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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는 고객뿐!” 진실한 봉사가 혁신 원천

김양민 | 36호 (2009년 7월 Issue 1)
2002년 가을 미국에서 발행되는 경제 잡지 머니(Money)는 창간 30주년 기념으로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전문 조사 기관인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에 의뢰해 머니가 창간된 1972년부터 2002년까지 가장 우수한 주가 상승률을 기록한 미국 기업 30개를 찾아 자세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주가 상승률 상위 30개 기업 중 영예의 1위는 초고속 성장을 보인 하이테크 기업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저가 항공사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차지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1972∼2002년간 연평균 주가 상승률은 무려 25.99%였다. 즉 1972년 사우스웨스트에 1000만 원을 투자했다면, 2002년에는 그 돈이 102억 원으로 불어났다는 뜻이다.

“사우스웨스트가 1등을 차지했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일이다. 특히 그 사우스웨스트가 속한 산업이 ‘최악의’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이라고 제러미 시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지적했다. 지난 30여 년간 미국의 국내 항공 산업은 산업 구조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흔히 산업 구조를 분석할 때 사용하는 마이클 포터의 5가지 요인(force) 모델로 미국 항공 산업을 분석해보자.
 
‘신규 진입의 위협’ 측면에서 항공사, 특히 저가 항공사는 취약하다. 지난 1970∼1980년대의 규제 철폐 덕에 법적인 진입 장벽은 거의 제거됐다. 최근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화로 3500만 달러 정도만 투자하면 항공업 진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웬만한 중소기업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금액이다. 즉 신규 진입의 위협이 높은 편이다.
 
‘공급자로부터의 위협’ 측면에서도 항공사들은 취약하다. 대개 공급자의 숫자가 적고, 공급자가 공급하는 물건이 차별화돼 있으며, 그 대안이 없을 때 공급자의 위협은 강해진다. 항공사 입장에서 경제성을 갖춘 대형 상업용 항공기를 만들어내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보잉과 에어버스뿐이다. 변동비 측면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제트 연료비는 대단히 유동적일 뿐 아니라, 소수 석유 메이저들에 의해 시장이 장악됐다. 인적 자원 측면의 공급자를 고려해보면 파일럿들의 인건비가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올라갔고, 그들 상당수는 노조원들이다. 따라서 공급자의 위협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구매자의 위협’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차별화돼 있지 않고 오로지 가격으로 승부해야 하는 산업일수록 커지는 편이다. 실제로 아메리칸 항공이 마일리지 서비스라는 것을 ‘발명’해내기 전까지 미국 국내 항공사 간에 차별화란 전무했다. 기내식은 어느 항공사나 그저 그렇고, 항공기 좌석 간에도 별다른 차별성은 없었다. 즉 구매자는 ‘갑’의 입장에서 언제든지 마음에 맞는 항공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대개 가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구매자가 칼자루를 쥐게 된다. 따라서 구매자의 위협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항공 산업의 특성과 미국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방대함을 고려할 때, 그레이하운드(고속버스)나 앰트랙(철도) 등 대체 상품으로부터의 위협은 그다지 크지 않겠지만 ‘경쟁자로부터의 위협’은 큰 편이다. 메이저 항공사들이 다수 존재하며, 차별성이 없는 서비스에 산업 성장률 자체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즉 포터의 5가지 요인 중 4개가 위협적인 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사우스웨스트가 그보다 훨씬 ‘매력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IBM이나 제록스, 인텔보다 더 나은 경영 성과를 낸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 비결은 바로 서비스 차별화와 철저한 비용 절감을 통한 저가 정책이었다.
 
머니의 조사에 따르면, 1972년부터 30년간 주가 상승률 기준으로 사우스웨스트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기업은 월마트였다. 월마트의 연평균 주가 상승률은 사우스웨스트에 버금가는 25.97%다. 1972년 1000만 원어치의 월마트 주식을 샀다면 30년 후 그 가치는 101억8600만 원이 됐다는 말이다. 월마트의 성공 신화 역시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형용하기 어렵다. 1962년 설립된 월마트는 창립 10년 후인 1972년까지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겨우 5개의 주에서 영업하고 있었고, 1979년까지만 해도 주로 가난한 남부 지역에 영업점이 있었다. 각 영업점당 매출은 당시 업계 1위인 K마트의 절반, 영업점 수는 229개로 K마트(1891개)보다 훨씬 적었다. 영업점 기준으로는 K마트가 월마트의 8배, 매출액 기준으로는 무려 16배였다.
 
