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펍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아니어도 재미만 있으면 끝', 개인방송과 협업으로 온라인 게임 평정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출시 8개월 만에 전 세계 2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국산 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요인

1) 영화에서 차용한 ‘서바이벌’ 콘셉트
2) 다국적 개발팀으로 지역 색 없앰
3) 스팀, 아마존웹서비스 등 글로벌 플랫폼 활용해 글로벌 시장 동시 공략
4)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의 진화를 감지. 1인 방송을 위한 개별 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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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16년 3월, 중견 게임사 블루홀 이사진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흥행이 불투명한 기획안을 승인한다. 장병규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4개월 동안 기획서를 검토한 후였다.

배틀그라운드는 최대 100명의 이용자가 고립된 섬에 들어가 최후의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다. 섬에 있는 각종 무기와 차량 등을 활용할 수 있으며 잘 싸우는 것만큼 잘 숨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구역이 좁아지며 경쟁은 치열해져 간다. 영화 ‘배틀로얄’ ‘헝거게임’과 비슷한 콘셉트다. 게임 다운로드 가격은 3만2000원이다.

블루홀 자회사 블루홀지노게임즈(현 펍지)의 한 직원이 제안한 이 기획안은 국내 게임업계 흥행공식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대세인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었고 유행이 한참 지난 총싸움 게임이었다. 유료화 전략이랄 것도 따로 없었다. 그저 게임을 많이 파는 것 외엔 대안이 없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 기획안을 승인한 장 의장도 흥행 가능성에 대해선 갸웃했다. 그는 “매출 목표치가 40만 장이었다. 농담 삼아 200만 장 팔면 프로듀서에게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만 장이면 국내 최고 히트작 수준의 판매량이다. 아무도 이 게임에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장 의장이 농담을 한 것이다.

결과는? 200만 장은 정말로 농담이 됐다. 2017년 3월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Playerunknown’s Battlegrounds, 이하 ‘배틀그라운드’)란 이름으로 출시된 이 게임은 11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2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참고로 국민게임으로 불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출시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에서 총 1100만 장 팔렸다. 배틀그라운드는 불과 8개월 만에 스타크래프트 10여 년의 성과를 훨씬 뛰어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심지어 정식판도 아닌 베타 버전인데 그랬다.1  회사 측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11월 말까지 누적 매출액은 약 5000억 원대, 그중 약 95%가 해외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접속자수는 250만∼300만 명에 이른다.

국내 게임산업 사상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2008년 스마일게이트가 만든 슈팅 게임 ‘크로스파이어’가 중국 진출 후 동시접속자수 8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유럽과 북미 시장에선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4년 펄어비스가 내놓은 MMORPG ‘검은사막’은 일본, 러시아, 북미, 유럽 등 100여 개국에 진출하면서 가입자 765만 명을 확보했지만 배틀그라운드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다.

배틀그라운드의 흥행 덕분에 2007년 창립한 블루홀의 기업가치는 급성장했다. 장외시장 정보업체 38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비상장기업인 블루홀의 추정 기업가치는 2017년 초 2074억 원에서 11월에는 약 5조 원까지 치솟았다. 장 의장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도 1조 원대에 이른다. 처음 기획안을 내고 게임 개발을 총괄 기획한 김창한 프로듀서는 9월 펍지2 의 대표가 됐다.

정식 출시도 하기 전에 신화가 된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요인을 분석한다.


‘하나뿐인 내 목숨’ 새로운 형식 과감히 적용

게임산업은 크게 모바일 게임, PC 게임, 콘솔(X박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등) 게임으로 나뉜다. 블루홀이 기획안을 검토하던 2015년 당시, 게임업계에선 모바일 시장에 빨리 뛰어들어 오랜 기간 유저와 스킨십을 하며 시장을 운영하는 기업이 향후 업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었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캐주얼 퍼즐게임 ‘애니팡’의 성공 이래 많은 회사들이 모바일에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게 기폭제였다. 어느 회사든 모바일 시장 진출과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었다. 블루홀 역시 모바일로 방향을 정한 듯했다. 2015년 1월, 블루홀은 중소 게임사인 지노게임즈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지노게임즈는 당시 모바일용 RPG 게임을 개발 중인 회사였다. 그래서 블루홀이 지노게임즈를 인수한 것을 두고서 모바일 게임 개발력을 확보하고 모바일 시장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많았다.

