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성폭력 사건은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정당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그런데 유독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기업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쉬쉬하거나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성급한 조치는 피해자를 오히려 숨어 버리게 만든다. 또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억울한 가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체계적 초기 대응이 키포인트현대 기업에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는 익숙한 개념이다. 자연재해, 질병, 전쟁과 정치 변동, 재정 위기, 영업 비밀 누설, 공금횡령 등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직원 간의 괴롭힘, 특히 성희롱이라는 행위가 기업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 요인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성희롱 사건이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을 기업들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 내에선 여전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정확히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응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게 되면 조직 내 사건들은 결국 더욱더 음지로 숨어 버리게 된다.
성희롱 사건을 잘 대처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초기 대응이다. 수차례 피해자들이 호소했음에도 회사가 무시할 때 피해자들은 외부로 사건을 끌고 나간다. 심한 경우, 성희롱을 문제 삼은 사람을 색출하려는 기업도 있다. 일시적으로는 이런 강압적인 태도가 먹힐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회사도 통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원하는 조치는 무엇일까. 관련 전문가들은 보통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한다.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사태가 극단으로 치달아 자신의 소중한 직장과 동료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와 평소에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나 가해자가 직장 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판단하면 사과를 포함한 일절의 접촉도 원치 않고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소 가해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을 때라도 회사와 가해자의 태도에 따라 피해자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회사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피해자를 오히려 괴롭히거나, 또는 진정성 있는 방식이나 내용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회사와 가해자를 상대로 강력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어려움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초기에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조치를 하는 기업 내 매뉴얼과 이를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 내 문화가 조성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사건 초기, 피해자들이 대부분 직속상관에게 관련 사실을 털어놓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관리자들이 이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가해자에게 경고 조치를 하고, 당사자에게 사과 조치를 하도록 유도해야 된다. 요즘 30∼40대 직원들은 이런 사건들이 매우 중요하고, 빠르게 조치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임원급 등 연차가 높은 직원들 가운데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뭐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나, 분위기 좋게 하려다 ‘오버’한 거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회유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경우 후속 조치도 지지부진하게 전개된다.
만약 성폭력 피해가 심각해 관리자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즉시 관련 문제를 조사하는 담당 조직으로 보고해야 한다. 보통 성폭력 관련 사건은 감사팀이나 인사팀에서 조사를 한다. 조사는 사실 청취, 관련 증거 채취, 가해자 조사, 조치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그림 1)
조직의 상황에 따라 인사관리팀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을 맡는 경우가 있는데 필자는 감사팀과 같이 회사 내 문제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부서에서 담당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사안에 집중해 조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사팀에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떤 인사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수사를 한 후 판결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초동 대응은 우선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직급과 가치관이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