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의 공통점은 ‘권위주의적’ 리더라는 점이다. 이 3국 정상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이번 코로나19 상황에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보를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반면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는 코로나19 상황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의 상황 인식을 공유하며 침착하게 대처해 국민들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위기 상황에 필요한 리더의 덕목은 ‘카리스마’가 아니다. 충분한 설명과 정보공유를 통해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완벽 추구’ 리더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함께 헤쳐 나갈 의지가 있는 ‘문제해결형’ 리더가 필요하다. “왜 당신이 리드해야 하는가? (Why should anyone be led by you?)”
런던경영대학원의 랍 거피(Rob Goffee)와 가레스 존스(Gareth Jones)가 2000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글의 도발적인 제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에 들어선 지금, 많은 사람이 리더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험난한 시기에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당신을 믿어도 되는가?’ 팔로워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을 따라도 될 것인지, 아니면 따르는 것을 중단해야 할지를 마음으로 가늠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를 둘러싸고 각국의 정상들이 보인 대처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위기 상황에 어떤 리더십이 효과적일지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먼저, 각국의 스트롱맨(권위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의 대처 방식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스트롱맨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외부에서 적을 찾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2월 말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위기에 대해 “(야당이 퍼뜨리는) 정치적 사기”라고 했다. 3월20일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askforce)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트럼프는 연설문에 적힌 ‘코로나(Corona)’라는 단어를 지우고 펜으로 이를 ‘중국(Chinese)’이라고 고쳐 적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중국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좀 더 일찍 우리에게 말해줬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했을 때까지 우리는 몰랐다”고 전했다. 이는 문제를 외부화하고 자신과 거리를 두어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3월13일에는 검사 키트 배포 지연 등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지적에 “나는 전혀 책임이 없다”라며 책임을 외부로 떠넘겼다. CNN은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좌우명과 비교하며 트럼프를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외부의 적을 공격하면서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나 일본 아베 총리도 비슷하다. 특히 중국은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12일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미군이 후베이성 우한에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 등 관영 언론 역시 ‘독감 환자가 대거 발생한 미국이 코로나19 발원지일 수 있다’는 주장을 연일 설파했다. 아베 정권도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명분으로 3월5일 단행한 전격적인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가 국내 정치 위기 및 외교 실패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았다. 벚꽃 스캔들, 카지노 스캔들 등 각종 비리,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10월 전후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한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의 은폐를 통해 상황을 통제하려 했던 정황도 포착됐다. 이로 인해 자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들 국가와 정상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반면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국민에게 피해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고 차분한 대응을 호소했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 3월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영상을 올려 “확산을 막는 것이 더는 어렵다”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더 확산되면 정부는 접근 방식을 달리할 것이고, 그 모든 단계를 알릴 것이므로 공황 상태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충분한 생필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통조림, 화장품 등을 비축할 필요가 없다. 이번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단결되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자”고 호소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총리의 호소 이후 사재기 현상이 잦아들었다”고 전했다. 『Twenty-First Century Plague: The story of SARS』의 저자이자 세계보건기구(WHO)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토마스 에이브러햄은 “리 총리의 연설은 싱가포르 국민들이 정부의 능력과 투명성에 높은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에이브러햄은 “리 총리는 어떤 사실도 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나빠질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팔로워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리셴룽 총리가 보여준 투명한 소통을 기대한다. 리더가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유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팔로워들은 안심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시진핑 주석이나 아베 총리, 혹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리더가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거나 정보를 은폐하려는 모습을 발견하면 구성원들은 불안해지고 믿을 만한 정보를 찾아 요동하게 된다. 스탠퍼드대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교수는 저서 『굿보스, 배드보스(Good Boss, Bad Boss)』에서 굿보스는 괴로운 사태가 언제 어떻게 전개될지 알리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했다. 리더의 이러한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괴로운 상황이 다가오는 순간을 예측할 수 있게 하고 이러한 예측 가능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상당 부분 경감시킨다.
이경민kmlee@mindroute.co.kr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