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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의 마케팅

주부들 입소문 ‘맘카페’ 회원 9만 명
레서피 콘텐츠 만들어 공유하기도

이덕주 | 263호 (2018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8년 에어프라이어는 대용량 제품인 ‘트레이더스 에어프라이어 플러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전자레인지 다음으로 중요한 요리 가전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필립스는 홈쇼핑과 맘카페 등을 통해 ‘에어프라이어’에 대한 입소문 마케팅에 큰 성공을 이뤘다. 또한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에어프라이어 레서피와 같은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를 얻어내는 것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입소문과 축적된 UGC에 따른 수혜는 ‘대용량 제품’을 내놓은 이마트가 대부분 가져갔다. 이는 30∼40대 여성이라는 핵심 소비자층에 집중해 그들의 니즈(낮은 가격+대용량)를 100% 만족시킨 결과다.


2018년 유통가에서 가장 성공한 생활용품, 조리용 제품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에어프라이어’다. 에어프라이어는 가전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레서피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가전 업계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에어프라이어 시장 판매량은 온·오프라인 판매 모두 합쳐 15만 대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70만 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2019년에도 70만 대에서 100만 대 정도 팔릴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에도 이와 같은 판매량이 유지되면 에어프라이어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의 뒤를 이어 3번째로 가정에 많이 보급되는 요리가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기불판이나 식품건조기처럼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자레인지처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가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1500만 가정 중 최대 30% 정도 보급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에어프라이어의 성공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늦었다고 볼 수 있다. 리서치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이른바 ‘에어프라이어’가 포함된 ‘라이트프라이어’는 118만5300대가 판매됐다. 불과 6년 만인 2017년에는 783만2900대가 판매돼 전체 프라이어 시장의 36%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대가 판매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무엇이 이 제품의 성공을 이끌었을까. (표 1, 그림 1)

필립스가 개척하고 후발주자들이 시장을 키우다
1. 선도자가 된 필립스
에어프라이어를 처음으로 제품화하고 ‘에어프라이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네덜란드 회사 필립스다. 1 필립스는 에어프라이어를 ‘건강한 튀김요리’라는 컨셉으로 출시했다. 기름 없이 튀김요리를 즐길 수 있고 기름 섭취를 줄여 고객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제품이란 장점을 내세웠다. 이는 필립스가 2010년 처음 에어프라이어를 전 세계에 선보이고 2011년 국내에 출시할 때도 일관되게 전한 메시지였다. 그런데 사실 에어프라이어의 요리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는 에어프라이어의 요리 메커니즘을 보면 알 수 있다. 에어프라이어는 제품 내부의 열선과 히터로 뜨거운 고온의 공기를 만들어 이를 통해 제품을 익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식재료의 수분과 기름 성분은 밖으로 배출되고 겉 표면은 바삭바삭하게 익혀져 튀김과 비슷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기존 튀김요리가 만들어지는 방식, 즉 고온의 기름 속에 식재료를 튀겨서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완성되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한 식감을 만들어냈다. 반면 튀김요리에 비해 지방의 양은 최대 80%를 줄일 수 있었다. 2



2011년 국내에 에어프라이어를 내놓은 필립스는 정확한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적합한 채널을 통해 공략했다. 바로 홈쇼핑과 ‘맘카페’다. 필립스는 에어프라이어 판매를 GS홈쇼핑을 통해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홈쇼핑이 우리나라 여성 소비자들에게 갖는 영향력과 파급 효과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홈쇼핑의 주 고객인 30∼50대 여성들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기름 없는 건강한 튀김요리’라는 메시지는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DBR minibox: ‘에어프라이어와 라이트프라이어’ 참고.)




