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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스타트업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플라스틱의 ‘안정성’이라는 양날의 칼
대체냐 재활용이냐, 기술 전쟁 막 올라

이동헌 | 330호 (2021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플라스틱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안정성’이다. 인류는 이 안정성이라는 성질에 열광해 플라스틱 사용을 폭발적으로 늘려왔지만 수명이 길고 잘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폐기물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대량 폐기물을 양산하는 플라스틱의 ‘원료 채취-합성-사용-폐기’ 흐름은 산업화 시대 ‘선형경제(linear economy)’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를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있다. 석유 원료 플라스틱을 바이오 원료 플라스틱이나 종이 등으로 대체하거나 제품에 재활용 소재를 적용하고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는 등 스타트업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플라스틱의 짧은 역사

역사는 인류 문명을 그 시대가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구를 기준으로 정의 내린다. 돌을 사용한 시대는 석기시대, 청동기를 사용한 시대는 청동기시대, 철을 사용한 시대는 철기시대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이후는 플라스틱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 환경문제는 이제 해묵은 논쟁의 대상을 넘어서 무조건 해결해야 할 대상이 됐다. 미국 해양보호협회(SEA) 등 합동 연구팀이 2020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에서 발생하는 전체 쓰레기의 24.3%가 플라스틱이었다. 이는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 상위 20개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이다. 더욱이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도 한국(88㎏)이 미국(105㎏)과 영국(99㎏)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코로나19 사태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더욱 늘어난 현재 시점에서 이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고분자다.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듯 플라스틱은 열을 가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되고 식히면 다시 굳어진다. 이는 인류가 열광한 플라스틱 고유의 성질이다. 임의의 형태로 만들 수 있고, 가볍고 단단한 데다 안정적이기까지 하다. 나무와 금속보다 편리하고 활용성이 무궁무진하다.

이런 플라스틱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PE(폴리에틸렌)와 PP(폴리프로필렌)다. PE는 밀도에 따라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로 나뉜다. 각각 조금씩 다른 강도, 연성, 녹는점 등 물성의 차이로 인해 용도가 갈린다. 플라스틱 사용이 빠르게 늘어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저밀도 PE는 영국군의 레이더 케이블 피복 절연체로 사용됐고,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BR)는 미국에서 군용 자동차 타이어에 사용됐다. 이를 계기로 가볍고 단단하고 저렴한 플라스틱의 물성이 눈길을 끌면서 그 인기가 산업계로 번져 나갔다. 실제로 산업계에서는 기존 제품의 재질을 모두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종이, 유리, 금속, 나무를 대체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플라스틱 시대의 개막이었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석유다 보니 석유 원료에 기반을 둔 플라스틱 합성법은 전 세계 석유 채굴량과 사용량 증가와 더불어 발전했다. 기술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플라스틱이 합성됐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합성법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1950년 200만 t에서 2015년 3억8000만 t으로 65년 만에 190배가 됐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가 24억 명에서 74억 명으로 3배가 된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증가량이다. 자연히 사용된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환경문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원료 채취, 합성, 사용, 폐기로의 흐름은 빠른 산업화 시대를 설명하는 ‘선형경제(linear economy)’의 대표 격으로 떠올랐다. 대량 생산 설비가 개발되며 실현된 산업화의 산물이 대량 폐기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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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의 현주소

