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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요술봉 ‘선제적 세분화’

이장우 | 26호 (2009년 2월 Issue 1)
마케팅에서 말하는 ‘세분화(segmentation)’의 묘미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로션의 종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스킨로션(얼굴)·핸드로션(손)·보디로션(몸)은 일상 용품이 됐다. 여기에 헤어 전용 로션, 발에 바르는 로션, 심지어 발뒤꿈치만을 위한 전용 로션처럼 특정 부위를 위한 틈새 상품도 등장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로션의 또 다른 세분화를 위해 수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세분화는 전통적인 매스마케팅에서 현대마케팅으로의 진화를 불러온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 영국 크랜필드대의 명예교수 맬컴 맥도널드는 그의 저서인 ‘시장 세분화’에서 “세분화는 시장에서 고객 또는 잠재고객을 다른 그룹이나 세분 영역으로 분할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이렇게 분할한 세분 영역 내의 고객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흥미 및 니즈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분화를 다소 수동적인 분석 과정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세분화는 마케팅의 방향을 정하는 결정적인 요소이자 마케팅의 성패와 투자수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작업이다. 다시 말해 세분화가 더 이상 마케팅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제적인 변수로 봐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수동적인 세분화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세분화를 ‘마케팅 전략’ 차원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세분화는 ‘미래 진행형’
선제적인 세분화 전략은 선발주자나 후발주자 모두에게 이점을 준다. 선발주자에게는 후발주자가 침투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세분 카테고리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에 선발주자가 시장에서 아무리 강력하고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후발업체는 세분화만 잘 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분화는 마케팅의 ‘요술봉’과 같다.
 
세분화는 항상 미래 진행형으로 진화한다. 아무리 변화가 없고 오래된 산업이나 카테고리라 하더라도 세분화만큼은 미래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분화의 기준과 축이 항상 바뀌며, 여러 세분화 방식이 공존하는 역동성을 보이기도 한다. 화장품 시장을 보면 남성·여성과 같은 성별에 의한 기초적인 분류나 건성·중성·지성·복합성 등과 같은 사용자의 피부 종류로 나뉘어지는 세분화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방·황토 같은 재료를 기초로 한 세분화 전략에다 방문판매·백화점·할인점·브랜드숍 등 유통과 관련한 세분화 전략도 동시에 진화하고 있다.
 
화장품처럼 시장 규모가 크고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일수록 선제적인 세분화가 더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시장이라면 상상의 벽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 세분화 전략에서 뒤진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 남기가 어려운 반면에 세분화를 잘하는 회사는 새로운 카테고리와 고객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스타벅스도 프리미엄 커피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면서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오리온과 롸이즈온이 함께 내놓은 마켓오는 유기농 천연원료를 사용해 고급 웰빙 과자 카테고리를 개척, 미래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마련했다. 또 오스트리아 대표 브랜드 레드불은 에너지 드링크라는 새로운 세분화 카테고리를 창조해 연간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선제적 세분화를 하면 기존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나 경쟁력이 뒤처지더라도 먼저 발굴한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실제 구강청결제 시장에서는 리스터린이란 브랜드가 세계 최고의 마케팅 기업으로 알려진 P&G의 파워브랜드 크레스트를 누르고 카테고리 리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제적 세분화에 성공하려면 기업들은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전통적 또는 수동적 세분화에서 벗어나 선제적인 세분화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다음 5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외양적인 세분화 넘어서 니즈를 따져라
첫째, 마케팅 프로세스를 세분화해야 한다. 세분화에서 출발한 마케팅 프로세스는 제반 마케팅 요소와 더욱 유기적으로 결합해 상호보완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둘째, 기능적이고 외양적인 세분화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체계적 분석과 전략 없이 무조건 남들을 따라 하면 안 된다. 고객의 관심이나 니즈에 합치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셋째, 세분 시장이 장기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규모와 잠재력이 있는지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또 새롭게 개척한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수많은 기업이 세분화를 통해 새롭게 발굴한 시장이나 카테고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유사한 경쟁자에게 넘겨주곤 한다. 미샤는 중저가 브랜드숍 카테고리를 개척해놓고도 안타깝게도 여러 경쟁자에게 시장 주도권을 넘겨줬다.
 
넷째, 새로운 세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마케팅 믹스나 전략, 심지어 브랜드마저도 표적시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변경해야 한다. 맥도널드는 기존의 핵심 카테고리인 햄버거 시장을 그대로 가져가되 커피 세분시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맥도널드는 빨갛고 노란 유니폼 색깔을 갈색으로 전격 교체하고 유명 퓨전 밴드들의 연주를 틀어주는 등 매장 분위기를 확 바꿨다. 맥도널드가 과거에 커피를 판매했던 세분 시장은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온 김에 커피 한잔 하는 고객 층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설정한 세분표적 시장은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프리미엄 고객군이다. ‘이제 별도 콩도 잊어라’ 라는 의미심장한 광고문구와 함께 ‘맥카페’라는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도 내놓았다. 새로운 커피 세분 시장 공략을 위해 마케팅 믹스를 전부 재정비한 것이다.
 
다섯째, 과잉 세분화를 경계해야 한다. 물론 화장품처럼 전 세계 시장 규모가 400조 원이 넘는 거대 시장(한국만 해도 2009년 소매 기준으로 7조 원 이상)인 경우에는 과잉세분화에 대한 우려가 별로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산업군에서는 필요 이상의 세분화가 ‘분열화(fragmentation)’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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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장우

    이장우antonio@knu.ac.kr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사)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경영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2001년 로부터 ‘올해의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다. <경영> 이후 <스몰 자이언츠, 대한민국 강소기업> <동반성장> <창발경영> 등 10 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에는 <퍼스트 무버, 4차 산업혁명의 선도자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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