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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메타인지와 존중의 힘

구성원 존중이 집단지성 꽃 피운다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하라

박정열 | 364호 (2023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지난 세기 경영의 근간이었던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조직 역동의 문제를 선형적 방식으로 단순화했다는 한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혁신의 자유재량이 박탈당하기 일쑤였고 효율적 관리를 위한 위계 구조는 혁신 여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직원들의 의욕을 꺾어 놓고 말았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심화될수록 몰입, 창의, 공유에 기반한 현장의 집단지성이 더욱 필수적인데 이것들은 하나 같이 구성원들이 혁신의 주체가 돼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자기다움과 일이 연결되고 이를 통해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치며 존재감을 만끽하게 될 때 생긴다.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구성원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다. 이제 미래 조직의 번영은 구성원들의 ‘자기다움 존중’에서 그 동력을 찾아야 한다.



미국 클리블랜드 건강박물관에는 ‘노르마’라는 조각상이 있다. 산부인과 의사 로버트 L. 디킨슨이 조각가 아브람 벨스키와 합작해 만든 작품이다. 디킨슨이 1만5000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로부터 수집한 신체 치수 자료를 바탕으로 벨스키가 빚어낸 조각상이다. 디킨슨은 대규모 자료에서 산출해낸 평균값이 여성의 전형적 체격, 즉 여성의 정상 체격을 판단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돼 준다고 믿었다. 이것이 공개되자 체질인류학계는 노르마의 체구를 인체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칭했고 예술계는 노르마의 아름다움을 뛰어난 귀감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교육계는 노르마를 젊은 성인 여성의 이상적 외형의 표상으로 삼으며 그 이상형에서 벗어난 학생에게 운동을 요구했다. 결국에는 노르마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산정하고 노르마와 신체 지수가 근접한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를 개최하기까지 이른다. 가히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 할 만했다.

이후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이를 ‘평균적 인간’이란 개념으로 정리1 함으로써 이른바 ‘평균의 시대(Age of Average)’가 열렸다. 여기서 평균적 인간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각 개인의 독특함(unique)이 ‘오류’에 해당하고 평균적 인간을 ‘바람직한 정상’으로 간주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평균이 정상이 되고, 개개인이 오류가 되며, 과학이 그 정형화에 정당성을 각인시켜주는 ‘평균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이는 사물을 단순화하고 복잡한 인간을 정형화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충동이 과학적 정당성과 만난 합작품이다.

수학자였던 프란시스 골턴은 평균이 인간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과학적 토대를 이루기는 하나 평균적 인간이 이상향이라는 전제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그는 평균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정규분포상의 좌우 영역을 단순한 평균 이탈자로 동일시하지 않고 ‘우월층(Eminent)’과 ‘저능층(Imbecile)’으로 구분했다. 인간은 열등한 이들, 평범한 이들, 우월한 이들이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2 즉, 평균 이탈을 모두 오류로 봤던 기존 전제에서 벗어나 평균 미만 이탈자와 평균 초과 이탈자를 구분하고 평균 미만 이탈자를 저능 그룹, 평균 초과 이탈자를 우수 그룹이라 간주한 것이다. 당연히 이상향은 평균 언저리의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평균 초과 이탈자들이 된다. 이러한 전제는 평균이 신체 및 정신 건강, 성격, 경제적 지위 등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 이제 능력과 성과를 판단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믿음으로까지 확장됐다. 결국 케틀레와 골턴에 의해 정립된 평균과 계층이라는 두 개념은 현재 전 세계의 교육 시스템, 대다수의 채용 관행, 상당수 업무 평가 시스템 이면의 근간 원칙으로 작동하게 됐다. 이로 인해 수 세대에 걸쳐 부모들은 자녀가 평균 기준에 따라 우수 그룹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봐 초조해 하게 됐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이나 사회생활, 부의 축적, 경력 등이 평균에서 이탈할 때면(특히 아래쪽일 경우) 자연스레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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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연스럽게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계의 평균주의자였던 엔지니어 출신 프레더릭 테일러는 평균주의 개념에 표준화를 통한 효율 추구라는 실행 지침을 덧댔다. 비효율의 가장 큰 원인은 직원 각자가 자신의 생각과 방식대로 일하도록 방치하는 것에 있다고 전제하며 평균에 근간한 표준 시스템으로 이를 최소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조직은 표준 업무 시스템을 잘 만들고 직원들이 이에 잘 부합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가 남긴 이 잔재를 지우려 애쓰고 있지만 본질을 놓치고 헛심만 쓰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창의적 인재가 되라고 강조하지만 창의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회사에서 표준으로 지정하고 있으니 이를 아예 허용하지 않았던 과거보다 직원들이 느끼는 괴리감과 허탈함은 오히려 더 커졌다.4 다른 결과를 원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의 다름은 허용하지 않는 모순이 여전한 것이다. 많은 조직의 자충수이자 우울한 단면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어느덧 평균주의, 테일러주의와 함께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다. 그사이 우리는 3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이동했다. 3차 산업혁명 시대 일등 공신이었던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전례 없는 디지털화를 몰고 왔고 이는 사회 전반에 개별화(Individualism) 풍토와 다양성(Diversity) 증대를 태동시켰다. 이제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를 근간으로 한 3차 산업 시대 경영이 미래에도 조직 번영을 담보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VUCA 환경 심화될수록 현장의 실험과 집단지성이 필수