앞서 언급했듯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석유에서 나오고 식물성 원료로 생산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은 전체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생산된 플라스틱의 40%는 포장재로 사용된다. 1 그런데 이 포장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더 증가하는 추세다.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기에 소비 패턴 변화 등 사회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외식과 회식이 줄고 포장 배달 음식 시장이 커진데다 집에서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 먹을 만한 가정 간편 식품(HMR, Home Meal Replacement) 판매량도 올라갔다. 일회용 마스크는 개인별로 거의 매일 한 장씩 사용하고 배출된다. 이 모든 변화는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와 직결된다. 환경부 발표를 봐도 2019년 1월부터 7개월간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배출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741t이었는데 2020년 같은 기간의 배출량은 855t으로 약 15% 증가했다. 이렇게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의 약 79%는 땅속에 매립되거나 해양으로 유입된다. 아파트나 공공 주택에서 플라스틱과 비닐을 분리 배출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 분리배출된 플라스틱 중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40% 수준으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재활용 비율이 낮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일괄적으로 ‘플라스틱’이라 부르는 소재가 사실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다. 미국의 플라스틱산업협회(Society of the Plastics Industry)는 1988년 플라스틱 재활용과 분리를 표준화하기 위해 플라스틱 종류를 PET, HDPE, PVC, LDPE, PP, PS, Other 등 7종류로 나눴다. 이를 플라스틱 고유코드(Resin Identification Code) 또는 협회의 이름을 따 SPI 코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1993년 이 분류 체계를 도입해 PET, PP, LDPE, PS, HDPE, PVC, OTHER 등 7가지로 폐플라스틱을 분류한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이렇게 분류된 플라스틱을 같은 종류끼리 모아야 이뤄질 수 있다.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색깔도 제각각이다. 같은 색깔끼리 통일해야 녹여서 재활용하기 쉬운데 다 달라서 재활용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로 재활용이 원활히 되는 플라스틱은 생수통에 쓰이는 투명 PET뿐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OTHER(아더)’ 재질의 플라스틱이다. 이렇게 OTHER로 분류되는 복합 재질은 2개 이상의 플라스틱이 섞여 있거나 금속 성분 등이 혼합된 것으로 재활용 가능 여부가 매우 제한적이다. 여러 물질이 혼합된 데다 재활용 업체로서도 어떤 물질이 혼합돼 있는지 구분해 따로 재활용하기 어렵기에 결국엔 전부 소각돼 열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런데 최근 포장 시장의 확대와 기능성 제품의 등장으로 OTHER 재질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단일 재질 플라스틱만 쓰면 좋겠지만 굳이 복합 재질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이유는 제품의 기능성을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복합 재질 플라스틱이 단일 재질보다 가격도 비싸고 기존에 없는 재질일 경우 연구개발까지 해야 하는데도 용도가 꾸준히 확장되고 있는 이유다.

예를 들어, 햇반 용기는 뜨거운 열을 가해도 안전해야 하기에 내열성이 강한 플라스틱을 사용해야 한다. 물과 공기, 자외선 차단성을 높여야 내부 제품의 유효기간을 유지할 수 있고 전자레인지 조리 시에도 제품 품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되는 플라스틱이 EVOH(에틸렌비닐알콜)층을 PP층에 넣은 복합 재질의 소재다. 물론 이런 OTHER 재질 제품은 재활용이 어렵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를 단일 재질로 대체하는 업계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뚜기는 ‘옛날 국수’ ‘옛날 미역’ 등 건조된 형태의 제품 포장을 OTHER로 분류되는 플라스틱에서 단일 재질 PP로 교체한 바 있다. 하지만 안전과 기능성까지 고려하면 모든 제품에 단일 재질을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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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무엇이 문제인가?

플라스틱 폐기물은 오늘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재활용품으로 선별되지 않은 폐기물은 전부 매립하거나 소각 처리해야 하지만 국내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다. 2018년 이전까지는 쓰레기를 중국에 수출해 처리했다. 중국은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종착지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국 환경보호를 이유로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했고, 우리나라 쓰레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해외 수출길이 막힌 쓰레기를 쌓아놓은 불법 쓰레기 산이 전국에 120만 t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플라스틱의 ‘안정성’이란 양날의 검 때문이다. 인간이 플라스틱을 합성한 이유는 안정성이 높은 물질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물질의 안정성이 높다는 것은 긴 수명을 의미한다. 인간 스스로 잘 분해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낸 셈이다. PE는 분해되기까지 약 50년이 걸리고, 플라스틱 파이프나 뚜껑 등에 사용되는 단단한 HDPE는 약 100년, LDPE는 50∼100년이나 걸린다. 연성이 높고 고무와 비슷한 물성으로 케첩 용기 등에 사용되는 LDPE는 분해되는 데 무려 500∼1000년이나 걸린다.

플라스틱의 뛰어난 안정성 때문에 발생하는 또 다른 환경문제는 ‘미세 플라스틱’이다. 미세 플라스틱이란 일반적으로 직경 5㎜ 이하의 플라스틱 알갱이를 의미한다. 나노미터 단위까지 이르는 미세 플라스틱은 너무 작아서 동물의 세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표면 가공을 위해 사용되는 연마재, 피부에 다양한 기능 성분을 전달하기 위한 화장품, 각질 제거를 위한 세안제 등에 많이 사용된다. 최근 강화된 환경 규제로 미세 플라스틱 사용이 제한되고 있지만 과거 수십 년간 배출한 미세 플라스틱과 이게 분해돼 더 미세해진 입자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해양 쓰레기를 배출하는 중국과 일본 옆에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해를 포함한 바다의 미세 플라스틱 농도는 2066년이 되면 2016년보다 4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바다 생물의 몸속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이미 농축돼 있다고 봐도 무방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더욱이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대기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기도 했다. 약 200∼600마이크로미터 정도의 미세 플라스틱이 대기 중에 부유해 사람들의 호흡기로 들어간다. 땅속에 있는 미세 플라스틱은 토양의 밀도를 감소시키고 미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플라스틱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의 선형경제 구조를 순환경제 구조로 바꿔야만 한다. 앞서 말한 플라스틱의 ‘안정성’으로 인해 선형경제를 그대로 두고 폐기 후 자연 순환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들

