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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코드CEO포럼

영화에서 찾는 ‘스토리경영’

심영섭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소설가, 시인, 평론가 가운데 누가 가장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얼마 전 지인이 우스갯소리 삼아 건넨 질문이다. 정답은 소설가라고 한다. 평론가는 뭐든지 평론하려 들고 시인은 상대방을 한 번에 감동시키려는 경향이 있지만 소설가는 이야기꾼이어서 인기가 있기 때문이란다. 소설가는 만날 때마다 조근 조근 이야기를 잘해 주니 상대방이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 다음 이야기는 뭘까 하고 궁금해 하며 계속 만나다가 정들어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스토리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도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스토리 때문이다.
 
새롭고도 낡은 이야기를 찾아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스토리경영’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일단 어떤 이야기가 소위 ‘죽여주는’ 이야기인지 감이 있어야 한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낡은 이야기다. 즉 사람들은 원형적 욕망이나 가치를 건드리면서도 그 디테일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반전이나 놀라움으로 이뤄진 이야기를 좋아한다.
 
전 세계에서 2억여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자. 이 영화는 한마디로 ‘이야기의 비빔밥’이다. 원작자인 톨킨은 영국 옥스퍼드대 문헌학 교수로 ‘니벨룽겐의 반지’ ‘라인의 황금’ ‘유럽의 엘프’ ‘거인설화’ 등 온 세계의 신화를 한데 묶어 반지의 제왕을 썼다.
 
반지의 제왕은 새롭고 낡은 이야기의 요소를 골고루 갖췄다. 이 영화 속에서 반지는 버려야 할 대상이다. 서구에서는 늘 주인공이 무언가를 찾으러 가서 고난을 겪다가 결국 쟁취하고 소유하는 ‘성배 스토리’가 대부분인데 이 영화 속의 반지는 버려야 할 물건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반지의 제왕에 나타난 반지는 곧 권력이며, 반지를 버린다는 것은 권력을 버린다는 의미다. 절대 권력은 언젠가 부패하게 마련이듯 절대 반지를 소유한 자는 권력의 욕망과 강력한 악의 유혹에 시달리게 되므로 반지를 내던지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반지 앞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은 곧 권력 앞에 시달리는 우리의 초상을 보여 준다. 결국 반지의 제왕은 인간의 마음속 깊은 욕망을 짚어내 관객들로 하여금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결국 좋은 스토리는 3가지 조건을 가진다. 첫 번째, 일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준다. 영화 ‘맘마미아’에서 엄마인 도나가 딸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3명의 남자를 한꺼번에 만난다는 스토리는 중년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의 재미를 준다. 두 번째, 예상과 전망을 뛰어 넘는다. 기존의 감옥 드라마가 ‘탈출’에 주안점을 두는 반면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는 주인공이 사형의 누명을 쓴 형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제 발로 들어간다. 또 주인공의 몸에 새긴 문신은 감옥 속 지도였다. 세 번째, 인간의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 침투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이야기의 뿌리는 20가지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패턴으로 만들 수 없을까. 모든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 이야기 지도를 만들고, 그 안의 요소들을 섞으면 새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만든 이야기 지도가 있다. 미국 몬태나주립대의 로널드 토비어스 교수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20가지 플롯’이라는 책에서 모든 이야기의 뿌리가 되는 20가지를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20개의 동네(플롯)로 이뤄진 4개의 이야기 나라(주제)로 떠나보자.
 
1) 모험의 나라 모험의 나라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75년 작 ‘죠스’다. 당시 TV가 급속히 보급되자 영화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영화관은 TV에 자리를 빼앗기고 어린애나 데이트하는 연인들만 가는 곳으로 취급됐으며, 저예산 영화와 B급 영화들이 판쳤다. 이때 스필버그 감독은 두 가지 전략으로 ‘죠스’를 만들었다. 일단 TV로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무조건 ‘큰’ 것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 보여 주면 재미가 없으니 영화 중간까지는 죠스를 암시하는 음악만 나오고 진짜 죠스는 영화 중반부터 나오게 하는 신비주의 전략을 썼다. 여기에 제작비의 3분의 1을 쏟아 부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인 매출 1억 달러의 고지를 넘었다. 이 영화가 마치 고성능 폭탄 같다고 해서 이때부터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모험의 나라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죠스를 만났을 때 도망가기보다 창살 안에서 싸우고, 이것도 안 되면 작살을 들고 싸우고, 이것마저도 안 되면 수소통을 던져서라도 싸워 이기라고 한다.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데 이 영화는 우리 안의 모험 욕구를 자극하고 두려움과 맞서 싸우라며 용기를 줬다.