개별화 및 개인주의 경향은 평균주의에 기반한 기존 조직 효율 관리에 커다란 도전이다. 구성원 개개의 독특함을 일터에서 인정하겠다고 천명하는 순간 조직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고 이는 곧 관리 및 통제의 어려움과 비효율 증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고 예측을 불허하는 이른바 VUCA(Volatile Uncertain Complex Ambiguous) 환경이 심화될수록 현장에서 주체적 문제해결 및 창의적 변화관리자로서 일당백을 하는 구성원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터에서 구성원의 ‘몰입’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미래 조직 번영의 갈림길이라는 것이다. 갤럽의 2022년 글로벌 직장 보고서5 에 따르면 업무에 적극적으로 몰입하지 않는 직원들로 인한 회사의 생산성 손실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7조8000억 달러로 추산됐다. 이는 놀랍게도 2020년 기준 전 세계 GDP의 11%에 달하는 규모다. 그런가 하면 직원의 업무 몰입도가 높은 조직은 낮은 조직보다 업무 생산성이 18% 높고 직원 이직률은 43%가 낮다고 보고되고 있다. 직원의 업무 몰입이 회사 운영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체념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고 자신의 일과 여러 변화 상황 해결에 몰입하게 하려면 무엇을 살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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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에릭 아니시치는 5100회 이상 탐험에 나섰던 56개국 3만625명의 등반가에게서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는 고산 등반에 관해 지금껏 실행된 분석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연구원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 가지 이슈에 관심을 뒀다. ‘과연 권위와 서열이 재난의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줄일 것인가’였다.6 연구 결과, 권위와 서열이 강한 팀은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이 확인됐다. 단독 등반에서는 이런 발견이 적용되지 않았다. 권위와 이에 따른 계급 서열이 강한 팀들만 해당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계급 서열이 명확한 문화에서는 의사결정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전달되는 경향을 띠는데 이런 경우 변화하는 상황과 곧 닥칠 문제를 리더에게 경고하며 당당히 말할 가능성이 낮다. 그런데 고난도 등반에서는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환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환경이 갑자기 극적으로 바뀔 때는 그만큼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대응책을 빠르게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두 사람이 아닌 계급 사다리 내의 모든 구성원의 생각이 표출돼야 하고 관련 지식과 경험을 지닌 모든 사람이 문제해결의 주체자가 돼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강하게 고착된 계급 서열이 이런 토양을 억제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고난도 등반일수록 이처럼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더 커지기에 계급 서열이 강한 팀은 그만큼 사망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VUCA 시대는 고난도 등반과도 같은 상황이기에 생존과 번영의 열쇠는 실제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다. 즉 현장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문제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고 최적의 대응을 위해 아이디어를 연결, 재연결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이 바로 혁신의 연료인 것이다. 현장에서 혁신이 벌어지지 않고 각종 보고서에서만 회자된다면 경영층의 지적 유희에 그치게 되고 구성원의 피로도는 극대화된다.

