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민첩성 확보방안

“대응은 빠르지만 위기 감지는 늦죠” 조직 최일선의 촉수를 살려라

211호 (2016년 10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1. 조직민첩성: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면서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

2. 한국 기업들의 조직민첩성: 속도에 있어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속도 역시 환경감지(sensing)가 아니라 대응(responding)에서만 뛰어난 반쪽짜리. 유연성 측면에서는 감지와 대응 양쪽에서 모두 취약.

3. 조직민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조직형태 변화만으로는 민첩성을 높일 수 없으며 조직구조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 크게는 2가지가 필수.

1) 구조보다는 프로세스가 우선이 되는 조직 구성: 구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프로세스별로 목표를 설정하고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이 함께 협업.

2)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대응의 주체가 돼야 함: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조직의 최일선에 있는 직원들이 환경의 변화를 읽고 대응. 이를 위해서는 상명하복식의상사와 부하’ 관계, 거래적인회사-구성원관계의 혁신이 요구.

 

 

 

조직민첩성이란 무엇인가

 

경쟁자보다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빨리 출시하는 것이 기업의 성공을 좌우하는가.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는가. 고객의 욕구 변화를 따라 잡기 어려운가. 새로운 경쟁자가 빈번히 나타나서 기존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조직의 민첩성(agility)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기업 환경을 보여준다. ‘민첩한 조직을 만드는 것은 기업들이 당면한 핵심 과제다. 이 글에서는 조직민첩성의 의미는 무엇이며, 조직민첩성 측면에서 한국 기업, 특히 한국 대기업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분석하고 민첩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도대체 조직이 민첩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사결정이나 실행의 속도가 빠르면 민첩한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의 성공적인 대기업도 꽤 민첩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조직민첩성은 속도(speed)와 유연성(flexibility)의 두 속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면서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동시에 갖춰야 민첩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대기업들의 민첩성속도도 반쪽짜리, 유연성 낮아

 

조직민첩성 측면에서 한국 기업을 평가해보자. 상당수의 일반 기업들은 <그림 1> 1상한, 즉 유연성도 낮고 의사결정이나 실행의 속도도 빠르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이에 속한 기업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력을 상실하기 쉽고,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외부 환경에 맡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도 성공한 기업들이 있는데, 이는 대부분 전통적인 산업에서 운영효과성(operational effectiveness)이 성공의 원천이 된 경우다. 국내외 경쟁자에 비해 낮은 요소비용이나 우월한 공정기술, 근로자의 근면성 등에 바탕을 두고 압도적인 원가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민첩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전통 제조업 분야에도 더 효율적인 경쟁자의 등장이나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성공했던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의 섬유산업, 근래에는 조선, 철강 등과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대기업들은 대체로 2상한, 즉 유연성은 높지 않지만 빠른 환경 대응 속도를 바탕으로 성공한 기업들이다. 결국 반쪽짜리 민첩함으로 성공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이들의 성공 패턴을 살펴보자. 고객의 욕구 변화에 대한 선제 대응이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사업기회의 창출 등은 소위 선진기업에 맡겨두고 이들 기업은 시장이 만들어지고 성공가능성이 확인되면 그때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맹렬한 속도로 앞선 기업을 추격하는 소위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반도체 산업이 그렇고, 자동차도 이러한 궤적을 통해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모토로라의 휴대폰을 모방해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던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도 소위 한국형 스피드 경영의 결실이다. 휴대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스마트폰에서도 아이폰의 출시로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 형성되고 그 가능성이 확인된 후에 삼성은 애플을 빠르게 추격함으로써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민첩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속도는 빠르지만 유연성이 부족하다. 따라서 고객의 욕구 변화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 등과 같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빠른 추격자로서 성공은 거뒀지만 새로운 수요나 시장을 만들어 개척자(pioneer)로서 성공하는 기업이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이유이기도 한다.