DBR mini box I: 에어프라이어와 라이트프라이어
엄밀히 말해 에어프라이어를 ‘기름 없는 튀김요리’라고 하는 말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튀김요리라고 하면 기름 속에 재료를 완전히 담그고 요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어프라이어로 만들어진 제품은 바삭바삭한 결과물이 튀김요리와 비슷할지 모르나 맛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에어프라이어(air fryer)라는 제품명은 크게 틀린 것이 없다. 영어에서 fry라는 단어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음식을 볶거나 굽거나 튀기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식의 ‘튀김’에 가장 가까운 영단어는 Deep Fry다. 기존 튀김요리를 하는 가전제품은 Deep Fat Fryers로 구분되고 필립스 에어프라이어와 테팔 액티프라이같이 기름을 쓰지 않는 제품은 Light Fryer로 구분된다. 이런 점에서 에어프라이어는 기존에도 존재했던 밥솥 형태의 전기튀김기(Electric Deep Fat Fryer)처럼 컨벡션 오븐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에어프라이어를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은 에어프라이어가 컨벡션 오븐과 큰 차이가 없는 혁신적이지 않은 제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컨벡션 오븐을 독립적인 가전으로 만들고 기존 튀김기와 대비되는 ‘기름 없는 요리’ 기능에 초점을 맞춰 ‘건강’ 측면에서 마케팅한 것은 필립스가 처음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소비자처럼 오븐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으면서 튀김요리를 많이 먹는 소비자에게 에어프라이어는 틀림없이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에어프라이어는 APDS라는 네덜란드 리서치 전문회사가 개발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발명한 회사는 특허를 갖고 있었고 이를 제품화할 회사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독일 가전회사 브라운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했고 2009년 필립스에서 이를 수락하면서 2010년 IFA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에어프라이어는 기존에 존재했던 제품들에 비해 가장 튀김에 비슷한 결과물을 냈을 뿐 아니라 요리의 지방 성분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는 필립스가 내부에서 연구했던 제품들보다도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필립스는 외부 기업의 R&D 결과물을 받아들인 것이다.


두 번째로 필립스는 TV 광고나 검색 광고 등 전형적인 마케팅 활동보다는 소셜미디어와 체험 이벤트에 집중했다. 소비자들이 직접 에어프라이어를 경험해보고 그 경험을 다른 소비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같은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2010년 문을 연 ‘필립스맘 카페’다. (DBR minibox: ‘필립스맘 카페’ 참고.) 필립스는 기존에 운영하던 제품별 카페를 통합해 2010년 필립스맘 카페를 열고 이곳을 통해서 회원들이 필립스의 다양한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8년 11월 기준 약 9만 명이 가입했다. 필립스는 필립스맘 카페를 통해 에어프라이어 발매 초기 제품을 알리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정리해보면, 초기에 필립스맘 카페를 통해 이벤트를 진행해 소비자들이 체험하게 했고, 이를 통해 기초적인 레서피를 전파했다. 초기에는 에어프라이어 체험기가 필립스맘 카페에만 나왔지만 이는 점차 ‘맘스홀릭’ ‘레몬테라스’ 같은 대형 카페와 ‘지역별 맘카페’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먼저 검색 등을 통해 필립스맘 카페의 후기가 공유됐고 이어서 실제 소비자인 주부들 사이에서 체험이 전파됐다. 전형적인 ‘체험-후기-공유-확산’의 바이럴 선순환 사이클을 만든 셈이다. 이와 같은 입소문은 주부들 사이에서 에어프라이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공유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품의 1차적인 홍보는 홈쇼핑을 통해서 시작됐지만 ‘아이들 간식을 만드는 데 좋다더라’ ‘기름이 빠져서 다이어트에 좋다더라’는 인식이 소셜미디어와 오프라인 입소문을 통해서 전파됐다.

