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으로 풀어보는 조직 내 세대 갈등

‘낀 세대’라서 더 힘든 80년대생들

283호 (2019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세대들이 기업의 주요 실무를 담당하는 조직의 허리로 성장했다. 이들은 관리자급인 기성세대와 갓 신입으로 들어온 20대들의 정서적, 심리적 간극을 메워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이 역할을 거부한다. 기성세대가 회사에서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조직에 어느 정도 순응했던 자신들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인 Z세대에 박탈감을 느낀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한국형 밀레니얼세대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이 자라온 배경, 심리적 결핍 등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이경민 마인드루트 대표는 조직 내 갈등이 단순히 위계질서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조직에서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불신이 심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이 대표가 면밀히 관찰한 세대별 특성을 분석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60년대생, 70년대생, 80년대생, 90년대생 등 출생 연도별로 세대를 구분했습니다. 세대별 특성과 장단점을 상세히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가 팀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밀레니얼세대에 대한 구분은 다소 모호하다. 구분 자체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만큼 한국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느낌도 있다. 이를테면 외국의 밀레니얼세대들에게 두드러진 특성이 한국의 밀레니얼들에게서는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즉, “자기주장이 강하다” “조직에 충성하기보다 자신에게 충성한다” “손해 보거나 희생하는 것을 싫어한다” “대면 소통보다 온라인 소통을 선호한다”는 등의 특성에 대해 한국의 밀레니얼세대들에게 질문하면 자신들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저는 조직 생활을 일찍 하다 보니 밀레니얼세대라기보다는 X세대에 가까운 거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수직적 위계구조가 아직도 강한 한국 기업의 현실에서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외국의 밀레니얼들에 비해 좀 더 조직친화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면이 크다. 그러다 보니 외국 밀레니얼의 세대 특성이 한국 밀레니얼들에게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90년대생(흔히 Z세대라고 불리는)들은 위의 특성이 어느 정도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밀레니얼세대, X세대, 베이비붐세대 등의 세대 구분보다 90년대생, 80년대생, 70년대생, 60년대생 등 출생연도별로 10년씩 묶어서 다른 세대와 구분하는 이유기도 하다. 조직에서 만난 세대들은 외국의 15년 기준보다는 좀 더 짧은 주기로 동질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0년대생인 20대 후반과 80년대생인 30대 초·중반은 같은 밀레니얼세대지만 조직에서 보이는 행태나 의식구조가 사뭇 다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80년대생들이 90년대생들을 조직에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X세대와 90년대생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80년대생

80년대생들은 왜 90년대생들을 힘들어하는 것일까? 최근에 만난 30대 중반 담당자는 자신들이 90년대생을 불편해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 세대가 사실 20대 때 사회가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죠. 뭔가 개인주의를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세대인 거 같아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군대식 문화가 여전히 공고히 자리 잡힌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현실과 괴리가 있긴 하지만 사회 내 절대다수가 지키고 있는 규범을 따라야 하는 절대 약자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라갔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기대하는 바, 사회생활 등을 몸에 익혀버렸어요. 아래 세대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가 했던 것을 그대로 안 하면 화가 나거나 나만 손해 본 것 같거나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80년대생들은 자신들처럼 조직에 순응하려 하지 않는 90년대생들이 불편하다. 동시에 자신들을 그렇게 조직에 순응하도록 억압한 베이비붐세대와 방조하거나 독촉한 X세대에게도 역시 불편한 마음이 있다. 특히 30대들에게 40대는 말이 통할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조직의 논리를 펴면서 자신들을 옥죄는, 즉 말리는 시누이같이 양가감정이 드는 대상이다. 이렇게 마음으로 불편한 여러 세대 사이에서 80년대생들은 조직의 큰 기대와 책임에 직면하고 있다. 조직 인력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80년대생들에게 실무적 영역에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대들 사이를 화학적으로 잇는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조직의 논리를 배워야 할 90년대생들을 품고, 점차 고립돼 가는 40대와 50대를 이해해주며, 그들의 말을 90년대생들에게 잘 전달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80년대생들의 마음속은 복잡하다. 조직에서 원하는 가교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으로 다른 세대들을 이해하고 품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80년대생들이 조직의 세대 갈등을 융화하는 진정한 가교로서 역할을 하도록 도울 것인가? 그 방법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왜 80년대생들은 다른 세대를 불편해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80년대생들이 다른 세대들을 불편해 하는 이유

