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세계는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서로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두 세계가 중첩되며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진법의 비트 단위로 이뤄진 디지털 세계는 경제적 측면에서 자원의 희소성, 시공간의 제약을 특징으로 하는 물리적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 많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NFT 기술은 디지털 경제와 아날로그 경제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는 메타버스 시대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다. 기업들은 플랫폼을 장악하기보단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정의해 나가는 등 새로운 세계를 같이 창조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메타버스 경제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세상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처음 언급된 메타버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인터넷상의 가상 세계와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 세계 사이의 차이를 없애주는 기술 또는 세계관 등을 통칭하는 매우 넓은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 메타버스의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다이어그램은 아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혼합 현실(mixed reality) 스펙트럼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내외적으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개념을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의 혼합이라는 거대한 스펙트럼으로 정의하는데, 이것이 혼합 현실 스펙트럼이다. 이처럼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학술적으로만 보거나 눈에 보이는 시각화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물리적 세계(physical world)와 디지털 세계(digital world)가 서로 만나기 위해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로 훨씬 넓게 이해돼야 한다.
만약 물리적인 현실 세계를 디지털화하는 수준을 점점 높여 종국엔 디지털 세계와 비슷하게 만들어가는 종류의 기술들을 증강현실이라 정의한다면 원시적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부터 사물인터넷(IoT) 기술, 디지털 트윈, AI 기술 및 스마트폰 등과 같은 하드웨어 기술 등은 포괄적으로 증강현실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편에선 게임, 웹툰, 웹소설이나 인터넷 미디어 등과 같이 처음부터 디지털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세계가 물리적인 세계를 점점 더 많이 담는 형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단순히 게임 등을 수동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셜네트워킹, 일상생활, 영업, 마케팅, 이벤트에 이르는 현실 세계 활동이 디지털 세계로 확장되는 것들 모두 넓은 의미의 가상현실로 볼 수 있다.
메타버스에 대해 매우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개념적인 차원에서 이처럼 물리적 세계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세계의 물리적 세계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사실상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중첩되며 구성되는 세계를 메타버스라고 정의하겠다.
아날로그 경제 vs. 디지털 경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원자(atom)라면 디지털 세계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는 ‘비트(bit)’다. 비트는 빛이나 전기 등을 활용해서 On과 Off 혹은 0과 1 두 가지 선택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전혀 무게도 나가지 않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원자를 얻게 됐다. 디지털은 일단 통신수단만 연결되면 무게도 없고 전송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비트를 통해 모든 것에 대한 가치 교환을 이뤄낼 수 있다.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자유롭기 때문에 원자가 지배하던 아날로그 세계의 규칙과는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세계는 ‘풍부함의 법칙’이 동작하는 세상이다. 무한하게 공급될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된 물리적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어떤 재화든 ‘희소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희소성의 정도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동작한다. 시장에서는 ‘가격’이라는 기전을 통해 원활하게 거래가 이뤄진다. 그런데 디지털 세계의 재화의 경우 무한 복제가 이뤄져도 복제에 들어가는 자원의 양과 시간이 0에 수렴하며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역시도 거의 0에 가깝다. 이렇게 되면 현실 세계의 수요-공급의 법칙이 사실상 동작하지 않게 되며 거의 모든 재화의 가격 역시 0에 가까워지며 무의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