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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지갑 얇아진 MZ세대 소비자에게 다가서려면

“불확실한 시대에 확실한 건 나뿐”
좋은 습관 쌓는 ‘갓생 심리’ 분석을

이선미 | 363호 (2023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기 침체가 뚜렷해지면서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MZ세대의 ‘갓생 소비’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와 인공지능(AI), 경기 침체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나 자신과 나의 일상으로 좁혀졌다. 그 때문에 MZ세대는 하루 2리터의 물 마시기, 영어 학습지 한 쪽 풀기, 10분 스트레칭하기, 잠자기 전 향수 뿌리기 등 자신의 하루를 유의미하게 가꿔가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들의 갓생 심리와 갓생 사는 자신을 외부에 노출하려는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공감과 응원과 보상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구축한다면 불황에도 MZ세대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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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은 ‘2022년 연말 결산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2022년 한 해를 주도한 트렌드 키워드로 ‘갓생’이 꼽혔다. 신(God)과 인생(人生)을 결합한 갓생은 MZ세대의 ‘자기 투자’ 현상을 의미한다. 지난해 국내 해시태그 중 #공스타그램을 비롯해 #스터디플래너 #공부인증 #공부자극글귀 #노트필기 등 공부와 관련된 것들이 팔로워 수 상위권을 차지했다. 큰 성장세를 보인 해시태그는 #오운완(오늘운동완료) #만보걷기 등 운동 관련 해시태그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의 시그널이 뚜렷해지면서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갓생 관련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는 분위기다. 새해를 맞아 포털사이트의 ‘갓생’ 키워드 검색량은 12월 초 대비 178% 증가했다. ‘갓생’ 관련 용품의 매출도 급증했다. 위메프가 지난해 12월15∼31일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강의 수강권 등 온라인 교육 분야 매출이 전년 동기간 대비 1662%, 건강 보조 용품은 63%, 전자사전•타이머 등 학습 용품은 59% 매출이 증가했다. 이제 욜로(YOLO)는 가고 갓생의 시대가 왔다. (DBR mini box Ⅰ ‘욜로는 ‘소소한 낭비’, 갓생은 ‘소소한 성취감’ 추구’ 참고.)

욜로를 외치던 MZ세대가 이제 갓생하겠다고 하니 기성세대는 ‘오늘만 사는’ 젊은 세대가 영 마뜩잖을 수 있다. 욜로나 갓생은 ‘나’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선 같다. 그러나 욜로의 현재와 갓생의 현재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욜로의 현재가 ‘후회 없이 즐겨야 하는 이 순간’이라면 갓생의 현재는 ‘좋은 습관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야 이 험난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통제 가능한 확실한 세상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이번 경제 침체기에 비즈니스의 성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는 ‘갓생 충실도’일 수 있다. MZ세대의 갓생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겨냥한 상품, 서비스와 마케팅 활동을 실천한다면 기업과 브랜드는 오히려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침체기에도 꺾이지 않는 자기 계발 심리와 ‘갓생 트렌드’를 활용한 사례, 이를 통해 눈여겨볼 비즈니스 전략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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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가능한 건 ‘나 자신’뿐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5개의 키워드가 있다.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코로나19, 인공지능(AI), 경기 침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전 한국인이 가장 두려워한 일상의 적은 미세먼지였다. 언제 닥칠지 모를 미세먼지를 방어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미세먼지 지수를 체크했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는 이번 겨울에도 일주일 새 기온 차가 30도까지 벌어지는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겪었다. 코로나 공포는 4년째 지속되고 있다. 또 우리는 AI가 쓴 보고서, AI가 그린 그림 등을 접하며 본격적인 AI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을 직감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촉발된 경기 침체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우리 삶에 어떤 타격을 줄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이 5가지 키워드의 공통점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 고민은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MZ세대는 ‘외부 환경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은 통제할 수 있다’는 답을 찾았다.