하지만 월마트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1990년 매출액 기준으로 K마트를 앞섰고, 1991년에는 시어즈 로벅을 추월해 미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1992년 창업자 샘 월튼이 사망할 당시에는 2100여 개 점포에 38만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월마트는 이후에도 성장을 계속해 2002년 마침내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으로 올라섰다. 제조업체가 아닌 서비스 유통업체로서 매출액 기준 세계 1위가 된 기업은 월마트가 처음이다. 그 후 엑슨 모빌에 잠깐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석유값 급등 때문이었고, 2007∼2008년 월마트는 다시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사우스웨스트와 월마트의 성공에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주어라(give customers what they want)’라는 경영의 제1 원칙에 충실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항공 산업과 유통 판매업은 전형적인 B2C 서비스업으로, 서비스의 품질이 그 성과와 직결되는 산업군이다. 사우스웨스트와 월마트는 둘 다 ‘저렴한 가격의 상품과 합리적인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업계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이 두 회사의 전략적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능력 기반의 경쟁을 편다. 둘째, 고객 만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면서도 저원가라는 핵심 가치를 잃지 않는다. 셋째, 직원 만족을 매우 중시한다.

1.
능력 기반 경쟁
스톨크, 에번스, 슐먼은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Competing on Capabilities)’이라는 1992년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논문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과 달리 ‘능력 기반의 경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능력 기반 경쟁 이론은 넓은 의미에서 경영 전략 분야의 주요 패러다임 중 하나인 ‘자원 기반 이론(resource based theory)’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에 기초한 자원 기반 이론은 기업의 자원이 동적인 경쟁 환경에서 어떻게 성과를 주도하는가를 설명한다. 이 이론은 기업을 제품, 시장, 지위의 집합으로 보기보다는 서로 다른 물리적, 무형적 자산과 능력의 집합체로 인식한다. 스톨크, 에번스, 슐먼은 능력 기반의 경쟁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준수하는 4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 그 첫 번째 원칙은 기업 전략이 제품이나 일개 시장이 아닌 ‘사업 프로세스(business processes)’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이 원칙에 사우스웨스트와 월마트의 전략을 적용해보자. 사우스웨스트는 출범 당시부터 운임을 낮추면 기업 수익이 줄어든다는 항공업계의 헌법과도 같은 원칙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우스웨스트가 출범하기 전까지 미국 항공업계는 민간 항공국에서 승인하고 거의 균일하게 책정된 고운임을 받았다. 항공 시장은 ‘비싼 운임을 낼 수 있는 고객’과, 당장은 그렇지 않지만 ‘앞으로 부유해지면 고운임을 낼 수 있는 잠재 고객’의 두 부류로만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존 항공업자들의 전제였다.
 
반면 사우스웨스트는 저운임과 서비스를 연결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델타나 컨티넨탈 항공을 타는 승객들보다는 에이비스나 허츠의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했다. 그러한 도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두 개의 노선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는 정도가 아닌, 게임 전체의 룰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사우스웨스트는 일단 한 종류의 항공기(보잉 737)만으로 운항함으로써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10분 동안의 턴어라운드 시간을 지킴으로써 적은 비행기로도 많은 운항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10분 동안의 턴어라운드 시간’은 이후 사우스웨스트의 효율성을 상징하는 문구가 됐는데, 사실 이러한 혁신은 절박한 필요에 의해 나왔다.
 
1971년 6월 18일, 사우스웨스트는 단 3대의 보잉 737로 첫 영업을 시작했다. 3개월 후 사우스웨스트는 처음으로 텍사스 주 외의 노선을 개발하고, 기존 정규 노선을 증편하기 위해 추가로 보잉 737기 1대를 더 구입했다. 하지만 연방 1심 법원이 사우스웨스트의 텍사스 외 취항을 막자 그 비행기를 곧 팔아버렸다. 문제는 4대를 갖고 운항해야 맞는 스케줄이 이미 편성돼 있었다는 점이다.
 
