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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CVC 호반그룹의 CVC ‘플랜에이치벤처스’

“신기술을 현장에 접목하는 테스트베드
단순 투자 아닌 오픈이노베이션의 첨병”

장재웅 | 345호 (2022년 05월 Issue 2)

편집자주

지난해 말 국내 지주회사의 CVC 설립이 허용됨에 따라 대기업•스타트업 간 협력 및 창업, 생태계 관련 투자 시장이 크게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에 DBR는 국내 주요 기업의 CVC를 자세히 분석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Article at a Glance

호반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CVC 계열사 ‘플랜에이치벤처스’는 계열사들이 필요로 하는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를 집행하고 이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접목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스타트업의 전략적 방향성을 자사 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피벗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대기업 CVC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호반그룹은 이를 통해 외부로부터 회사가 필요한 신기술을 손쉽게 확보했다. 또한 투자 대상인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인프라와 생산 현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기술 사업화 및 판로 개척을 시도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초, 호반그룹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 업무를 맡아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발굴에 집중하던 플랜에이치벤처스의 레이더에 ‘에이올코리아’라는 스타트업이 포착됐다. 2018년 창업한 에이올코리아는 주택용 환기 장치 제조 회사다. 에이올코리아의 주력 기술은 MOF(저온 재생형 금속-유기 골격체, Metal-Organic Framework) 소재를 활용한 소재로 나노 크기의 미세 구멍이 많아 수분 흡착성이 기존 제품 대비 2∼3배 좋다. 또한 수분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재생 온도가 기존에 시중에서 많이 쓰이는 ‘제올라이트’라는 광물 대비 40∼50% 수준이다. 재생 온도가 낮을수록 그만큼 열을 적게 가해도 돼서 효율성이 좋다.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 기술은 한국화학연구원 장종산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것으로 에이올코리아는 2019년 기술을 이전받아 상용화에 성공했다. 에이올코리아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플랜에이치벤처스는 2020년 8월 에이올코리아와 ‘차세대 환기 시스템 공동 개발’ 관련 MOU를 맺고 총 1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에 SI(전략적 투자자)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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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올코리아는 플랜에이치벤처스를 통해 호반건설 오픈이노베이션팀과 협업해 기존 대비 제습 성능을 50% 향상하고 전력 소모량은 40% 이상 절감하는 환기 시스템을 개발했다. 또한 오픈이노베이션팀의 도움으로 당진, 대전 등 호반써밋 아파트 및 주민 공동 시설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호반건설의 아파트 현장에서 충분히 레퍼런스를 쌓은 덕에 2021년 9월 22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플랜에이치벤처스의 전략적 지원은 호반건설이라는 구매자를 연결해주고 테스트베드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호반건설의 오픈이노베이션팀은 에이올코리아의 기존 환기 장치를 습기 제거가 필요한 화장실, 드레스룸 등 다양한 곳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뿐만 아니라 과일 포장지나 음식 밀폐용기에 MOF 소재를 적용하는 아이디어도 제안함으로써 에이올코리아가 MOF 소재를 중심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이 같은 에이올코리아 사례는 호반그룹의 CVC 계열사인 플랜에이치벤처스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플렌에이치벤처스는 단순히 재무적 투자에 그치지 않고 호반그룹 오픈이노베이션의 첨병이 돼 계열사들이 필요한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를 집행하고 이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접목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호반그룹은 외부로부터 회사가 필요한 신기술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고 투자 대상인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인프라와 생산 현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기술 사업화 및 판로 개척을 시도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건설 업계에 액셀러레이터형 CVC를 선제적으로 설립한 플랜에이치벤처스의 원한경 대표를 DBR가 만나 플랜에이치의 역할과 향후 비전에 대해 물었다.

