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주택버블 붕괴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확대되고, 급기야 실물시장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세계 금융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에 대해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의 위기는 금융시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다. 주택 버블 위에 지난 25년간의 유동성 버블이 더해져 슈퍼 버블을 만들었고, 이제 더 이상 거품을 지탱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으며, 미국 주택대출시장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근간으로 하는 신용팽창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위기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지난 25년간 수 차례 금융위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정책 당국이 개입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왔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은 스스로의 자생력을 발휘해 한층 더 발전된 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현재 상황에서 성급히 어느 쪽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현 금융위기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치유책을 찾기 위해서는 2000년 이후 몇 년간의 세계경제 변화를 뒤돌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비이성적 과열과 거품 2000년 초기 글로벌 시장은 생산원가 측면에서 우세한 브릭스(BRICs)로 지칭되는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및 이를 통한 성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신흥 투자 시장은 레스터 서로 박사가 제창한 ‘세계화’라는 이름의 거품이 끼지 않은 성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초부터 많은 석학들이 미국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고, 급기야 이것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고 대중은 석학들에 의해 제시된 신흥시장에 주목했다. 이는 새로운 대안 투자를 향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현상을 일으켰다. 그리고2007년 하반기에 거대한 거품으로 세계경제를 급팽창시킴과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올해 드디어 물가의 고통이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자 자산시장의 본격적인 하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자산가격 하락, 인플레이션, 경기침체라는 복합적인 악재들이 현재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 동안 전성기를 누려오던 고도화된 수리적 기법을 이용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개발 및 판매는 실물시장 충격에 금융시장을 훨씬 더 취약한 상태로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해 들어와 미국 정부는 주택가격 하락으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미국 정부는 유동성 위기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2008년 지속적으로 시행된 3% 이상의 금리인하, 단기자금입찰(TAF) 자금규모 확대, 단기자금대여(TSLF)를 통한 유동성 추가 공급,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최대 2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의 공적 자금 투입,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850억 달러에 이르는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79.9%의 지분 인수 등 신속한 시장 개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10월 3일 미국 금융시장 위기 해소를 위해 마련한 구제금융 법안이 한 차례 부결된 이후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통과됐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들여 금융시장 안정에 나설 수 있게 돼 금융위기 해소 기대감을 높이게 됐다. 올해 들어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미국이 취한 일련의 정책들은 미국 정부가 그 동안 주창한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시장 원리에도 위배되고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에 골몰해 온 투기자본을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하고 있다는 윤리적 비난을 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발상지인 미국에서 ‘신사회주의(neo-socialism)’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