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종합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예슬(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당신은 너무 정치적이야.”
이 말을 듣고 발끈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한국 기업 내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협잡과 줄서기’ ‘아첨과 비방’을 무기로 ‘조직 내 권력’만을 좇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는 얘기다. 사실 ‘정치’ ‘권력투쟁’이라는 단어가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건 비단 한국에서만은 아니다. 노골적으로 ‘권력투쟁과 행사의 방법’을 다룬 최초의 서적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악의 교사’로 취급받기도 했다. 또 ‘국가 간 권력 투쟁의 본질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룬 최초의 국제정치학 교과서 국가 간의 정치)>의 저자 한스 J. 모겐소 역시 ‘국제정치학의 마키아벨리’라는 말을 들으며 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 비즈니스의 ‘총본산’ 격인 미국에서조차 ‘권력관계’를 제대로 연구한 저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인 제프리 페퍼 교수는 그의 저서 <권력의 기술> 서문에서 “권력에 대한 삐딱한 시선부터 거두라”고 일갈한다. 결국 사내 권력투쟁과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내정치는 절대 피할 수 없고, 피하는 게 올바른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1. 경영과 정치
이미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직체이자 인간 공동체 중 하나인 기업에서도 그 어디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행위가 일어난다. 기업의 톱매니지먼트 그룹은 ‘인사권’과 ‘예산배분권’을 독점적으로 쥐고 기업 내 희소한 자원과 가치를 합법적이고 권위적으로 배분한다. (미니박스 1 참조) 당연히 이러한 권한과 권위를 둘러싼 싸움은 주주총회나 이사회와 같은 공식적인 영역은 물론 임직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 등 비공식적 영역에서도 상존하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경영학자들은 오직 ‘리더십’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사내에서 비공식적으로 벌어지는 권력투쟁 상황을 장악하고 폐해를 막으며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조언은 대부분 플라톤식 ‘철인통치’의 지도자나 왕조시대 ‘성군’을 요구하는 수준까지 나가기도 한다. 철인통치가 불가능한 건 ‘철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고, 왕조 체제가 역사적 수명을 다한 건 ‘성군’의 등장이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 CEO는 차라리 ‘철저한 현실 정치가’가 되는 게 낫다. 아니 그래야 한다.
경영은 정치다. 본래 올바른 정치란 명분을 유지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은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명분에 따른 자원의 권위적 배분을 하는 일련의 행위 전체가 정치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과 고객에게 인정받은 기업 가치, ‘업의 가치’를 명분으로 추구하면서 ‘지속성장(주주가치 상승)’과 ‘직원복리(고용 등)’를 이뤄내야 한다. 기업에서는 심지어 독재마저도 허용되기 때문에 CEO는 더더욱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기’1 를 활용해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 기업 경영 전반에 도움 되는 사내정치가 정착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미니박스 2 참조)
Mini box 2: CEO가 반드시 알아야 할 권력의 속성
사내정치는 권력(Power)을 갖기 위한 싸움이다. 정치의 본질인 ‘권력 투쟁’은 정치라는 가치중립적 단어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처세’는 ‘사내정치’와 동의어가 됐다. 다들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않지만 사실은 모두가 관심 있어 하는 ‘어두운 부분’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조직의 이익과 무관한 처세론’이 바람직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더럽다’고 피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다.
린다 A. 힐과 켄트 라인백은 저서 <보스의 탄생>에서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공정하고 사리에 맞는 판단을 밀어붙이고 싶다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권력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편의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자할 때 옳은 방향을 고수하기 위해 힘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국 역사학자 액튼 경의 말을 인용해 “권력은 부패하지만 ‘무권력’ 또한 부패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숭고하고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권력 투쟁’의 과정에는 반드시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내정치란 단순히 ‘처세’가 아니라 ‘업무의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가장 뛰어난 정치가가 돼야 하는 CEO는 물론 임직원들 역시 ‘권력의 유형과 속성’에 대해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1.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이고 도대체 어떻게 획득해야 하는 것일까? 권력이 무엇인지를 놓고 아주 다양한 학자들의 개념정의가 이뤄져 왔지만 비즈니스 등 일반적인 인간 공동체 다수에 적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논의는 프렌치와 레이븐의 ‘사회적 권력의 기반’이라는 논문에 나온 설명이다.(J.R.P. French & B. Raven. (1959) The Base of Social Power. in Studies in Social Power) 이 두 학자에 따르면, 남들이 나에게 의존할 때 나의 영향력은 비로소 발휘된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성공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능력을 ‘권력’이라고 한다. 권력의 유형은 그 원천에 따라 5가지로 나뉜다. 공식적인 권력인 △강제적(Coercive) △합법적(legitimate power) △보상적(reward power) 3가지와 개인적 권력인 △전문적(expert power) △준거적(referent power) 2가지다. 공식적인 권력은 그 영향력의 위에서 아래로만 미치는 반면(top-down), 비공식적 권력(전문적 또는 개인적)은 그 영향력이 방향이 아래에서 위로도,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미칠 수 있다. 5가지 권력의 유형과 속성을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