첫째, 자존감의 손상이 다른 세대를 불편해 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다. 80년대생들은 다른 세대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했다. 부모의 집중적인 양육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부모의 바람(omnipotent wish, 전지전능한 환상)을 내면으로 받아들여 ‘나는 남과 다르다’ ‘나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사회로 나왔다. 그러나 맞닥뜨린 현실은 수월치 않았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 경쟁은 엄청났고, 취업 문은 좁았다. 굴욕적인 탈락을 수차례 거쳐 어렵게 입사한 조직은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봉건적 현실이 만연했다. 조직은 신분제로 움직이고, 발언권도 신분에 따라 제한됐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상층부로 전달되기 어렵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의 능력은 상사가 시키는 일만을 수행하는 부품으로서만 기능했다. 이 과정에서 80년대생들은 정신분석적 용어로 ‘자기애적 손상(narcissistic injury)’을 입는다. 이는 곧 자신을 힘들게 한 외부에 대한 반감으로 전환된다. 회의 시간마다 매출이 인격이라고 말하는 50대 전무님 세대에 대한 반감, 막아주지는 못할 망정 불러서 조곤조곤 정신교육을 시키려 하는 40대 부장님 세대에 대한 실망, 가뜩이나 힘든데 눈치 없이 자기 위주로 행동하는 20대 직원 세대에 대한 짜증이 겹쳐 80년대생들은 모두를 품어 안아야 하지만 그런 모두가 피곤하고 싫어진다.

둘째,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주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질 수 있다. 조직에 들어오면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그 능력에 따라 탄탄대로가 보장되리라 믿었는데 현실은 비루하고 지루하다. 답이 없는 회의와 끝없는 책임 미루기, 쏟아져 오는 참조 메일 속에 일에 집중할 시간은 적고, 일의 성과는 더디다. 업무 시간의 많은 부분이 일의 본질과 상관이 없는 문서 꾸미기, 의전, 불필요한 회의 등으로 채워진다. 80년대생들은 입사 첫날부터 중요한 일을 하기 바라고 능력을 빠르게 인정받아 업무적으로 크게 성장하기를 기대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박탈감이 그들을 힘들게 한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소식이 상처를 더한다. 나는 늘 그저 그러한 상태로 발전도, 성장도 없이 하루를 버티기 힘든데 지인들은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해내고, 무엇을 축하받으려 글을 올린다. 축하한다고 답글을 올리며 자신과의 비교에 상처가 더 깊어진다. 조직 안을 들여다보면 자신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이는 부장님, 전무님은 지위도, 재산도, 명령할 권한도 모든 것을 갖고 있는데 나는 내 일 하나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에 박탈감이 더해진다.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나는 왜 이렇게 지내야 하나’ 하는 피해의식을 갖게 하고 그러한 마음은 다시 자신을 둘러싼 다른 세대와 사람들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

셋째, 조직과의 경계(boundary)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외부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 80년대생들과 기존 세대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기존 세대는 조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직에서 인정받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직과 나의 경계는 흐리고 나의 모든 것은 조직을 위해 헌신 가능하다. 반면에, 80년대생들은 조직에 대해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조직이 곧 나’라는 공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베이비붐세대부터 X세대에 이르기까지 조직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평생직장이기 때문에 조직에서의 인정은 나의 모든 것(노후, 경제적 부, 사회적 지위 등)을 보장해주는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공부로, 착한 행동으로 칭찬받는 것을 바랐던 것처럼 기존의 세대는 부모와 같은 조직에서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희구했다. 그러나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80년대생들에게 조직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성취일 뿐 나의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황금 사다리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의 인정은 그만한 희생을 요구하고, 그러한 희생은 종종 나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진행된다. 그리고 경계는 80년대생들에게 민감한 이슈다.



