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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안전과 통상 전략

식품 안전 기준, 수출장벽 여는 열쇠

안덕근 | 34호 (2009년 6월 Issue 1)
2009년 4월 9일 캐나다 정부는 한국 정부가 적절한 이유 없이 캐나다산 소고기에 수입 제한 조치를 내렸다는 이유로 한국을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2003년 5월 광우병 소가 발견된 직후부터 한국이 캐나다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과의 형평성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모두 2007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지정한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2007년 6월부터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만 허용하자 발끈한 캐나다 정부가 소송을 제기했다.
 
캐나다 정부는 소고기 수입 차별보다 어려운 문제도 들고 나왔다. 한국 정부가 2008년 9월 우여곡절 끝에 개정해 시행 중인 ‘가축 전염병 예방법(가축법)’에 관한 사항이었다. 현재 한국 정부는 가축법을 통해 30개월 이상 소고기에 대한 수입을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이 법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가 협의 절차에서 원만한 합의를 내놓지 못한 채 공식 소송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한국 정부는 캐나다산 소고기에 대해 미국산 소고기보다 엄격한 수입 제한 조치를 부과해야 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가축법이 규정하는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의 과학적 정당성까지 입증해야 한다. 가축법은 지난해 광화문 한복판에서 몇 달 동안 촛불 시위가 벌어진 후 미국과의 추가 협상으로 도입된 법안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사실 우리에게 소고기 수입 문제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80년 초 한국 정부는 대규모 육우 도입 사업을 벌였다. 이 여파로 1985년 국내 송아지 값이 2년 전보다 70% 가까이 급락하는 소 값 파동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국내 축산 농가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결국 정부는 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이에 수출길이 막힌 미국, 호주, 뉴질랜드 정부가 1988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은 국제수지 적자가 많은 개발도상국에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수입 제한 권한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한국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건국 이후 최초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금리, 유가, 달러 가치가 모두 낮은 소위 3저(低) 호황과 서울 올림픽 특수 덕분이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제수지 적자에 근거한 수입 제한 조치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패소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소고기 수입 제한을 포함해 국제수지 적자에 기초한 상당수 수입 제한 조치를 전면 철폐했다.
 
소고기 문제가 가져온 1980년대의 통상 분쟁은 한국의 수입 체제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과연 이번에 등장한 소고기 분쟁은 한국의 식품 안전과 관련한 통상 정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많은 사람들이 이번 분쟁의 결과를 주시하는 이유다.
 
WTO 체제 아래 식품 안전 문제는 주로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등 선진국 때문에 생긴다. 선진국이 식품 안전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면서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WTO 체제가 등장한 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도 식품 안전에 관한 이유로 두 차례나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이렇듯 자칫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식품 안전 문제는 각국의 통상 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통한 식품 산업 발전 전략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제 식품 안전 문제는 한국 식품 산업계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수입 제한 조치와 과학적 정당성
WTO 협정은 국민 보건을 내세운 회원국 정부의 수입 제한 조치를 포함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식품 안전에 관한 검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 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식품 안전 조치도 허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를 시행하려면 반드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정당성이 필요하다. 또 비슷한 상황에 처한 회원국 간에는 차별 대우를 할 수 없다.
 
식품 안전에 관한 무역 제한 조치의 핵심 근거가 과학적 정당성으로 떠오르면서 식품 교역에서 차지하는 과학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졌다. 하지만 과학적 기준의 사용 방식에 대한 논란과 이견은 여전하다. WTO 설립 초기 등장했던 호르몬 사용 소고기 문제를 보자.
 
EU는 1970년대부터 소 사육에 관한 호르몬 규제를 강화했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송아지 사육에 광범위하게 쓰였던 합성 호르몬 DES가 유년기 어린이에게 심각한 장애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EU는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의 성장 촉진용 호르몬 사용을 규제하고, 성장 호르몬 사용을 허용하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도 금지했다.
 
호르몬 사용 소고기를 당연시하며 소비하던 미국 정부는 이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GATT를 통한 분쟁 해결 시도가 실패하자 미국은 1989년부터 EU에 대해 무역 보복 조치를 취했다. EU 역시 GATT 제소로 맞섰다. WTO가 설립된 이듬해인 1996년, 미국은 EU의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신설된 분쟁 해결 기구에 제소했다. 캐나다도 미국 편에 가세했다.
 
당시 논란이 된 호르몬은 몸속에서 자연 생성되는 성(性)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을 비롯해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만들어진 합성 호르몬 6종류였다. 문제는 수입 금지 조치의 근거가 된 이 합성 호르몬의 안전성을 EU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U가 자체 실시한 전문가 조사에서도 해당 호르몬의 위해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EU는 식품 안전에 민감한 소비자 단체와 유럽 축산업계의 압력으로 수입 금지 조치를 강행했다. 결국 이 소송에서 EU는 패소했다. 하지만 패소한 후에도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고수, 1999년 중반부터 매년 1억2000만 달러 이상의 무역 보복을 받았다.
 
2003년 9월 EU는 해당 합성 호르몬에 대한 위험 평가를 다시 실시한 후 기존 법규를 개정하고, 자신들이 WTO 판결을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 및 캐나다산 소고기의 수입 제한 조치는 유지했다. 이에 반발한 미국과 캐나다는 EU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EU가 2005년 WTO에 양국의 보복 조치가 합법적이지 않다고 제소했다. 지난한 소송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보복 관세 대상이 된 유럽의 치즈, 과일 주스, 피혁, 포도주 등의 생산업체들만 수년째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식품 안전 검증 방식의 차이
식품 안전에 대한 관리는 모든 국가가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나 방식의 작은 차이가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낳기도 한다. 한때 스위스 시장을 장악했던 한국산 라면이 사라진 이유도 이 식품 안전 검증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스위스 최대 유통업체 미그로(Migros)는 연간 250만 스위스프랑 이상의 한국산 라면을 판매했다. 기타 유럽 시장에서 한국 라면의 수요자는 대부분 한국 교포였지만, 스위스에서는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3년 6월 한국산 라면 수프에서 방사선 조사 검출물이 나오자 스위스 정부는 즉각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생산업체는 ‘우리는 제품에 방사능 살균 처리를 한 적이 없으며, 20종의 라면 수프 원료 중 일부 수입 재료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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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덕근dahn@snu.ac.kr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세계무역기구(WTO) 근무
    - 스위스 세계무역연구소(WTI) 근무
    -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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