 

 

  

이상 한국 기업은 민첩성의 두 측면 중에서 유연성은 부족하지만 소위 스피드 경영이라고 하는속도에 강점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러면속도측면에서 한국 기업이 처한 조직적 현실을 좀 더 깊이 분석해보자. 유연성, 속도, 민첩성 등은 결국 조직의 환경 대응에 관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고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가? 기업의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 과정은 (1) 변화의 감지 (2) 대응방안에 대한 의사결정 (3) 결정된 사안의 실행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 환경 변화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의 도출과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며, 결정된 사항을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간단히 줄이면, 환경 변화에 대한 감지(sensing)와 대응(responding)의 두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의 성공한 대기업들은 어떠한가? 2, 3 단계인 의사결정 단계와 실행 단계에는 능숙한 반면, 첫 단계인 환경 감지 단계는 취약하다. 앞선 기업을 따라가거나 따라잡는 것은 대단히 능숙하다. 그러나 환경변화의 감지가 안 되기 때문에 남보다 출발은 항상 느릴 수밖에 없다. 느린 출발을 따라잡기 위해서 밤낮없이 일하는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슬픈 자화상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대해 반론이나 토론을 배척하고, 오로지 빠른 실행만을 지고지선으로 여기는 풍토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실행의 스피드를 높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유연성을 해치고, 조직구성원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다. <그림 2>에서 제시했듯이 한국 기업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스피드는 반쪽짜리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기업의 스피드 경영은 환경 변화를 감지하는 속도가 아니라 환경 변화에 대한 빠른 감지를 통해 앞서가고 있는 기업을 의사결정과 실행의 스피드로 추격하고 따라 잡는 대응의 스피드인 것이다. 따라서 구성원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도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과실은 fast follower일 뿐 결코 pioneer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처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에 미숙한 이유는 환경 변화 속에서 남보다 먼저 기회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 기업이 부러워하는 우리 기업의 스피드 경영은 기실 불완전한 반쪽짜리이다.

 

 

특히 <그림 3>에서 제시한 것처럼, 한국 대기업의 환경대응력은 유연성 측면에서 상당히 취약하다. 고객이나 기술, 경쟁자의 변화와 같은 환경의 신호를 읽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이는 수직적 의사결정구조와 경직적 문화에 기인한 탓이 크다. 조직에서 다양한 관점이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성원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또한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에서도 유연성이 부족해 한국 대기업의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방식은 엇비슷하며, 소위 전략적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왜 그런가? 경영자의 의사결정 과정에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최고경영자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이에 따르기를 강요하는 상명하복의 문화와 관행이 여전하다. 상사의 결정에 복종을 강요하며, 경영자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문화, 최고경영자가 신처럼 군림하는 수직적이고 경직적 문화가 조직구성원의 창의성 발휘를 저해하고 우리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 없이는 남과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기 힘들며 자신만의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대기업의 주력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며 성공을 위해 회사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투입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전투를 잇따라 치러야 하는 영역이 대부분이다. 물론 일부 대기업은 성공적으로 이렇듯 힘든 과정을 헤쳐왔지만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다. 세상의 발전 방향과 추세가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 과연 앞으로도 통할 수 있을까? 획기적 변화가 없다면 전망은 부정적이다.

 

더욱이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조직구성원의 인내와 좌절, 무력감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주지 않고 상사의 지시와 규정, 조직의 질서라는 명목으로 순응을 강요하는 조직문화가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우수한 인재들이 대기업을 기피하며, 대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다른 탈출구를 모색하고, 업무에 깊이 있게 몰입하지도 못하는 것이 한국 대기업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기업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앞으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이제까지의 강점이 오히려 환경 적응에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민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대기업의 조직 개편은 이런 현실과 절박감을 반영해야 한다. 새로운 조직형태나 구조적 장치(structural arrangement)만으로 우리 기업의 민첩성을 높일 수는 없으며, 조직구조에 대한 관점의 변화, 나아가서는 경영에 대한 철학이나 사람을 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1) 구조보다는 프로세스가 우선이 되는 조직 (2) 시스템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며, 그것도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조직 일선의 직원이 환경 대응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두 가지 대안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첫째, 조직구조의 개편만으로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조직화에 대한 전통적 관점은 <그림 4>와 같다.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구조의 변화를 반영해 직급체계나 인사제도 등과 같은 조직의 시스템이나 제도도 함께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이론에서는 이를 구조적 상황이론(structural contingency theory)이라 하며, 1960년대 등장해 그 후 몇 십 년간 조직설계에 대한 주류 이론의 위상을 차지했다. 구조 상황이론이 아직까지 우리 기업들의 조직개편에 대한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흔히 조직설계라고 하면 관리 계층을 만들고, 주요 직책을 나타내는 박스를 그리고, 각 박스들을 선으로 연결함으로써 권한과 책임의 소재와 명령체계를 명확히 하는 것을 핵심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에 나타나거나 기업에서 발표하는 조직개편에 들어가는 주요 내용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조직계층의 간소화(delayering)

