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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브라운 교수

헤지펀드, 독하지만 강한 약

스티븐 브라운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헤지펀드란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은 헤지펀드라는 말을 들을 때 전 세계를 주무르는 금융 강도를 연상하곤 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뿐 아니라 최근 전 세계를 요동치게 하고 있는 월가의 금융위기 또한 헤지펀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말 그대로 근거 없는 통념과 편견에 불과하다. 많은 일반인뿐 아니라 정부 관료, 심지어 교수들도 헤지펀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헤지펀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헤지펀드의 역사와 시초부터 알아야 한다. 세계 최초의 헤지펀드는 1949년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교수인 앨프리드 윈슬로 존스가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재무학 교수가 아니라 사회학과 교수였다는 점이다. 이 점만 봐도 혁신은 종종 다른 분야에서부터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존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월스트리트에 생긴 변화를 주목하다가 한 가지 상품을 고안해 냈다. 그의 투자 전략은 ‘가치가 낮게 평가된(undervalued)’ 종목을 사고, ‘가치가 높게 평가된(overvalued)’ 종목을 파는 ‘롱숏 전략(Long-short strategy)’이었다. 이 전략은 시장이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게다가 이 상품은 투자자로부터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 대신 수익의 20%를 받았다. 고정된 수수료를 받지 않고 이익을 나눠 가지는 이 같은 형태는 일종의 파트너십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 가지 문제는 이러한 펀드의 운용이 당시 미국에서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존스는 이와 관련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 번째 돈이 아주 많은 부자들만을 상대로 할 것, 두 번째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 세 번째 일절 광고를 하지 않을 것, 마지막으로 투자 참여자를 99명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존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성공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형태의 펀드가 헤지펀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6년 경제 전문지 포천에 이에 관한 기사가 실리면서부터였다.
 
헤지펀드라는 이름이 알려지고, 롱숏 전략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존스와 비슷한 시도를 하면서부터 헤지펀드 산업 규모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에 관련법이 완화되고 2000년 이후 연금펀드가 주식 시장으로 몰리면서 헤지펀드 업계의 자산은 급격히 증가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던 지난 1, 2년 동안에도 헤지펀드 업계의 자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또 실제 헤지펀드의 투자 전략은 롱숏 전략 한 가지가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
 
헤지펀드에 대한 대부분의 편견은 광고를 하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만 투자하는 헤지펀드 특성때문에 생긴 오해들이다. 롱숏 전략에서도 알 수 있듯 헤지펀드는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대상에 투자하고 누구나 팔지 않으려고 하는 대상을 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돈이 많고 충분히 위험을 껴안을 수 있는 부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위험을 감당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헤지펀드가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을 양과 늑대 이야기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는 양(일반 투자자)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친다. 그러나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는 양(시장의 유동성)을 움직이게 하려면 아주 작은 늑대(헤지펀드)를 우리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
 
헤지펀드의 운영 위험과 금융 위험
헤지펀드에 관해 우려할 만한 위험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위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통 떠올리는 것은 금융 위험이다. 예를 들어 빚이 너무 많으면 파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나누어 담으라’는 투자 격언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바로 금융 위험에 대한 이해다.
 
그렇다면 과연 헤지펀드의 금융 위험은 정말로 그렇게 클까. 놀랍게도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위험은 S&P 500 기업에 투자하는 위험보다 낮다.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시장 중립 전략(market neutral strategy)’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중립의 의미는 투자 위험도를 표시하는 베타 계수가 0이라는 것을 뜻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은 전략의 결과이지 전략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펀드를 하나 만들고 그 돈을 모두 슬롯머신에 투자한다고 가정해 보자. 슬롯머신에 돈을 넣어 얻는 수익률은 주식시장 상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상관관계가 정확히 0이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증가하고 있는 헤지펀드 형태인 ‘펀드 오브 펀드(fund of fund, 펀드가 다른 펀드에 재투자하는 것)’를 살펴보자. 이런 형태의 펀드는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펀드 투자로 여러 개의 펀드에 동시에 투자하는 효과가 있고, 투자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으며, 각 펀드의 투자 규모 또한 작다.
 
