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와 경영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던 시절, 프랑스인들은 이곳저곳에 출몰하는 쥐의 개체 수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묘안을 생각해냈다. 베트남 사람들이 쥐를 잡아 가죽을 벗겨오면 그 수대로 돈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돈으로 쥐잡기 경쟁을 조장하면 쥐가 박멸되리라 희망했던 프랑스인들은 곧이어 베트남인들이 쥐를 사육하면서까지 돈을 받아 가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쥐는 박멸되기는커녕 전보다 오히려 더 들끓었다.
우리는 흔히 직원들의 경쟁을 강화하면 개인과 조직의 성과가 향상될 거라 믿는다. 내부 경쟁이 직원들로 하여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유도하고 크고 작은 혁신을 가속화시키며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성과가 지지부진하거나 조직의 활력이 저하된 원인을 구성원들의 경쟁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기존 제도의 느슨함에서 찾곤 한다. 그래서 평가를 강화하고 차등 보상을 도입하며 성과급 비중을 상향 조정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직원 간의 경쟁과 부서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려 든다. 이런 기대는 언뜻 논리적인 듯 보이지만 베트남인들의 사례처럼 경쟁이 야기하는 현실은 종종 추구하는 바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쟁은 부정행위를 키운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시어즈(Sears)는 18건이나 되는 집단소송에 연달아 휘말렸다. 시어즈는 시어즈오토센터(Sears Auto Centers)라고 불리는 자동차 정비 체인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정비사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부분을 수리하고서 고객에게 과도하게 많은 수수료를 청구했다는 것이 집단소송의 이유였다.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가면 브레이크가 이상하니 그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거나 스티어링 휠이 뻑뻑해 정비소를 찾으면 ‘이것도 함께 고쳐야 한다’고 말하며 고객을 감쪽같이 속여 왔다는 것이다.
고객의 99%는 자동차 내부 구조에 대해 젬병이기 때문에 고객을 속이고 과도한 수리비를 챙기는 일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추산하면 미국만 해도 고객들이 필요 이상으로 지출하는 자동차 수리비가 연간 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1732만 대로 미국의 7% 수준이다. 미국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돈이 이러한 부당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을지 모른다.
시어즈는 결국 소송에서 패해 수천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자동차 정비 사업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사업에서도 비슷한 류의 속임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계속해서 소송에 휘말려 역시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야 했다. 시어즈는 결국 15년 동안 무려 2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그렇다면 필요도 없는 수리를 종용하고 멀쩡한 부품을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한다고 압박하며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물론 모든 사업체는 매출과 이익이 목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고객으로부터 얻어내려는 동기가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기 행각에 눈멀게 만드는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직원들과 경영진이 더욱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탐욕스럽게 만들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경쟁을 성장의 동력으로 인식하는 성과주의 철학이다. 환경이 급변하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본급을 줄이고 업무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을 확대하는 일을 당연시하고 있다. 일했으면 성과를 내라고 말하며 다른 직원보다 월등하게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일종의 ‘도덕’이나 ‘직업윤리’인 양 직원들을 세뇌시킨다. 외부 경쟁의 격화를 직원끼리의 내부 경쟁 강화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결국 직원들은 불필요한 수리비를 청구하는 일과 같이 작은 부정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당한 방편이라고 합리화하기에 이르고 만다.
눈앞에 놓인 단기적인 성과를 부채질하면서 직원들에게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낼까 궁리하면서 겉으로는 윤리경영이라는 탈을 쓴 기업을 한두 곳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성과’를 장려하고 그 ‘나쁜 성과’를 초과 달성하는 직원들에게 ‘나쁜 보상’을 한다면 기업의 부정행위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나쁜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불행한 생태계가 돼 ‘좋은 성과’를 달성하려는 ‘좋은 의도’는 빠르게 도태되고 말 것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가 2007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대기업들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 수가 40%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쟁을 통해 세상이 예전보다 더욱 활기 있고 풍요로워졌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경쟁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기업의 정의와 진정한 직업윤리를 뺑소니치고 달아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최우선 목표였다면 이제는 ‘좋은 성과’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일구는 것이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 오일 갈러 갔다가 쓸데없이 엔진을 수리하는 일, 그런 부정으로 얻은 ‘나쁜 성과’는 불량식품처럼 달콤하지만 끝내 기업을 거짓말과 부정행위가 창궐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 말이다.
하이델베르크대의 크리스티아네 시비에렌(Christiane Schiwieren)과 린즈대의 도리스 바이히셀바우머(Doris Weichselbaumer)는 미로 찾기 게임을 통해 경쟁의 강화가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것은 아닌지 검증하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30분 동안 컴퓨터 모니터상에 차례로 나타나는 여러 개의 미로 게임을 가능한 빨리 해결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화면에는 ‘자동 경로 찾기’와 ‘경로 확인’이라는 버튼이 있었는데 일부러 참가자들의 부정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얼마나 많은 미로를 풀었는지 스스로 기록하도록 했다. 컴퓨터에는 참가자들의 행동을 모니터하기 위한 스파이 웨어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부정행위가 감시됐고 실제로 얼마나 많은 미로를 풀었는지 기록됐다. 참가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게임에 임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각각 두 가지 보상 조건하에서 미로 게임을 수행하도록 했다. 첫 번째는 ‘낮은 경쟁 조건’이라서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성적과는 상관없이 미로 게임 하나를 풀 때마다 30센트를 받았다. 반면 ‘높은 경쟁 조건’은 토너먼트를 벌여서 오직 1등만이 미로 게임 하나에 대해 1.8유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승자 독식’의 구조였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이 높은 경쟁 조건하에서 더 많은 미로 게임을 풀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자 중 남성들은 낮은 경쟁 조건일 때보다 높은 경쟁 조건일 때 2.7개 정도 적게 풀었다(여성들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비록 게임이었지만 경쟁을 강화한다고 해서 성과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증거로 채택할 만한 결과였다.
부정행위의 빈도는 어땠을까? 참가자들은 낮은 경쟁 조건에서는 자신이 실제로 푼 개수보다 1.31개를 더 풀었다고 실험 진행자에게 거짓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경쟁을 강화시킨 높은 경쟁 조건에서는 개수 차이가 2.91개로 늘어났다. 연구자들은 높은 경쟁 조건일 때 특정 참가자가 문제를 1개 이상 더 풀었다고 거짓말할 확률이 31%에서 39%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이는 내부 경쟁의 강화가 부정행위와 속임수의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비에렌과 바이히셀바우머는 경쟁이 강화되면 성공하기 힘든 자가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부정행위나 속임수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결론 내린다.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실력이 거의 비슷할 경우에도 조그만 부정행위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때문에 역시 부정행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지적한다. 직원들 간의 학력, 지능, 역량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요즘의 기업 현실에서 ‘발각되지 않는 속임수’는 개인의 경쟁력으로 둔갑하기도 한다.경쟁은 승자가 되기 위해 양심을 버리는 행위를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만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시어즈와 같은 기업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내부 경쟁은 조직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성공을 강조하기에 조직에 기여하려는 동기를 약화시키고 공정한 룰을 준수하려는 의지도 희석시킨다. 조직 충성도와 헌신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 일단 남을 이기고 보자는 자기합리화에 의해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버린다. 내부 경쟁이 성과를 높이는 장치로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점, 오히려 원치 않는 부정행위를 장려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내부 경쟁이 바람직하다는 단선적인 생각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됐다. 게다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드는 비용도 커진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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