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힙스터는 ‘거부’가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저항하는 집단이다. 이런 힙스터는 태생부터 모순점을 갖고 있다. 다 같은 것, 그저 주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도리어 하나의 모습을 갖게 된다. 획일적인 것을 거부했지만, 결국 ‘힙스터스러움’을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몇 가지 아이템으로 수렴한다. 이 중에서 한국의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은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기보다 ‘몇 가지 아이템’과 ‘스타일’로 자신의 ‘힙함’을 드러낸다. 역설적으로 여기에 비즈니스가 들어갈 틈새가 있다. ‘불편한 식당’ ‘벼룩시장’ ‘디지로그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소비 성향을 추적하고 현실주의자 힙스터를 추종하는 힙스터 추종자들의 트렌드를 예측한다면 기업은 지속적인 틈새시장, 작지만 영향력 있는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트렌드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힙스터(Hipster)’의 이미지를 대강이나마 그릴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나 망원동, 밴드 ‘혁오’, 수제 맥주, 음악 페스티벌, 아이슬란드 여행, 무인양품, 단골 동네 술집.
그러나 막상 힙스터가 누구인지 문장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힙(hip)’한 사람을 두고 힙스터라고 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이마저도 애매하고 불분명하다. 마치 2000년대 한창 유행했던 ‘쿨(cool)’처럼 ‘힙스터’ 역시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처럼 보인다.
힙스터는 역사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비주류, 반문화(counter-culture)를 상징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문화사적으로는 1960년대 히피 집단의 어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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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힙스터란 흑인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는 백인 중산층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재즈를 광적으로 즐기던 청년들은 1950년대에 들어서 ‘비트닉(beatnik)’이라는 집단을 구성한다.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나 샌프란시스코 헤이트애시베리 구역에 모여 살던 비트닉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방랑자 문학인’이다. 주류(mainstream)의 질서와 도덕에 반발해 모인 문학청년들이었다.
비트닉의 가장 주요한 정서는 주류에 대한 분노, 저항의식과 동시에 지니고 있는 패배의식, 허무주의, 비관주의였다. 이것은 1960년대 히피부터 펑크와 레게, 록과 힙합으로 이어진 하위문화(subcultures)의 주된 정서이기도 하다. 근 수십 년 동안 주류에 대한 대항으로 나타난 하위문화에는 기성세대의 안정된 삶과 주류사회의 보수적인 관념에 저항하는 방탕하고 반항적인 청년의식이 깃들어 있다. 수없이 반복된 세대 간 갈등의 원형이 1940년대 힙스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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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18년의 힙스터에게서는 그 반항적인 모습을 찾기 어렵다. 힙스터가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힙스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블루보틀 커피를 찾고 싶어 하는 이유, 동네 작은 식당에서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이유에는 대기업이 잠식한 소비시장에 대한 저항이 포함돼 있다.
다만 이 저항은 결코 히피스럽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온순하다. 최근 십여 년간 힙스터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해 온 미국에서는 힙스터라는 집단을 아예 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힙스터에 주의하라’라는 아티클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힙스터 집단과 청년 하위문화로서의 환경주의와 반자본주의에 대한 오랜 열망 사이에 여전히 연결고리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확실히 이런 것들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대중음악의 하위문화로 섞여 들어갔죠. … 여러분은 힙스터 문화와 반자본주의자와 환경주의자 간에 애정이, 순수한 애정이 남아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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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판을 받게 된 이유는 최근 힙스터들의 행동양식이 그동안의 하위문화 집단과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히피는 전쟁을 반대하면서 안정된 집을 박차고 나가 떠돌이 생활을 했다. 펑크족은 악기를 때려 부술 정도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 래퍼들은 서로를 욕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며 자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힙스터는 다르다.힙스터가 핵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시스템이다. 대량 생산 시스템,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거부한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해 투쟁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복시키려고 하는 대신 힙스터는 ‘선택’한다.소비로 실천하는 힙스터힙스터는 스타벅스 대신 ‘서드웨이브커피(third wave coffee)’를 마신다. 서드웨이브커피란 질 좋은 농장에서 수확한 원두를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로 내려주는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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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들은 단순히 ‘남들과 똑같은 커피를 마시기 싫어서’ 서드웨이브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어떻게 내 책상 위에 놓이게 되는지 곰곰이 따져보니 ‘나와 맞지 않아’ 다른 대안을 찾다가 서드웨이브커피에 이르는 것이다.
서드웨이브커피를 좋아하는 37살 힙스터 A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는 CD나 MP3보다 LP판으로 듣는 음악을 더 좋아한다. 외국 아티스트의 노래를 즐겨 듣지만 굳이 한국 음악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아이돌 그룹 중에서 고르라면 f(x)의 노래를 듣곤 한다.
“그만그만한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도 f(x)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보통 힙스터라고 하면 남들과 같은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여겨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돌 음악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면 열린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의 집 주방에는 요즘 힙스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템, 일본의 생활가전 회사 ‘발뮤다’의 토스터가 있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발뮤다의 토스터는 다른 토스터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어딘가 달라요. 디자인이 다르고, 제품이 주는 감성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발뮤다 토스터를 샀어요.”‘다르다’ ‘새롭다’ ‘진정성 있다’ 힙스터는 똑같은 세상에서 무의미한 일상, 파편화되고 기계화된 자아를 거부하기 위해 몇 가지 아이템을 선택한다. 선택은 소비함으로써 실천된다. 문제는 소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본이다.앞서 얘기한 37살 힙스터는 중산층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서울 시내 명문 사립대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건설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가 부모로부터 독립한 것은 30대 중반의 일이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히피스러운 삶을 꿈꾸기도 했다. 이때 확립된 진보적 성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적극적인 사회 운동에 동참해본 적은 없다.
대신 진보적인 스타일은 고수한다. 그에게는 자본이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표현하는 소비 활동으로 그는 자신의 진보적인 실천을 시행한다. 국내 재벌 기업에서 찍어낸 제품은 잘 사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된 것인지 꼼꼼하게 따진다. 따라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그에게 서드웨이브커피는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