이처럼 플라스틱의 시대가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옮겨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새로운 시장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기회를 포착하고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도 등장했다. 이렇게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살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플라스틱을 ‘대체’ 대상으로 바라보는 모델이다. 이들 스타트업은 석유 대신 바이오 원료를 사용한 플라스틱을 제품에 적용하거나 아예 다른 물질로 대체한다. 두 번째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모델이다.

1. 대체

첫 번째 모델을 채택한 스타트업들은 주로 가치사슬의 가장 첫 단계인 자원 채취 부문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선형경제의 시작은 순환경제의 끝과 연결된다. 순환 사이클의 끝과 시작은 서로 맞닿아 있기에 기존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원료로 사용하는 사업 모델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플라스틱 원료의 혁신은 바이오매스를 사용해 만드는 바이오 플라스틱, 그리고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재활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스타트업이 2016년 인도에서 설립된 ‘엔비그린(Envigreen)’이다. 이 회사는 감자, 옥수수, 바나나, 타피오카, 야채, 꽃기름 등 농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12가지 친환경 재료로 바이오 플라스틱 봉지를 만든다.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주원료는 전분과 셀룰로스다. 식물에 다량 존재하는 셀룰로스와 전분은 모두 글루코스로 구성되는데 서로 화학적 방향 구조가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 구조의 글루코스를 엇갈리게 연결하면 긴 고분자를 만들 수 있고, 이를 바이오 플라스틱 봉지의 재료로 쓴 게 엔비그린이다. 빠른 경제 성장만큼 빠른 쓰레기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인도 역시 플라스틱 폐기물 대책이 시급한 나라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엔비그린은 석유 유래 플라스틱을 대체하며 인도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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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그린이 채소를 사용했다면 영국의 스타트업 ‘셸워크스(Shellworks)’는 갑각류 껍질로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든다. 바닷가재, 게, 새우 등 갑각류 껍질에는 키틴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절지동물의 단단한 표피, 껍질을 구성하는 성분이다. 이렇게 자연에서 거의 무한하게 얻을 수 있는 키틴을 산처리한 뒤 몇 가지 재료를 섞으면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영국의 ‘스키핑록스랩(Skipping rocks lab)’, 벨기에 ‘두잇(Do Eat)’, 폴란드 ‘바이오트렘(Biotrem)’ 등도 감자와 곡물, 해조류로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면서 자원의 채취 단계에서 혁신을 도모하는 중이다.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플라스틱을 다른 소재로 대체하려는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했다. 스타벅스에서 사용되던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로 대체된 게 대표적 사례다. 현재 스타벅스에 종이 빨대를 공급하는 회사는 2015년 설립된 스타트업 ‘코스코페이퍼’다. 종이 재질의 이 빨대는 화학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열로 접착하는 글루프리 공법과 생분해성 수용성 코팅제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종이 코팅에 사용되는 LDPE도 사용하지 않아 플라스틱을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커피에 젖어도 꽤 오랜 시간 풀어지지 않고 유지된다.

또한 최근에 설립된 친환경 소재 전문 기업 ‘루츠랩’은 현재 사용이 금지된 미세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국산 배를 사용하며 화장품, 식품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치약과 스크럽제 등 화장품이나 과자, 껌 같은 식품에 쓰이던 미세 플라스틱은 하수 정화 시설에서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고 자연으로 배출돼 해양을 오염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먹이로 착각해 먹는 생물들이 있으며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이 섭취하게 된다. 그런데 루츠랩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를 농가에서 수집한 후 석세포(배의 심지나 과육 안에 들어 있는 단단한 세포)를 추출해 화장품, 식품에 넣는 방식으로 친환경 기능성 제품을 만들었다. 미세 플라스틱의 기능만 남기고 소재를 대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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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활용