혁신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로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디어는 상호 연결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이디어로 진전된다. 아이디어 공유를 용이하게 하는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경향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단순히 가능성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몇 곱절로 늘어나기 때문이다.”7

여기서 핵심은 공유에 있다. 공유의 속도와 질은 혁신과 직결돼 있다. 이는 인류사를 통해서도 전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증기기관은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이자 발명가였던 헤론(Heron)에 의해 이미 1세기에 발명됐지만 이 발명이 바퀴 제작자에게 공유돼 증기기관차가 발명되기까지는 거의 1700년이 걸렸다. 증기기관 발명에 관한 소식이 너무나 천천히, 너무나 적은 소수의 사람에게 공유된 탓에 어렵게 발생한 혁신이 개선되거나 재결합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기 때문이다. 사회적, 물리적, 도덕적으로 연결성이 부족한 구조라면 이렇듯 혁신은 필연적으로 장기간 고립되거나 고사하고 만다.

인류학자 조지프 헨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 교수와 진화론자 마이클 무수크리시나 런던정경대 교수는 혁신과 관련해 천재와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범재 두 집단을 비교했다.8 연구 결과, 천재는 18%만 혁신을 이루는데 그중 절반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달리 네트워크를 활용한 범재들은 99.9%가 혁신을 해냈는데 이 중 0.1%만 단독으로 해결했을 뿐 대다수는 네트워크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이뤘음이 확인됐다. 더불어 이들은 자신의 혁신 결과를 다시 네트워크에 공유하며 그 혁신을 개선할 기회를 얻으려 했다. 우리 주변에는 천재보다 범재가 많다. 당연히 집단 내 사람들이 성역 없이 상호 자유롭게 서로 연결돼 있을수록 혁신은 더욱 충만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는 오랜 기간 여성이 인류의 아이디어 네트워크, 이른바 ‘생각 리더십(Thought Leadership)’에서 배제돼 왔음을 지적했다. 여성들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불공평은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당연히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지만 사실 인류 전체의 창의성 또한 크게 감소시켰음을 지적하고 있다. 9 인구 절반에서 나올 수 있었던 통찰, 다양한 관점과 정보 및 발견들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셈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류 아이디어 네트워크에 보다 일찍이 여성들이 포함됐더라면 그 속도는 지금보다 가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빨랐을지 모른다. 인류는 오래도록 반쪽짜리 집단지성만 누려 온 셈이다.

집단지성을 만드는 비법, 구성원 존중

앞서 폴 로머가 언급한 바대로 결국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키울 때 나타나는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공유 과정을 ‘정보 넘침(Information spillover)’이라 한다. 조지프 헨릭 교수와 마이클 무수크리시나 교수는 이렇게 개별 두뇌들이 연결된 네트워크 전체를 ‘집단 두뇌(Collective brain)’라고 명명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보가 강물처럼 흐르는 공유 풍토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평균주의 모델에 충실해 온 업종에 속해 있지만 구성원의 독특함을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영함으로써 평균주의 모델 방식보다 더 뛰어나거나 적어도 그에 못지않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이단아들이 늘고 있다. 이 중 전통 소매기업이면서도 구성원 존중과 집단지성 창출을 통해 혁신을 일상화하고 있는 코스트코를 만나 시사점을 얻어 보자.

