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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3세 경영자 3인이 말하는 ‘성패 갈림길’

“드라마처럼 부의 대물림? 꿈같은 얘기
10년 이상 준비, 스스로 능력 증명해야”

신민기 | 389호 (202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실제 가업을 물려받은 2, 3세들이 말하는 현실은 다르다. 자신과 운명 공동체인 회사를 이어가는 2, 3세들은 전통을 지켜내면서 혁신을 통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자수성가한 창업자의 카리스마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오랜 세월 회사를 지켜온 임직원들의 불신 어린 시선에 맞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선보그룹의 2세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와 한방유비스㈜ 3세 최두찬 대표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이뤄냈고, 이는 회사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반면 충분한 준비 없이 가업승계와 동시에 막대한 상속세를 떠안은 고원니트 2세 고혜진 전 대표는 실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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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 미국의 전 NFL 풋볼 코치 배리 스위처가 한 이 말만큼 가업승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잘 표현한 말도 없다. 평생 월급쟁이 신세를 벗어나기 힘든 직장인이나 사업을 해보고 싶어도 자원이 부족해 포기하고 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가업을 승계한다는 것은 크나큰 특권으로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온 후계자를 보면 ‘내가 회사를 물려받는다면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가업승계는 드라마에서 그리는 것처럼 화려한 부의 대물림도 아니고 후계자 자리는 때로 특권이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숙명이 되기도 한다.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그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을 아무런 노력 없이 유지하는 일반 상속과 가업을 이어받아 고용과 기업을 유지하는 가업승계는 크게 다르다. 가업승계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근원이 되고 수십 년을 이어온 가업은 수많은 위기에도 우리 경제를 일으키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도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가업승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다. 실제 가업승계를 겪은 이들은 오랜 준비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로 가업승계에 임해야 하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DBR은 가업을 성공적으로 승계한 이들, 그리고 가업승계에 실패한 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2, 3세 경영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승계 과정에 대한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3인의 인터뷰를 각기 따로 진행한 뒤 키워드에 맞춰 재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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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승계의 롤모델이 되기까지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는 선보그룹의 2세 경영인이다. 선보그룹은 조선 해양플랜트 부품을 만드는 선보공업을 모태로 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중견기업이다. 사명인 선보(船寶)는 ‘배가 보배’라는 뜻이다. 대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서 조선 배관기술자로 일하던 최영찬 대표의 아버지, 최금식 회장은 1986년 갖고 있던 300만 원을 털어 조선 기자재 제조회사를 세웠다. 남의 사무실 한 구석에 놓은 책상 두 개와 전화기 한 대가 선보그룹의 시작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선보그룹은 선박 부품을 집적한 모듈 유닛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기업이 됐다. 최영찬 대표는 2005년 만 25세에 선보공업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회사로 돌아왔고 2016년 선보공업 신사업팀을 스핀오프해 투자회사인 선보엔젤을 세웠다.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선보그룹의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2017년에는 라이트하우스라는 국내 최초의 중견기업 연합 VC를 만들기도 했다.

최두찬 대표는 한방유비스㈜를 이끌고 있는 3세 경영인이다. 한방유비스는 국내 소방방재설계감리 분야 1위 기업으로 해방 직후인 1947년 조선소방기재주식회사로 설립돼 1대 최금성 회장, 2대 최진 회장을 거쳐 2017년부터 3대인 최두찬 대표가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한방유비스의 업력은 대한민국의 소방방재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불이 나면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립자인 최금성 전 회장은 당시 미군 부대에서 사용하던 소화기를 보고 1947년 국내 최초 소방 기업인 조선소방기재를 세웠다. 1970년 정부종합청사에 국내 최초로 스프링클러 설비를 시공했고, 인천국제공항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롯데월드타워와 IFC 국제금융센터 등 대규모 건축물의 소방시설 설계·감리를 맡았다. 2020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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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후계자가 됐나.

최두찬: 어린 시절부터 가업을 잇겠다는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장남인 형이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면서 자연스레 차남이었던 내가 회사를 물려받게 됐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일을 하는 만큼 조부와 아버지 모두 남다른 사명감으로 일을 해 오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좋은 의미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 같다. 소방 방재 설계는 크게 돈을 많이 버는 사업도 아니고 자칫 잘못되면 법적인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어온 기업을 여기에서 접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고, 나 역시 회사가 존재한 덕분에 입고 먹고, 공부할 수 있었기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최영찬: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2005년 선보공업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용접도 하고, 부품을 만들면서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일하고 배웠다.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설계든 품질이든 잘 돌아가는 경영을 할 수 있어서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승계를 염두에 두고 진로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학을 하면서 벤처 생태계와 기존 산업이 만나는 부분 등 새로운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승계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가업승계는 어떤 과정을 거쳤나.