거세지는 통제 불가능성 속에서 흔들림 없이 공고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욕구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기 돌봄,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길,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 등을 다룬 책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담론은 과거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과거의 나’가 외부의 시선에 맞춰 ‘계발’해야 하는 존재였다면 ‘현재의 나’는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재정립해야 하는 ‘관리’의 대상이다.



‘나의 세계를 공고히 지키며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 MZ세대에게 오늘 하루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일상이다. 일상의 시간을 잘 살아내는 것이 먼 미래를 위한 희생보다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하루 만 보 걷기 같은 소소한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데서 만족감을 찾는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크지만 불확실한 이득보다 작지만 확실한 이득을 선택한 MZ세대가 추구하는 건 성공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취다.

갓생은 대단한 성취를 말하지 않는다. 작은 목표를 실천하고 매일의 루틴을 ‘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태도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일상생활 루틴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려면 작은 일이라도 매일 반복해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81.3%). 하루 10분 정도의 작은 변화라도 결국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71.7%)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반복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루틴에는 일상을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조율하는 힘이 있어서 루틴을 통해 삶에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일상의 작은 성취’ 돕는 플랫폼 인기

MZ세대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습관 형성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다. 2018년 론칭한 챌린저스는 이용자 스스로 도전 목표를 설정하고 미션을 수행하도록 해 습관 형성을 돕는 ‘챌린지(도전) 앱’이다. 2021년 28억 원이던 매출이 2022년에는 50억 원으로 뛰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60억 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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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에서는 운동이나 학습, 시간 관리 등 500여 종 이상의 공식 챌린지 리스트나 직접 목표를 만드는 챌린지 중 하나를 선택해 도전할 수 있다. 참가비를 내고 목표를 설정한 뒤 미션을 100% 달성하면 참가비 전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추가 상금도 획득 가능하다. 다양한 목표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침 기상이다. 새벽 6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하는 이 챌린지는 누적 참가자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 챌린저스는 총참가자 정보와 평균 미션 달성률, 100% 미션 달성자 명단 등을 공개해 동기를 부여한다. 참가자들은 새벽 6시에 기상 인증샷을 남기며 함께 도전에 성공하자며 서로 응원을 주고받는다.

밑미는 ‘나를 만나다(Meet Me)’라는 의미를 가진 ‘자아 성장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밑미는 아침 식사 챙겨 먹기, 모닝 글쓰기, 반려견 산책, 저녁 요가, 1주 12㎞ 달리기 등 ‘리추얼(ritual)’ 프로그램을 유료로 제공하는데 참여자 대부분은 MZ세대다. 리추얼이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뜻한다. 일상적 습관에 의미를 부여해 내 삶을 지탱하는 중심을 만드는 것이 밑미의 목표다. 밑미에서 회원들은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리추얼메이커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같은 리추얼을 실천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밀려 ‘엄빠(엄마아빠)’의 SNS로 여겨지던 네이버 블로그는 2022년 6월 매주 일정 횟수 이상 주간 일기를 작성하는 ‘주간 일기 챌린지’ 이벤트를 시작한 이후 MZ세대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네이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약 200만 개 블로그가 새로 생겨났다. 1 신규 사용자 중 1030 연령대 비중이 76%에 달했고, 1020세대 이용자는 2021년 대비 17%로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냈다. 주간 일기 챌린지가 젊은 세대 유입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된 이유는 6개월간 주간 일기 챌린지에 참가한 103만 명 중 1030세대가 88%에 달했기 때문이다. 2 이 중 3개월간 꾸준히 기록한 참가자는 28만 명, 6개월간 빠짐없이 기록을 남긴 참가자도 14만 명에 달했다. 꼬박꼬박 일기를 쓰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성취해야 하는 ‘챌린지’ 방식의 이벤트가 갓생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소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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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사는 나를 드러내려는 욕구 만족시켜야