많은 전문가가 코스트코의 성공 비결을 업계 관행(25~30%)과 달랐던 15% 마진 상한제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100% 환불제 등을 꼽는다. 중요한 경영 전략임에 틀림없지만 외부의 이러한 시각과 달리 정작 코스트코 스스로는 이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성공 요인이 따로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철학이다. 코스트코에는 ‘고객들에게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가치를 사도록 해야 한다’라는 원칙이 있는데 코스트코 리더들은 이 원칙을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해 핵심 방향 하나에 철저히 집중했다. 그것은 바로 ‘직원에 대한 존중’이었다. 코스트코는 취업 사이트 글래스도어가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최고 기업’에 6년 연속으로 뽑혔고 선정을 시작한 2009년 이래 지금까지 총 8회나 뽑혔다.10 직원들이 이 대형 소매업체를 칭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들을 진정으로 존중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리더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구성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코스트코의 창업자 짐 시네갈은 재임 중 여러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코스트코의 경영 철학을 언급했다.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 기업 운영의 핵심입니다. 많은 기업이 구성원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지만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PR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직원들을 존중하고 각자의 강점이 발휘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성장하도록 도우면 뛰어난 성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11

코스트코는 직원들이 스스로 경력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무엇이든 회사에 유익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기술을 제안하면 그 기술을 키우도록 돕고 코스트코 내 비어 있는 자리에 가서 일을 해보도록 장려한다. 심지어 그 자리가 현재의 직종과 성격이 크게 다른 부서의 자리라 해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직원의 자율성을 위한 이러한 노력이 더 효과를 발하도록 조직 내에서 파격적 이동과 승진을 기꺼이 감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리자급인 코스트코 주임 가운데 70% 이상은 카트 정리 직원이나 계산대 직원으로 입사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코스트코는 명문대 졸업생을 고집하지 않고 각 지역 대학 재학생들을 파트타임으로 모집하는 채용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직원 이해의 시간이 충분할수록 그들이 입사했을 시 더 적합한 부문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고 직원들은 심리적 안전감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회사의 문제에 주인 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채용이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은 구성원들을 회사와 더 친밀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직원에 대한 존중감은 미국 유통업계 최고의 대우로도 표현되고 있다. 2023년 2월1일 현재 업계 1위 월마트가 최저 시급을 3차에 걸친 난항 끝에 어렵게 14달러로 인상한 데 비해 코스트코는 이미 21년부터 17달러를 지급해 오고 있다. 급여뿐만 아니라 복지 수준도 최고다. 미국 유통업계에서 의료보험을 제공받는 종업원 비율은 평균 60%에 불과하지만 코스트코는 90%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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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의 직원 존중 철학은 결과로도 연결된다. 이 회사의 2021년 매출액은 1920억 달러(약 220조 원, 한국 GDP의 10.7%)이며 종업원은 28만8000명이다. 2015년 이후 월마트에 이어서 세계 제2위의 유통 기업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으며 포천 500대 기업 12위에 올라 있다. 특별히 월마트가 사업 실패를 선언하고 맥없이 떠났던 한국에서 1위를 점하고 있으며 국내 16개 매장 중 양재점은 글로벌 829개 매장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1985년 12월5일 코스트코는 주당 10달러로 나스닥에 상장됐는데 2023년 2월1일 종가 기준 517.91달러에 이른다. 코스트코는 무상증자를 1991년에 100%, 1992년에 50%를 실시했기에 상장 시점 보유한 주식 1주(무상증자 이후 3주)를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주당 매입 가격은 3.33달러,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투자 수익률은 무려 1만5594%에 이른다. 이 수익률은 지난 37년 동안 주가가 매년 약 15% 상승해야 나올 수 있다. 코스트코의 기업 가치 성장은 실로 역대급이라 하겠다. 평균주의 모델을 충실히 따른 전통 소매업에서도 구성원의 독특함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경영 철학으로의 전이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고무적 사례다.