이후에도 필립스의 마케팅 활동은 다양한 소비자 체험에 집중했다. 2011년 초기에는 ‘무엇이든 튀겨 보세요’라는 이름으로 인터랙티브 캠페인을 진행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상에서 가상으로 에어프라이어를 통해 다양한 식재료를 튀겨보도록 유도했다. 3

2013년부터 색다른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에어프라이어의 레서피를 개발해서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engagement)해 새로운 레서피를 개발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콘텐츠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통삼겹 레서피’다. (그림 2)



DBR mini box II: 필립스맘 카페

필립스가 운영하는 네이버카페 ‘필립스맘’은 기업이 운영하는 소비자 체험 카페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생활가전 제품은 어느 전자제품보다도 소비자들의 경험과 입소문이 중요하다. 특히 여성들이 대상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LG전자, 필립스, 한경희생활건강, SK매직 등이 네이버카페를 통해 체험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필립스는 회원 수가 9만 명에 달할 뿐 아니라 기업에서 운영하는 체험단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보통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섬세한 마케팅에 취약한 데 반해 필립스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회원등급이 올라가는데 ‘로열등급’에 오를 경우 무작위로 필립스 제품 하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등급을 1년간 유지할 경우에도 필립스 제품을 준다. 하지만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활동 기준이 일반적인 맘카페 이상으로 높다. 그러나 7∼8년 이상 로열등급을 유지한 고객이 많을 정도로 필립스맘카페에는 열성회원들이 많다. 이런 고객이 남긴 후기는 필립스 제품을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표 2)



삼겹살은 우리나라에서만 많이 소비되는 돼지고기 부위다. 에어프라이어 발매 초기부터 많은 소비자가 삼겹살을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요리를 해봤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평이 쌓이면서 다양한 시도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삼겹살을 통으로 집어넣고 요리하는 레서피가 개발돼 소비자들 사이에 퍼졌다. 막창, 대창, 맥반석 계란, 군밤 등 한국 특유의 음식들이 에어프라이어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에어프라이어는 고객들에 의해 수많은 레서피가 개발되고 공유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원리의 제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큰 호응과 관심을 얻은 것은 제품 자체의 매력도 크지만 이를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로 마케팅하고 소비자 참여를 이끈 필립스의 전략이 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마케팅분과 교수는 “이제 SNS상에서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마케팅의 필수가 됐다”며 “에어프라이어도 바이럴이 성공을 이끈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필립스는 2015년에는 에어프라이어앱을 출시해 200여 개 레서피를 공개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공유되는 다양한 레서피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소비자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가 기업이 만든 콘텐츠를 압도한 것이다. (그림 3)