교육 분야에서도 작은 성취를 통해 학습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벼운학습지는 한 주에 한 권의 학습지로 가볍게 외국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성인 외국어 학습지다. 영어 외에도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터키어 등 조금 특별한 외국어까지 총 11개 외국어 학습지를 제공한다. 1주에 얇은 학습지 1권이라는 부담 없는 적당한 공부량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레벨업 및 보상 등이 특징이다. 가벼운학습지는 비슷한 시기에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을 모아 ‘습관클럽’을 운영하는데 네이버 밴드를 통해 매주 공부 인증을 하고, 12주간 무사히 인증 미션을 완수한 회원에게 보상으로 1만 원의 네이버 포인트를 지급한다. 가벼운학습지의 이용자 평균 만족도는 94%에 달하며 2022년 기준 누적 회원 수는 38만 명이다.

영어 학습 플랫폼 야나두도 2022년 9월 ‘스르르 학습지’를 출시했다.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상 루틴’이라는 콘셉트하에 하루 한 장씩 10분을 투자해 가볍게 공부하자는 취지의 학습지다. 학습지 외에도 설렘키트, 습관형성굿즈 등 공부템을 함께 제공한다. 3 이처럼 MZ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르르 학습지는 2022년 8월에 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매출을 견인하며 야나두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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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습관을 길러주는 플랫폼도 주목받고 있다. 콰트는 2022년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올해 한국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부문에서 4위를 차지한 구독형 홈 트레이닝 플랫폼이다. ‘5일 운동 습관 만들기’를 중심으로 사용자에게 맞춤형 운동 및 가벼운 스트레칭 등을 코칭한다. 운동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이탈할 위험을 방지하고자 콰트의 트레이닝 영상은 10분 내외로 구성돼 있다. 전체 사용자 중 2030세대가 64%를 차지할 정도로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의 선호가 높다. 이들이 꾸준히 반복 시청하는 운동 콘텐츠는 스트레칭이다. 콰트는 2022년 11월 기준 누적 조회 수 1000만 뷰, 월 트래픽 60만 명, 앱 월간 이용자 수(MAU) 3만8000명을 달성했다. 지난 연말에는 125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도 유치했다.

MZ세대가 열광하는 루틴이나 리추얼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거기서 일상의 만족감을 얻는 데 1차적 목표가 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일상을 괜찮은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좀 더 나은 나’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견된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희생 대신 확실한 오늘의 성취를 택했지만 작은 성취를 쌓아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좀 더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좀 더 괜찮아진 나’를 외부에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된다.

MZ세대는 매일의 공부 기록을 #공스타그램 해시태그로 SNS에 공유한다. 그 때문에 MZ세대의 자기 투자 욕구를 겨냥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할 때는 가볍고 부담 없는 목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기본이요, 여기에 더해 ‘하루하루 나아지는 나’를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실제로 성공적인 루틴 및 리추얼 서비스는 공통적으로 커뮤니티 기능을 갖춰 회원끼리 각자의 성취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실비’ 따져 비싼 제품도 구입

MZ세대의 갓생 문화는 이들의 소비 성향도 변화시켰다. 과거엔 소비를 통해 즉각적인 만족감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소비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체감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소비의 결과가 어떤 가치로 내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유지시켜주는지, 그 가치가 얼마나 지속되는지가 소비의 기준이 됐다. ‘지속가능’의 관점에서 ‘나’에게 ‘투자’하는 소비. 이것이 최근 달라진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다.