존중 토양의 실체, 자기다움 연결

그렇다면 이러한 존중 토양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존중의 사전적 의미가 ‘높여서 귀중하게 대하는 것’이니 직급을 막론하고 구성원에게 ‘님’을 붙여 호칭하고 반말 없이 예의를 갖춰 소통하면 되지 않을까? 아쉽게도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다. 존중의 물꼬를 트는 계기나 출발은 될지 모르나 빙산의 일각이다. 이른바 이런 ‘예의 바른 문화’는 ‘존중 문화’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존중이라는 의미의 영어 ‘Respect’는 라틴어 ‘Respectus’에서 연유한다. ‘Re’는 ‘되돌아’ ‘반복해서’의 의미를, 어원인 ‘Specere’는 ‘본다’를 의미한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반추한다’ ‘본질적으로 들여다본다’ ‘깊이 성찰한다’는 것을 말한다. 종합해 보면 존중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본질적으로 성찰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 즉 상대를 높여서 귀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상대를 본질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에 있다. 직원을 존중하려면, 즉 직원을 높여서 귀중하게 대하려면 직원 하나하나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말한다. 고객을 존중하려면, 다시 말해 고객을 높여 귀중하게 대하려면 고객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상대를 본질적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로라 로버츠 미시간대 교수는12 ‘최고의 자기 모습(Best Self Portrait)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자기 모습’은 최고의 상태에서 자신이 보이는 자질이나 특성에 대한 인지적 표현인데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행한 행동이 최고의 자기 모습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동료들이 최고의 내 모습을 알수록 직장에서 본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최고의 자기 모습을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드러내고 일과 연결시켜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때 존중받는 느낌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존중해 주는 커뮤니티에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던가를 잠시 떠올려 본다면 상호 존중이 만들어 낼 생산적 다이내믹스와 활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최고의 자기 모습’의 실체는 무엇일까? 앞서 로버츠 교수는 자질이나 특성이 최고조로 드러난 것이라 했는데 최고의 자기 모습을 끌어내고 견지하려면 이 자질이나 특성을 무엇으로 봐야 할지 추가로 살필 필요가 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필자는 혁신가들에게 집중했다. 이들이야말로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현한 대표 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혁신가들의 스토리를 개인-환경 상호작용 연구 관점으로 분석해 공통된 행동 습관을 확인했고 이 행동 습관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찾아 가설적으로 모델링했다. 13 그 결과, ① 이들은 여러 자질이나 특성 가운데 특별히 자신의 흥미(호기심이 생기는 것), 강점(잘하는 것), 지향점(추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②이들은 단순히 흥미, 강점, 지향점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들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세상의 필요점과 집요할 정도로 긴밀하고 지속적이며 일관되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행동 습관은 결국 세상에 없던 차이를 만들고 그 가치에 대해 공감을 얻는 선순환 고리를 이루게 했다. 필자는 이를 모델링한 후 범재들을 대상으로 질적 조사를 통해 시뮬레이션했다. 혁신가를 통해 발견된 것이 일반화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범재들로부터는 혁신 스토리가 아닌 성공 스토리를 분석했다. 혁신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범재는 없다고 했다. 혁신이라 하면 에디슨, 스티브 잡스 등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범재들의 삶에도 분명 혁신의 모멘텀이 있다. 다만 혁신의 크기와 파급력 측면에서 혁신가들의 그것과 차이 날 뿐이다. 범재들의 혁신 사례는 그들의 성공 스토리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범재들의 성공 스토리 역시 개인-환경 상호작용 연구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그들의 성공 스토리 속에는 자신의 흥미, 강점, 지향점이 물밑에서 작동하고 있었고 이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이 세상의 필요점에 대응하는 데 동원됐다. 그리고 그 연계 정도가 공고할수록, 다시 말해 환경에 의해 흥미, 강점, 지향점을 타협하거나 양보하거나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더 극대화하면서 주변의 지지와 지원을 끌어올 경우 성공을 일궈낼 확률이 더 높았다.14