2. 시장을 폭발시킨 제품의 등장
필립스의 정확한 타기팅과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에어프라이어 시장은 2017년 이전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주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워너겟(WannaGet) 아이템’으로 떠올랐으나 시장이 폭발하기에는 몇 가지 장벽이 있었다. 첫 번째 장벽은 지재권 문제였다. 필립스는 진입 초기 다양한 방식으로 신규 진입자의 진출을 막았다. 2012년 1월 에어프라이어를 특허청에 상표 출원했으나 2013년 5월 특허청 심사국으로부터 거절 결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다시 심판을 제기했으나 2014년에도 심판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청구가 기각됐다. 이 결정으로 인해 필립스 외 다른 회사들도 ‘에어프라이어’라는 제품명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투’ 제품이 원조 필립스를 따라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장의 판을 흔들지도 못했다. 실제 2011년 에어프라이어가 국내에 나오자마자 2012년 한경희생활과학에서 에어프라이어를 내놓았고 동부대우전자, 동양매직이 유사제품을 내놨으나 필립스가 이끄는 시장 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필립스보다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이전을 보면 에어프라이어 시장은 필립스가 20만∼30만 원대에 제품을 팔고 미투제품들이 10만∼20만 원대에 제품을 내놓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에어프라이어에 대한 인지도와 구매의사는 높았지만 두 자릿수의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이런 시장에서 이마트가 ‘사고’를 쳤다. 이마트는 PB 가전으로 이 제품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특허 이슈가 사라진 2015년부터 자체 에어프라이어 상품 개발에 착수해 2016년 광저우가전페어에서 이미 연간 100만 대의 에어프라이어를 생산하고 있는 중국 업체 제후이(Zehui)와 손을 잡았다. 이마트는 2016년 4월 자체 PL 브랜드로 이마트 러빙홈 에어프라이어를 출시했다. 기존에 나왔던 보급형 에어프라이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제품이었지만 가격은 7만9800원으로 크게 내려갔다. 이렇게 가격이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장벽을 제거해준 상태에서 결정적인 개선사항 하나가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바로 용량이었다. 필립스를 포함한 기존 에어프라이어는 요리통 크기가 2.6L로 이를 크게 해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았다. 2.6L 용량은 많은 가족을 위해 요리하기에는 너무 작아서 똑같은 요리를 두 번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마트는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를 통해 용량을 5.2L로 두 배로 늘리고 가격을 8만4000원으로 정한 ‘에어프라이어 플러스’를 2017년 7월에 내놨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비자들이 이를 사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고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3달 동안 1만 대의 에어프라이어 플러스가 판매됐다. 올해에는 트레이더스 제품 14만 대를 포함해 이마트에서만 20만 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트레이더스 외에 일렉트로맨, 노브랜드, 자주까지 4개 브랜드를 통해 에어프라이어를 판매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 플러스 개발을 담당한 정재일 바이어는 “맘카페 등을 항상 모니터링하는데 용량을 크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면서 “대용량 제품이 10만 원 이하 가격으로 판매되면서 소비자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했고 이후 시장도 대용량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시장을 주도했던 필립스는 어째서 대용량 제품을 내놓지 않았을까. 이는 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글로벌 기업과 로컬기업의 전략 차이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필립스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별한 니즈를 맞추기 위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유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용량 에어프라이어의 성공은 전체 에어프라이어 시장의 성장을 가져왔다. 롯데마트에서 지난 9월 ‘설레임 디지털 에어프라이어’라는 5.6L 대용량 에어프라이어를 출시했고, 리빙코리아, 한경희생활과학 등 국내 가전회사들도 속속들이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2017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50% 이상이 대용량 제품이었다. 2018년에는 전체 판매의 60% 정도가 대용량 에어프라이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판매량이 15만 대 정도에 불과했던 에어프라이어가 2018년에는 70만 대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이 같은 대용량 에어프라이어가 시장을 견인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1위였던 필립스는 시장점유율에서는 밀렸지만 판매량 자체는 늘어났다. 에어프라이어 시장 전체가 커지면서 프리미엄 수요는 원조 격인 필립스 쪽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립스는 여전히 대용량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과거 필립스에 몸을 담았던 한 임원은 “에어프라이어는 한국 회사나 중국 회사도 비슷한 기술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는 경쟁사가 우리 시장을 먹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역으로 필립스와 저가 제품 사이의 기술력 차이를 보여주고 전체 시장을 키우는 일도 했다”고 설명했다.



에어프라이어 보급대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참여도 폭증했다. 제품 용량을 늘리면서 더 많은 실험적인 시도가 가능해졌고 소비자 참여가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대용량 에어프라이어는 통닭 한 마리를 통째로 구울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에어프라이어가 본질적으로는 ‘오븐’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더 다양한 레서피가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에어프라이어 유행이 생각보다 오래 갈 수도 있다는 예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카페에서 ‘에어프라이어’라는 이름으로 검색되는 게시물 수는 2011년 446건, 2012년 2278건, 2016년 8946건으로 점진적으로 늘어났지만 2017년에는 2만5842건으로 증가했고 2018년에는 11월30일 기준 7만6993건으로 급등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에어프라이어는 13만7000개, #에어프라이어요리는 2만1939개의 해시태그가 달렸다. 현재 소셜미디어상에는 엑셀 파일로 정리된 에어프라이어 레서피가 공유되는 등 에어프라이어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그림 4) 이처럼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는 글과 레서피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소비자가 에어프라이어를 접하게 됐고 이는 ‘더 많은 구매자’로 연결됐다. 구매자가 많아질수록 소비자가 참여해 만드는 콘텐츠는 더 늘어났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구매를 자극했다. 네트워크 효과의 전형적인 결과다.