- 기능식 조직에서 사업부제 조직으로의 변화 등과 같은 조직형태의 변화(reorganizing)

- 조직의 통폐합(조직슬림화)이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 단위의 도입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조직의 민첩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은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조직구조만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에는 오늘날 환경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너무 크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구조 중심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직에서 일이 이뤄지는 과정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조직의 대응을 분석할 때는 조직구조보다는 조직 프로세스(organizational processes)가 우선해야 한다. 프로세스란 주문처리 프로세스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같이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업과 활동들의 집합이며 활동 간 수평적, 연쇄적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프로세스는 대체로 여러 기능이나 부문에 걸쳐 다양한 과업과 사람들을 포함한다. 이 일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는가? 일 처리 과정에서 무슨 결정들이 이뤄지는가? 누가 그것을 수행하며 해당 프로세스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이런 것들이 프로세스를 의미하며, 이것이 조직구조보다 우선돼야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조직목표의 캐스케이딩 원칙(cascading principle)을 살펴보자. 우선 조직 전체의 목표를 결정하면 대부분의 조직은 조직의 계층에 따라 이 목표를 쪼개어 배분한다. 회사본부 개인 등으로 조직목표는 세분화돼 할당된다. 이것이 소위캐스케이딩이다. 그러나 이를 통한 결과는 조직의 사일로(부문 이기주의)만을 강화할 뿐이다. 조직의 계층별로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되므로 사일로는 더욱 커지고 조직의 민첩성은 악화될 뿐이다. 이것이 구조적 접근법의 한계다. 반면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접근법에서는 각 프로세스별로 특정 목표를 설정하면,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다른 기능부서나 사업부 또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프로세스 목표를 공유하면서 함께 일하며(collaboration) 협력한다. , 구조는 존재하되 부서와 같은 구조가 프로세스의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에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구조를 중심으로 의사결정 권한과 명령체계, 관리 시스템 등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중심의 틀을 깨야 한다. 부서란 개인의 소속 단위이며, 유사한 기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전문성을 개발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인력의 저수지 같은 개념이 돼야 한다. 따라서 부서의 책임자는 문화를 전파하며 이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지, 이들을 통제하거나 관리하고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이론에 따르면 기능식 조직은 제품별 조직에 비해 환경적응이 느리고 혁신을 저해한다는 단점을 가진다. 그런데 애플이나 구글의 기본적인 조직형태는 유사한 기능을 가진 인력들로 조직 단위를 구성하는 기능식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환경 변화가 극심한 high-tech sector에서 환경 적응과 혁신에 능숙하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이론이 틀렸는가? 이는 구조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애플이나 구글은 구조 변화를 통해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환경의 요구나 조직 내부의 필요에 따라 조직의 경계에 구애됨이 없이 서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팀을 이뤄서 일을 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구조가 정보와 일의 흐름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프로세스를 통해 자원과 정보, 협력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전자와 같은 구조중심주의는 <그림 5>, 조직구조는 존재하나 프로세스가 조직구조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프로세스 중심 관점은 <그림 6>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림 6>은 구글의 조직도를 예시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서로 다른 부서나 직급의 사람들이 선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어느 부서 소속인지, 나의 상사가 누구인지는 조직에서 일을 할 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의 목표는 무엇인지, 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구(직급이나 소속 부서에 관계없이)와 함께 일해야 하는지, 그 사람들과 얼마나 협력적으로 일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위에서 예시적으로 제시한 구글의 조직도는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기능부서 중심의 조직이지만 일이 수행되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네트워크 조직, 수평적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민첩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 같은 관리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이 환경 적응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리고 최고경영자의 혜안이 아니라 조직구성원 개개인이 역량과 창조성이 환경 대응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기업에서 사람이 살아나지 않고는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만으로는 결코 민첩해지기 어렵다. 왜 그런가?