이 세 가지를 필자는 ‘자기다움’이라고 명명했다. 자기다움을 구성하는 흥미, 강점, 지향점은 우리가 삶에서 유쾌한 변화를 주체적으로 이뤄가도록 만들어 주는 강력한 드라이버(Driver)다. 나의 호기심 영역이 일의 단초가 되고, 잘하는 것을 통해 성과를 내며, 소중히 가꾸어 가고 있는 가치와 신념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으로 연결됐을 때 우리는 열정과 몰입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일터에서의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성원의 자기다움이 일과 연결됨으로써 조직에서 활성화된다면 구성원은 더 큰 동기를 지니고 열정적으로 일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조직에서 일하는 모습은 이 방식에 맞춰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구현된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100년이 넘도록 평균주의가 표준으로 자리 잡아온 제조업계에서 각 구성원의 자기다움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새롭고 탁월한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식품 제조 업체 모닝스타다. 1970년 크리스 루퍼가 설립한 모닝스타는 트럭 한 대로 토마토를 운반하는 작은 회사로 출발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주 우들랜드에 본사를 두고 200대가 넘는 트럭과 수천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에 연간 소비되는 토마토 제품의 40%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토마토 가공 회사로 도약했다. 캠벨의 토마토 수프, 라구의 스파게티 소스, 하인즈의 케첩을 샀다면 모닝스타의 제품을 원료로 한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모닝스타의 경영은 당연히 테일러주의와 평균주의 모델에 따를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다양한 곳에 퍼져 있는 토마토 산지와 공장들에서 매년 수억 t에 이르는 토마토를 가공 처리하는 복잡한 업무 처리 과정을 밟을 텐데 그럼에도 업계 최저의 가격을 지켜갈 수 있는 이유는 효율적인 운영이 고도화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닝스타에는 효율을 관리할 관리자가 한 명도 없다. 당연히 위계 서열 또한 전무하다. 모든 것이 구성원 개인의 자율 관리라는 경영 철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어떻게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을까? 모닝스타에는 직원 개개인의 자기다움에 따라 자율과 책임이 최적화된 ‘개인별 임무 기술서’라는 것이 있다.15

통상적으로 조직들이 사용하고 있는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가 해당 직무 관련 회사의 요구 역량과 업무 수행 규칙 등을 세세히 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모닝스타의 개인별 임무 기술서는 그 일을 수행하는 주체인 직원이 일 및 동료들과 어떻게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유도하고 있다. 각 직원은 자신의 임무 기술서를 작성해서 회사의 전반적 임무에 어떤 기여를 할 계획인지 설명하고 포부와 목표도 밝힌다. 여기에는 자신이 어떤 특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맡은 업무에 어떻게 기여하게 될지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해당 직원의 목표와 활동에 영향을 받을 만한 모든 직원이 그 기술서에 서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동료 모두의 승인이 있어야 비로소 업무 수행과 관련된 자원 사용이 가능해진다. 직원들은 상사가 아닌 자신을 믿어 준 관련 동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책임감을 느끼며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모닝스타의 임시직 직원인 그린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린은 일명 피니셔(Finsher)라는 역할을 맡게 됐다. 커다란 금속 원통 안에 토마토를 넣고 회전시켜 토마토즙의 손실을 최대한 낮추면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맡은 일이 곧 지루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입사 첫날 받은 안내가 다른 각도에서 업무를 보게 했다. 즉, 기존 업무를 촉진할 수 있으면 또한 동료들로부터 좋은 생각이라는 공감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원하는 대로 업무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린은 곧 피니셔의 세팅을 다른 식으로 바꾸면 토마토 껍질을 더 효율적으로 분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잘해왔던 이전 경험과 자신의 강점들, 그리고 이를 활용해 실험을 해볼 만한 방법을 상세히 임무기술서에 기입했다. 갓 입사한 공장 임시직이 매일매일의 공장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값비싼 장비에 독자적으로 실험을 감행한다면 대부분의 회사에선 해고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린은 자신의 피니셔 사용법 개선안에 영향을 받을 만한 동료 모두에게 자신의 의견과 실험 계획을 낱낱이 밝혔다. 자신의 강점과 그간의 경험도 제시하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결국 지지를 얻어 냈다. 몇 개월에 걸쳐 여러 대의 피니셔를 서로 다른 세팅으로 돌려보며 그 결과를 기록한 그린은 실험 결과, 결국 효율성이 25% 향상되는 한 가지 새로운 세팅 방식을 확인했다. 회사는 당장 모든 기계를 새로운 세팅 방식대로 조정했다. 얼마 뒤 그린은 정직원으로 채용됐고 업무 속에서 즐거운 탐색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