그래서 등장한 신조어가 ‘가실비’다. ‘가격 대비 실사용 비용’을 뜻하는 가실비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주 사용하고 일상에서 충분한 효용 가치를 느끼는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MZ세대가 가실비를 따져 구입하는 주요 제품으로는 향수, 식기세척기, 의류관리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 선뜻 구매하기엔 가격대가 높은 제품들이다. 가격 대비 실사용 횟수, 실사용 기간, 소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만족감과 효용이 비싼 가격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면 기꺼이 투자 개념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가성비나 가심비가 저렴한 가격 또는 심리적 만족감이라는 단순한 기준에 그친다면 가실비는 좀 더 구체적이고 자기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맛집 대기줄의 근원적 심리

MZ세대가 이처럼 ‘갓생’을 내세우며 자기 투자에 몰두하는 건 불확실한 외부 환경에서 통제 가능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이 맥락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회사나 사회, 경제 상황 등을 개인이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나’의 일상이 남는다. 특히 최근 식(食) 영역에 대한 대중의 니즈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루 세끼가 가장 손쉽게 통제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인 동시에 작은 투자로도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사진 한 장으로 외부에 보여주기도 좋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런던베이글뮤지엄, 노티드 같은 디저트 카페에서부터 서울 근교에 속속 생겨나고 있는 500평에서 1만 평에 달하는 초대형 카페, 오마카세 열풍 등이 이를 방증한다. 이들은 맛은 기본이고, 확실한 콘셉트하에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또 사진 한 장으로 그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입장하려면 최소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런던동’이라고 불린다. 온통 나무로 된 인테리어와 영문으로 작성된 메뉴판, 테이크아웃 음식 봉투에 넣어주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젊은 시절 사진 등이 잠시 영국 런던으로 여행 온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MZ세대는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챙겨 먹겠다고 생각한다. 조금 비싸더라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카페와 식당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러한 경향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도 나타난다. 논픽션의 성공 역시 탄탄한 브랜드 스토리의 토대에서 독특하고 퀄러티 있는 향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나’를 보살피고 휴식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MZ세대가 열광하기 때문이다. (DBR mini box II ‘향수는 자기 전 뿌리고, 예쁜 플레이팅 위해 식기세척기 구매’ 참고.) 또 일관된 디자인 콘셉트를 잘 담아낸 고급스러운 패키지는 MZ세대에게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예쁘게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좋게 만들어 M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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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친 그물은 소용없다”

‘우리는 조구만(조그만) 존재야, 조구맣지만 안 중요하단 건 아냐.’ 초식 공룡 캐릭터를 통해 ‘평범하고 작은 존재에 대한 위로’를 전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조구만스튜디오의 키(key) 메시지다. 이 브랜드는 롯데백화점, 이니스프리, 삼성전자 갤럭시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레버레이션으로 수많은 MZ세대 팬을 확보했다. 2018년 창업 이후 연평균 50%씩 누적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MZ가 사랑한 공룡, 조구만스튜디오의 성공은 UBHC(Unforgiving Brutal Herbivore Club, 자비 없고 잔인한 초식동물 클럽)의 10마리 캐릭터가 주인공인 세계관에서 비롯됐다. 자비 없고 잔인한 초식공룡 브라키오를 육식공룡 중심인 세상에 반항하는 ‘을’로 상정하고 할 말은 과감하게 하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총을 쥔 모습으로 그려냈는데 MZ세대가 가진 자기 비하적인 태도나 무기력한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해 MZ세대로부터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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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취향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세분화하고 있다. 가전제품만 보더라도 누구는 집에서 허브를 바로 따먹고자 식물 재배기를, 또 누구는 와인을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기 위해 와인셀러를 구매한다. 고객의 취향이 예측 불가할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가 오락가락한다면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브랜드도 ‘나만의’ 정체성이 중요해졌다. 이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할 때 필수 요소가 된 세계관 마케팅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다 뾰족하게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다. 조구만스튜디오가 고객 확장을 꾀하고자 세상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한다면 자신만의 세계관이 붕괴되고, 그 세계관에 동의해 팬을 자처했던 고객도 놓쳤을 것이다.

디저트 카페나 식당마다 생겨나는 시그니처 메뉴 역시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론칭한 디저트 카페 누데이크는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디자인의 디저트와 독특한 맛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특히 론칭 당시 시그니처 메뉴였던 피크(Peak) 케이크는 화산을 본떠 만든 것으로 검은색 페이스트리 조각을 뜯는 순간 초록색의 말차 크림이 흘러내리는데,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SNS에서 한동안 이슈 몰이를 했다.

