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져라. 제품이 스스로 팔리게 할 수 있다”

44호 (2009년 11월 Issue 1)

경영자들은 언제나 성장과 수익성의 압박에 시달린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많은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요즘에는 이런 압박이 훨씬 심하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버거워하고 있는 요즘에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기업들이 있다. 과연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장 클로드 라레슈 교수는 이 차이가 모멘텀 효과(momentum effect)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모멘텀 효과는 마케팅을 이용해 무작정 고객에게 밀어붙이듯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제품 스스로가 팔리는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눈앞의 수익만 따지는 전략으로는 결코 모멘텀 효과를 창출할 수 없다. 고객이 원하는 건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이기 때문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포럼 참석차 방한한 라레슈 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모멘텀 효과의 중요성과 활용 방법을 들어봤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성적 존재”라며 “생산, 유통, 마케팅, 판매, 조직 운영 등 경영 전반의 모든 이슈에는 감정적 요인이 크게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고객 자신도 모르는 잠재 욕구와 감정을 끄집어내고, 조직 운영에서도 이런 방법을 활용할 줄 아는 기업만이 모멘텀 효과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금융위기가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는가?
성장보다 효율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세계 각국 기업의 효율성은 놀랄 만큼 향상됐다. 특히 제조 분야의 효율성 향상은 눈부실 정도다. 그러나 마케팅 분야의 효율성 향상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다. 불황기에 많은 사람들은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데만 집중한다. TV나 신문에 광고를 내던 기업이 인터넷 광고를 늘리는 식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수치보다 마케팅 투자수익률(ROI)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얼마의 돈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돈으로 얼마의 효과를 창출했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은 설립 초기에는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모멘텀을 생성하기도 쉽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효율성과 모멘텀을 잃어버린다. 한때 엄청난 모멘텀을 창출했던 기업조차 이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MS)는 엄청난 모멘텀을 보유한 환상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제 MS는 그 모멘텀을 상실했다. 윈도 비스타 출시 후 고객들의 반응을 봐라. MS가 자신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했다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애초에 등장하지도 못했을 거다. 대신 MS가 그런 서비스를 제공했을 거라는 의미다.”
 
모멘텀을 잃고 있다는 신호를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가?
버진 애틀랜틱 항공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을 만났을 때 ‘당신에게 악몽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직원들이 긴장하지 않기 시작할 때’라고 답했다. 자신은 언제나 직원들에게 건설적인 불만족을 주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브랜슨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지만 결코 직원들이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브랜슨은 그 흔한 MBA 학위도 없지만 모멘텀 효과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기에 오늘날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덩치가 커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생각하는 걸 멈춘다. 직원들이 5명일 때 놀랄 만큼 혁신적이던 기업이 직원들이 5000명이 되면 화석으로 변해버릴 때가 많다. 그리고 조직 내에는 관료주의와 남성적 권위주의 등이 판을 친다. 이게 바로 효율성을 해치는 주범이자, 모멘텀을 잃어버리는 때다. 조직 내에 황제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숫자에만 집착하거나, 회사에 들어설 때마다 안개가 낀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면 그 회사는 이미 모멘텀을 잃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설사 상당한 성과를 거둔 기업이라 해도 한순간 그 모멘텀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모멘텀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조직 내외부에 존재하는 모멘텀 킬러를 없애야 한다. MS의 모멘텀 킬러는 고객들의 부정적 감정(negative emotion)이다. MS는 여전히 세계적인 기업이고 수익 지표도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MS의 제품을 산 후 행복해하지 않는다. 비스타만 봐도 시스템 간 충돌, 느린 속도, 가격 등에 불만을 표시하는 소비자가 한둘이 아니다. MS는 여전히 연구개발(R&D)이나 회사 내 여러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이 모멘텀 킬러를 줄이는 데는 큰 돈을 쓰지 않는다.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고객은 죄수와 비슷하다. MS 사용자와 애플 사용자 중 누가 더 감옥에 갇힌 죄수의 기분을 느낄까. 타 제품과의 호환 문제로만 따지면 애플 제품이 MS 제품보다 훨씬 배타적이다. 하지만 애플 사용자는 이에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죄수라는 점을 느끼지도 못한다. 부정적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고객을 사로잡는 방법은 연애와 똑같다. 애인이 있다는 건 다른 사람과 사귈 여지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에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애인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객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야 MS가 잃어버린 모멘텀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숫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숫자를 주목하느냐에 달려 있다. 불황 때는 누구나 비용 절감을 외친다. 하지만 생산이나 마케팅 비용처럼 기능적 비용(functional cost) 절감에만 집착하다 보면 감정적 비용(emotional cost)을 간과하기 쉽다. 몇 푼 아끼려다 엄청난 돈을 날릴 수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객 서비스의 질을 낮췄다 치자. 해당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불만은 커져가고, 고객들은 제품 구매 행위 자체를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행위라고 여길 것이다. 이로 인해 입을 손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마케팅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제품을 밀어붙이듯이 판매하지 말고, 고객이 먼저 제품을 찾게 만들어야 모멘텀을 창출할 수 있다.
 