<표1>에서 일반 헤지펀드와 ‘펀드 오브 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해 보자.  

일반 헤지펀드는 손실을 입었을 경우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반면에 ‘펀드 오브 펀드’는 손실을 입은 펀드를 포함했을 경우 전체 수익률이 악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펀드 오브 펀드’에 투자하는가.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금융 위험과 다른 각도의 위험, 즉 운영 위험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06년 2월 2270개의 펀드를 대상으로 만든 35쪽짜리 보고서에는 보유 현황이나 투자 전략 등 금융 위험과 관련된 사항을 제외한 펀드의 운영 위험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이 상세히 실려 있다. 나는 이 보고서에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 12월 ‘Journal of Finance’에 논문을 실을 예정이다.
 
운영 위험은 잠재적인 이익의 충돌, 소유 구조, 법과 관련된 사항들을 의미한다. 법률 관련 사항의 경우 법정 소송 경력이나 펀드 매니저가 감옥에 갔다 왔는지 여부를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2%의 펀드 매니저가 감옥에 간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문제가 있는 펀드의 경우 소유 구조가 소수의 개인에게 몰려 있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펀드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문제가 있는 펀드는 돈을 빌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부채 비율이 그렇지 않은 펀드에 비해 낮았다. 다만 너무 높은 비율의 부채는 금융 위험을 초래하지만, 너무 낮은 비율의 부채는 운영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2001년 시카고의 한 아트 갤러리가 헤지펀드에 돈을 맡겼다가 완전히 파산했다. 이유는 펀드 매니저가 이 돈을 모두 자신의 친척 회사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애초에 주변 사람의 돈을 모아 펀드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운영 위험이 결국 펀드 운용 방법에 문제를 일으켰고, 이것이 금융 위험으로 전이된 것이다. 그러나 ‘펀드 오브 펀드’의 경우 위험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때문에 이런 식의 운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헤지펀드 때문이다?
흔히 아시아 외환위기에 관해 헤지펀드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표2>는 1997년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이다. 마하티르의 말대로 정말 헤지펀드는 노상 강도인가.
 
마하티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지 소로스 펀드를 비롯한 대다수 헤지펀드들은 1997년 당시 위기로 엄청난 이득을 올렸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 대다수 헤지펀드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 스스로의 돈을 훔치는 강도가 과연 있을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 외환위기로 실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당시 나온 언론 보도에서 말레이시아의 돈이 외국으로 옮겨진 사실을 알 수 있는 힌트들이 나온다. <표3>을 보라. 말레이시아의 거부, 특히 수상과 그 가족이 호주 부동산에 투자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당시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인 네가라 은행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9년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는 네가라 은행을 통해 유럽 각국 통화를 매입하게 했다. 당시 마하티르는 런던에서 열린 국제 회의 직후 회의 정보를 이용해 이 같은 일을 단행했다. 이는 일종의 투기이자 내부자거래다.
 
그러나 유럽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바람에 말레이시아는 1992년 32억 달러를 소로스에게 잃었다. 아이러니하게 소로스가 이때 거둔 엄청난 이득이 전 세계에 헤지펀드 붐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그러나 사실 소로스가 뛰어났다기보다 네가라 은행이 바보였다고 평가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1997년 마하티르는 소로스를 투기꾼으로 몰아세웠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비교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헤지펀드를 비난한 기고를 실은 것 외에도 외국인 투자에 상당히 배타적 태도를 취했다. 반면 1998년에 내한한 소로스는 한국의 주요 인사들과 골프를 쳤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사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편집자주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MBA스쿨)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최고 경영 석학의 강의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 드립니다. 카이스트 초청으로 방한한 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 4명은 9월부터 10월까지 순차적으로 카이스트에서 강의를 진행합니다. DBR이 헤지펀드 분야의 석학인 스티븐 브라운 미국 뉴욕대(NYU) 교수가 진행한 9월 26일 강의 내용을 요약해 전해 드립니다.
 
호주 태생인 스티븐 브라운교수는 호주 모나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재무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일대를 거쳐 1986년부터 뉴욕대(NYU)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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