최영찬: 승계 준비를 상당히 일찍부터 했다. 다른 기업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승계 시점이 닥쳐서 서둘러 하는데 선보그룹은 아버지가 50대 중반일 때부터 이미 승계 준비를 시작해 10년 이상 경영권과 소유권 등에 대한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 보통 회장이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회사 임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승계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소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듣는 기업 문화 덕분에 직원들도 거리낌 없이 승계 이야기를 꺼내고 논의할 수 있었다.

특히 승계 그 자체가 아닌 회사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부분으로서 승계가 이뤄졌다. 조선업은 배처럼 크고 느리게 움직이는 산업이다. 하지만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제조산업 전반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일찍부터 가졌다. 회사가 지속가능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승계도 하게 됐다. 후계자 한 사람만 있다고 될 일이 아닌 만큼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수한 인재도 학연, 지연을 따지지 않고 등용해왔다. 이분들이 20년 동안 나와 호흡을 맞추며 신사업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왔다. 후계자와 함께 일할 임직원까지도 신중하게 준비해온 것이다.

최두찬: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뿐 아니라 경영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까지 포함해 가업승계의 의미를 넓게 본다고 하면 20년 넘게 승계를 준비한 셈이다. 한방유비스는 기술 회사다. 회계 등 행정 업무를 보는 소수의 직원을 제외하면 전 직원의 99%가 엔지니어다. 기술회사 경영자로서 기술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영업도 하고 관리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후계자로서 전문성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2001년부터 회사에 들어와 설계와 감리 일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외에 소방공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곳이 많지 않았는데 미국 우스터공과대(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s)에 방재공학 석사과정이 있어 본격적으로 공부한 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소방 선진국에서 기술을 배우고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글로벌 소방 방재 컨설팅 업체인 RJA(Rolf Jensen & Associates, Inc.)에서 7년간 근무하며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의 소방엔지니어링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서울시립대에서 재난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가천대와 경기대에서 소방방재 설계와 재난관리 등에 대해 강의도 하고 있다.

2, 3세들은 전통은 지키되 혁신을 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된다.

최영찬: 1세대 기업인은 보수적이다. 피땀 흘려 회사를 이만큼 일궈 놓았으니 지금처럼 유지만 해라는 식이다. 하지만 현상 유지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기존 사업에서 원가절감과 생산성을 향상하기는 과거 급성장기 때만큼 쉽지 않다. 마른걸레를 짜내어 보지만 그런 일도 조직 내에서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잔뼈가 굵은 직원들보다 후계자가 잘할 수는 없는 과제일 것이다.

동시에 혁신의 과제도 있다. 하지만 많은 2세 경영인이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말리는 아버지의 벽에 부딪힌다. 내부적으로도 2세를 ‘뭐만 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시한폭탄’처럼 바라본다. 감사하게도 나는 아버지는 물론 임직원들도 새로운 도전을 지지해줬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본과 노동집약적인 방식의 전통산업은 끝났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며 힘을 보태 주셨다. 그 덕분에 탈탄소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탈탄소는 선박에도 중대한 문제다. 통상 배는 연료로 저급 원유를 쓰다 보니 자동차에 비해 1만 배 가까이 많은 탄소를 내뿜는다. 선보엔젤파트너스는 현재 탄소 포집 및 활용을 전문으로 하는 ‘카본밸류’를 설립하는 등 신성장 동력 발굴에 힘쓰고 있다.

최두찬: 회사의 핵심 역량은 지켜나가되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에 대비할 성장 동력을 다변화하고자 했다. 2세, 3세들이 새로 조직에 들어오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기존에 하던 사업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입증하려는 유혹이 크다. 하지만 경영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오래 이어오던 핵심 역량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이를 잘 계승하고 기반을 단단히 한 이후에 새로운 도전도 해볼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소방 방재에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일찍부터 관련 연구를 하며 데이터를 쌓아온 덕분에 정부로부터 소방 안전 빅데이터 센터로 지정되기도 했다. 소방 엔지니어링 데이터와 화재·피난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소방 방재 기술을 더 고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업승계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특히 세금 부담을 호소하는 기업인들이 많다.