블루홀지노게임즈로 이름을 바꾼 지노게임즈 소속 개발자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출신으로 16년의 개발 경력을 가진 김창한 프로듀서였다. 그는 지노게임즈가 그동안 출시해온 게임 콘텐츠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고, 또 북미 등 글로벌 진출을 꾀한 적이 있는 회사의 핵심 인재였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모바일이 아닌 PC 게임이었다. 그는 “PC 온라인 게임 시장이 주춤했지만 저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이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으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치 가정용 게임기(콘솔) 시장이 줄어들었을지언정 사라지진 않고 꾸준히 수요가 있는 것처럼 PC 온라인 게임 시장도 주춤할 뿐 여전히 큰 수요가 있는 시장이라는 설명이었다.

슈터(총싸움) 게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도 의외였다. 모바일 시대에는 맞지 않는, 저물어가는 장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넓은 시야가 확보돼야 하는 총싸움 게임의 특성상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에 맞게 개발하기 어렵다. 또 단순반복적인 총싸움에 물린다는 이용자도 많았다. 한때 한국에서도 넥슨이 2005년 내놓은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이 동시접속자 35만 명을 달성하며 인기를 끈 적이 있었지만 그 인기도 수그러든 지 오래였고, 2016년 나온 후속작 ‘서든어택2’는 두 달 만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총싸움 게임은 이제 마니아 취향의 장르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미국 업체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오버워치’ 정도만이 이 장르의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김창한 프로듀서는 배틀그라운드가 여느 총싸움 게임과는 차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내 시장에선 총싸움 게임의 영향력이 차츰 줄어들고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보면 여전히 이런 종류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다만 기존 게임의 틀을 깨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총싸움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2개의 팀으로 진영을 나눠 전투를 벌이는 형태다. 게임 중 캐릭터가 죽으면 부활해서 상대편으로 돌격하는 것을 무한 반복한다.

김 프로듀서는 기존의 총싸움 게임 팬층을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기로 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여러 명이 게임에 참여해 단 한 명만 살아남는 이른바 ‘배틀로얄’ 방식이었다. 『배틀로얄』은 1999년 일본 작가 다카미 코순이 발표한 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제는 ‘고립된 장소에서 다수의 인원이 무작위로 싸우며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인기 영화 ‘헝거게임(2012)’ 역시 이런 형식이다.

김 프로듀서는 이 배틀로얄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대규모 인원이 함께 즐기는 게임을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조건 상대방을 많이 죽이고 전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총싸움 게임과는 차별화될 거라고 봤다.

기존 총싸움 게임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유저들은 호전적으로 돌격하는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의 주목적이 ‘전투’가 아니라 ‘생존’이 된다면? 잘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잘 숨어야 하고, 좋은 무기와 탈것 등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재미 요소가 생긴다. 또 한 번 죽으면 끝이다. 게임의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승리가 목표인 기존 총싸움 게임의 목표는 람보처럼 전장으로 뛰어들어가 상대방을 몰살시키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반면 생존이 목표인 배틀그라운드의 주인공은 우리 현실과 더 닮아 있다. 생존을 위해선 획일적인 플레이가 아니라 정해진 룰 안에서 저마다의 생존방식을 고민해야만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과거에도 배틀로얄 형태의 게임들이 있긴 했다. 브렌던 그린(Brendan Greene)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개발자가 ‘아르마’라는 해외 온라인 슈터 게임을 일부 수정한 것이 시초였다. 그러나 이렇게 독립 개발자들이 만든 배틀로얄 게임들은 기존 게임 내에서 즐길 수 있는 부속 옵션으로 제공됐을 뿐이다.3  소소한 재미 이상을 주기 어려웠고 대규모 인원이 동시에 즐길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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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된 글로벌 인재에게 손을 내밀다

김창한 프로듀서는 기획안을 들고 모회사인 블루홀을 찾아갔다. “핵심 콘셉트가 분명한 만큼 복잡한 게임 설계가 필요 없다. 1년이면 개발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브렌던 그린이 만든 기존 게임들의 배틀로얄 모드가 인기를 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블루홀의 장병규 의장은 과연 흥행 가능성이 있는지, 예산은 얼마나 쓸 건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그가 보기에 김 프로듀서와 개발팀이 가져온 제안은 너무 극단적이고 세부 사항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는 “핵심 콘셉트만 가지고 덤벼든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거칠다. 브렌던 그린을 직접 데려와서 함께 개발하지 않는 한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고 김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이어 “브렌던 그린을 데려오면 게임 기획안을 승인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것 역시 반 농담이었다. 장 의장은 “간섭하지 말라는 개발진의 입장에 한편으론 짜증기가 솟기도 했다. 브렌던 그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홧김에 한 말이지, 정말로 데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어찌 됐든 김 프로듀서는 그 말을 듣고 브렌던 그린을 찾아 나섰다. 소셜미디어에서 ‘플레이어언노운(playerunknown)’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브렌던 그린의 e메일 주소를 찾아내 함께 게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브렌던 그린은 승낙했다. 그는 이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모드’를 만드는 것으로 명성을 날리긴 했지만 사실 당시 견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웹디자이너였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아가며 아일랜드의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혼하면서 데려온 딸도 보살펴야 했다. 가족들은 그가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걸 보고 결국 거리에 나앉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4

그린은 이런 상황에서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김창한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을 약간 수정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는데 “너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자 주저 없이 짐을 꾸려 한국에 왔다.