 

환경의 요구와 기회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정보나 지식, 전문성은 조직의 어디에 존재하는가? 바로 일선에서 고객과 접촉하고 그들의 불편과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하는 사람, 새로운 기술 동향을 접하며, 이를 제품개발에 활용하는 조직 최일선의 직원이나 관리자들이다. 환경이 격변하고 종업원 대부분이 지식근로자인 세상이다. 조직의 최고경영자나 본사 스태프들만이 복잡한 정보를 수집, 처리, 통합,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장의 구성원들이 단순 육체노동을 수행하며 지식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철 지난 생각이 아직도 기업의 경영과 조직 운영의 근간이 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대기업에서 복잡하고 하향적(top-down), 통제지향적인 전략수립 시스템, 예산 시스템, 성과관리 시스템을 수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정교하고 복잡해질수록 유연한 환경적응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은 1970∼90년대를 거치며 미국 대기업의 실패를 통해 여실히 나타났다. 시스템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일선 종업원이나 관리자의 자율성은 제한되고 시스템이나 제도가 유연한 환경적응에 걸림돌이 된다.

 

몇몇 경영자들은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따라잡기가 더 이상 힘들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환경 변화의 특징과 속도가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현장의 정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최고경영자가 대응하기에는 너무 버거워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첩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조직의 최일선에 있는 종업원이나 일선 관리자가 환경 변화를 읽고 이에 직접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따라서 조직민첩성을 높이기 위한 출발은구성원 개개인의 능동적인 환경 대응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림 7>에서 제시한 조직 내 두 가지 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상사-직원 관계와 회사-종업원 관계다.

 

 

흔히상사와 부하라고 하는 상사-직원 관계를 살펴보자. 한마디로 상명하복의 관계, 지시 통제와 순응의 수직적 관계다. 이 관계가 조직구성원의 역량 발휘를 제약하고 에너지를 앗아가고 있다. 지시/통제의 관계는 구성원의 지식이나 능력 수준이 낮으며 유연한 환경 적응보다는 조직 내부의 질서를 통한 효율적 운영이 기업의 중심 과제이던 시절에 탄생한 것이다. 내부 효율성보다는 외부 환경 적응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현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제 상사-직원 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절실하다. 상사는 지시,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의 역량 개발과 발휘를 지원하고, 그들이 자신의 잠재성과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behavioral context)을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CEO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요구되는 새로운 지식이나 전문성이 조직의 최일선에 있는 경영환경에서 최고경영자가 전략적 의사결정을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없다. 최고경영자는 높은 곳에 앉아 각종 정보를 취합하고 여러 분석도구를 바탕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일선의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전략적 창의성을 허용하고, 아래로부터 의견 제시나 반론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이가 돼야 한다. ‘경영자 지시사항’ ‘경영자가 결정하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환경은 경영자가 신이 아닌 이상 기업에는 재앙이다. 최고경영자의 결정에 아무도 반대를 못하는 풍토로 인해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한순간에 파멸이나 쇠퇴를 겪었는가?

 

얼마 전까지 인텔의 CEO였던 폴 오텔리니는기술혁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항상 조직을 수평적으로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회고한다. CEO를 포함해 모든 직원이 문이 없이 낮은 칸막이로 된 사무공간 큐비클(cubicle)에서 근무하는 것도 젊은 기술자들이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최고경영자나 관리자에게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수십 년간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 중의 하나로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인텔의 혁신에는 바로 상사-직원 간의 수평적 관계가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두 번째로, 회사-구성원 관계도 변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에서 회사와 구성원의 관계는 거래적 관계다. 거래 관계는 한쪽이 내 이익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깨져버린다. 이런 관계에서는 아무리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주인의식을 강조한다고 해도 조직에 대한 헌신은 존재할 수 없다. 알려진 것처럼 개인의 창의성 발휘에는 금전이나 대우와 같은 외적 동기부여보다는 내적 동기부여가 훨씬 중요하다. 구성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조직에 대한 헌신, 조직의 목표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다. 이는 거래적 관계에서는 발휘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 대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과정에서 큰 자산으로 작용했던 주인의식, 소속감, 조직 충성심과 같은 미덕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IMF 위기를 거치며 고용보장의 폐기로 인한 신분 불안, 무분별한 임시직 채용, 단기 성과주의, 금전적 인센티브, 개인성과급 등과 같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금전적 보상체계가 기업과 구성원의 관계를 급속하게 거래 지향적으로 만들었다.