건설사들이 CVC에 관심 갖는 이유

건설업과 벤처 투자는 언뜻 생각하기에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건설사들의 벤처 투자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대형 건설사들의 경우 지분 투자 등의 방법으로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고 있고 중견 건설사들은 벤처 펀드에 유한책임출자자(LP)1 로 나서거나 직접 CVC를 설립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금융회사 성격이 큰 CVC 설립이 일반 지주사에도 허용되면서 이 같은 흐름은 본격화되고 있다.

호반그룹은 이런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다. 재계 순위 30위권의 호반그룹은 이미 지난 2016년 신기술사업금융사인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를 설립해 재무적 투자자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또한 2019년에는 액셀러레이터인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그룹의 주력 사업과 연관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2 호반그룹은 플랜에이치벤처스와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를 통해 초기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 등 전략적 투자 단계부터 후기 투자 단계(Pre-IPO 등)인 재무적 투자까지 스타트업 투자의 전 단계를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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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그룹과 같이 건설업이 주류인 대기업이 벤처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최근 주택 경기 호황에 힘입어 호실적을 거두고는 있지만 건설업은 업의 특성상 극심한 변동성에 항상 노출돼 있다. 특히 국내 건설업계는 지난 2010년 전후로 부동산 침체로 인한 워크아웃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때 얻은 값비싼 경험으로 건설사 전반에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고 그 해결책 중 하나로 벤처 투자가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국내 건설사들의 경우 대기업 계열의 일부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자체 기업 부설연구소를 두고 있는 곳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대부분 최근까지도 주로 시공 능력을 바탕으로 주어진 납기와 품질 요구 수준에 맞춰 건물을 짓는 데만 주력해 왔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시티 산업의 열풍과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건설사들의 신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해졌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첨단 기술을 집 안에서도 이용하기 원하는 수요가 커졌다. 이에 건설사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ICT, IoT, 제로에너지 기술을 받아들여야 했고, 벤처 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히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플랜에이치벤처스 역시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호반그룹은 지난 2019년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하고 호반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창구 역할을 맡겼다. 호반그룹이 영위하는 건설업 등 다양한 산업과 연관된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을 발굴해 투자를 집행하고 이들이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테스트베드를 제공해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기술 사업화, 판로 개척, 창업 보육 등 통해
스케일업에 집중

