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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위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나

박귀현 | 29호 (2009년 3월 Issue 2)
많은 기업들이 경제위기 탈출의 솔루션을 찾고 있다. 대응책은 운영 경비 절감과 잡 셰어링, 상여금 반납 등 여러 가지다. 일부 기업들은 구조조정 없이 고통 분담과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다른 일부는 비용 절감 또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구성하는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는 방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상사와 친하게 지내고, 아침에 일찍 출근하며, 야근을 밥 먹듯 하겠다는 단순한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여러 대안을 고민하듯이, 직원들도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살아남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타워스페린은 기업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상시적 설문조사를 통해 면밀하게 관찰 및 분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타워스페린이 지난해 8월과 12월 미국에서 동일한 문항으로 실시한 설문조사(HR 동향 조사) 결과를 비교해 현 경제위기가 종업원들의 인식과 행동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 결과는 미국 기업들은 물론 우리 기업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일터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분석 결과,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일터와 관련한 인식의 변화였다. ‘일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이익이나 개발이 중요하다고 한 응답은 다소 줄어든 반면, 직업 안정성과 관련한 응답은 크게 늘어났다. ‘장기적인 고용 안정’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월 46%에서 12월 59%로 증가했으며, ‘나와 가족을 위한 복리후생 보장’이라는 응답도 37%에서 56%로 늘었다. 또한 앞으로 흔들리지 않을 ‘미래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서 일하기’라는 응답도 31%에서 39%로 높아졌다.(그림1) 

불과 4개월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렇게 안정성에 대한 추구가 많아진 것은 크게 다음 2가지 원인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직원들이 유수의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파산 위기에 몰리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둘째, 기업연금 제도나 주택자금 대출을 통해 형성한 주식과 주택 등의 자산이 하루아침에 푼돈이 돼버렸다. 따라서 장기 근무 가능성이나 자신과 가족의 현재 및 노후 생활에 대한 보장이 중요해진 것이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직원들이 자신보다 회사의 위기 정도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직원들의 61%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경제위기로 인해 ‘매우 많거나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나 자신이 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45%였다.(그림2) 이것은 직원들이 회사의 위기 극복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성과 몰입도 향상, 인력의 조화, 경영진의 존재감 제고
조사 결과는 미국 기업들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직원들이 고용 안정성과 회사와의 일체감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워스페린은 이런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측면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첫째, ‘성과 몰입도(engagement)’가 점점 떨어지는 추세임을 인식하고 몰입도 향상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과 몰입도란 회사의 성공을 위해 종업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정도를 말한다. 당연히 성과 몰입도가 높은 직원이 많을수록 회사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성과 몰입도가 높은 직원의 비중은 2007년 72%에서 2008년 8월 68%와 12월 60%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그림3) 타워스페린이 심층 분석한 결과, 종업원의 성과 몰입도를 저해하는 요인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한 불안 △급여가 동결되거나 급여를 아예 받지 못하게 되는 수입의 불안정성 △실업의 공포로 밝혀졌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런 불안의 원인 자체를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안의 수준을 낮추려는 조치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회사의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부른다. 회사와 직원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게 되면 불확실성의 통제 가능성은 높아지고, 불안의 수준은 낮아지게 된다.
 
또 기업은 성과 몰입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해 이를 강화해야 한다. 만약 고용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면, 이를 높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둘째, 다양한 인력의 조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동향 조사에서 ‘수년 내 은퇴하겠다’는 응답자는 2008년 8월 14%에서 12월 9%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조사 대상의 대부분은 은퇴 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경제위기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이 향후 10여 년에 걸쳐 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타워스페린의 생각이다. 베이비붐 세대, X세대, Y세대, 히피족, 여피족, 딩크족 등 각종 용어로 불리는 다양한 세대가 한 직장 안에 혼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경험과 역량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세대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나이 든 세대가 은퇴하지 않음으로써 다음 세대가 인사 적체 등의 고통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기업은 경험과 역량뿐만 아니라 생각과 생활 방식, 니즈(needs)가 다른 여러 세대를 어떻게 조화롭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런 관리의 차이가 기업의 향후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드러내야 한다. 필자는 ‘난세의 영웅’이란 바로 현재와 같은 위기의 시대에 진실하고, 정직하며, 전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영진을 위한 용어라고 말하고 싶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영진은 경제위기 속에서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being more visible and accessible) 것으로 나타났다.(그림4) 2008년 12월 조사에서는 8월 조사에서보다 경영진의 존재감을 실감하고(41%→46%), 리더의 솔직하고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만족하며(32%→37%), 리더들이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30%→36%)는 응답의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경영진에 대한 보상과 관련해서는 30% 미만의 직원들만이 ‘그들이 현재 수준의 보상을 받을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참고로 2008년 12월 조사에서 직원들의 45%는 현재 하고 있는 직무가 바뀌거나 없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응답했으며, 55%는 향후 자신의 수입이 정체되거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점에서 경영진은 위기 돌파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직원들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왜 이런 급여를 받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고통 분담을 경영진이 어떻게 자신에게 반영하고 있는지 명쾌하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 기업,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라
우리 기업들은 질적인 성숙과 경영상의 혁신으로 10여 년 전 외환위기를 무사히 극복해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직장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직원들의 불만과 함께 이전보다 충성심이 떨어진 그들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1980년대 미국 기업들은 직원들이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e)’에 시달려 일할 맛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겪었다. 당시 미국 기업의 직원들은 계속된 구조조정을 겪으며 회사에 대한 반감과 퇴직자에 대한 죄책감,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기업들은 1980년대 미국 기업들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생존자 증후군을 불러들였다.
 
최근 2, 3년간 열풍처럼 몰아친 펀 경영이나, 일하기 좋은 직장에 대한 갈구는 아마도 기업과 직원 모두가 당면한 상황을 개선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시련에 들게 됐다. 이번의 시련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가혹할지 모른다. 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10년 전의 일기를 다시 꺼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과 그 당시 행했던 일, 만들었던 제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이번에는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현지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행동도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인사조직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타워스페린 서울오피스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평가 보상 및 지적 자산 개발 분야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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