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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위드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동료

김현진 | 304호 (2020년 9월 Issue 1)
2016년 프리미엄 대형 패션 브랜드 최초로 도입돼 관심을 모았던 토미힐피거의 고객 상담용 챗봇은 사람보다 더 노골적인 ‘영업력’을 발휘하며 고객의 소매를 붙들었습니다. 대화를 중단하려는 고객들에게 다른 제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떠나지 못하게 ‘질척’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disappear’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세상 슬픈 얼굴의 이모티콘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이 챗봇은 일부 전문 리뷰어에게 “기계라고 어리숙한 척하지만 사실은 노련한 인간 판매원 같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같은 챗봇은 그동안 AI 기술의 발달과 함께 많은 진화를 거듭해 이제 다양한 소비자 접점에서 사용되기에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로봇이 됐습니다. 소프트웨어 로봇 가운데는 챗봇 외에도 스크립트봇, 오토메이션봇이 있는데 최근 다양한 산업계에서 핵심 기술로 떠오른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작업을 자동화하는 오토메이션봇에 해당합니다. 챗봇이 농담도 하고, 따뜻한 말도 해주기에 때때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듯 RPA도 ‘디지털 동료’로서 개인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습니다.

최근 2, 3년 새 한국 기업들은 특유의 놀라운 ‘학습 DNA’ 덕에 RPA를 조직에 채택하는 데 있어 전 세계적으로 역대급 속도와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를 논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자동화 추세에 더욱 주마가편(走馬加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셧다운 위기 속에서 비즈니스가 이어지게 하기 위해선 인간 직원 투입 없이도 로봇만으로 생산 및 서비스 현장을 가동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때 RPA가 필요충분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뉴노멀 시대의 키워드라는 #비대면 #온라인 #자동화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RPA의 ‘존재의 이유’라 할 만한 명제들입니다.

RPA는 각 직원의 업무에 밀착돼 실제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해야 하기에 자신의 업무에서 어떤 부분이 자동화돼야 하는지 잘 아는 직원이 직접 개발에 참여하고, 실제 이 로봇을 직접 가동해야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서 집중 소개한 싱가포르텔레콤은 2018년, “우리 조직은 인간 직원과 디지털 직원으로 구성된다”고 천명하며 직원 한 명당 로봇 한 대, 즉 ‘1인 1로봇’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전화 영업 봇을 배치해 큰 성과를 거둔 이 기업은 이후 450개 업무 프로세스를 RPA 기반으로 자동화했고, 그 결과 2년간 50만 시간의 노동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봇 만들기(Build My Own Bot)’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열어 직원 모두가 스스로 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데, 입사46년 차인 시니어 직원이 단 4일 동안 로봇 메이커 훈련을 받은 끝에 자신의 업무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이는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HR 조직 내 교육 담당 임원, 발레리 영탄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로봇, ‘발봇’은 인력 교육 관련 예산 보고서를 각 부서에 일일이 전달하기 위해 385번 클릭해야 하던 것을 단 한 번의 클릭으로 해결할 수 있게 했으며 4시간 반 걸리던 관련 업무 시간을 단 1분으로 단축했습니다.직장 내 ‘삶의 질’을 실제로 바꿔주는 ‘디지털 동료’들에게 싱가포르텔레콤 직원들은 발레리처럼 자신의 이름이나 애칭을 붙이고 인격을 부여하며 아낀다니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직장은 과거가 아닌 현실이 됐습니다.

RPA 도입 초기 그저 단순반복적인 인간의 일을 덜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비정형화된 자료를 정형화하거나 고도의 AI를 접목하는 식으로 발전한 ‘하이퍼오토메이션’ 시대의 로봇은 인간보다 빠른 눈과 손뿐 아니라 뇌까지 장착한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일터의 혁신을 ‘디지털 동료’와 함께 이끌어가는 현재와 미래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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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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