빌 프랭클린 지상영업본부 담당 부사장은 지상의 정비 요원들이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를 10분 안에 정비해 회전시킬 수 있다면 기존 스케줄을 3대로도 맞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가혹할 만큼 집요하게 실행에 옮겼다. 댈러스 러브 공항의 독점 이용권 덕분에 활주로에서의 대기 시간이 짧고, 기내식을 줄 필요가 없으므로 기내 청소 시간이 줄어들고, 한 종류의 항공기만 운항하기 때문에 정비 시간이 단축되며, 동작이 빠르고 헌신적인 정비원들 덕분에 사우스웨스트는 불가능해 보였던 10분의 턴어라운드 시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로써 적은 수의 비행기만으로도 많은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게 되어 사우스웨스트는 강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됐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치밀한 전략과 역량 구축으로 핵심 역량을 키워 나갔다. 우선 땅값이 저렴한 시 외곽에 대규모 점포를 운영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동산 비용 지출로 물건 값을 낮출 수 있었다. 샘 월튼이 점포를 확장하던 1960∼1970년대 미국 대다수 도시는 엄청난 팽창을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월마트가 자리잡는 지역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가 나중에 베드타운이 들어서 월마트 부지는 노른자위 땅이 됐다.
 
또 ‘구매 시점 재고 관리 시스템(Point of Purchase Inven-tory Control System)’을 활용해, 물건을 소비자가 구입하자마자 바코드를 통해 어느 물건이 어느 매장에서 팔려 나갔는지를 파악하는 역량을 갖췄다. 월마트의 창고에는 재고가 쌓여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물건들이 시시각각 점포로 배달된다. 이는 앞서 말한 시스템과 월마트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운송사업부, 그리고 월마트가 보유한 상업위성으로 24시간 물류 정보를 검토해 운영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칭 ‘크로스 도킹 시스템(cross docking system)’이라고 하는데, 이 핵심 역량을 통해 월마트는 산업 평균보다 판매 비용을 2, 3% 절감했다. 가장 직접적인 라이벌이었던 K마트와 비교하면 한때 무려 6, 7% 에 달하는 비용 절감 효과도 누렸다. 이 비용 차이는 단 1달러가 명운을 좌우하는 유통 전쟁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2. 고객 만족
“보스는 단 한 사람, 고객뿐이다. 고객은 회장부터 하부 구성원들까지 모두 해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객이 다른 곳에 돈을 쓰면, 결국 우리는 모두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는 샘 월튼의 지론이다. 월튼은 1940년 아이오와 주 데모인에 있는 JC 페니에서 첫 유통업체 경험을 쌓았다. 그는 경영 철학을 세울 때, 1913년 JC 페니가 채택한 ‘페니 아이디어(Penney Idea)’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술회했다. 이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문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오늘날의 시각에서 바라봐도 손색없는 서비스 철학을 담고 있다. ‘페니 아이디어’의 7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대중들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To serve the public, as nearly as we can, to its complete satisfaction).
 
②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단지 거래상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공정한 보답이 되게 할 것(To expect for the service we render a fair remuneration and not all the profit the traffic will bear).
 
③소비자의 돈이 가치와 질과 만족감을 얻는 데 쓰이도록 온 힘을 다할 것(To do all in our power to pack the customer’s dollar full of value, quality, and satisfaction).
 
④우리 자신과 동료들을 계속 교육시켜 서비스가 더욱 훌륭하게 이뤄지도록 할 것(To continue to train ourselves and our associates so that the service we give will be more and more intelligently performed).
 
⑤우리 사업의 인적 요인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것(To improve constantly the human factor in our business).
 
⑥우리의 남녀 근로자들이 우리 비즈니스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보상받도록 할 것(To reward men and women in our organization through participation in what the business produces).
 
⑦우리의 모든 원칙, 방법, 행동에 대해 이것이 옳고 정당한가 하는 시각에서 테스트할 것(To test our every policy, method, and act in this wise: Does it square with what is right and just?).
 
