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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전스를 선택하는 섬세한 순간

손용석 | 41호 (2009년 9월 Issue 2)
최근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이 휴대하는 전자제품이 단순한 기계 장치를 넘어 유비쿼터스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고 있다. 미국 가전협회(CEA)에 따르면 2007, 2008년 미국의 소비자 전자제품 시장 판매 예상액(1600억 달러) 가운데 3분의 1을 휴대용 전자제품(디지털카메라, 캠코더, MP3 플레이어, 휴대전화, 게임기 등)이 차지할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이테크 제품을 경제 성장의 주요 엔진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기술의 도약을 보다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기업 경영뿐 아니라 학계와 산업계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최근에는 제품 결합(product bundling)이 산업계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제품 컨버전스 혹은 디지털 컨버전스로 불리듯, 제조회사들은 2가지 이상의 디지털 플랫폼 기술(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을 통합된 형태(카메라폰)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미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컨버전스 제품들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폰(휴대전화 + MP3 플레이어), 소니의 PSP(게임 콘솔 +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삼성전자의 미니켓(캠코더 + 디지털카메라 + MP3 플레이어 + 보이스리코더)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제품 컨버전스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컨버전스 제품들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고려하는 브랜드 가운데 인기 있는 구매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제품 컨버전스가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제품 컨버전스가 하나의 기능만을 갖춘 단독 제품(dedicated product)에 대한 소비자 선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컨버전스 제품과 단독 제품의 관계는 대체재인가, 보완재인가? 컨버전스 제품과 단독 제품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아울러 소비자 선호의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컨버전스 제품, 성능보다 편리성을 강조하라
소비자들은 특별히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 같은 유명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만약 커피전문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를 곁들여 판매한다면 한곳에서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커피와 샌드위치를 모두 원하는 소비자의 편리성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커피전문점에서 샌드위치도 판다는 사실이 커피에 대한 소비자의 품질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즉 ‘이 커피전문점은 샌드위치까지 팔고 있으니 커피 품질 관리에 조금 소홀할 수도 있겠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비자가 커피만 원할 때는 굳이 샌드위치를 같이 파는 커피전문점을 선택할 확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단일 수단(커피전문점 방문)에 여러 목적(커피 구입과 샌드위치 구입)을 더하는 것은 특정 행동을 통한 이득을 최대화하기 때문에 ‘수단의 가치’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Thompson, Hamilton and Rust, 2005). 하지만 이와 동시에 수단(커피전문점 방문)과 목적(커피 구입) 간의 연관성(커피전문점을 방문해 커피를 구입함)이 희석되는 측면도 있다(Zhang, Fishbach and Kruglanski, 2007).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성능은 낮지만 편리성을 추구하는(커피 맛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샌드위치와 함께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위해 컨버전스 제품을 제공하는(커피와 샌드위치를 함께 파는) 게 유리하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성능이 높고 전문성을 추구하는(고품질의 커피를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단독 제품(커피만)을 제공하는 게 유리하다.
 
사람들이 전자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기존 제품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본 연구진은 소비자의 미래 구매 동기를 예측하기 위해 소비자들을 낮은 성능의 기존 컨버전스 제품을 가진 집단과, 낮은 성능의 기존 단독 제품을 가진 집단으로 분리해 실험했다. 즉 200만 화소의 카메라폰을 가진 소비자 집단과 200만 화소의 디지털카메라를 가진 소비자 집단에게 미래에 800만 화소의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 가운데 무엇을 구입할 것인지 물었다. 그 결과 두 집단 모두 성능이 높은 단독 제품, 즉 디지털카메라를 미래 구매 대안으로 선택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일단 낮은 성능의 컨버전스 제품을 먼저 시장에 선보이고, 시간차를 두고서 높은 성능의 단독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혼합 묶음 전략(mixed bundling)’을 쓰는 게 효과적이다. 즉 컨버전스 제품은 고성능보다는 여러 기능을 함께 쓸 수 있는 ‘편리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적합하다. 반대로 단독 제품은 편리성보다 ‘고성능’을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적합하다. 따라서 컨버전스 제품을 마케팅할 때는 성능과 관련된 속성보다는 편리성의 혜택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고성능 컨버전스 제품’을 추구하려면 무조건 성능을 더 높이려 하기보다는 소비자가 지각할 수 있는(perceptible) 것 이상의 성능만을 제공하되, 다른 추가 기능을 제공하는 게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카메라를 생산하는 기업이 고성능 컨버전스 제품을 개발한다고 하자. 소비자는 800만 화소이든 1000만 화소이든 양쪽 다 고성능이라고 지각할 뿐 육안으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이때 1000만 화소를 쓰고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800만 화소만 쓰되 그만큼 가격을 낮추거나, MP3 플레이어 기능을 추가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게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2007년 소니는 MP3 플레이어가 내장돼 있는 600만 화소의 사이버샷 DSC-G1을 출시했다. 출시 초기에 시장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자 소니는 제품의 위상을 다시 정립하는 특별 조치를 취했다. 즉 제품의 MP3 플레이어 기능을 강조해 컨버전스 제품으로 포지셔닝 하는 대신, 슬라이드 쇼를 위한 배경음악 기능을 가진 디지털카메라로 포지셔닝 했다. 이로써 사이버샷 DSC-G1은 컨버전스 제품이라기보다는 향상된 특성을 가진 단독 제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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