물론 모든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또 관련 동료 모두의 지지를 얻어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모닝스타는 직원들이 이런 탐색과 실험을 통해 스스로를 일과 공고히 연결시키고 주변 동료들과 강하게 연대하도록 한다. 정보가 조직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동되고 상호 긴밀히 소통되기에 집단지성 발휘를 위해 꼭 필요한 공유와 공감, 연결이 만연하게 된다. 이러한 여정 내내 구성원 개인은 조직 내에서 자기다움을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깊어지고 그 결과 조직과의 동일시도 높아진다.

코스트코와 모닝스타의 구성원들이 조직으로부터 받는 공통된 느낌은 무엇일까? 바로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구성원 하나하나에 진정성 있게 초점을 맞추고 자기다움이 일과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며 관련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존중받는 직원들은 마치 그 일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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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함정, 보상 통제의 올무

필자는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가 실패작이라는 주제넘는 주장을 펴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평균주의로 인해 기업들은 번창을 누렸고 소비자들은 보다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게 됐다. 또 대학 지원자들과 구직자들이 평균화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족벌주의와 연고주의가 줄어든 한편 불리한 배경 출신의 학생들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출세 기회가 부여됐다. 테일러주의는 사회 전반에 걸쳐 임금을 인상시켰는데 이는 어쩌면 지난 20세기에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더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했는지 모른다. 이렇듯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는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비교적 안정적이고 부유한 사회적 기반을 가져다줬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한편에서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존엄을 상실한 것이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기다움이란 특성은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 앞에 놓인 짐이거나 장애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한눈팔기쯤으로 전락해버렸다. 기업, 학교, 정치 모든 분야에서 하나같이 개개인의 자기다움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현실은 누가 봐도 개인보다 평균에 기반한 시스템이 중요하게 설정돼 있는 상황이다. 회사 직원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대상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일한다. 학생들은 미래 꿈과 희망을 절대 이루지 못할 듯한 불안감을 안겨주는 시험 결과나 성적을 받아 든다. 성공에 이르는 바른길은 한 가지뿐이라는 식의 말에 귀에는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대안적 진로를 따르면 길을 잘못 디뎠다거나 순진하다거나 그냥 틀렸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뛰어난 역량 발휘가 시스템에 대한 순응보다 우선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시스템이 더 방대해지고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그 안의 부속품이 아닌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더 갈구하게 돼 있다. 이제 우리는 전체 안에서 자신의 자기다움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고유한 독특함, 즉 흥미, 강점, 지향점이 일터에서 동력으로 발휘돼 성과를 내며 성장할 기회를 얻기 바란다. 개별화, 개인주의 경향은 일터가 생계에 필요한 것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곳을 넘어 이제 자기애를 건강하게 충족시키고 자신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가며 세상과 의미 있는 관계를 극대화해 가는 기회의 장이 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왜 굳이 모여서 일하는가’ ‘나는 일하면서 존재감을 만끽하고 행복한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직장인들은 이른바 ‘일터에서 건강한 나 마주하기’ 개인 프로젝트를 착수하기 시작했다. 개별화 경향이 심화될수록 이 프로젝트는 이전보다 더 일하는 핵심 이유가 될 것이다. 미래 조직 리더들의 역할은 구성원들의 이 개인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이를 일과 공고히 연결하는 것으로 빠르게 옮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 변화에 성공한다면 그 조직과 리더들은 앞으로 더 척박해질 슈퍼 VUCA 상황에서도 여전히 혁신의 주체가 되는 구성원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경영자들에게 이 제안을 하면 대부분 동의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 실행에는 인색하다. 21세기의 세 번째 10년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 조직이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에 기반한 시스템이 구성원 개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을 놓지 못한 채 평균에 얼마나 근접한가에 따라, 또는 평균을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하고 있다. 왜일까?

