을 단순화한 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특정 모델의 계수(parameter)가 바뀔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탐색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혁신 기술 가운데 CAE 및 시뮬레이션 도구는 점점 네트워크, 데이터 베이스, PDM(Product Data Management), PLM 등의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즉 기초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해석이나 시뮬레이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혁신 과정의 디지털화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제공한다.
①시뮬레이션을 통해 보다 정확하고 빠른 실험을 가능케 하며, 보다 다양한 기술적 선택(option)을 제공한다.
②실행에 옮기기 전에 생산 및 운영과 관련한 새로운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무엇이 생산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③시뮬레이션 결과물을 공유해 기초와 응용 연구, 민간과 공공 부문, 설계자와 엔지니어 등 관련 주체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준다.
④고객에게 개발 결과물의 모습을 사전 제공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발될 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이런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지만, 이런 기술을 도입했다는 사실만으로 혁신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대거 등장한 1990년대에 앞다퉈 솔루션을 도입했지만 성과를 낸 기업은 소수에 그쳤다. 디지털화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디지털 만능 사고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제품 개발 프로세스 자체를 사전에 충분히 개선하자는 논의가 활성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