이제는 프리미엄보다 시그니처가 중요한 시대다. MZ세대는 어디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보편성이 아니라 이 브랜드, 이 플랫폼, 이 제품, 이 장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한정성과 특별함에 열광한다. 누구나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나만의 취향과 취미를 확실하게 저격해야 한다. 결국 불황에도 살아남으려면 제품과 서비스는 그 정체성을 뾰족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매력에 이끌린 고객이 브랜드의 친구가 되고 팬이 된다. 그물을 넓게 칠수록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DBR mini box I : 욜로와 갓생은 무엇이 다른가


욜로는 ‘소소한 낭비’, 갓생은 ‘소소한 성취감’ 추구

6년 전인 2017년 트렌드 키워드는 단연 ‘욜로(YOLO)’였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의 줄임말인 욜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의료보험 혁신 플랜인 ‘오바마 케어’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영상에 등장하며 전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다.

2010년대 장기 불황기에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세대는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기며 살자’는 욜로의 메시지를 삶의 태도로 받아들였다. 역사상 가장 높은 스펙을 갖췄음에도 취업조차 쉽지 않았던 이들은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현재를 희생하기보다는 여행과 취미 생활 등 지금 바로 누릴 수 있는 일상의 행복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이런 현상은 2020년대 플렉스(Flex) 문화로 이어진다. 다이소나 편의점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잔뜩 구입하고 ‘플렉스했다’는 식이다. 꼭 명품 같은 고가의 소비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낭비로 찰나의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다. 욜로와 플렉스는 일시적이고 자기만족적 소비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타인이 보기엔 무의미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지금 당장 행복을 체감한다면 타인의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상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맛집을 탐방하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작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더해 2022년부터 고물가·고유가·고금리·고환율이 일상생활에서 본격 체감되기 시작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일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환경에서 MZ세대는 일상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다른 방향을 모색한다. 과거에는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유지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일상을 지탱할 목적으로 매일 작지만 좋은 습관을 쌓으며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는 만족감과 성취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기 투자에 몰두하는 MZ세대의 갓생 문화가 급속하게 자리 잡았다. ‘신처럼 사는 인생’이란 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실천하며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는 삶이다. 하루 2리터 이상의 물 마시기, 새벽 기상해 명상하기, 일기 쓰기 등 거창하지 않은 작은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며 일상을 유지할 성취감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다 보면 계속해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이 MZ세대가 갓생을 실천하는 이유다. 