최두찬: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요건을 충족해 가업의 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 특례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도 실제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혹한 세금이 부과됐다. 비상장회사다 보니 여러 기준으로 회사의 가치를 매겨 증여세를 산정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많은 회사의 자산이 비영업 목적으로 분류돼 큰 세금을 떠안게 됐다. 정확한 세액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세금을 내려고 집을 담보로 대출도 받았고 앞으로도 한참은 세금을 갚아 나가야 한다. 제조업체가 아닌 기술회사라 회사 자산이 그나마 적은 편인데도 이 정도인데 중소 제조업체들이 왜 세금 때문에 승계를 포기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저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공장을 운영했을 뿐인데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공장 부지 가격이 높게 책정돼 막대한 세금이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금을 내려면 결국 공장을 팔아야 하는 지경이 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최두찬: 그렇다. 가업승계에서 기업을 영속한다는 의미보다는 가족기업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 ‘부를 세습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그래서 산업계에서도 가업승계라는 용어 자체를 기업승계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크다. 가족이 기업을 가지고 있거나 가족 구성원이 경영권과 소유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오래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흔히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재벌가의 모습을 생각하는데 실제 가업을 승계하는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너라고 해서 급여도 많이 받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난이 심한데 오너가 일반 직원들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는다면 누가 중소기업에 다니려고 하겠나. 비상장 중소기업은 주주에 대한 배상 체계도 아직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영찬: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고 드라마 속 화려한 재벌 2세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국산 차 K5를 직접 운전해서 다니고 있고 주변에서도 외제 차 타고 번지르르한 2세는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가업을 이은 2세, 3세의 경우 기업의 운명이 곧 자신의 운명이다 보니 그런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회사가 잘 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항상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데
가업을 꼭 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최영찬: 주변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는 기업이 많다.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도 자녀가 싫다고 하거나 아예 부모가 자식 고생시키기 싫다며 승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세금 부담을 안고 가업을 이어 가기보다는 경영권과 소유권을 매각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이들도 많다. 일본에는 수백 년 된 장수 기업이 많은데 최근에는 가업을 잇지 않고 정리하는 사례가 늘면서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가업을 반드시 승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체득해 왔을 기업가정신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아쉽다. 전문경영인이 더 뛰어난 전문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2세, 3세는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부터 좋은 경영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마음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 생산직 직원이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출근을 못했다. 회장님이 집으로 찾아가자 직원은 아픈 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장님은 화를 내기는커녕 직원 가족에게 돈봉투를 쥐여 주면서 “몸이 아플 때까지 일을 많이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경영자의 역할을 배울 수 있었다.

가족 후계자의 경우 회사에 몸담지 않았을 때도 기업과 한 몸처럼 부침을 함께 겪어 왔다는 것도 남다른 점이다. 주변에 2, 3세들을 만나보면 어린 시절 셋방살이는 물론 집에 빨간 딱지도 다 한 번쯤은 붙어봤다고 한다. 그런 경험에서 체득한 것들이 많다. 지금도 경영자로서 결정적인 순간이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 되새겨보곤 한다.

최두찬: 신생 기업보다 10년, 20년 꾸준히 업력을 쌓아온 기업이 더 좋은 실적을 낸다는 것은 밝혀진 사실1 이다.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를 수차례 극복해온 장수 기업은 지금처럼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남다른 회복탄력성을 갖고 있다. 나 역시 77년간 큰 사고 없이 잘 지켜온 회사가 내 세대에 흔들리게 된다면 용납하기가 힘들 것 같다. 오래 이어온 회사의 역사와 가치, 이 회사에 몸담은 임직원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회사를 잘 지켜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늘 느낀다.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위한 조언 및 제언이 있다면.

최두찬: 가업승계는 빛나는 왕관만 물려주는 게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선대는 기업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물려주면서 오랫동안 축적한 적폐와 악습도 함께 물려준다. 선대와 후계자 모두가 이 점을 명심해야 고칠 것은 고치고 갈등은 줄일 수 있다. 또 세금과 관련해서도 승계 시 세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컨설턴트 등 전문가들이 있지만 이들의 도움을 받되 후계자가 직접 공부하고 챙겨야 한다는 점을 꼭 말해주고 싶다.