80년대생들은 ‘경계’에 민감하다

이 부분을 정신분석적으로 좀 더 들여다보자면 80년대생들을 키운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세대와의 연관성을 살펴봐야 한다. 베이비붐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자식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자녀들의 어린 시절 바짝 옆에서 모든 것을 지원했듯이 성인이 된 80년대생들의 자녀들 주변을 맴돌며 필요한 경제적, 정서적, 물리적 지원을 하길 원한다. 결혼한 자녀들도 양가의 도움 없이는 맞벌이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양측의 암묵적 동의에 따라 80년대생들과 베이비붐세대의 분리(separation)는 다른 부모자식 세대의 분리에 비해 늦춰지거나 다른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경계가 불분명하게 돼 있다.

경계가 확실하지 않은 만큼 80년대생들은 부모에 대해서도, 조직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80년대생들은 부모의 도움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도움 때문에 자신을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조직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한 마음의 연장선으로 조직에 어느 정도 자신을 오픈하기는 하지만 조직이 자신을 통제하거나 구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다. 그래서 기존의 세대들이 조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내밀한 욕구, 감정, 시간을 기꺼이 희생하던 것과는 다르게 어디까지나 계약적으로 움직이기를 원한다. 주고받기(Give and take)에 맞게 계산적인 관계를 기대한다. 그러나 조직에서 이러한 경계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나에게서 가져간다고 느껴질 때 80년대생들은 조직과 구성원들에게 피해의식이 쌓이고 그런 요구를 하는 다른 세대들을 마음으로 싫어하게 된다.



위계적 ‘조직구조’는 있어도 위계적 ‘인간관계’는 없어져야

어떻게 하면 조직이 이러한 80년대생들의 내적 상처를 아물게 하고, 조직의 진정한 허리로서 위와 아래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해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80년대생들의 심리적 측면과 맞닿아 있는 조직문화 관점에서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려 한다.

우선, 80년대생들이 자존감에 손상을 겪지 않을 만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자존감에 손상을 겪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의 중심으로 살아온 그들 인생에 조직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조직의 흔한 부품 중 하나일 뿐이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맡은 일이 그 사실을 떠올리게 하고, 회의 때 고개 숙이고 들어야 하는 상사의 잔소리가 그 느낌을 되새기게 한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를 피해 어디에 앉을지 고민할 때, 숟가락을 놓고, 카카오택시를 부르며 자신의 낮은 위치를 인식할 때, 80년대생들은 자신이 조직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의 중심은커녕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하는 이유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맹인 삼 년을 지내야 비로소 한마디 할 수 있는 조직 생활이 아니라 입사한 첫날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의 구조는 업무의 특성상 위계적이고 수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는 갑을이 없다. 아무리 위계적 조직이라 해도 인간관계는 ‘평평(flat)’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선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경계를 침해해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매우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흔히 조직에서 ‘꼰대’ 상사가 부하직원(대개 80년대생)에게 자주 하는 말이 “내가 다 해봤는데 그건 아니지” “나 때는 말이야” 등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80년대생들은 조직에서 자신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자신의 경계가 침범됐다고 느낀다. 이런 말을 하는 이면에는 ‘80년대생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조직을 모르므로, 조직 생활을 잘 아는 내가 한 수 알려줘야겠다’ 혹은 ‘내 방식대로 따라오도록 교육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 때는 그랬지만 80년대생들이 근무하는 이때는 다를 수 있다. 내가 해봤던 시절에는 안 됐지만 지금의 시장 상황에서는 새롭게 통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은 가족이 아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경계를 침범하는 예는 “우리가 남이가” 혹은 “가족같이”라는 말이다. 80년대생들은 입사를 고려할 때 회사 홍보 문구에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확실히 거른다고 한다. 그만큼 80년대생들에게는 조직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 수준이 기존의 세대와 다르다. 평생직장으로 입사하면 수십 년을 한 직장에서 또는 한 부서에서 동고동락했던 기존 세대에겐 집에 잠시 들어가 옷 갈아입으며 보는 배우자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 조직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동료가 가족이었다. 입사 동기는 나의 형제고, 사수는 10년이 지나 다른 부서로 옮겨간 후에도 여전히 나의 스승이자, 형님이시다.

