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인도 기업 Servals는 저소득층을 위한 신제품 조리기구를 개발했다. 인도의 저소득층은 석유 버너를 이용해서 음식을 조리하곤 했는데, 연료 값이 만만치 않았다. Servals는 이 점에 주목하고 일반적인 버너보다 30% 연료를 덜 먹고 크기도 작은 Venus라는 버너를 내놨다. 게다가 이 제품은 구조가 단순해 청소하기도 쉽고 안전하며 내구성은 기존 경쟁 제품의 두 배 이상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인 기능을 갖췄기 때문에 값은 기존 제품의 갑절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료 효율성만 놓고 보면 2달 정도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었다.
결과는 어떨까? 정보 유통이 자유롭고 합리적 소비자들이 많은 시장이라면 불티나게 팔렸어야 했다. 하지만 Venus의 초기 매출 실적은 유통망과 높은 가격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실망스러웠다. 소매업자들은 Venus 버너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소비자들을 납득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훌륭한 제품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2006년 Servals는 제품을 새로 설계해 가격을 낮추고 유통업자들을 위한 마진과 판매 수수료를 개선했다. 그 결과 Venus는 2008년 수백만 대가 팔리는 히트상품이 됐고 인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신제품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Servals가 겪었던 문제는 오늘날 신흥국가 저소득층 시장, 즉 BOP(Base of the Pyramid) 시장 개척에 나선 수많은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골칫거리다. 제품의 기능이 훌륭하면 쉽게 팔릴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유통망과 가격 정책의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시장의 특성과 고객의 니즈에 맞춰 어떤 가치(value)를 제시하고, 어떤 프로세스와 유통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다가가며, 이를 위해 어떤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낯선 BOP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모니터그룹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신흥시장 신흥 비즈니스 모델(Emerging Markets, Emerging Models)’1
을 토대로 신흥시장의 저소득층, 즉 BOP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특징과 유형을 소개하고자 한다.
BOP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적 고려요인
BOP 시장의 장벽은 성공적인 사업 모델의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게 만든다. 첫째, 수익성(Profitability)이다. 저소득층-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스스로 존속하려면 사업 자체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정부 보조금이나 기부금에 의존한다면 이는 사업이라기보다 자선활동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규모의 경제(Scalability)다. 대다수 기업들은 고수익을 보장하는 고소득층에 대한 사업이나 마케팅엔 익숙하다. 저소득층 대상의 서비스나 재화는 시장에서 높은 마진이나 가격을 책정할 수 없기 때문에 존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려면 규모가 확보돼야 한다. 그렇게 다수의 고객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다수의 저소득층 대상 사업체가 내세우는 ‘빈곤층 삶의 개선’과 같은 숭고한 의도도 실현할 수 있다.
성공적인 저소득층 대상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려면 BOP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 인구 50억 중 약 절반에 이르는 26억 명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약 10억에 해당하는 인구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과연 이들이 기본적인 의식주 외의 활동에 돈을 쓸 여력이 있을까. BOP 시장은 기업이 뛰어들 만한 충분한 시장 규모를 가지고는 있는 것인가.
모니터그룹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분포의 하위 60%를 대상으로 한 인도 교육사업 규모만 약 52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2007년 전세계의 전자태그(RFID) 시장, 2009년 전 세계의 태블릿 PC, 2010년 중국의 레이저 프린터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즉, 시장의 규모라는 측면에서 기업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 이런 거대한 기회를 활용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느냐가 문제다. 인도의 저소득층 교육 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시장 규모에 대한 장밋빛 전망 뒤에는 이런 시장의 대부분이 비공식적이며 매우 파편화된 소규모 시장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전체 시장의 총합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저소득층 시장은 다양한 작은 단위로 쪼개져 있는 데다 지리적으로도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기업들이 쉽게 상대하기 어렵다.
대다수의 기업이 익숙한 중산층 이상의 사업을 공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업 운영방식이 필요하다는 점도 기업 참여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저소득층 대상 사업은 고객당 수익이 매우 적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중산층 고객을 대상으로 각종 직업 학교의 자격 시험 준비를 돕는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T.I.M.E.이라는 회사를 보자. 이 업체는 전국에 약 175개의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만약 이 업체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비슷한 매출을 올리려면 거의 2500개에 이르는 센터를 건립해야 한다. 이는 현재의 약 15배의 규모다.
저소득층의 낮은 구매력도 문제다. 대다수의 저소득층은 일용직 같은 불확실한 직업을 갖고 있다. 벌어들이는 소득이 매우 낮고 불안정하다. 저축 수준도 낮고 달리 돈을 마련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저소득층에 환상적인 기능을 갖춘 Venus 버너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경제적인 효과가 확실해도 비싼 가격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저렴하고 더 낮은 품질의 대체재를 택하게 된다.
이런 특성이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은 낮은 소득을 가진 빈곤층의 구매력을 반영한 저(低) 원가 구조를 갖춰야 할 뿐 아니라 불규칙한 현금 흐름에도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격 정책을 확보해야 한다. 저소득층이 필요성을 느끼고 원할 만한 품질을 갖췄다면 규모의 경제를 단시일에 확보할 수 있는 역량도 보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