플랜에이치벤처스는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하는 것 외에도 스타트업에 R&D 자금을 지원해 기술 사업화를 돕거나 스타트업들의 판로 개척을 지원한다. 이에 더해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호반그룹 본사 내 한 층 전부를 스타트업들에 창업보육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창립한 이 조직은 3년간 총 20여 개 스타트업에 7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했다. 하지만 투자 자체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플랜에이치벤처스가 팁스(TIPS) 운용사3 에 선정돼 스타트업의 R&D 자금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팁스는 중기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민간기업이 스타트업을 발굴 및 투자하면 정부가 나서 R&D 자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플랜에이치벤처스는 지난 2019년 8월 한국무역협회,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표준협회, 전남대기술지주, 부산대기술지주, UNIST기술지주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팁스에 참여했으며 지금까지 약 11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연계했다. 원 대표는 “초기 투자 이후 기술 상용화를 위해 R&D 연계나 외부 창업지원기관과 연계해 자금 지원을 받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투자금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쓰고 있다”며 “그 덕분에 플랜에이치가 투자한 20여 개 기업의 기업 가치가 투자 시점 대비 2배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플랜에이치벤처스는 기술 사업화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의 판로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019년 7월 건설 혁신 및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GS건설, 한국무역협회,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손을 잡고 건설혁신추진협의회(KIBA)를 설립하기도 했다. KIBA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 사업 연계, 글로벌 진출 지원, 건설 관련 소재의 국산화, 국내 건설 신기술 시험시스템(테스트베드) 확대 등을 목표로 호반건설과 GS건설이 주축이 돼서 탄생했다. 한편 우면동 호반그룹 사옥 4층 약 1000㎡를 일종의 공유 오피스인 ‘이노베이션 허브’로 만들어 스타트업 15곳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플랜에이치 투자를 받은 기업은 물론 창업 공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이노베이션 허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플랜에이치는 입주심의회를 거쳐 호반그룹과의 사업 연계가 가능한 스타트업 위주로 입주 기업을 선발하고 있다. 원 대표는 “이노베이션 허브 공간은 호반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공유 오피스를 넘어 호반그룹 계열사와 입주 기업들이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혁신을 이루는 소통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테스트베드 제공을 통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플랜에이치벤처스가 기술 사업화와 판로 개척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많은 스타트업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추고도 기술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베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플랜에이치벤처스 합류 전 ‘연세대학교기술지주’와 ‘부산연합기술지주’에서 일하며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의 발굴 및 지원 업무를 해왔다. 당시만 해도 그는 “왜 오픈이노베이션이 잘 일어나지 않을까”가 궁금했다. 특히 기술 사업화 측면에서 좋은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원 대표는 플랜에이치벤처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로소 오픈이노베이션이 왜 잘 이뤄지지 않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스타트업이어도 산업 현장에서 쌓은 레퍼런스가 없으면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따라서 기업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흔히 중후장대한 장치 산업이나 건설업의 경우 프로젝트 규모가 크고 공기 및 납기에 따라서 엄청난 금액의 손익이 좌우되는 대표적인 ‘벤더 비즈니스’다. 이런 비즈니스에서는 한번 구축된 협력업체와의 거래 구조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자칫 거래처를 바꿨다가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어마어마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기술력이 있는 스타트업이어도 산업 현장에 적용했던 레퍼런스가 없으면 신규 영입이 힘들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아무리 매력적인 기술을 보유해도 기존의 이 산업 구조를 뚫고 들어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원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호반건설이 지향해야 할 CVC의 역할을 찾았다. 현장에서 레퍼런스를 쌓기 어려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해 레퍼런스를 쌓게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이 느끼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하고 기술 상용화나 추가 R&D가 필요할 경우 팁스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면서 ‘풀 패키지 액셀러레이팅’을 제공하기로 했다. 원 대표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그 회사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다시 우리 담당 부서에서 받아들인다면 사업 혁신성도 높이고 업무 프로세스도 개선할 수 있다”며 “단순히 스타트업의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기술사업화, R&D 비용 지원, 상용화 지원, 판로 개척 등을 풀 패키지로 제공하는 것이 기존 VC와 CVC인 플랜에이치벤처스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모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키워내는 역할

그렇다면 플랜에이치벤처스와 계열사와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그 해답은 호반건설 내 ‘오픈이노베이션팀’에 있다. 오픈이노베이션팀은 호반건설 내 V.I(Value Innovation)실 산하에 있는 팀으로 호반건설의 각 사업부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이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매칭하는 역할을 한다. 오픈이노베이션팀은 상근 직원과 비상근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상근 직원은 건설업 경력이 많은 베테랑 직원들로 플랜에이치벤처스와 함께 유망 스타트업의 발굴부터 투자, 기술 검증, 투자 집행, 성장 지원 등 스타트업 육성의 전 과정을 함께한다. 특이한 점은 비상근 직원들의 역할이다. 오픈이노베이션팀의 비상근 직원들은 호반건설의 현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각 부서에 속한 기술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평소에 각자 소속 부서에서 업무를 하다가 플랜에이치가 투자한 스타트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미팅이나 IR 등의 자리에 참석해 투자 스타트업의 기술 사업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현장 실무진이 원하는 ‘수요 기술’이 어떤 것인지를 스타트업에 전달하기도 한다. 원 대표는 “오픈이노베이션팀은 플랜에이치가 투자를 집행하고 나면 해당 스타트업에 합류해 정기적으로 회의도 하고 멘토링도 하면서 기술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한다”며 “이 과정에서 투자 기업이나 호반건설 양쪽 모두에서 기대 이상의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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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이노베이션팀의 핵심적인 역할은 스타트업의 신기술•신제품을 기존 사업 부서가 원활하게 수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 제품을 건설현장에 적용할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시험인증이다. 건설업의 특성상 안전이 최우선 가치이니 아무리 기술이 탁월해도 적절한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곧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험인증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만하다. 이에 호반건설 오픈이노베이션팀의 베테랑 직원들은 스타트업이 시험인증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플랜에이치가 2021년 투자한 포스리젠의 경우 저탄소 고품질 콘크리트에 대한 시험인증을 호반건설의 오픈이노베이션팀이 직접 지원한 사례도 있다. 또한 호반건설은 스타트업 제품에 대한 기술 검증과 시험인증을 가속화하기 위해 2021년 5월 건설재료 분야의 국내 최대 종합시험인증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과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사는 기술 검증과 품질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보 교류, 시험시설•장비 공동 활용, 시험•분석자료 교류, 건설공사 관련 품질시험•검사 등에 있어 상호 협력하고 있다.