장병규 의장은 “김 프로듀서가 고수는 고수”라며 이 정도 판을 짜온 것에 대해 존중하는 의미를 담아 기획안을 승인한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치열하게 논의하던 경영진은 이후 프로젝트에 일절 간섭하지 않기로 한다. “블루홀은 개발자를 존중하는 회사죠. 내부적으로 킥오프5 는 치열하게 논의가 이뤄지지만 그 이후엔 개발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개발진에게 전권을 줍니다”라고 장 의장은 말했다. 실제로 블루홀은 국내 게임사들이 잘 만들지 않는 특이한 게임들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궁, 볼링을 다룬 게임, 또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액션게임을 만든 이력도 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들이 쌓이면서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수작이 나올 만한 토양이 갖춰진 셈이다.


김 프로듀서 역시 “블루홀은 설득과 대화, 토론 등을 거쳐 구체화되고 한 번 확정된 프로젝트는 밀어주는 문화가 바탕이 돼 있다”고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남는 게 있다고 판단하면 기꺼이 개발진을 지원해주는 문화라는 것이다. 개발과정에서 브렌던 그린과도 수없이 마찰이 있었지만 의견 충돌이 있을지언정 업무에 지장을 받는 일은 없었다.6  한편으로는 김 대표가 게임명에 ‘플레이어언노운’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넣어주는 등 그린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려주기도 했다.

개발은 2016년 3월에 시작했다. 초기 개발진은 20명이었고 1년 내 론칭이 목표였다. 이듬해 3월 얼리엑세스 버전이 출시될 무렵에는 36명으로 불어났다. 이 중 상당수는 외국인이었고 각자 자국에서 근무하며 영상회의로 개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신 국가는 12개국이었다. 개발자는 주로 한국과 북미에서 일했고, 디자인은 스페인, 체코, 우크라이나 등 유럽 쪽에서 힘을 더했다.

이런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게임 개발에 착수할 당시만 하더라도 총싸움 게임을 만들 국내 개발자 인력이 부족했다. 우수 개발자들이 대부분 모바일 분야로 넘어간 뒤였기 때문이다.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은 외국 게임 관련 커뮤니티 등을 수소문해 적임자를 채용했다. 이들은 온라인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활용해 영어로 소통했다.

게임업계에선 흔히 ‘일본식 RPG’라든지 ‘미국식 액션’이라는 표현을 쓴다. 모든 게임은 그 개발사의 소재지에 따라 지역색을 띠기 마련이다. 그 나라 디자이너의 작화풍이 고스란히 녹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틀그라운드는 글로벌 협업을 거치면서 특정 지역색이 옅어졌다. 이는 한편으론 어느 지역에서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보자. 게임의 기본 골격은 브렌던 그린이 그린 스케치와 위성사진 등을 바탕으로 구상했다. 건물과 구조물 등 세부 디자인 사항은 디자이너 각자가 자신이 사는 동네 사진을 가져와 이를 취합해 참고해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아티스트가 찍어온 동네 사진을 참고해 스페인 출신 그래픽 아티스트가 지도의 세부를 채워나가는 식이다.

카메라로 인체의 세세한 움직임을 촬영하고 이를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모션캡처’를 할 때도 글로벌 협업이 빛을 발했다. 모션캡처를 국내에서 진행하려다 보니 비용이 비쌌다. 이때 체코 출신 에니메이터가 “체코에선 싸게 모션캡처를 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있다”고 제안해 네 명의 팀원이 체코로 이동해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 현지의 사격장도 직접 방문해 총을 쏘는 음향까지 녹음했다. 이렇게 난관이 있을 때마다 글로벌 협업을 통해서 이를 돌파했다. 또한 게임을 공개한 이후에도 여러 나라 게이머들의 피드백을 일 단위, 주 단위로 받아 수정했던 것도 글로벌 감각이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던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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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보다 확장성을 택하다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이 예상하는 손익분기점은 10만 장이었다. 이들은 국내에선 이만한 수요가 없다고 보고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이는 온라인 게임 디지털 유통 플랫폼인 ‘스팀(Steam)’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일반적으로 한국 회사들이 만드는 게임은 국내 시장에 먼저 선보인 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해외 유통사와 판권계약을 맺고 여러 나라에 순차적으로 진출한다. 물론 직접 유통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적인 확산은 어려운 구조다.