DBR mini box II : MZ세대의 ‘가실비’ 소비 행동 사례


향수는 자기 전 뿌리고, 예쁜 플레이팅 위해 식기세척기 구매

니치 향수 선호가 국내 향수 시장의 성장 이끌어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19년 6035억 원에서 2022년 7930억 원으로 30% 이상 성장했다. 2025년엔 1조 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패션 전문 유통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의 2022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간 대비 10.7% 성장했는데 특히 딥티크, 산타마리아노벨라, 바이레도 같은 니치 향수 매출이 1 14% 증가하며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최근 국내 향수 시장은 샤넬, 구찌, 톰포드 같은 유명 패션 브랜드가 주도하던 틀에서 벗어나 메종 프린시스 커정, 딥디크, 바이레도, 조 말론 같은 해외 니치 향수와 탬버린즈, 논픽션 같은 국내 디자이너 니치 향수가 유행을 이끄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향수 시장의 성장은 주 고객인 MZ세대가 향 제품을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와 맞물린다. 과거 향수는 외출할 때 자신을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됐다. 즉,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 품목이었다. 요새는 일상에서 ‘기분을 케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향수가 소비된다. 대표적 예가 ‘잠뿌(잠자기 전에 뿌리는 향수)’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 좋게 숙면을 취하기 위해 향수를 소비한다. 선호하는 향이 일상에 스며들어 은은하게 자신의 기분을 케어해주기 원하는 니즈가 확대되면서 향수 외에도 핸드로션, 보디용품 등 향 제품에 대한 소비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트렌드를 타고 급성장한 브랜드가 논픽션이다. 2019년 론칭해 첫해 매출 8000만 원에서 2021년 342억 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19년 순손실 1억9000만 원에서 2021년 순이익 146억 원으로 돌아섰다. ‘매일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 이것이 논픽션의 브랜드 핵심 메시지다. 세계적 조향 회사와 협업해 독특하고 뛰어난 향을 만들었고 향수, 핸드워시, 핸드크림, 보디용품을 비롯해 룸스프레이, 향초 등 라인업을 다양하게 갖췄다. 오프라인 유통에서는 올리브영 같은 대중적 채널은 지양하고 한남동, 성수동, 해운대 쇼룸에서 시작해 현대백화점, 10꼬르소꼬모, 더콘란샵 등 프리미엄 편집숍에 입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브랜딩에 힘입어 논픽션은 단숨에 MZ세대 사이에서 스몰 럭셔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논픽션의 제품 가격대는 향수 5만9000∼12만8000원, 핸드크림 2만1000원, 보디용품 3만6000원대로 비교적 고가에 속한다. 그러나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향으로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MZ세대는 가실비를 근거로 주저 없이 논픽션을 구매한다.

비싸더라도 일상생활의 질 높이는 가전제품 구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20∼5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가전제품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향후 1년 내 구매를 희망하는 가전제품은 의류관리기(10%), 식기세척기(9.5%), 안마의자(9.3%), 건조기(7.2%), 음식물 처리기(6.8%) 순으로 나타났다. 상위 5위권에 전통 필수 가전이 아닌 신(新)가전이 대거 포함됐다. 이러한 현상은 신혼 가전 핵심 구매층인 2030세대만 따로 살펴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과거 필수 가전으로 꼽히지는 않았던 의류관리기나 식기세척기 등이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은 것 역시 가실비가 새로운 소비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비싸더라도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효용을 감안하면 충분히 구매할 만한 제품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의류관리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음식물 처리기 같은 제품의 공통점은 가사 노동 부담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점이다. 의류관리기를 사용하면 겨울 코트에서 전날 갔던 식당 냄새를 말끔하게 제거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설 수 있다. 집밥을 먹을 때도 예쁜 플레이팅이 중요한 MZ세대에게 식기세척기는 그릇 사용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식사 시간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존재다. 이들 제품의 또 다른 숨겨진 효용은 가사 분담에 따른 갈등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맞벌이를 많이 하는 MZ세대 가정은 가사 분담 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잦다. 식기세척기와 음식물 처리기는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라는 가사 노동을 줄여줘 갈등 발생을 차단해준다.

신가전을 통해 삶의 질이 소소하게 향상된다는 것을 체감한 MZ세대는 이제 좀 더 전문적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가전제품에도 기꺼이 지불하기 시작했다. 피부과나 미용실에서 관리받은 것 같은 효과를 내는 100만 원대의 피부 관리 기기나 50만 원대 고급 헤어스타일링 기기를 흔쾌히 구매한다. 최적의 온습도로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와인셀러, 실내에서 모종을 키울 수 있는 식물 재배기 등 ‘취향 가전’도 인기다. 나만의 공간인 집에서 자신의 취향을 즐기며 좀 더 만족할 만한 일상을 가꾸는 데 기꺼이 투자하는 것이다.




  • 이선미 | ㈜티비에이치글로벌 차장 bc_hy@naver.com.
    필자는 15년 차 마케터다. 패션 기업 TBH GLOBAL에서 마케터, MD, 마케팅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온라인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트렌드의 최전선 패션업계에 종사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2021년 5월 『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를, 2022년 9월 초보 마케터와 직장인들을 위한 글쓰기 실용서 『마케터의 글쓰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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