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
Article at a Glance – HR, 인문학
창업군주에게 ‘개국공신’이자 ‘핵심참모’는 가장 필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창업기의 재상들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창업 이후 미련 없이 초야에 묻히든가, 철저하게 1인자에게 ‘욕심 없음’을 호소하면서 ‘실무’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대 재상 조준은 후자를 택했다. 고려 말 ‘혁신가’에서 조선을 건국하는 ‘혁명가’로 변신했던 그였지만 오히려 자신의 원대한 꿈 ‘토지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다소 굴종적이지만 2인자 자리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조준은 1) 행정실무에 집중하고 2) 대체가 불가능한 전문영역을 구축하며 3)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며 생존에 성공했다. |
편집자주
기업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질수록 CEO를 보좌해줄 최고경영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집니다. 리더의 올바른 판단과 경영을 도와주고 때로는 직언도 서슴지 않는 2인자의 존재는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명재상들 역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군주를 보좌하며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조선시대 왕과 재상들의 삶과 리더십에 정통한 김준태 작가가 ‘조선 명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을 연재합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 (野獸已盡獵狗烹)”
“용맹과 지략이 주군을 두렵게 하는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롭고, 천하를 뒤덮을 만한 공을 세운 사람은 상을 받지 못한다. (勇略震主者身危功蓋天下者不賞)”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 두 구절1 은 큰 공을 세웠지만 자신이 섬겼던 주군에 의해 숙청되고 마는 개국공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묘사한 것이다. 건국의 원훈이자 수석 참모인 재상은 더욱 위태로웠다. 창업과정에서 쌓인 재상의 지분이 왕권을 확립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하를 경영하고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기획해낼 정도의 걸출한 능력도 창업 전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일단 목적을 이루고 난 뒤에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 용맹과 지략을 가지고 혹시라도 군주에게 대항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게다가 후계자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탁월하고 훌륭한 재상일지라도 새 임금에게는 불편한 존재다. 나이와 경륜이 훨씬 위일 뿐 아니라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재상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알아서 2선으로 물러나 있다가 왕이 필요로 할 때만 자문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개국공신 재상의 무게를 내세우며 사사건건 국정에 간섭한다면 임금으로서는 감당하기가 버거워진다. 이러한 위협요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아예 재상을 제거해버리는 사례가 많다. 명나라의 법과 제도를 만든 이선장(李善長)과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鄭道傳)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기업에서 후계자 승계가 이뤄지면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대거나 컨설팅 업체 등을 불러들여 명분을 만든 뒤 창업공신 격인 임원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치다.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군주를 만나거나 아예 군주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 이상 창업기의 재상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대업을 이룬 후 미련 없이 떠난 장량(張良)의 길과 군주에게 철저히 자신을 맞춰가며 행정가로서의 임무에만 집중한 소하(蕭何)의 길이다. 이 두 길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권력에 욕심이 없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창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물론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두 번째 길은 정치의 현장에 계속 남아 있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의 감시 또한 계속된다. 소하도 한 고조 유방의 끊임없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자신은 아무런 욕심이 없고 오로지 행정에만 집중할 뿐이라는 것을 계속 증명해야만 했다. 이를 두고 자기 한 몸이 살아남기 위한 비굴한 태도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이상으로 왕조 건설에 참여한 개국 재상으로서 이 길은 그 꿈을 완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본 연재에서 다루는 첫 번째 재상인 송당(松堂) 조준(趙浚, 1346∼1405)도 앞서 언급한 소하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의 초대 재상인 조준은 정도전과 더불어 창업을 주도한 인물이다.2 그는 건국과 함께 추진된 각종 제도와 개혁 정책들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실무를 책임졌다. 특히 조선 초기의 토지제도인 ‘과전법(科田法)’ 체제가 확립되는 데 있어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고려 말기만 해도 조준은 정도전에 못지않게 새로운 시대를 향한 비전을 설계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조선이 건국되고, 자신이 재상에 오르고 난 후부터는 오로지 행정가로서의 임무에만 집중한다. 이번 호에서는 조준을 대표하는 정책인 과전법과 함께 그가 ‘실무형’ 재상으로 변모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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