 

회사와 구성원의 관계가 복원돼야 한다. 건강하고 상호 신뢰하는 호혜적 관계에서 구성원의 조직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기대할 수 있다. 조직구성원인 사람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경영자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고셜(Ghoshal)과 바틀렛(Bartlett)은 저서 <개인화 기업(individualized corporation)>에서 경영자는 전략보다는 기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구성원들의 일에 대한 의미를 창출하는 데 훨씬 더 큰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기업의 목적이나 존재의의가이윤극대화라고 간주해버리면 그 속에서 일하는 개개인은 일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까? ‘이윤창출 기계에서 구성원들의 열정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을 최고경영자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과연 이런 부분에 시간을 할애하고 고민하는 대기업 경영자가 얼마나 있을까?

 

기업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목적이 분명한 기업,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대기업의 경영자를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경영방식이나 경영에 대한 지향점이 서로 비슷비슷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모든 기업 활동의 핵심 원칙으로 작용하는 이케아, 구성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발전한다는 신념을 오랜 기간 경영의 제1 원칙으로 고수하고 있는 ‘SAS’, 종업원 1만 명을 넘는 대기업이면서도 관리 계층도 없고, 조직도도 없으며, 투표를 통해 리더를 선출하는고어등과 같은 기업을 우리나라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직도 일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신입사원 연수에정신교육을 주제로 한 일방통행식 강연이 이뤄지고 산악 행군을 하면서주인정신을 복창하도록 하는 문화 속에서 주인의식은 싹트기 어렵다. 최고경영자의 어록을 암기하고, 이를 시험으로 평가하는 데 이르게 되면, 상명하복의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조직에서 개인의 창의성이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얼마나 헛된 구호인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성과주의만이 합리적 경영이고 금전적 보상이 가장 효과적인 동기부여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영방식에 이르면 사람에 대한 기업 경영자의 관심이나 인식이 얼마나 얕고 편향적인지 혀를 차게 된다.

 

민첩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조직개편은 역설적으로 조직에 대한 전통적 생각이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조직의 질서 유지와 일관된 통제 및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다듬어왔던 조직구조와 조직화의 기본 원칙들이 이제는 기업의 환경적응과 사람의 창조성 발휘에 족쇄가 되고 있다. 환경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고 환경의 기회를 경쟁자보다 앞서 활용하는 민첩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1)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프로세스가 조직을 움직이도록 해야 하며, (2)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 대응의 주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조직의 일선에 있는 구성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역량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업무환경의 변화를 위해서는 상사-직원 관계와 회사-구성원 관계의 변혁이 필요하다.

 

허문구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moongoo@knu.ac.kr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전략 및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센터장과 포스코 자문위원, 한국전략경영학회장을 지냈다. 매경우수논문상, 한국인사조직학회 최우수논문상, 경북대학교 최우수강의상 등을 수상했다.

 

 

생각해볼 문제

 

1. 당신 조직의 민첩성을 유연성과 속도 측면에서, 또 각각을 감지(sensoring)와 대응(responding) 영역으로 나눠서 평가해보자. 당신의 조직도 한국의 대다수 대기업처럼 유연성은 낮고 변화에 대한 대응속도만 빠르지는 않은가.

 

2. 어떻게 해야 상명하복식의상사-부하관계, 신뢰는 사라지고 계약으로만 유지되는회사 - 구성원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까. 기업의 리더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3. 조직민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이 아니라 구성원 개인이 달라져야 한다.우리조직의 경우, 구성원 개개인의 능동적인 환경대응을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가.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