플랜에이치와 호반건설의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상호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입증하는 좋은 예다. 통상 대기업이 스타트업 투자를 나설 때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사업부와의 갈등이다. 사업부는 스타트업의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고 자신의 사업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협업을 꺼린다. 반대로 스타트업은 어떤 기술이 현장에서 필요한지 알고 싶어도 대기업에서 만나주지 않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대기업들의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 주체인 대기업의 VC 계열사와 실제 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야 할 회사, 그리고 스타트업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플랜에이치와 호반건설은 이 한계를 회사 내 조직인 ‘오픈이노베이션팀’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 총괄 사장 역할이 컸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장남인 그는 플랜에이치 설립을 주도한 인물로 매주 플랜에이치 전체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다. 그런 김 사장이 직접 오픈이노베이션을 챙기고 호반건설 내 전담 부서를 만든 것 역시 호반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성공에 자양분이 됐다.

공간이라는 플랫폼에 얹을 수 있는 모든
기술이 투자 대상

플랜에이치벤처스는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할까. 플랜에이치벤처스가 설립 초기부터 주목한 분야는 ‘스마트시티(Smart City)’다. 스마트시티는 기본적으로 신기술의 거대한 플랫폼이다. 그 이유는 스마트시티를 만들 때 단순히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정보통신기술(ICT)이나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모빌리티 관제 기술, 에너지 절감 기술 등 다양한 신기술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우리는 스마트시티 산업의 핵심 요소인 인프라, 데이터, 서비스 중 인프라 구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건설사들이 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키우기 위해 기술을 먼저 이해하고 리드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플랜에이치벤처스는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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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플랜에이치벤처스가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투자회사들의 면면을 보면 스마트시티 관련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플랜에이치벤처스가 지난 2019년 투자한 ‘텐일레븐(Ten eleven)’이 있다. 텐일레븐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건축 설계를 자동화하는 ‘빌드잇’ 솔루션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빌드잇 솔루션은 복잡하고 반복적인 건축 설계 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기존엔 5일 이상 걸렸던 계획 설계의 개발 사업 타당성 업무를 1시간 내로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플랜에이치는 2019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텐일레븐을 발굴하고 초기 투자와 기술 개발을 진행했다. 호반건설은 ‘빌드잇’ 솔루션을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해 테스트베드를 제공했고 중소기업벤처부의 팁스 사업 연계를 통해 연구개발(R&D) 자금 확보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빌드잇 솔루션으로 도출한 배치 계획이 실제 불광5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최종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배치 계획은 최근 국토부가 주최한 3차원 경관심의 기술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플랜에이치가 2020년 투자를 단행한 ‘플럭시티(Pluxity)’ 역시 대표적인 스마트시티 관련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도시, 건물 3차원 가상화 모델링을 기반으로 스마트시티와 스마트빌딩 통합관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실제 공간을 컴퓨터상에서 구현해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트윈’ 원천 기술을 보유 중이다. 최근 플랜에이치는 플럭시티와 힘을 합쳐 산업 현장 안전관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건설 현장을 디지털 트윈 기술로 컴퓨터상에 구현해 위험 지역이나 위험 요소들을 특정하고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을 활용해 현장 인력들에게 즉각적으로 시각적 신호를 제공해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솔루션이다. 이 밖에도 VR 기반 건축물 설계/시공 솔루션을 개발하는 에이디나 실감형 메타버스 커넥팅 공간 큐레이팅 플랫폼 로위랩코리아 등도 플랜에이치가 스마트 건설 분야에서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다.