그러한 친밀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기존 세대가 80년대생들에게 다가가는 순간 80년대생들은 불편하다. 그들에게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같이 조직 생활을 하는 동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몇 년을 이 직장을 다닐지도 모르고, 부서가 언제 재편될지도 모르는데 눈앞에 있는 이 선배가 왜 나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모든 시간을 같이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부장님과의 월요일 저녁 식사를 순번을 정해서 때우면서 밀레니얼 직원들은 생각한다. ‘부장님은 가족들이랑 밥 먹는 걸 싫어하나? 왜 굳이 우리와 먹으려 할까.’ 이제 우리가 남인 것을 받아들이는 조직문화의 확립이 필요하다. 우리는 남이고 서로의 필요를 위해 잠시 한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최대한 서로에게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도록, 그것이 나만의 좋은 경험이 아니라 상호 간에 원하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이 조직적으로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들이 가족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에게는 내가 남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80년대생들도 변해야

반대로, 80년대생들은 조직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일 하러 입사한 거 아닌데요”라고 말하기 전에 그런 일들을 해야 내가 원하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게임을 해도 지루하고 시시한 도입부를 거쳐 레벨업을 해야 제대로 된 중요한 결투에 나설 수 있지 않은가? BTS의 노래 ‘피땀눈물’처럼 조직도 피땀눈물을 들이지 않고 처음부터 중요하고 눈에 띄는 일만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지위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두 번째로 비교하지 말자. SNS로 조각된 세상을 실제 내 세상과 비교하지 말자.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우리 삶은 멀리서 보면 좋게만 보인다. SNS상에 탄탄가도를 달리는 것 같은 나의 친구도, 전 직장 동료도 옆에서 보면 오르고 내리는 인생의 굴곡을 피할 수 없다. 공연한 비교로 마음을 다치며 진짜 내 세상과 조직을 미워하지 말자.

세 번째로 조직에서의 내 책임을 생각하자. 윗세대를 비판하고 아랫세대의 생각 없음을 답답해 하기보다 그들을 사이에서 이어주고,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어낼 책임이 조직의 과반수를 구성하고 있는 80년대생들의 사회적 책임임을 기억하자. 내 마음에 맞는 상대만 골라서 살 수 있는 세상은 애초에 없다. 동아리나 동호회가 아닌 이상 내 맘 같지 않고, 내가 보기에는 또라이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조직이다. 그러므로 조직이, 그리고 다른 세대가 나를 이해 못하고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대상(object)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들만이 내게 영향이나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들에게 영향을, 그리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부부 치료를 할 때, 부부들이 가장 많이 변하는 포인트가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고 생각해서 부부상담을 왔는데 듣고 보니 저 사람도 나 때문에 힘들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듣고 알게 될 때다. 관계의 상호성에 대해 느끼게 될 때, 그래서 이 관계에 내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부부들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80년대생들도 낙후한 조직문화를 맞닥뜨릴 때, 조직에 적응하기보다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은 후임을 볼 때, 다른 세대를 쉽게 판단하고 비판하기보다 우리는 이 환경에서 무엇을 기여하고 있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이경민 마인드루트 대표 kmlee@mindroute.co.kr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5호 AI on the Rise 2019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