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朝鮮: 강희맹의 상소

“인사는 단점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

270호 (2019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조선시대 최고인사책임자(CHO)였던 이조판서 강희맹은 인재 등용의 어려움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한 사람이 같은 업무를 장기간 지속할 경우 긴장감과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 인사 관련 규제가 새로운 인재 등용을 저해할 수 있다는 한계를 고려해 때론 기존 제도에서 벗어난 파격 인사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사업무에도 절차의 객관성만큼이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유연성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합한 자리에 기용한다면 누구라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저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소서. 그리되면 탐욕스러운 사람이나, 청렴한 사람이나 모두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결점만 지적하고 허물만 적발한다면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1

1447년(세종 29년)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인재를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세종의 책문(策問) 2 에 이렇게 답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고쳐주면서 인재의 자질과 특성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답안에서 인사(人事)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장원으로 뽑혔다. 이후 강희맹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왕들의 총애를 받았는데 3 특히 인사업무를 오랜 기간 맡으면서 많은 인재를 발탁했다. 1478년(성종 9년) 이조판서 시절에 올린 상소 4 에는 당시 최고인사책임자(CHO)였던 그의 생각과 고민이 잘 담겨 있다.

“생각건대 예로부터 전형(銓衡)의 임무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간사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속은 돌과 같으면서도 겉은 옥처럼 보이고 양의 바탕에 호랑이의 가죽을 쓰는 등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있어 서로 같지가 않습니다. 그리하여 제왕이 스스로 전형을 맡지 않고 반드시 담당 관청을 둬 일을 맡겨 왔으니 이것이 어찌 임금의 지혜가 부족해서였겠습니까? 임금 혼자서 사람을 고루 안다는 것이 진실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입시전형’ ‘전형위원’이라는 말이 쓰이곤 하는데, 여기서 ‘전형(銓衡)’이란 조선시대 문관의 인사를 책임졌던 이조(吏曹)와 무관의 인사를 담당했던 병조(兵曹)의 관직을 가리킨다. 저울질하다, 무게를 잰다는 한자어처럼 인재 역시 차분히 저울질해 그 무게를 가늠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릇 인재란 그냥 한 번 본다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속지 않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감별하는 안목뿐만 아니라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더욱이 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명의 인재가 필요하다. 왕 혼자서 일일이 찾아 등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므로 인사를 전담하는 부서인 ‘전조(銓曹, 이조와 병조)’와 담당자인 ‘전관(銓官)’을 따로 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업무가 잘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업무에 탁월한 사람을 적임자로 뽑아도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든 처음 임명됐을 때는 부지런하고 철저하게 업무를 처리하지만 점차 흐트러지고 방심한다. 강희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큰 권병(權柄) 5 을 잡으면 누구인들 근본을 청명하게 하고 한결같게 원칙을 지키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처음에는 삼가다가 중간에 익숙해지고, 중간에 익숙해지면 습관이 생겨납니다. 습관이 생기면 모든 하는 일이 점점 처음과 같지 않게 되는 것이니 실로 소홀히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업무가 낯설 때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잘못된 부분이 없도록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익숙해지다 보면 나태해지고 습관적으로 일을 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실수나 착오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강희맹 자신도 처음 병조판서에 제수됐을 때는 “단 한 사람을 뽑을지라도 반드시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세 번 살핀 뒤에 주의(注擬) 6 했으며 털끝만큼이라도 잘못 주의했다는 나무람이 있을까 두려워”했지만 “두어 달이 지난 후에는 점차 관례에 익숙해져서 명부를 비스듬히 한 번 흘겨보고 주의했으니 얼핏 유능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일에 익숙해져 마음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습관과 선입관에 빠져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강희맹은 인사업무를 책임지는 인사를 총괄하는 이조판서의 경우 “1년을 기한으로 해 ‘처음에는 잘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을 취하고 ‘끝까지 잘하는 자는 드물다’는 것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건의한다. 업무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재임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인사업무의 전문성이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반론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해당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자는 취지만큼은 오늘날의 인사 경영에도 유효한 대목이다.



다음으로 강희맹은 승진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어진 이를 천거하면 상등의 상을 받고 어진 이를 가로막으면 죽음의 형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인재를 심사해 알맞은 자리에 배정하는 일의 엄중함이 이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신은 (이조판서를 맡은) 30여 개월 동안 한 사람의 어진 이도 천거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문부(文簿, 서류)에 의지해 성적을 살폈고 재직 연수에 따라 승진의 차례를 정했을 뿐 마음속으로 어진 이를 알고 있더라도 자격 연한을 채우지 못했으면 손을 휘저으며 포기했습니다. 어떤 이가 가진 용렬함을 알고 있더라도 임기를 채웠으면 전례에 따라 승진시켜 관직을 제수했습니다. 물고기를 꼬챙이에 꿰어놓듯, 비늘처럼 차례를 벌여 놓듯 하여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뒤섞여 지체되고 있으니 이 어찌 사람을 전형하여 올바로 쓴 것이겠습니까?”

인물의 능력이나 해당 업무에 대한 적합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연공서열에 따라 등용하고 승진시키다 보니 제대로 된 인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희맹은 이는 일차적으로 인사책임자인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지만 인사와 관련된 “법률과 규정이 그와 같아서 변통(變通, 바꾸어 개혁함)할 방법이 없으니 혹시라도 변통하려 들면 사사로움을 행한 것이 돼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어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어질고 훌륭한 인재가 있어 전격적으로 발탁하고 승진시키고 싶어도 법에 위배되는 데다 인사권을 사사로이 휘두른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능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중대한 잘못이 없는 한) 일정 기간을 채우면 승진시켜야 하는 것이 규정이어서 이를 도태시키거나 솎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승진의 기준, 자격요건을 객관적으로 정해놓는 일은 필요하다. 인사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사사로운 인사 개입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시스템도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파격적인 인재 발탁 역시 좋지만은 않은데 인재의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기 힘들고 조직 내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등 단점이 만만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인사 승진의 기준이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절대불변의 지침’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규정과 원칙에 따라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절차에 맞게 인사 배치와 승진이 진행돼야 하되 새로운 인재가 유입될 수 있는 통로가 ‘투명하게’ 활성화돼야 한다. 정말 뛰어난 인물이지만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관직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거나 한미하다는 이유로 말단 관직을 전전하다가 사장돼 버린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가? 강희맹이 상소에서 인사 법례(法例)의 변통을 요청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 강희맹은 인사 책임인 이조판서나 병조판서가 경우에 따라 관행과 틀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이 특정인의 이해관계, 호불호에 따라 사사롭게 운용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하면 되는 것이지 그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사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이 되는가, 그 임무를 잘 해낼 수 있는 적임자인가이기 때문이다. 인사의 안정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한 조치라는 점에서 오늘날 기업들도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필자소개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대학 연구교수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5호 AI on the Rise 2019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