배틀그라운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스팀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글로벌 시장에 동시에 게임을 론칭했다. 스팀은 2003년 문을 연 글로벌 온라인 게임마켓이다. 현재 237개국 24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소비자는 신용카드로 간편하게 결제해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현재까지 스팀에서 출시된 게임은 약 1만 개에 이른다. 2017년 말 등록 이용자는 1억2500만 명이고 매월 약 6700만 명이 접속한다. 전 세계에 동시에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수수료가 비싸다. 판매가의 30%를 지불해야 한다.

수수료 부담이 있지만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은 스팀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총싸움 게임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과감하게 마케팅 활동을 벌일 수는 없었다. 게임의 재미 하나만을 믿고 글로벌 수요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총싸움 게임에 대한 수요, 특히 배틀로얄 장르에 대한 수요는 세계 곳곳에 분산돼 있으니 이를 잡기 위해서는 스팀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스팀에서의 출시는 신의 한 수였다. 스팀은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게임을 미리 해볼 수 있게 하는 ‘얼리 엑세스’ 판매를 지원한다. 이게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블루홀은 2016년 당기순손실이 249억 원에 달해 현금이 말라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7년 3월 배틀그라운드를 ‘얼리 엑세스’로 판매하자 몇 달 만에 수천억 원의 현금이 들어왔다. 또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를 활용해 서버 비용을 줄이고 급격한 트래픽 증가에 대응한 것도 주효했다. 판매량이 개발진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마존 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도 추가하고 있다.

 

새로운 마케팅 성공공식: 개인 방송과 협업하라

배틀그라운드는 소자본 마케팅의 핵심으로 떠오른 온라인 인플루언서(Influencer) 마케팅의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게임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든 뒤 개발진은 개인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 방송진행자(스트리머) 128명에게 공개 테스트를 부탁했다. 개별 접촉을 통해서 게임의 장점을 알렸다. 특히 게임방송에 적합한 게임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마케팅 비용이 부족했던 개발진은 이들 스트리머에게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원하는 설정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스트리머들은 차별화된 콘텐츠로 방송을 알리려는 욕구가 크다. 이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제안이었다. 블루홀은 스트리머 각자가 요구하는 게임 속 상황을 만들어 맵 형태로 제공했다. 이로써 재미있는 방송을 통해 시청자 유입 효과를 누리는 스트리머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게임이 됐다.

이는 배틀그라운드를 ‘보는 게임’으로 만들기 위한 김 프로듀서의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 깔려 있었다. 1인 개인 방송의 경우, 게임 속에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이에 정확히 부합했다. 짜인 줄거리 없이 광활한 맵을 유저 마음대로 구석구석 누비면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리머들이 게임 속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배틀그라운드는 공개 테스트 시기부터 트위치 시청 수 기준으로 5위에 오르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 순위권에 있는 다른 게임들은 ‘리그오브레전드’ ‘카운터 스트라이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하스 스톤’ 등 글로벌 게임사들이 만든 내로라하는 블록버스터들이었다.

보는 게 재미있는 게임은 이내 해보고 싶은 게임이 됐다. 펍지의 최준혁 기획팀장은 “게임을 실제 즐기는 유저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 역시 잠재적인 고객이다. 게임시장에서 전체적으로 보는 수요가 중요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게임방송과 e스포츠는 야구나 축구 등과 마찬가지로 게임 한 판이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용자의 플랫폼 체류시간이 긴 만큼 그 어떤 광고보다도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 개인 게임방송은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으로 옮겨지면서 입소문 효과도 극대화된다. 이처럼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전환을 정확히 잡아낸 게임이 배틀그라운드다.

2017년 12월 말 정식 출시를 앞둔 배틀그라운드는 이제 관전하는 게임으로 거듭나는 것이 다음 목표다. 바로 e스포츠다. e스포츠 업계서도 배틀그라운드의 도전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은 e스포츠 강국이지만 그동안 인기를 끈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나 리그오브레전드처럼 외국 게임이었다. 국산 게임을 중계한 사례는 드물다.

e스포츠로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장기 흥행의 발판을 닦게 된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2000년대 중반 e스포츠로서 인기를 끌면서 동시에 PC방에서도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스포츠로 인기를 끌면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일 수 있다.   


