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제언

정부, ‘선제 공세’로 시장붕괴 막아야

19호 (2008년 10월 Issue 2)

2007년부터 주택버블 붕괴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확대되고, 급기야 실물시장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세계 금융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에 대해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의 위기는 금융시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다. 주택 버블 위에 지난 25년간의 유동성 버블이 더해져 슈퍼 버블을 만들었고, 이제 더 이상 거품을 지탱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으며, 미국 주택대출시장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근간으로 하는 신용팽창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위기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지난 25년간 수 차례 금융위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정책 당국이 개입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왔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은 스스로의 자생력을 발휘해 한층 더 발전된 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현재 상황에서 성급히 어느 쪽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현 금융위기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치유책을 찾기 위해서는 2000년 이후 몇 년간의 세계경제 변화를 뒤돌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비이성적 과열과 거품
2000
년 초기 글로벌 시장은 생산원가 측면에서 우세한 브릭스(BRICs)로 지칭되는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및 이를 통한 성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신흥 투자 시장은 레스터 서로 박사가 제창한 ‘세계화’라는 이름의 거품이 끼지 않은 성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초부터 많은 석학들이 미국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고, 급기야 이것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고 대중은 석학들에 의해 제시된 신흥시장에 주목했다. 이는 새로운 대안 투자를 향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현상을 일으켰다. 그리고2007년 하반기에 거대한 거품으로 세계경제를 급팽창시킴과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올해 드디어 물가의 고통이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자 자산시장의 본격적인 하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자산가격 하락, 인플레이션, 경기침체라는 복합적인 악재들이 현재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 동안 전성기를 누려오던 고도화된 수리적 기법을 이용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개발 및 판매는 실물시장 충격에 금융시장을 훨씬 더 취약한 상태로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해 들어와 미국 정부는 주택가격 하락으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미국 정부는 유동성 위기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2008년 지속적으로 시행된 3% 이상의 금리인하, 단기자금입찰(TAF) 자금규모 확대, 단기자금대여(TSLF)를 통한 유동성 추가 공급,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최대 2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의 공적 자금 투입,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850억 달러에 이르는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79.9%의 지분 인수 등 신속한 시장 개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10월 3일 미국 금융시장 위기 해소를 위해 마련한 구제금융 법안이 한 차례 부결된 이후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통과됐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들여 금융시장 안정에 나설 수 있게 돼 금융위기 해소 기대감을 높이게 됐다. 올해 들어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미국이 취한 일련의 정책들은 미국 정부가 그 동안 주창한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시장 원리에도 위배되고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에 골몰해 온 투기자본을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하고 있다는 윤리적 비난을 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발상지인 미국에서 ‘신사회주의(neo-socialism)’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면 현재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에 우리는 안전한가. 서글프지만 우리는 ‘월가가 살아야 미국이 살고, 미국이 살아야 세계가 산다’는 명제를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처지다. 우선 그 동안 지속된 국가 경계를 넘어선 신속한 자본 이동이 세계 금융시장의 동조화 현상을 강화시켜 왔다. 미국 경제 위기가 이웃나라 위기로 끝나지 않게 된 것이다. 또 내수 위주 경제가 아닌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를 가진 우리로서는 미국의 경기 침체가 국내 경기 침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 수출 규모 1위인 중국이 미국으로의 수출 규모 1위인 점을 상기할 때 미국 경기 침체는 중국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고, 이는 간접적으로 국내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금융시장 위기는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정확한 손실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실체가 모호한 상태였지만 현재는 대략적인 추정 손실 규모와 금융위기의 전이 단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시점에 도달했다. 다시 말해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던 지난해와는 달리 보이는 적을 상대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이에 대한 처방과 치료도 좀 더 명확해지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병명을 아는 의사는 치료할 수 있는 좀 더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현재 국내 상황은 미국이 겪고 있는 자산가격 하락,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라는 3대 악재에 더해 외환시장 불안까지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급격한 환율 상승은 외국인의 주식시장 이탈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도한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면에는 요즘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용 외환 보유액 수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자리잡고 있다. 정부는 외환보유액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을 안정화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주택거래 활성화 유도해야
주택시장을 살펴보자. 지난 정부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시행한 주택가격 대비 대출 규모(Loan-to-Value Ratio)의 강력한 제한이 결과론적으로는 다행스럽게 주택가격의 급격한 침체를 막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택가격의 추가적 하락을 예상한 미래 주택 수요자와 부동산 경기 침체가 한시적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존 주택 보유자 간 인식 격차가 커지면서 주택시장은 사실상 가격 형성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지방의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는 실물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일환으로 발행된 자산유동화 담보부 기업어음(ABCP)의 만기 도래로 주택시장의 충격이 금융권으로 즉각 파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 예상 및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경기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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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투자은행 중 3개 투자은행을 포함한 대규모 회사의 파산 및 합병 등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온 미국과 비교했을 때 현재의 국내 상황은 아직 초기 진행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필자가 미국과 같이 국내 대규모 회사의 파산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일련의 사건 및 이에 따른 미국 정부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좀 더 적절한 시점에서 시장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정부정책을 기대해 본다.

첫 번째로 주택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좀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달에 발표된 종부세 과세 기준 완화 조치는 매수세 유발을 위한 실효적 조치로서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는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한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이 요구된다. 두 번째로 실물경기 여파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실물경기 여파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실물시장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차단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외환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들을 신속히 파악하고 좀 더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안정적인 환율정책을 기대해 본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인간행동 양상을 심리학에서는 ‘불확실성과 유사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본인이 처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쉽게 영향을 받아 다수가 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뿐 아니라 현재의 금융시장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불확실한 현재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현명한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4호 The Centennial Strategy 2020년 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