실제로는 매우 비싼 가격의 제품인데도 고객이 전혀 비싸지 않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게 효율적인 마케팅이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초 미국에서 진행한 실직자 마케팅을 보자. 소비자들은 값이 싸고 질이 좋다는 기능적 비용 때문에 현대차를 구입한 게 아니다. 불황으로 힘든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준다는 감정적 비용에 공감했기에 선뜻 제품을 샀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모멘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의 인식과 달리 인간은 절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는 경제경영 분야뿐 아니라 정치, 외교, 군사, 문화, 종교 등 사회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현대차 외에 모멘텀 효과를 잘 활용한 다른 한국 기업은 어디인가?
오리온의 닥터유를 보자. ‘몸에 해로운 과자’가 아니라 단백질, 탄수화물 등 각종 영양소의 균형을 맞춘 ‘몸에 좋은 과자’라는 콘셉트 자체가 대단히 독특하다. 즉 ‘식품’이 아니라 ‘건강’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창의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세계 유수의 식품업체들도 웰빙 과자라는 콘셉트의 제품을 내놓은 사례가 거의 없다.
 
닥터유’라는 제품명도 모멘텀 효과를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소비자에게 ‘당신 건강의 주인은 당신, 당신이 이 세상 최고의 의사’라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의사, 약사를 찾아다니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쓴다. 하지만 정작 우리 몸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할 뿐이다. 소비자가 ‘나는 내 몸의 주인이며, 내 몸의 상태를 잘 알고 있고, 때문에 몸에 좋은 이 제품을 구입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비(非) 소비재 기업도 감성적 비용을 많이 고려해야 하나?
고객의 감성적 비용뿐 아니라 조직 내의 감성적 비용도 매우 중요하다. 요즘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기업 대 소비자(B2C)가 아니라 기업 대 기업(B2B)으로 이뤄진다.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을 상대하지 않는 건 아니다. 결국 해당 기업을 운영하는 존재나 거래선은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 존경,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기계일 뿐 사람이 아니다.
 
한 화학업체를 보자. 일요일에 출근한 공장 책임자는 갑자기 설비 가동이 중단된 현장을 목격했다. 사용하지 말아야 할 물질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공장 운영 상황에 따라 자신과 가족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다. 이때 공장 책임자가 과연 이성적으로만 행동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흥분한 공장 책임자의 추궁 전화를 받은 구매담당자 역시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모처럼만의 휴일을 즐기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것이 날아가게 생긴 거다. 게다가 아직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터라 공장 가동 중단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 책임자가 거칠게 나오면 구매담당자 역시 이에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이때 두 사람이 협력해서 사태를 잘 풀어간다면 해당 공장은 물론 회사 전체에 상당한 이익을 줄 것이고, 반대라면 엄청난 손해가 올 수 있다. 앞서 조직 내에 관료주의와 부서 이기주의가 등장하면 모멘텀을 잃는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