기업 관점에서 볼 때 신상품 출시는 기업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모험이다. 신상품을 모험의 나라 스토리와 잘 결합하면 승산이 있다.
 
2) 사랑의 나라 레오 매커리 감독의 1957년 작 ‘언 어페어 투 리멤버’를 보자. 이 멜로 영화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영화상으로 별 특징은 없는 작품이지만 ‘불가항력적 사랑 이야기’라는 주제로 고전적인 러브스토리가 그려야 할 모든 이야기를 담아 성공할 수 있었다. 약혼자가 있는 여주인공과 바람둥이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초고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는 로맨틱한 약속,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어 약속 장소로 가지 못한 여주인공의 시련, 두 남녀의 2년 만의 재회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올까. 왜 다들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할까.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조건때문이 아니라 자기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길 원한다.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할 때 사람들은 감동받으며, 사랑은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을 바꾼다.
 
기업도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품과 사랑에 빠져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랑의 핵심 가치는 ‘매혹’이다. 소비자와 상품이 연애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례로 운송회사 DHL은 배달원이 서로 떨어져 있는 남녀에게 키스를 배달한다는 스토리의 TV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3) 성공의 나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 그 유명한 주인공 마이클의 세례식 장면을 보자. 여기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장면들을 함께 보여 주는 교차편집 방식이 사용됐다. 잔혹한 인간의 운명을 예고하는 명장면이다. 자세히 보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동차 옆에서 총에 맞아 죽는데, 자신의 성격이나 사회적 지위에 맞게 죽는다. 예정된 시간을 향해 달리는 마피아의 죽음 연대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자동차는 욕망을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검은 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대부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대부는 인간이란 성공을 위해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공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들은 공통적으로 ‘경쟁하라’ ‘모든 것을 베팅하라’고 한다. 도덕 교과서에서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다. 성공의 나라는 현실적인 면을 다룬다. 어두운 비밀과 게임의 규칙을 엿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만족시킨다. 성공의 나라 스토리는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성공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4) 가족의 나라 엘리아 카잔 감독의 1955년 작 ‘에덴의 동쪽’은 가족의 나라의 원형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형제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경쟁’이다. 형과 동생 사이에 라이벌 관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족의 나라는 자신이 지나온 인생의 길을 되돌아보는 감흥을 준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명대사처럼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의 나라는 우리가 누군가와 삶을 함께 나누는 ‘나눔’의 이유, 누군가의 구두를 신고 세상을 보는 ‘이해’의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한다.
 
가족의 나라의 핵심 가치는 ‘애착’이다. 어떠한 물건에 애착을 갖게 하는 것보다 근원적인 힘은 없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전통적 소재가 우리나라에서 ‘계란’과 ‘사이다’라면 미국인에게는 아침마다 식빵에 발라주는 ‘피넛버터’다. 

하이콘셉트무비에서 찾는 스토리경영
스토리는 인간적이며 어쩌면 삶 자체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미래에는 ‘드림소사이어티’가 다가온다고 말했다. 미래는 더 이상 기능을 파는 사회가 아니라 가치, 의미, 꿈을 파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스토리가 있는 상품이 승리할 수 있다. 스토리는 영혼을 움직인다.

기업의 CEO들은 영화 속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제시한 20가지 플롯을 조합하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만들고 분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빈치 코드’는 모험과 수수께끼의 결합이고, ‘귀여운 여인’은 금지된 사랑과 변신의 결합이며, ‘해리포터’는 모험과 성장, 음모의 결합이다.
 
하이콘셉트무비는 한 문장으로 쉽게 요약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다. 예를 들어 ‘달마야 놀자’는 ‘조폭이 절에 갔을 때’, ‘조폭 마누라’는 ‘알고 보니 마누라가 조폭’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스토리경영을 통해 감성의 언어, 의미의 언어, 가치의 언어로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더 이상 기능만 보고 물건을 사지 않으며, 가치와 의미와 꿈이 있어야 반응한다. 미래사회를 향한 영감을 하이콘셉트무비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 대중과 가슴과 영혼으로 소통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IT전략연구원과 동아일보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문화·예술적 창의력 배양에 초점을 둔 최고경영자(CEO) 교육 과정 ‘퓨처코드 CEO포럼’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포럼의 일부 강의를 요약해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인문학, 과학, 문화콘텐츠, 디자인 등에 특화한 강의를 만나 보십시오. 이번 호에는 심영섭 영화평론가의 강의 ‘글로벌 CEO를 위한 Movie & Culture’를 전해 드립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영상응용연구소 대표와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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