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 인터뷰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
참여형 군중(crowd)은 곳곳에서 결합하고 흩어지면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업의 브랜딩이나 마케팅도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 ‘신권력’을 가진 군중과 호흡하고, 이들과 함께 브랜드를 구축하고,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은 ‘신권력 군중’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들에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1) 극단적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해 캠페인을 전개할 것. 2) 크라우드 소싱, 크라우드 브랜딩을 수용할 용기를 가질 것. 3) ‘신권력 군중’과 닮은, 혹은 그들과 소통하기 좋은 ‘유연하고 다양성이 확보된 조직’을 만들 것. 4) 기술의 진화양상을 주시하고 그에 따라 미래의 그림을 그려볼 것.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상찬(성균관대 글로벌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약 16년 전인 1999년, 휴양지인 세인트마틴에서 디트로이트를 향해 출발했던 노스웨스트항공 비행기는 폭설문제로 플로리다 마이애미를 경유했다. 만 하루를 더 지체한 뒤 폭설이 그친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전날의 폭설로 수많은 항공편은 밀려 있었고 인력과 탑승구(비행기에 붙여주는) 차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5시간 이상 수 백 명의 승객이 내리질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행기 안에 음식도 떨어져 갔고 사람들은 짜증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셔댔으며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났다. 몸이 안 좋은 승객, 아이가 있는 승객, 지병이 있는 승객 등 모두가 승무원을 붙잡고 ‘제발 내리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종실에서 공항근무자들에게 연락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승객 중 하나가 항공사 사장 집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부인이 대신 받았다. 조종사가 승객에게 그 전화번호를 물어 다시 사장에게 전화하고 나서야 겨우 문제가 해결됐다. 공항 도착 7시간 만의 일이다. 그리고 7년 뒤, 시작은 비슷했지만 끝은 완전히 다른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2006년 12월, 아메리칸항공 소속 비행기 몇 대가 댈러스로 향하다 오스틴으로 회항했다. 그중 한 대는 8시간 만에 승객들을 내려줬고 그 비행기에 탔던 여성 승객이 인터넷에 오른 관련 기사에 ‘그때 피해 본 사람들은 제게 연락을 달라’는 댓글을 남겼다. 아메리칸항공 소속 비행기뿐 아니라 그동안 불편을 겪은 많은 이들이 이 여성에게 연락을 취했고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이 사안은 언론에 보도되고, 의회에서 논의되면서 ‘승객권리장전’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제 모든 항공사들은 1999년과 같이 미적미적 대응했다가는 곧바로 손해배상 소송에 대응해야 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1999년 사건과 2006년 사건의 결정적 차이는 ‘사람들의 분노 수준’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분노했다. 그러나 힘없던 개개인들은 기업을 상대로 모이고 뭉쳐서 자신들의 힘을 표출할 수 있는 인터넷, 모바일기기, SNS 등의 도구를 갖게 됐다. 다수의 참여형 군중(Crowd)이 만들어내는 무서운 힘, 바로 ‘신권력’이다.1)
참여형 군중은 곳곳에서 결합하고 흩어지면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 곳곳의 독재국가들에서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시위 아닌 시위, 플래시몹이 벌어지면서 독재정권에 타격을 주기도 하고, 비행기에 기타를 실었다가 파손된 한 청년은 이를 노래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 불매운동을 일으키고 결국 대기업을 굴복시킨다.
그리고 위키피디아나 <허핑턴포스트>처럼 ‘지식권력’을 허물고 다중지성의 결과물로 세상을 바꾸기도 하며, 은행과 같은 ‘매개권력’ 없이 개인 간에 스스로 대출과 투자, 결제를 진행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국가의 허가권, ‘규제권력’을 피해 생겨난 우버 등의 참여형 서비스와 각종 공유 서비스 역시 지속적으로 논쟁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그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모바일 기기 보급률이 높고, SNS 사용률이 높은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2015년 2월 현재 여전히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땅콩회항’이 세상에 알려지고 퍼져나간 방식, 그리고 그 분노가 모아져서 국가기관과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군중의 힘’은 우리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머니옥션’ 같은 P2P(Peer to Peer) 대출 사이트가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각각 ‘카카오톡’을 탑재한 50대 이상 유권자와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결집하면서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지속될수록 투표율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정치학자들의 오래된 믿음을 깨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다수의 ‘군중’은 정치적 시민이면서 시장의 소비자다. 한국에서는 ‘소비자의 경험’으로 ‘정치적 행위’를 만들어낸 특이한 사례도 존재했다. 2010년 벌어진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다. 이렇다 할 학생운동 조직도 없는 시대에, 여름방학 내내 그들이 모인 동력은 바로 ‘소셜커머스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모이면 싸진다’는 걸 이미 체득한 젊은이들이 그들의 도구를 통해 시간과 날짜를 공유하면서 모였고, ‘반값’을 요구했다. 비록 엄청난 예산이 드는 국가정책이 그 시위로 변하진 않았지만 정치권은 다수의 보완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 사회, 그리고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모이고, 공유하며 힘을 만들어내는’ 신권력 군중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꾀해야 하지만 이렇게 ‘도구와 권력을 가진 소비자 군중’에게 회사의 제품을 알리고, 브랜딩을 하고, 마케팅을 하는 과정 전반 역시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 먼저 생각한 브랜드 콘셉트나 브랜딩 방향성을 군중들이 바꿀 수도 있고, 마케팅 과정에서 ‘깜찍한 거짓말’을 했다가는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1) 이 글에서 제시되는 많은 해외 ‘신권력 군중’ 사례는 대부분 클레이 셔키 뉴욕대 교수가 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등에서 차용해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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