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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팬데믹 이후의 공연예술계

“영상으로 표현한 공연은 영상일 뿐”
라이브를 뛰어넘는 매력 요소 갖춰야

지혜원 | 310호 (2020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물리적으로 ‘지금, 이곳(here and now)’에 존재함으로써 완성되는 공연예술은 비대면 시대에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해외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이 불가피한 공연 무대를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제작 여건과 유통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됐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공연의 영상화 흐름은 코로나 전후로 명확히 나뉜다. 코로나 이전에는 라이브 무대를 단순 녹화해 집단 상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코로나 이후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스트리밍 유료화와 양식의 확장이 본격화한 것이다. 공연과 미디어의 접점을 찾는 노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 시장 지위를 확보하려면 기획 단계부터 매체의 특성과 함께 소비자, 즉 고객의 니즈에 주목해야 한다.



비대면 시대 라이브 공연의 존재론적 위기

대다수의 산업이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지만 라이브 무대를 매개로 퍼포머와 관객이 같은 물리적 시공간, 즉 ‘지금, 이곳(here and now)’에 존재함으로써 완성되는 공연예술 분야의 타격은 특히 컸다. 2020년 2월 코로나 대응 단계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된 이후 다수의 공연이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2020년 5월부터 조심스레 공연장의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8월, 다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면서 ‘객석 띄어 앉기’가 의무화됐다. 규모와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대극장 공연의 경우 객석 점유율이 70% 안팎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이 같은 국내 공연계의 구조적 현실에서 한 칸 띄어 앉기 의무화는 공연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11월 이후 의무화 조치는 잠정적으로 해제됐으나 코로나 이전같이 안정적 운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1∼8월 공연예술 분야의 피해액은 1967억 원에 달하며1 객석 띄어 앉기가 시행됐던 9월 이후를 합산하면 그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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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간신히라도 라이브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국내에 비해 해외 공연계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세계 최대의 공연 시장인 브로드웨이는 2020년 3월 모든 공연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수차례 기간을 연장한 끝에 최소 2021년 5월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뉴욕을 비롯한 미국 공연계 전체가 라이브 무대의 존재론적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미국의 공연 전문지 ‘아메리칸 시어터(American Theatre)’가 2020년 9월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미국 내 60개 비영리 공연예술 단체의 약 3분의 1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21년 전면적인 운영 중단을 예상한다고 응답했다. 최대한 폐업을 피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삭감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예상이다. 런던 웨스트앤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공연이 중단된 상태이며 급기야 1986년 개막 이래 34년 가까이 공연을 지속해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마저도 기약 없는 휴지기를 선택했다. 스위스 베르비에 음악축제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전 세계 유명 페스티벌도 취소되거나 프로그램이 축소됐다. 고사 위기에 놓인 라이브 무대는 온라인 비대면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며 대안 찾기에 나섰지만 영상 매체로 재매개된 양식으로는 공연예술의 존재론적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해온 공연예술이 미디어와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라짐(disappearance)’ 덕분이다. 즉,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경험이라는 공연예술의 본질에서 기인한 아우라(aura)와 희소성만큼은 대체될 수 없는 가치였다. 동시에 퍼포머와 관객이 ‘지금, 이곳’의 현장에서 공유하는 고전적 형태의 ‘라이브니스(liveness)’는 그 어떤 미디어보다도 즉각적이고 생생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복제를 통한 대량 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영상 미디어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과 달리 ‘비용 질병(cost disease)’이라는 고질적 한계를 안고 있는 공연예술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탄탄한 소비층을 유지하며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매체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비용 질병이란 윌리엄 보몰(William J. Baumol)과 윌리엄 보웬(William G. Bowen)이 1966년 발행한 저서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Performing Arts: The Economic Dilemma)』에서 공연예술의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개념이다. 한마디로, 기술 진보를 통해 생산성을 쉽게 높일 수 있는 제조업과 달리 공연예술은 노동집약적인 대인 서비스 산업으로서 ‘생산성의 지체(productivity lag)’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보몰과 보웬에 따르면 제조업에서는 노동자가 원재료와 완성품의 매개체인 반면 공연자는 공연 활동을 통해 그 자체로 하나의 소비재가 된다. 따라서 기술의 발전과 관계없이 공연예술의 작업 방식은 실질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산성의 지체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 종사자들의 인건비는 다른 경제적인 여건과 맞물려 상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 단위당 비용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연 단체는 비용이 사업 소득을 초과해 늘 재정적인 긴장 속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의 존재론적 가치이기도 한 일회성과 희소성이 경제 논리로는 존재의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비해 공연예술의 피해가 특히 컸던 것도 바로 이런 ‘라이브’ 속성에 내재된 고질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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