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마케팅의 해
- 크리스토퍼 메이어
소비재에서 생명공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고위 마케팅 담당자들과 가진 회의에서 필자는 2008년 예산의 90%를 전통적인 TV 광고비로 책정했다는 한 게임회사 상무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게임은 매우 새롭고,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하며,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있는 분야다. 그런데 어째서 웹에 기반한 대체 미디어, 이벤트, 입소문 마케팅에는 그렇게 인색한 것일까. 매스 미디어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그 동안 매스 미디어의 주도권이 대체 미디어로 옮겨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실현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해 말에 네트워크 광고의 폭풍이 몰려올 것이며, 오랫동안 참아온 만큼 그 위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어째서 지금일까. 첫 번째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디지털 미디어 업체인 캐럿에 따르면 디지털 광고는 2008년 전체 광고 성장률 6%를 훌쩍 뛰어넘는 23%의 성장을 기록하며 모든 광고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대체 미디어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인터넷이 주류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매체로 자리잡자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 역시 확대되고 있다.
목표 고객을 겨냥, 고객의 승인에 근거한 마케팅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기업이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업체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측정 기법 발달로 경영진은 점점 더 투자수익률(ROI)을 입증할 수 있는 마케팅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마케팅 담당자에게 분명한 것은 모바일 광고, 커뮤니티 구축, 입소문 마케팅, 새로운 판매 시점 기법 등과 같은 떠오르는 대안들이 매스 미디어보다 더 쉽게 측정 가능하고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명확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그 이유는 관성이라는 말 한마디로 압축된다. 2만5000개 첨단 산업 기업들을 대상으로 매년 마케팅 기법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마케팅 전문회사 스트레티직 옥시전의 창업자인 마이클 게일에 따르면 관성의 중심에는 광고대행사가 있다.
“TV 광고의 70∼80%가 광고 점유율(경쟁 기업 및 제품의 광고를 포함한 전체 광고 중 기업의 메시지가 목표 수용자에게 도달하는 비율)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광고대행사들은 이러한 기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고 게일은 말한다.
대체 미디어의 역량은 커지고 있으며,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를 활용한 경우 ROI의 향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고위 경영진이라는 댐이 거대한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물줄기가 터져 나오는 시점이 지금일까.
생각해 보라. 회사는 경기 침체기 때 언제나 마케팅 예산을 삭감한다. 마케팅 예산은 이윤을 보호해야 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줄일 수 있는 비용 가운데 몇 안 되는 주요 항목이다. 고통스런 예산 삭감이라는 현실 앞에 마케팅 담당자는 가능한 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많이 잃지 않기를 바라며 재빨리 절충안을 모색한다.
게임업체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15%의 예산 감축을 요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마케팅 상무가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고 한다면 경영진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할까.
그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할 수 있다. TV 광고비를 원래 예산의 90%에서 45%로 줄이고 CFO에게 15%를 되돌려준다. 그렇게 하면 30%가 남는다. 이는 기존에 10%의 예산만 책정한 대체 미디어의 광고비를 4배나 늘릴 수 있는 금액이다.
그의 동료들도 경영진과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경제가 올해 4분기까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P&G와 같이 마케팅 활동에 막대한 비용을 쓰는 기업들도 제로베이스 매체 예산을 편성할 것이다. 이 경우 광고 중에서도 특히 TV 광고의 효과는 최악으로 나타날 것이다. 실제 P&G는 최근 제품 프로모션을 위해 입소문 마케팅, 판매 시점 기법, 새로운 뮤직 레이블인 태그 레코드에 투자를 감행하며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 폭풍의 흐름을 막는 또 다른 바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008년 하반기에는 TV 매체에 두 가지 대형 호재가 존재한다. 바로 하계 올림픽과 미국 대선이다. 이 시간대에 TV 광고를 요청하는 것은 Y2K 대혼란에 임박하여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요청하는 것과 같다.
이는 몰락으로 이끌지도 모르는 총체적인 취약성을 가리고 있다. 지난해에 수입이 8% 감소하고 올해엔 최소 10% 하락이 예상되는 현실이 암시하고 있듯이 내년 TV 네트워크는 어쩌면 현재 잡지가 걷고 있는 쇠락의 길로 들어설 지도 모른다.
급작스런 수요 증가는 가파른 점유율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게임회사 상무가 내년을 위한 TV 광고 계약에 나설 때쯤 예산의 45%만으로도 올해 예산의 90%에 해당하는 광고 물량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TV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 바란다. 지난 7월 티보와 아마존은 TV 시청자들이 오프라 윈프리의 추천 도서와 같이 TV 프로그램에 나온 상품을 리모컨을 사용하여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매스 미디어 광고 담당자들이여, 아무래도 험난한 여정이 펼쳐질 전망이다.
크리스토퍼 메이어(chris_meyer@monitor.com)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모니터 네트웍스의 최고경영자다. 저서로는 <정보, 생물학, 비즈니스 컨버전스의 도래(It’s Alive: The Coming Convergence of Information, Biology, and Business>(크라운 비즈니스, 200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