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Fable Management

동료끼리 선 지키고, 칼퇴는 두려워 말라

박영규 | 292호 (2020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간관계의 본질은 이름, 즉 껍데기에 있지 않고 실재에 있다. 명성에 집착하는 것은 인정 욕구에 지나치게 목말라 하는 것이다. 원만한 인간관계의 지름길은 마음속의 과도한 인정 욕구를 비우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과도하게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 각종 분쟁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게 장자의 가르침이다. 내 일과 남의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타인의 업무에 임의로 끼어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인간관계가 덜 피곤해진다. 바로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 분리’의 요체다. 동료들끼리 선을 지키면서 철저하게 과제를 분리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인간관계에서 상처도 덜 받고 일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갓난아기 시절의 인간은 무한히 약한 존재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어서는 것은 고사하고 몸을 마음대로 뒤척일 수도 없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열등감이 몸에 밴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열등한 존재라는 무의식적인 콤플렉스는 어른이 된 후에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조금씩 열등감을 갖고 산다. 하지만 열등감이 반드시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현될 경우 열등감은 삶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 나은 상태로 진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나 의지는 모두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말처럼 빨리 달릴 수 없기에 인간은 자동차를 발명했고, 새처럼 훨훨 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행기를 발명했다.

문제는 과도한 경우다. 정도가 심한 열등감은 우월 콤플렉스로 쉽게 탈바꿈된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뿌리에도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진단이다.

이렇게 되면 간단치 않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매사에 타인의 업무에 간섭하고 타인을 지배하려 든다. “열등감이 극심해지면 과잉 보상을 추구하게 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타인을 압도하고 말겠다는 정복욕을 품게 된다.” (알프레드 아들러 『인간이해』)

이런 사람이 조직의 일원이 되면 조직원들끼리의 인간관계는 꼬이게 되고 서로가 피곤해진다. 아들러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과제 분리다. 쉬운 말로 고치면 거리 두기다. 내 일과 남의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타인의 업무에 임의로 끼어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인간관계가 덜 피곤해진다는 게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 분리의 요체다.

남의 일에 끼어들면서 사람들은 흔히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심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자신의 욕망이 담겨 있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타인을 성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서 끼어드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들의 학업이나 진로, 결혼 문제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도 자식의 장래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나 이목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왔던 부모들의 문제는 일부 잘나가는 상류층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부모의 문제다.

장자도 인간관계에서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과도하게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 각종 분쟁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를 살펴보자.

어느 날 요(堯)임금이 허유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와 달이 나와 있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으면 불을 낭비하는 꼴입니다. 때맞춰 비가 오는데도 여전히 논에 물을 댄다면 그 또한 물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출중한 당신이 나타났는데도 제가 여전히 천하를 다스리고 있으니 제 부끄러움을 스스로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부디 천하를 맡아주십시오.” 이에 허유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맡은 후 천하는 이미 다스려졌습니다. 지금 와서 제가 나선다면 저는 다만 임금이라는 이름만을 갖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름이란 실재의 손님에 불과합니다(名者實之賓也, 명자실지빈야). 저는 결코 손님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튼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해도 제 배만 채우면 그만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저에게 천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요리사가 조금 서툴다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祭官)이 제사상을 넘어 주방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 『장자』 ‘소요유’ 편

189


제관이 요리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은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 분리에 해당 한다. 허유가 요임금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허유는 임금이라는 명성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본질은 이름, 즉 껍데기에 있지 않고 실재에 있다. 명성에 집착하는 것은 인정 욕구에 지나치게 목말라 하는 것이다.

아들러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인정 욕구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장자도 이렇게 말한다. “이름이란 서로를 다투게 하는 것이다. 이름에 연연해하지 마라(名者相軋也, 無感其名, 명자상알야, 무감기명).”

명성을 추구하는 과도한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장자는 허심(虛心)을 강조한다. ‘인간세’ 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를 보자.

어느 날 공자는 안연이라는 제자가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자 이렇게 말한다. “재계(齋戒)하거라.” 이에 안회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집이 가난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식사도 검소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곧 재계가 아닙니까?” 그러자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제사 지낼 때의 재계지 마음의 재계가 아니다.” 안연이 마음의 재계에 대해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뜻을 온전하게 해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영혼(氣)으로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듣는 데 그칠 뿐이고 마음은 외물을 인식하는 데서 그친다. 기(氣)라는 것은 텅 빈 상태에서 사물을 대하는 것이다. 도(道)는 비어있는 곳에 모인다. 비우는 것이 마음의 재계다. (虛者心齋也, 허자심재야)”

- 『장자』 ‘인간세’ 편

명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탐욕, 즉 마음속의 과도한 인정욕구를 비우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장자의 가르침이다. 과제 분리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감정의 분출도 자제해야 한다.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우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너무 클 경우 과제를 분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장자는 혜시와의 감정 논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좋아함과 싫어함의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 그 몸을 안으로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장자』 ‘덕충부’ 편).” 그러면서 장자는 목계(木鷄)에 관한 우화를 통해 이러한 이치를 알기 쉽게 일깨워준다.

190


기성자라는 사람이 임금을 위해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는데 열흘이 지나자 임금이 물었다. “훈련이 다 끝났는가?” 이에 기성자가 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제힘만 믿고 허세를 부리고 교만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임금이 물었다. “이제 다 됐느냐?” 기성자는 아직 안 됐다며 이렇게 말한다. “외부의 소리나 그림자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또 다른 기한이 지나자 기성자는 마침내 닭이 완성됐다며 이렇게 말한다. “닭들 가운데 시비를 거는 놈이 있어도 일절 반응하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로 된 닭(木鷄)과 같아졌습니다. 덕이 온전해져 다른 닭들이 감히 근접하지 못합니다.”

- 『장자』‘달생’ 편

목계처럼 주변의 시선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인간관계의 진정한 승자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멋대로, 자기중심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 삶이며,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퇴근 후 다들 별일 없지? 한잔하고 가는 거야.” 칼퇴를 하려고 준비 중인 팀원들을 향한 팀장의 이러한 말 한마디는 조직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퇴근 후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그 시간은 온전히 타인의 것이다. 상사라는 이유로 그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규율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다. 상사가 “퇴근 후 한잔”을 외쳐도 칼퇴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상사의 미움을 받기 싫어서 억지로 자리에 끌려가는 것은 조직을 위해서도, 개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제를 분리하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적당하게 미움받을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말했듯 “진정한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허구한 날 회식 자리를 마련해서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직원들을 붙들어 매던 시대는 지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문화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일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재편돼야 한다. 조직의 팀원들은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주어진 일 속에서 마주치는, 말 그대로 동료다. 선을 지키면서 철저하게 과제를 분리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인간관계에서 상처도 덜 받고 일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압축 성장이 필요했던 산업화 시대에는 회사 동료를 가족처럼 대하면서 똘똘 뭉치는 분위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무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네트워크가 충분히 발달돼 분산된 상태에서도 각자의 역할만 충실하게 하면 뭉친 상태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업무 패러다임이 바뀌면 조직 내 인간관계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끈적끈적한 인간관계보다는 담백한 인간관계가 요구된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군자는 담백함으로 인해 교제가 깊어지고 소인은 달콤함으로 인해 교제가 끊어진다. (君子之交淡若水, 小人之交甘若醴, 君子淡以親, 小人甘以絶, 군자지교담약수, 소인지교감약례, 군자담이친 소인감이절)”

- 『장자』 ‘산목’ 편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