메릴랜드대 미셀 갤펀드 교수의 연구16 에 따르면 인간은 불확실성과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싫어한다.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종종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지배적인 명목상 최고 리더(figure head) 또는 그에 상응하는 그 무엇에게 신뢰를 보내며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애쓴다. 이를 ‘보상 통제(Compensatory Control)’라 부른다. 외부 환경이나 경제적 불확실성에 직면하면 우리는 기대고 의존할 강력한 리더 혹은 시스템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통제 상실에 대한 안정감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험한 역설에 직면한다. 환경이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변동성이 크고 애매모호(VUCA)한 때는 생존을 위해 문제가 일어나는 현장의 집단지성이 극대화되고 다양한 소리가 모여야 하는 시기다. 즉, 권위와 통제 기반의 기존 평균주의 시스템이 해체되고 구성원의 자기다움에 근간한 새로운 경영 철학이 재정립돼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껏 한 세기를 의존했던 평균주의 모델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통제 상실감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 통제 상실감 때문에 우리는 기존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가 제공하는 ‘미심쩍은 편안함’을 미래에도 비판 없이 묵인하고 받아들이는 악수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로에 선 우리의 자화상은 마치 레밍 딜레마의 모습을 닮아 있다. 건너편으로 뛸 것인가 아니면 가만히 있다 등 떠밀려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인가?



1 메슈 사이드(2022). 다이버시티 파워. 위즈덤하우스.
2 박정열(2020).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 한국경제.
3 박정열. 임플로이언서 시대의 휴탈리티 리더십. DBR 340호 Issue1 SR3.
4 이성봉. 코스트코 성장의 비밀. 포브스코리아 202205호 172.
5 토드 로즈(2018).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
6 Adolphe Quetelet(1869). A Treatise on Man and the Development of his Faculties. Edinburgh: William and Robert Chambers, chap. 1.
7 Carol Tavris(1993). Mismeasure of Woman: Why Women Are Not the Better Sex, the Inferior Sex, or the Opposite Sex. Touchstone.
8 Deborah Norvile(2009). The Power of Respect. Thomas Nelson, Inc.
9 Michael Bulmer(2004). Francis Galton. Baltimore: JHU Press, 175.
10 Eric M. Anicich, Roderick I. Swaab, and Adam D. Galinsky(2015). Hierarchical cultural values predict success and mortality in high-stakes teams. PNAS, January 20, 112 (5) 1338-1343.
11 Gary Hamel(2011). First, Let’s Fire All the Managers. Harvard Business Review, December.
12 Joseph Henrich & Michael Muthukrishna(2016). Innovation in the Collective Brain. Philosophical Transaction of the Royal Society. 19th. March.
13 L. M. Roberts et al.(2005). Composing the Reflected Best-Self Portrait : Building Pathways for Becoming Extraordinary in Work Organization.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30(2005): 712-736.
14 Michele J. Gelfand, et al.(2011). Differences Between Tight and Loose Cultures: A 33-Nation Study. Science 332, 1100.
15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2 Report : The Voice of the World’s Employees by Gallup.
16 Teresa M. Amabile & Steven J. Kramer(2011). The Progress Principle.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 박정열 박정열 |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LG경영개발원을 거쳐 삼정KPMG에서 Learning & Development Center Director를 지냈다. 논문 ‘지식근로자의 일터학습민첩성 진단도구 개발’로 한국인력개발학회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휴탈리티: 미래 인재의 조건(저녁달, 2023)』이 있다.
    soulpark77@hyund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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