20세기 초반의 자본주의가 대단히 낮은 수준의 발전 단계에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원칙들은 놀랄 만큼 선진적인 경영 윤리와 서비스 철학을 담고 있다. 월튼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 월마트를 소비자 제일주의와 경영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일례로 월마트 상급 관리자들의 주 임무는 매장 관리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소비자)의 의견을 경청해 그들로부터 배우고, 또 매장 관리자들끼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월마트의 경영 정보 시스템은 매장 관리자에게 소비자 행동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전달했다. 또 월마트 소속 비행기들은 정기적으로 매장 관리자들을 월마트 본사가 있는 아칸소 주 벤턴빌로 실어 날랐다. 벤턴빌에서 이들 관리자들은 소비자 트렌드와 시장 변화에 대해 늘상 회의를 했으며, 나중에는 화상 회의를 통해 어느 물건이 잘 팔리고, 어느 물건이 안 팔리는지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사우스웨스트의 본격적인 저가 서비스는 우연한 발견으로 시작됐다. 사우스웨스트가 사업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인 1971년 11월, 초대 최고경영자(CEO) 라마 뮤즈는 금요일 밤에 휴스턴에서 기체를 보수하기 위해 댈러스로 가는 비행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묘안을 하나 생각해냈다. 이 비행기는 어차피 댈러스에 가야 하고, 갈 때는 좌석이 빈 상태다. 뮤즈는 이 금요일 밤 노선에 한해 좌석당 10달러의 가격으로 표를 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빈 비행기로 가느니, 단 얼마라도 받아 기름 값이라도 건지자는 계산이었다. 이 상품은 2주도 못 돼 표가 없어 못 팔 지경이 됐다.
 
여기서 뮤즈가 깨달은 것은 항공사는 2가지 유형의 여행자를 모두 만족시켜야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2가지 유형의 승객이란 ①편리한 스케줄을 선호하고 가격에는 상대적으로 덜 구애받는 출장 비즈니스맨들과 ②가격을 가장 중요한 항공사 선택 기준으로 삼는 관광, 바캉스족들이다. 뮤즈는 이 2가지 유형에 각각 다른 요금을 적용했다. 출장 비즈니스맨을 겨냥한 티켓은 평일 오후 7시까지로 한정해 26달러로 책정하고, 7 이후나 토, 일요일 표는 관광객을 겨냥해 13달러만 받았다. 항공업계에 이제는 관행처럼 굳어진 성수기와 비수기의 요금 이원 체계는 바로 이 사우스웨스트의 틈새시장 개척 전략을 모든 항공사가 벤치마킹함으로써 확립됐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가 단순히 낮은 가격으로만 고객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창업자 중 한 명이자 최장수 CEO이며 사우스웨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허브 켈러허는 그 자신이 대단한 유머 감각을 갖추기도 했지만,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반드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려고 노력했다. 입사 면접 때 흔히 던져지는 질문은 “당신이 최근 직장에서 어떻게 유머 감각을 발휘했나요” 또는 “유머를 이용해 어려운 상황을 모면한 경험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등이다.
 
유머 감각 외에 사우스웨스트 입사자들이 갖춰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덕목은 이타심이다. 인터뷰 팀은 한 무리의 입사 지원자들에게 각자 자기소개를 장문의 연설로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막상 소개가 시작되면, 소개를 하는 사람보다는 다른 지원자들을 관찰한다. 즉 어떤 지원자가 자기 연설문에만 몰두하는지, 어떤 지원자가 다른 지원자들의 연설에도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지를 살핀다. 자기 연설문뿐만 아니라 남의 소개에도 관심을 갖고 옆 사람의 연설을 도와주는 지원자는 당연히 주목을 받는다. 이런 유머 감각과 이타심이 있는 직원들은 비록 일급 기내식과 기내 영화는 없지만 사우스웨스트의 서비스가 업계 최고로 평가받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사우스웨스트 승무원들은 때로는 농담으로 기내 방송을 시작하고, 노래를 하기도 하며, 비행기 기내 천장의 화물칸에 숨어 있다가 고객을 놀래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승객에게 웃음을 준다.

3.
직원 만족
한국에서 미국식 교육을 받은 교수들이 경영학 교육을 본격적으로 행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경영학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경영자의 제1 목표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물론 이는 현재에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할 때 주주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허브 켈러허나 샘 월튼에게는 주주가 최고 우선순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고객이었을까? 아니다. 바로 직원이다.
 
허브 켈러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1995년 7월 호에 실린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의 글에서, 고객보다는 직원이 먼저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고객이 늘 옳은 것이 아니냐’는 피터스의 질문에, 켈러허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아니요. 고객이 늘 옳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장이 직원을 크게 배신하는 것이 되지요. 고객은 때때로 잘못된 행동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고객까지 태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런 편지를 보내죠.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시고, 우리 직원들을 괴롭히지 마세요.’”
 