3.에어프라이어의 또 다른 성장동력: HMR 생태계
에어프라이어의 유행은 관련 산업에도 뜻하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다름 아닌 식품업계다. 수많은 에어프라이어 체험기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냉동제품’을 조리했을 때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닭튀김, 피자, 프렌치프라이 등 이미 한 차례 기름을 가지고 요리를 마친 제품을 에어프라이어로 돌릴 경우 음식 내부에 있는 기름으로 요리가 완성돼 가장 맛있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냉동제품들이 대부분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에어프라이어로 요리할 경우 전자레인지보다 더 좋은 맛을 낸다는 게 소비자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같은 제품을 팬으로 조리할 때보다 기름을 덜 사용하게 돼 최종적인 기름 섭취량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평가다. 에어프라이어의 보급 확대는 식품업계에서 가속화하고 있는 HMR(가정 간편식) 시장의 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비고 왕교자, 동원 개성왕만두, 고메핫도그 같은 브랜드 냉동식품은 별도의 레서피가 공유되고 있다. 비비고 왕교자는 180도에서 5분, 개성왕만두는 해동하지 않고 만두 표면에 물을 발라주고 앞뒤 각각 10분씩 돌리라는 식이다. 똑같은 냉동만두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에어프라이어상 레서피가 다르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식품회사들도 이런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5년 12월 프리미엄 냉동치킨인 ‘고메치킨 순살크리스피’ 등 3종을 내놓으면서 포장지에 에어프라이어 조리법을 표시했다. 닭튀김 냉동제품들이 에어프라이어용으로 인기가 높다는 것을 알고서 이런 대응을 한 것이다. 신세계푸드는 올해 에어프라이어 전용 ‘올반 슈퍼 크런치 치킨 텐더’를 출시했다. 풀무원도 호떡만두 3종을 출시하면서 에어프라이어 조리법을 소개했다.

다만 에어프라이어의 가정 보급률이 크게 올라간 것이 올해부터이기 때문에 HMR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에어프라이어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전자레인지를 따라잡느냐에 달렸다. 에어프라이어 용량이 커지면서 에어프라이어가 점점 오븐과 전자레인지 시장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훈 및 시사점
1. 커뮤니티의 언어로 구전을 전하라
에어프라이어는 많은 홈쇼핑 제품과 마찬가지로 여성 고객들 사이의 구전(Word of Mouth)이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다. 현대의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의 구전, 특히 온라인 구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마케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초기에 긍정적인 구전을 심는(seeding) 것이다. 이를 위해 소비자 체험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 같은 활동이 반드시 긍정적인 구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코지넷 마셜대 교수는 구전마케팅에서 ‘Hype to Honey(광고를 꿀로)’ 이론을 내세운다. 이는 마케터들의 메시지가 제대로 구전효과를 갖추려면 해당 커뮤니티에서의 규범과 언어에 맞게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꽃가루(pollen)’가 꿀벌에 의해 꿀로 변화하는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필립스가 필립스맘이라는 자체적인 맘카페를 운영했던 것은 초기 필립스의 에어프라이어 구전마케팅이 쉽게 전파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케터가 아닌 맘카페의 용어로 씨를 뿌렸기 때문에 쉽게 다른 맘카페로도 전파될 수 있었다. 필립스는 맘카페 운영자로 ‘필립’이라는 별명의 남성을 내세웠는데 이는 맘카페 회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제공했다. 필립이라는 이 직원은 소비자 체험 행사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코지넷 마셜대 교수는 이와 관련, 구전 마케팅이 1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시각으로 이뤄져야 하며 마케터는 소비자들과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연 홍익대 교수는 맘카페를 통한 구전이 심리학적으로 ‘긍정적인 구전’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한다. 자기지각이론(self-perception theory)과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에 따르면 맘카페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면 설령 제품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우호적인 태도를 지니려는 성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일단 긍정적인 후기를 남겼다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생기더라도 그 마음을 스스로 제거해버린다는 것이다.

