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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의사결정과 마케팅

고객의 4가지 질문에 답하라…불황은없다

최재혁 | 31호 (2009년 4월 Issue 2)
불황 때마다 나타나는 ‘불황’ 마케팅
작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는 전 세계인들에게 엄청난 불안감을 가져왔다. 전문가들도 이 불황이 언제 끝날지, 얼마나 사태가 악화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저축을 늘리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 당연히 기업들의 매출도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극심한 불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황 상품’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불황’을 제목으로 한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신문과 잡지에서는 ‘불황 타개’를 소재로 여러 해법을 내놓으며 독자를 모으고 있다. 소위 ‘불황 마케팅’이 각광받는 시대다. 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이거나, 저가 상품을 중심으로 판촉 행사를 하거나, 국민들에게 꿈을 잃지 말라는 구호를 전달하는 것이 불황 마케팅의 핵심인 것 같다. 과연 이렇게만 하면 불황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불황은 마케터에게 기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 불황기에 마케터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불황에 대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 즉 미국과 한국이 경험했던 불황의 모습과 결과는 늘 달랐다는 점, 특히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이 달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진실은 불황이 V자형, U자형, L자형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렇게 적응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불황은 오히려 마케터에게는 기회가 된다. 불황기에는 그렇게도 유도하기 어려웠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마케팅 비용을 늘린 기업의 성과가 불황이 끝난 후 좋아진다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다. 물론 그 둘 사이의 상관관계만 규명되었고 인과관계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을 줄여 소극적으로 대처한 기업보다 적극적 자세를 보인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불황기를 틈타 성공한 기업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당시 아이오페 레티놀, 더블리치 샴푸 등이 인기몰이를 했다. 닷컴 붕괴 시기에는 초록매실, OK캐쉬백, 종신보험, 자일리톨 껌이 그랬고, 카드 대란 시기에는 로또, 재테크 서적, 지하철 무가지, 테이크아웃점 등이 꿋꿋이 매출을 늘려나갔다. 미국에서도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1980년에 불황 타개를 위해 세계 최초로 항공사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야채 음료 V8은 자사 제품 1캔이 채소 3개를 먹은 것과 같다는 메시지로 최고의 성장을 기록했다. 일본의 유니클로나 무지양행은 불황을 틈타 고품질 상품을 낮은 가격에 내놓아 성공했다. 

불황기라고 고객 니즈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불황을 기회로 삼아 성공한 기업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경제적 환경 변화로 인한 고객 행동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걸맞은 상품을 제공하거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특히 기존에 강력한 경쟁 제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시기를 틈타 시장 헤게모니를 가져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기존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불황이라고 해서 저가형 모델로 시장을 공략한 것도 아니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발견하고 이를 타깃으로 삼았다.
 
기존 고객이 소비를 줄이고 다른 제품을 샀다고 고객 니즈가 변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황기라고 고객 니즈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비 예산이 줄어들어 솔루션을 찾는 기준이 달라졌을 뿐이다. 즉 소비자들이 그동안 생각했던 합리적 소비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고, 습관적으로 소비하던 자신의 행동을 다시 한 번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바로 마케터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경쟁자가 있다면 후발업자가 시장을 빼앗기는 쉽지 않다. 존 구어빌 하버드대 교수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Eager Sellers and Stony Buyers’(2006년 6월 호)에 따르면, 신제품이 기존 제품보다 9배 정도의 효용(benefit)을 갖지 못하면 고객은 기존 제품을 그대로 쓰려고 한다. 이렇듯 과거에는 브랜드에 아무리 투자해도 넘어서기 쉽지 않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기존 브랜드도, 불황기가 되면 고객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소비 기준을 바꾸면서 조금은 넘나들기 쉬운 담벼락으로 변한다. 마케터들이 이런 패러다임 전환기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고객들은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까? 일단 불황기에 고객들은 습관적으로 구매하던 제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 물건을 꼭 사야 하나?’ ‘이 물건이 꼭 필요한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소비의 우선순위(priority)를 정하고, 이에 따라 구입할 제품 카테고리(category)를 결정한다. 만약 제품이 속한 카테고리가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마케팅 비용을 아무리 투자해도 매출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고객 마인드에서 우선순위를 확보하기 위해 ‘레퍼런스 포지셔닝(reference positioning)’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의 쉬운 ‘준거점(reference)’을 제시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학습지와 우유를 놓고 고민하는 주부에게 우유는 ‘두뇌를 위한 단백질’이라는 캠페인을 전개해 아이들의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해 우유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에이스침대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한 것이나, SK에너지가 ‘생각이 에너지’라고 말한 것도 제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레퍼런스 포지셔닝의 예다.
 