최영찬: 후계자는 스스로의 능력과 자질을 더욱 엄격하게 증명해야 한다. 가업을 승계하는 기업은 업력이 오래된 만큼 회사에 오래 몸담은 임직원들이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후계자가 부족하게만 보일 것이다. 직접 창업한 선보엔젤에서는 회사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보니 직원들도 자연스레 오너인 나를 존중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회사에서는 전혀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리 겸손한 자세로 노력하고 애써도 기존 임직원들에게 창업자와 같이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조직 내부가 아닌 밖에서 성과를 내고 실력을 증명함으로써 후계자로서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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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승계의 그늘

승계와 관련해 본보기가 되는 롤모델 기업들도 있지만 사실 가업승계에 성공하는 기업보다 실패하는 기업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속담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한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업승계의 어려움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는 진리로 통용돼 왔다. 가족기업 연구자인 존 L.워드(John L. Ward)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의 유명한 연구 결과2 는 이 같은 믿음을 뒷받침한다. 1924년부터 1984년까지 60년 동안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활동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족기업 중 34%만이 1세대에서 2세대로 계승됐고, 3세대로 이어진 기업은 13%, 4세대까지 간 기업은 3%에 불과했다. 오래전 이뤄진 연구인데다 지역적 산업적 편향도 있어 한계를 지니지만 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은 수많은 사례로도 짐작할 수 있다.

가업승계 실패는 하나의 회사가 소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가업에 사활을 걸었던 가족뿐 아니라 회사에 속한 임직원과 그 가족, 관련 회사에 이르기까지 파급은 크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활한 가업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간 폐업 등으로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체는 약 32만5000개, 실직자 수 307만 명, 손실 매출액은 약 794조 원에 달한다.

고혜진 전 대표는 가업승계 실패로 개인 파산에 이르는 등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가업을 접은 지금은 파산 후 재기하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채널 ‘파란만장 고대표’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다른 이들이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관련 토론회나 강연에 참여하는 등 가업승계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는 가업승계와 파산의 경험을 담은 책도 집필하는 등 국내 기업인들에게 승계와 관련된 교훈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로부터 가업승계 실패의 아픔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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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업승계를 하게 됐나.


고혜진: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6년 아버지가 원단 제조업체 고원니트를 세웠다. 제조 공정의 노하우가 있었고 적극적으로 영업한 덕분에 꾸준히 성장해 연 매출 100억 원대 기업으로 커졌다. 가업을 물려받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경영회계를 전공한 후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급히 귀국해 2009년부터 입사해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래도 승계는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2013년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회사를 물려받게 됐다. 회사를 매각하자니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당시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 모두가 큰 충격을 받고 힘들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처럼 여겼던 회사가 계속되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충분한 준비 없이 가업을 승계해 경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 아버지가 회사를 경영할 때 일을 같이 해봤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열심히 했다. 원단을 제조해 의류업체에 납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의류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고, 온라인 거래도 시작하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특히 친환경 원단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플라스틱 재생 원단을 직접 개발해서 처음으로 직수출 판로를 개척했다. 미국에 있는 요가복 업체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샘플을 보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고 연간 10억 원 규모의 계약이 막 성사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팬데믹이 터지면서 수출이 막혔고, 그 요가복 업체마저도 문을 닫았다. 국내 영업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경영을 할 때는 좋은 관계를 이어오던 거래처들이 어차피 망할 회사라며 납품 대금을 주지 않고 버티기도 했다.

파산에 이른 과정은 어떤가.

고: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상속세를 내야 했는데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대신 당시 법에 따라 10년간 고용 인원을 유지하면서 같은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3 팬데믹으로 더 이상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고용인원을 유지해야 했고, 다른 사업을 해볼 수도 없었다. 2020년 10월, 결국 파산했다. 공제받은 상속세에 가산세까지 붙어 수억 원의 세금을 한꺼번에 내야 해서 집과 가진 자산을 전부 팔고 빚까지 냈다. 법인이 파산하면서 연대보증 책임을 지게 돼 개인파산도 선고됐다.

가업승계 관련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고: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던 때로 돌아간다면 승계를 아예 안 할 것이다. 회사를 계속하더라도 공제를 받느니 상속세를 내고 사업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당시는 사업이 잘돼 돈이 있었으니까 세금도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공제 요건을 맞추느라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승계 시점에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본다. 영세한 중소기업을 승계하는 건 부모로부터 현금이나 상장 주식과 같은 자산을 상속받는 것과 다르다. 회사를 상속받기는 했지만 통장에 돈 한 푼도 더 늘어나지 않는다. 국가 경제를 튼튼히 하기 위해 100년 가는 장수 기업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속제도는 승계 대신 “회사 팔아서 세금 내라”고 등 떠미는 꼴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업상속제도 등 지원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나의 경우처럼 오히려 원활한 기업활동을 막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 까다로운 조건 탓에 활용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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