그런가 하면 플랜에이치는 도시재생 분야 및 신사업 발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플랜에이치가 지난해 6월 투자한 모듈형 건축 자재 스타트업인 ‘모콘에스티’가 있다. 모콘에스티는 모듈형 건축 자재 스타트업이다. 모콘에스티의 모듈형 욕실 시스템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하자를 줄이는 등 현장의 시공성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플랜에이치가 가장 먼저 투자했던 스마트팜 관련 스타트업 쎄슬프라이머스나 AI 기반 비대면 건강검진 솔루션을 제공하는 비바이노베이션, 부동산 빅데이터를 활용해 부동산 입지 등의 시장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지인플러스 역시 신사업 측면에서 플랜에이치가 주목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소유가 아닌 육성 중심의 진정한 의미의
오픈이노베이션이 목표

플랜에이치벤처스는 모기업의 니즈에 맞는 기술을 가진 회사를 찾아 적극적으로 모기업의 니즈를 스타트업에 전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스타트업의 전략적 방향성을 자신이 필요한 쪽으로 피벗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대기업 CVC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기존 대기업 CVC의 병폐로 지적되는 무분별한 M&A나 기술 독점 문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실제 플랜에이치가 투자한 20여 개 기업 중 플랜에이치의 지분율이 10%를 넘는 투자 건은 전무하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상생, 협력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만큼 먼저 스타트업을 전면에 내세워주고 신기술을 먼저 받아들이는 전략을 사용한다. 플랜에이치는 스타트업의 기술에 독점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술 자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핵심은 이를 내부에 어떻게 적용하고 융합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오픈이노베이션은 상호 신뢰를 바탕에 두는 것으로 이를 훼손하는 투자 방식은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DBR mini box

벤처생태계 활성화 위해선
CVC 규제 완화 논의 필요

2021년 12월30일부터 일반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벤처지주회사의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규제가 시행됐다. 제도 개선 주요 항목을 살펴보면 CVC는 지주회사가 지분 100% 보유해야 하며 차입 규모는 자기자본의 200% 이내로 제한된다. 또한 투자 조합별로 펀드 조성 시 외부 자금은 출자 금액의 40% 이내로 제한하고 해외 투자의 경우 CVC 총자산의 20% 이내로 제한하는 것 등이 주요 골자이다. 대기업 유보금을 벤처투자 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일부 개정했다는 점에서 의의는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추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원한경 대표 역시 외부 출자금의 40% 제한 요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벤처 투자의 핵심 원리는 타인 자본 활용을 통한 위험 분산이다. 그러나 현 규정은 외부 출자를 제한함으로써 스타트업의 모든 리스크를 대기업 내부에 부담시키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CVC 투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CVC의 해외 투자 및 외부 자금 출자 전면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지주회사가 CVC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고 투자 현황, 출자자 내역 등을 공정위에 보고하는 모니터링 장치가 이미 존재하는 만큼 개별 투자조합에 대한 별도 출자 비중을 두는 것이 중복 규제라는 논리이다. 물론 외부 자금 출자를 전면 허용할 경우 대기업 유보금의 모험 자본 투자 유도라는 기존의 정책적 목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CVC 투자 활성화가 대기업의 인수•합병으로 이어진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참고한다면 외부 자금 출자 허용이 국내 벤처생태계의 회수 시장 확대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전면 허용이 우려된다면 투자 위험이 가장 큰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조합에 한해서만 일정 부분 외부 자금 출자를 허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금산분리 규제를 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내 벤처생태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회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업의 CVC 참여를 정책적으로 유도할 규제 완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조교수 sh.kang@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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