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반려동물을 사람과 동격으로 여기는 펫 휴머니제이션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 풍조다. 이러한 현상에 발맞춰 세계 각국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펫테크 비즈니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그워킹 중개 서비스, 개별 반려동물의 장내 미생물을 고려한 맞춤형 건강식, 심지어는 반려인끼리의 데이팅 앱까지 펫테크에 한계란 없다. 성공하는 펫테크 기업의 법칙은 간단하다.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대접을 해주려는 반려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직 국내 시장 규모가 작다는 점에 유의하는 동시에 글로벌 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사람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 정의를 이해할 때 펫 비즈니스 분야에서 강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세간에는 세대를 구분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기준이 있다. 이를테면 스크린도어가 없는 지하철 승강장을 기억하면 구세대, 어깨에 불주사 자국이 있으면 최소 40대 이상이라고들 한다. 남자의 경우엔 군 복무 중 착용한 군복 색깔로도 세대가 구분된다. 10년이 아니라 1, 2년 만에도 강산을 넘어 온 세상이 통째로 변하다 보니 주변 환경과 사물에 대해 세대마다 서로 다른 기억이나 경험을 갖는 것이다.
동물에 대해서도 유사한 세대 간 차이가 엿보인다. 동물이 아플 때 가는 곳은 ‘가축병원’일까, ‘동물병원’일까? 집에서 기르는 동물은 ‘애완동물’일까, ‘반려동물’일까? 40대 중반인 필자의 어린 시절에 개는 마당이나 대문 간에 목줄로 묶어 놓고 집을 지키는 동물이었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나 개가 아플 때 가축병원에서 약을 얻어다 먹였다.
하지만 어느새 개는 안방까지 자유롭게 드나들고, 가축병원은 동물병원을 넘어 ‘애니멀 클리닉’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CT나 MRI 같은 의료장비는 사람이 사용하기에도 비용 부담이 컸는데, 요즘은 동물병원에서도 흔하게 사용된다. 더 놀라운 일은 ‘도둑고양이’에게 벌어졌다. 천덕꾸러기, 아니 ‘박멸’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길고양이가 개의 아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대접받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귀여워하고 동시에 가여워하며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한다. 뱀과 두꺼비를 애지중지하며 안방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어찌 됐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는’ 애완을 넘어 ‘평생 동고동락하는’ 반려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대한민국에 ‘견생역전’ ‘묘생역전’ 현상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펫 휴머니제이션, 외로운 도시인의 생존 본능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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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말 그대로 고기나 가죽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닌 보고 즐기는 등 비실용적 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이 인간화되는 사회적 현상을 일컫는다. 여기서의 인간화는 동물을 집 안에 들이고, 사람처럼 옷을 입히고, 이름을 지어 부르는 수준을 넘어선 개념이다. 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인격이나 권리를 부여하고, 사람에 준하는 수준의 음식(‘먹이’ ‘사료’가 아니라 ‘음식’이다!) 및 의료를 제공하는 등의 일련의 사고와 행동을 포괄한다. 사람에게도 고가의 의료적 치료에 해당하는 장기이식술, 종양 치료, 만성질병에 대한 장기적 지지요법, 호스피스 치료 등을 동물에게도 제공하는 현상이 펫 휴머니제이션의 한 예다.
펫 휴머니제이션이라는 표현은 체코 출신의 저명한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논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후설은 인간은 인간을 둘러싼 존재에 의해 규정되며 동물 또한 그러한데, 특히 가정에서 사육되는 동물에게 그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펫 휴머니제이션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이 용어의 시초를 제시한 것이다. 이후 이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에 힘입어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고도화됐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가족 해체 및 1인 가구의 증가, 기술 발달에 따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열풍에 힘입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사회 풍조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물론 비거니즘(Veg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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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익숙하고 동물권 운동에 적극적인 밀레니얼세대가 큰 기여를 했다. 밀레니얼세대는 왜 동물을 사람처럼 여길까? 크게 두 가지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외로움 때문이다. 인간은 대부분의 영장류가 그러하듯 집단을 이뤄 생활해왔다. 그래야 침입자나 포식동물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유리하다. 수십만 년 이상 집단생활을 해온 인류의 DNA에는 반대급부로 외로움이 장착됐다. 외로움이라는 부정적 감정은 무리를 이루고 생존에 성공해 자손을 남긴 인류가 혼자되는 것을 회피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진화적 심리 기제다. 그런데 사회가 고도화돼 기존 가족 체계나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여기서 발생한 근원적 외로움을 대체할 수단으로 동물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도시화와 경제 발전으로 인해 밀레니얼세대는 동물 관련 경험이 윗세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외곽의 웬만한 재래시장에는 생닭을 잡아주는 가게가 있었다. 경기 성남 모란시장에서는 개를 도축했고, 사람들은 허약하거나 운동하는 자녀에게 개소주를 고아 먹였다. 단독주택에 살며 키우던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리는 일도 흔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닭이나 개, 염소나 돼지를 잡는 일을 심심찮게 목격했다. 또한 다양한 야생동물이 뛰어다니고 죽는 모습도 자주 봤다. 그 때문에 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사람과 동물을 구별해 인식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그런 이유로 동물의 고통과 죽음에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서 밀레니얼세대는 사람과 동물을 같은 선에 놓고 보는 펫 휴머니제이션 현상을 가속화, 그리고 강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