임현석 동아일보 기자 lhs@donga.com

임현석 기자는 경희대 국문과 출신으로 대학 시절 PGR21,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 등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 e스포츠 관련 글을 쓰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 2013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주로 교육과 환경 분야 취재를 하며 IT 이슈와는 멀어졌다가 2017년부터 인터넷기업과 게임 분야 취재를 전담하면서 ‘성공한 덕후’의 삶을 살고 있다.



DBR mini box : interview

"개발자 국적 다양.. 지역색 없는 글로벌 게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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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는 미국,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만들었어요. 특정한 국가색을 지우고 다양한 지역색을 채워 넣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게임을 만든 거죠.”

배틀그라운드를 기획하고 개발을 주도한 김창한 펍지 대표(기획 당시 총괄 프로듀서)가 꼽은 이 게임의 글로벌 성공 요인이다. 필자는 2017년 11월1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게임전시회 ‘지스타 2017’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배틀그라운드는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을 분석하고 내놓은 게임”이라며 흥행엔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일 글로벌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시장을 철저하게 분석했던 만큼 흥행엔 자신 있었지만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올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았는데 한동안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시상이 이뤄지던 상이었다. 만약 한 달 전에 누군가 우리에게 이 상을 준다고 하면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배틀그라운드는 이제 유저들에게 공개한 지 8개월이 지난 게임이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인기가 커지는 게 느껴진다. 호응이 높아지고, 그만큼 개발자가 느끼는 변화의 체감폭도 크다. 예상치 못한 열기에 놀라고 있다.

온라인 게임방송 플랫폼인 트위치에서 입소문을 탄 게 흥행요인이었다는 게 중평이다.

게임 기획 단계에서 트위치를 자주 보면서 이 플랫폼을 연구했다. 실제로 트위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게임이 주는 시나리오와 스토리만 따르면 방송을 통해 ‘보는 재미’가 반감된다. 이 때문에 이용자의 역할과 게임의 스토리가 비교적 제한적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은 트위치에선 큰 인기를 끌기 어렵더라.

게임을 가지고 방송하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이야기를 만들며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게임 내에서 이용자의 자유도가 높은 배틀로얄 형식은 게임방송에 적합했다. 배틀로얄이라는 장르에 대한 확신이 컸던 것도 이러한 마케팅 효과를 크게 누릴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게임도 직접 즐기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뀌는 경향을 감지하고 있었다.


일종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Influencer Marketing)’을 잘 활용한 셈이다.

맞다. 그러나 우리는 좀 다르게 접근했다. 많은 업체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돈을 주고 방송을 하게 한다. 시청자들은 인플루언서들이 기업의 금전 협찬을 받아 하는 게임방송을 할 때 ‘숙제한다’라고 부른다. 이런 게 노골화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쌓일 수 있다. 우리는 돈을 지불하는 대신 그들의 의견을 게임 제작에 반영하거나, 방송진행자가 요구하는 게임 내 상황을 만드는, 이른바 커스텀 게임을 지원해줬다. 자신의 팬을 많이 확보하기 원하는 방송 진행자들의 요구에 맞춰 준 셈이다. 방송 진행자들 사이에서 배틀그라운드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방송 진행자들의 의견은 게임을 개선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해외의 유명 게임 진행자들과 온라인 화상대화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인터뷰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직접 모았다.


배틀로얄 장르는 브렌던 그린이라는 개발자가 처음 선보였다. 그가 배틀그라운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직접 참여한 것도 게임업계에선 큰 화제가 됐다.

게임 개발에 앞서 사업계획서를 쓸 때 공학적인 마인드를 가진 게임 개발자와 달리 창의성을 가진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배틀로얄이라는 장르를 시작한 브렌던 그린이 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접촉하고 온라인 메시지를 보냈는데, 현재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회신이 왔다. 기존 게임을 수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으로 배틀로얄을 실현해보겠다고 했더니 개발진에 합류하겠다고 하더라. 그를 비롯해 우리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은 유명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은 언더독(Underdog·약자)들이었다.

보는 즐거움이 강조되는 게임이다 보니 e스포츠 종목으로도 개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연구 중이다. 한국이 게임 중계를 빨리 선보이면서 e스포츠 종주국으로 불렸지만 대부분의 종목이 글로벌 게임이다 보니 (e스포츠 산업과 게임 산업이) 피드백을 주고받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배틀그라운드는 국산 게임으로서 국내 e스포츠 산업과 발맞춰 게임이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쌓을 생각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게임이 접속장애 등의 문제 없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1호 Data Privacy in Marketing 2021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