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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단절기엔 원가절감만으로 생존 못해

리처드 P. 러멜트 | 25호 (2009년 1월 Issue 2)
위기만큼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것도 없다. 변화무쌍하게 요동치는 경영환경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전략이다. 사명 선언, 야심 찬 목표, 35개년 예산안 등과 연관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전략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전략이 필요하다.
 
많은 경영인에게 ‘전략’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강박적인 언어습관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로 인해 비즈니스 관련 용어들은 이제 웬만하면 전략으로 통한다. 마케팅은 언젠가부터 마케팅 전략이 되었고, 데이터 처리는 정보기술(IT) 전략, 기업인수는 성장 전략, 원가절감은 저가 전략으로 불린다. 전략을 성공이나 원대한 목표, 야심과 동일시하면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일각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면 무조건 ‘전략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의사결정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자의 직급이 곧 전략을 정의하는 기준이 돼버린 것이다.
 
필자는 특정 문제에 대한 일관된 대응책을 전략으로 정의한다. 진정한 전략은 어떤 문서나 예측이라기보다 문제 진단을 기반으로 한 전반적인 접근법이다. 따라서 전략의 핵심적 요소는 경영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일관된 관점이지 문서화된 계획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난 1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지만 전대미문의 사건은 아니었다. 부동산 거품이 신용 확대와 높은 레버리지 비율을 동반할 때 심각한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819년에 발생한 미국 최초의 경제 공황은 부동산 대출로 야기됐다. 그 후 18731877년 세계를 강타한 경제 공황은 토지 담보대출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혁신적 모기지 대출이 등장하면서 토지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지만 일순간 거품이 꺼지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신용 경색이 4년 동안 지속됐다. 18931897년의 미국 장기 침체는 ‘철도 버블’이 붕괴하면서 촉발된 신용 경색 때문이었다. 19952004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과 높은 레버리지 비율로 조장된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에서 관찰되는 핵심 단어가 바로 ‘레버리지’다. 아르키메데스는 “충분히 긴 지렛대와 튼튼하게 발을 디디고 설 장소가 있으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자의 지름만큼이라도 지구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수 광년 길이의 지렛대가 필요하며, 그 와중에 지구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반작용으로 인해 아르키메데스 자신이 순식간에 먼 곳으로 퉁겨져 날아갈 수 있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현재 위기는 이 같은 과도한 지렛대 효과에 의해 촉발된 반작용이 경제의 두 부분, 즉 가계와 금융서비스 부문에 나타난 결과다. 레버리지가 없었더라면 경기 침체 자체는 불가피하더라도 담보 부동산의 경매 처분이나 기업 파산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 경제위기의 파급 효과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레버리지 효과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어떻게 전개돼 오늘의 금융위기를 촉발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가계 부채는 1980년대 초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1년 증가세가 가속화됐다.(표1) 월 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모건스탠리 등 빅5 증권사의 레버리지 비율은 2004년 이후 급증했다. 2004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오랫동안 고수한 레버리지 비율 120% 제한선을 이들 5개 기업에 면제하고 자율 규제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90
2007년 전체 금융서비스 부문은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2.5배 규모로 성장했다. 이 부문의 GDP 대비 수익은 19471996년의 평균 0.75%에서 2007년 2.5%로 상승했다. 그러다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담보물 처분율이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치솟고, 특정 모기지 담보 증권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하락세는 순식간에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금융기관의 파산을 야기하고, 이 여파로 시스템 전반의 불확실성과 손실이 증폭됐다. 2008년 상반기까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미국 소비자 지출은 3분기에 연간 3.1% 수준으로 하락했다. 마침내 심각한 수준의 경기 침체가 도래한 것이다.
 
구조적 단절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서 의미를 분별하는 것은 이를 다시 정리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현재의 상황을 과거로부터의 구조적 단절이라고 진단한다. 계량경제학 용어인 ‘구조적 단절’은 시계열 데이터 가운데 변수들 간의 추세와 연관성 패턴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뜻한다.
 
기업의 경영위기는 종종 비즈니스 모델의 수명이 끝날 때를 의미한다. 해당 업종의 근본 구조가 급격히 바뀌어 기존 사업 방식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IBM이 그 동안 적용해 온 통합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옵션 및 주변기기 구성 모델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컴퓨터 수요는 증가했지만 IBM의 공급 방식은 외면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신문 매체 역시 인터넷에 독자와 광고를 빼앗기면서 비슷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보 및 분석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전통적 출판 매체가 이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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