2.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를 레버리지로
맘카페와 블로그 등에 공유되는 에어프라이어 사용 후기는 전형적인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다. 기존 UGC에 대한 연구는 주로 도서, 식당, 호텔 후기나 유튜브 동영상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에어프라이어의 후기는 기존 UGC와 다른 것이 있었는데 바로 새롭게 만들어진 레서피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에어프라이어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요리 기구였기 때문에 실험적인 시도가 많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는 사실상 에어프라이어 레서피의 R&D를 소비자들이 해준 셈이다. 이제 기업들의 성패는 자신들이 구축한 플랫폼 위에서 얼마나 많은 UGC를 얻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금전적, 심리적 인센티브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 전체를 하나의 공통된 플랫폼으로 본다면 무엇이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끌었을까. 베인앤드컴퍼니의 파트너인 에릭 앨름퀴스트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에 입각해 소비자들의 가치 체계를 30개의 요소로 구성된 피라미드로 만들었다.(그림 5) 그는 가장 하단에 14개의 ‘기능적(Functional) 가치’, 그 위에 10개의 ‘감성적(Emotional) 가치’, 그 상위에 5개의 ‘삶을 바꾸는(Life Changing) 가치’, 최상위에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자기초월(Self Transcendence)이라는 가치를 뒀다. 매슬로의 5단계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은 상위 가치를 추구할수록 기업과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다. 물론 어떤 서비스나 제품이 하나의 가치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통상 온라인상에서 사용자들의 콘텐츠 생산을 촉진하는 것은 해당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에서 명성을 얻는 배지가치(badge value)가 크다. 이는 30개 요소의 가치 피라미드에서 감성적 가치에 해당한다. 그런데 요리 레서피의 경우에는 단지 배지가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자아실현(Self Actualization)을 하는 것에 더 가깝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자아실현의 경우 ‘개인에게 성취감이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가 일반적인 요리 레서피보다 더 활발하게 개발되고 공유된 것은 요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과 오븐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들의 사용 경험이 적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참여와 창조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내야 하는 플랫폼 업체들은 기능적/감정적 가치뿐 아니라 ‘삶을 바꾸는 가치’ 또한 필수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3. 소비자의 니즈를 두고 타협하지 말라
사실 필립스를 비롯해 에어프라이어를 출시했던 기업들은 대용량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필립스는 2013년 기존 제품보다 용량을 50% 키운 ‘에어프라이어 아방세’를 내놨고 미투 제품인 한경희생활과학 에어프라이어도 3.5L 제품을 내놨다. 문제는 2.6L에서 3.5L로 키운 것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정재일 이마트 바이어는 “조사를 하다 보니 에어프라이어는 음식을 올려놓는 바닥 면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전자레인지나 오븐처럼 바닥 면적을 키우려고 하다 보니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조직 내에서도 반대는 있었다. 이렇게 큰 제품을 부엌에 두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정 바이어는 에어프라이어의 주 고객층은 30∼40대 여성이고 이들이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들려면 그 정도 용량이 필요하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출시하자마자 맘카페를 통해서 가성비가 좋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 되지 않아 품절 사태가 벌어지면서 대용량 에어프라이어에 대한 입소문이 모든 맘카페에 퍼졌다. 이 제품은 결국 동탄 등 트레이더스 매장이 있는 지역 맘카페에서의 입소문이 다른 맘카페에 퍼지면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제품 개발에서 소비자들의 니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전의 에어프라이어들은 적당한 수준의 타협에 그쳤을 뿐 정확히 한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욕구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이는 핵심 소비자층을 구체적으로 잡지 못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에어프라이어는 1인 가구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30∼40대 아이를 둔 여성이 핵심 고객층이라는 분석하에 이들의 욕구를 철저히 반영한 제품이 나오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전략과 로컬에서의 현지화라는 화두와 딜레마 역시 ‘소비자 니즈’와 ‘고객의 불편’을 중심에 놓고 제품 개발 전략을 결정해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주 매일경제신문 유통경제부 기자 mrdjlee@mk.co.kr
필자는 2008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금융, 국제, 기업경영팀, 산업부 등을 거쳐 현재는 유통경제부에서 F&B,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유통산업을 취재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업들의 혁신노력과 이를 결정하는 기업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품야사’라는 제목으로 식품산업과 기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인터넷에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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