켈러허는 장기적인 고객 만족은 직원들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와 봉사 정신에서 나온다는 점을 꿰뚫어봤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와 봉사 정신은 직원들을 다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이 그들의 일을 인정해주는 환경에서 일할 때, 자신들이 진정 대접받고 조직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발휘된다. 따라서 직원이 먼저 기업으로부터 최상의 서비스를 받아야 그들도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라는 게 켈러허의 경영 철학이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사우스웨스트에서는 ‘인적 자원 부서(Human Resource Department)’라는 말 대신 ‘사람 부서(People Departmen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람을 인적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인간을 재무적 자본(financial capital)이나 물리적 자본(physical capital) 등과 같이 취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원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고객이 그 다음, 세 번째가 주주라는 켈러허의 경영 철학은 지난 30년간 주가 상승률 1위라는 실적으로 그 탁월한 효험을 입증했다.
 
샘 월튼은 “종업원이 행복하면 고객도 행복하다. 직원이 고객을 잘 대하면 고객은 다시 찾아올 테고, 바로 이것이 사업 수익의 진정한 원천이다”라고 주장했다. 마치 켈러허와 입을 맞춘 듯한 발언이다. 월튼은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과 경영자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은 똑같다고 생각했다. 켈러허와 마찬가지로, 월튼도 직원들을 잘 대하는 것이 초일류 서비스 기업이 되는 지름길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앞서 설명한 ‘페니 아이디어’ ④번 조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월마트에서는 ‘직원(employee)’이라는 용어 대신 ‘동료(associa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역시 직원 중심 경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 선택이라 하겠다.
 
헤스킷과 동료들은 서비스 전략 분야의 고전이 된 1994년도 HBR 논문에서 ‘기업의 환경을 고객과 직원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를 역설했다. 문제는 그것이 아무리 단순한 진리라 하더라도 실천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 기업에서 내부 서비스를 통한 직원 만족이 곧 능률 향상으로 이어지고, 이런 능률 향상이 고객 만족으로 이어져 고객이 그 기업의 서비스를 애용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변한다는 <그림1>의 선순환을 가장 잘 실행하는 기업들이 바로 사우스웨스트와 월마트라고 볼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와 월마트는 지금까지 ‘저가’와 ‘합리적인 서비스’라는 2개의 무기로 시장을 장악해왔다. 두 기업 모두 경쟁 기업보다 앞선 역량을 바탕으로 지난 30여 년간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러한 고성장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월마트는 북미 시장에서 거둔 놀라운 성공과는 달리, 독일과 한국 시장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사우스웨스트는 올 1분기 실적 발표에서 5100만 달러의 영업 손실을 보았다고 공표했다. 이로써 사우스웨스트의 71분기(17년이 넘는 기간이다) 연속 흑자 기록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월마트의 실패 원인은 현지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국에서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대입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의 적자 원인은 일단 글로벌 금융위기 탓으로 돌려야겠지만, 원인이 어찌 됐든 이 두 초우량 기업의 사례는 아무리 막강한 핵심 역량을 가진 기업도 결코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지난 30여 년간 두 기업은 놀라운 적응력으로 외부의 환경 변화에 대처해왔고, 바로 그것이 30년간 엄청난 주가 상승률로 미국 1, 2등 기업이 된 비결이었다. 작은 기업은 그런 적응력을 갖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지만, 큰 기업일수록 관료화되는 조직과 의사결정 과정의 경직성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이 두 기업이 21세기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는, 그들이 아직 중소 기업이었던 1970∼1980년대 가졌던 혁신성과 유연성, 그리고 가족 같은 사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서강대 사회학과, 조지워싱턴대 MBA를 거쳐 텍사스 A&M대에서 경영 전략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마켓대 경영학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Journal of World Business> 등 해외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고 전략경영학회, 인사조직학회, 인사관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인사조직연구논문상, 한국갤럽논문상 등을 받았다.
 
편집자주 서비스 산업이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서비스 사이언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이 지금까지 진행한 연구 성과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공개합니다. 이번 기획 시리즈가 한국 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 김양민 김양민 | - (현)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 전략경영학회, 인사조직학회, 인사관리학회 이사
    - 미국 마켓대 경영학과 조교수
    ymkim@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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