첫 단계를 통과한 카테고리에서 고객들은 ‘어떤 물건을 사야 하나?’ ‘꼭 좋은 물건을 사야 하나?’ 등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소비 예산을 어떻게 배분(allocation)하고, 이에 따른 제품 속성(attribute)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해 소비자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즉 한정된 예산 안에서 제품을 구입할 때 좋은 제품을 살지, 저렴한 제품을 살지 고민하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고품질이나 감성적인 만족을 위해 명품을 소비하는 ‘상향 구매(trading up)’와 실속을 위해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는 ‘하향 구매(trading down)’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불황이라고 무턱대고 가격을 낮추거나 할인을 남발하기보다 고객이 어떤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 또는 의사결정 방향을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어떻게 돌릴 수 있는지를 판단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 학습지는 아이 공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엄마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로, 저가형 학습지는 프리미엄이나 저가형이나 학습 효과는 큰 차이가 없다는 메시지로 공략할 수 있다. 최근 맥도널드는 같은 커피에 가격표만 바꿔 블라인드 테스트한 결과를 광고로 내보냄으로써 지난 1월 한 달간 매출이 전년보다 약 62% 늘어났다고 한다.
 
세 번째 질문은 ‘이 브랜드를 왜 선택해야 하나?’ ‘이 브랜드가 나에게 주는 가치가 무엇인가?’이다. 이 단계에서는 제품 속성에 대한 고객의 신념(beliefs)이 고객의 구매 태도(attitude)를 결정한다. 기업들은 고객에게 제품 자체가 가진 본원적 가치(instinct value) 외에 추가적인 브랜드 가치를 제공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웰빙이나 친환경, 저탄소, 로하스 등의 키워드를 포함하거나 가족, 신뢰, 감동, 동감, 스토리텔링 등 감성적인 부분에 호소할 수 있다. 또 온라인 댓글이나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을 활용하는 등 구매 명분을 제공하면 소비자를 쉽게 공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객들은 ‘얼마나 자주 사야 하나?’ ‘얼마나 자주 방문할까?’를 고민하며 소비 빈도(frequency)에 따라 전체 소비 규모(total spending)를 조절하게 된다. 즉 아무 곳에서나 구매하던 제품을 마일리지 혜택을 주는 가게에서 사거나, 과거 일주일에 한 번 구매하던 것을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이거나 하는 등의 행동 변화가 생긴다. 이에 대비해 기업은 고객 로열티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마일리지 또는 장기 고객에 대한 혜택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기간이나 빈도를 조절한 구매 패키지를 구성해 고객의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최근 롯데홈쇼핑이 기저귀 8팩 묶음을 6팩으로 줄이고, 1년 혹은 6개월치씩 묶어 팔던 건강보조식품을 1개월, 3개월 단위로 나눠 팔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케터에게는 불황은 없다
고객이 어떤 의사결정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업은 어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면 마케터에게는 불황이란 없다. 경기 침체기 또는 이 불황기를 기회 삼아 고객을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적벽대전에서 발휘된 제갈공명의 지혜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전략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LG CNS의 엔트루 컨설팅을 거쳐 지금은 SK마케팅앤컴퍼니 컨설팅사업부에서 전략&마케팅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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