이렇듯 석유 기반 플라스틱이나 미세 플라스틱의 대체 소재를 발굴하려는 노력과 별개로 쓰고 난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사업 모델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스타트업 ‘로티스(Rothy’s)’는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여성용 신발을 만든다. 이 로티스 신발은 전 영국 왕세자비 메건 마클, 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딸 이방카 트럼프, 영화배우 귀네스 팰트로 등 유명 인사들이 신으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용 후 낡은 로티스 신발은 회수돼 신발 밑창이나 요가 매트를 만드는 원료가 된다. 무한 순환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기회를 찾은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2019년 가을 설립된 프랑스 스타트업 ‘플락스틸(Plaxtil)’은 매일 쓰고 버리는 일회용 마스크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마스크를 재활용해 옷걸이나 학용품을 만드는 모델을 선보였다. 원래 플락스틸의 초기 사업 모델은 오래된 옷을 재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마자 일회용 마스크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거한 마스크에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물론이고 다양한 세균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약 4일간 격리 보관, 분쇄, 자외선 살균 처리 등을 하면서 바이러스와 균을 제거하고 가열해 녹인다. PP에 다른 물질들까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된 플라스틱의 품질이 높지는 않지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마스크를 제품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 순환경제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앞의 로티스와 유사하게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로 의류나 잡화를 만드는 곳들이 있다. 2017년에 설립된 스타트업 ‘플리츠마마’는 효성티앤씨가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섬유로 의류를 제작해 친환경 패션 시장에 진출했으며 2018년 설립된 ‘몽세누’도 페트병을 수거해 분쇄, 세척, 가열, 펠릿 생산, 방사 공정을 거쳐 뽑아낸 실로 친환경 의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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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과정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로 의류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을 보면 원료 대부분이 페트병이다. 플라스틱 중에 가장 쉽게 재활용이 가능한 물질이 생수병으로 사용되는 페트이기 때문이다. 생수병은 물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순물이 적고, 단일 재질로 구성돼 있으며, 업계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표준화돼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투명한 페트병 외에 다른 플라스틱의 경우 대규모 수거 후 재활용하는 사업 모델을 짜기가 상당히 어렵다. 스타트업이 초기 제품을 개발하고 규모를 키우는(Scale-up) 단계에서는 원료의 원활한 수급을 보장하는 게 중요한데 폐플라스틱 재활용의 경우 원료 수급 단계부터 장벽에 부딪힐 위험이 크다. 앞서 말했듯 복합 재질 플라스틱은 재활용하면 성분에 따라 물성이 달라지거나 품질이 저하되기도 하고, 혹여나 용기 내 잔여물이 남아 있는 플라스틱은 세척 공정에 큰 비용이 투입돼 경제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책임 있는 소비자가 플라스틱 용기를 잘라 세척까지 하고 분리 배출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재활용 선별장에서 수작업으로 분류하는 단계에서 그냥 버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컨베이어벨트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플라스틱 용기를 사람이 직접 눈과 손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보통 투명한 페트병처럼 재질이 확연히 구분되는 폐플라스틱 위주로 선별이 이뤄진다.

다행인 것은 이런 재활용 공정상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용기의 재활용성을 향상하기 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이런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2018년에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이너보틀’은 ‘화장품 플라스틱 용기 안에 남아 있는 내용물을 깨끗하게 다 쓸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내용물이 남지 않게끔 하는 친환경 패키징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너보틀이 디자인한 패키징은 회사명 그대로 용기 안에 용기를 넣는 구조로 돼 있다. 플라스틱 용기 내부에 풍선처럼 실리콘 용기가 들어 있기 때문에 화장품이나 샴푸처럼 점성이 있는 액체를 담아 사용하더라도 실리콘 풍선만 빼서 버리면 된다. 외부 용기인 플라스틱은 씻지 않고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플라스틱은 오염되지 않아 재사용과 재활용이 쉬워지고 소비자들은 내용물을 남김없이 다 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처럼 기존에 본 적 없는 아이디어로 재활용 패키징을 혁신한 이너보틀은 순환경제의 관점에서 제품을 개선한 리디자인(redesign)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요즘 세상 변화의 선두에는 스타트업이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영역에서는 어김없이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다. 플라스틱 환경문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다 못해 아예 없애버리겠다며 플라스틱을 먹어 소화하는 미생물을 이용한 스타트업이 나왔을 정도다. 실제로 2019년 설립된 ‘리플라’란 국내 스타트업은 갈색거저리 애벌레 장내에서 분리한 미생물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분해되지 않은 쓰레기가 대기와 해양, 토양을 점령해버리지 않으려면 최대한 소재를 대체하고 재활용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여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플라스틱과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문제가 분명하고 시장이 크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는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들이 잡아야 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스신화에서 기회의 신이며 ‘결정적인 찰나의 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Kairos)의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기회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 붙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우리에게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지금 꼭 해결해야 할 미션이자 미래를 쌓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동헌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사  dong1202@gmail.com
이동헌 이사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았으며 프랑스 소르본경영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현대건설 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기획창업을 추진하는 컴퍼니빌딩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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