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인공지능 기술은 학습을 위해 과거부터 축적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신축 공장에는 과거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꼭 새로 지은 공장이 아니더라도 현대 제조산업의 특성상 생산하는 제품이 끊임없이 바뀌고 설비도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학습할 데이터가 없다. 이렇게 제조업에서는 과거 데이터가 부족하기에 디지털 트윈으로 현실을 모사한 환경을 만들어 가상 환경에서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학습시켜야 한다.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 가상의 공장을 실제 공장인 듯 착각하고 마치 수년간 업무를 해온 것처럼 기억하도록 해야 최상의 운영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이미 디지털 트윈은 제조업의 제품 개발, 공장 구축, 공장 운영 등 여러 단계에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공장 내 거의 모든 업무가 디지털 트윈을 통해 수행되고 디지털 트윈에서 검증된 기능과 의사결정만이 실물 공장에 적용되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이다.
공상과학소설의 거장 필립 K. 딕의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공상과학 장르에 새로운 지평을 연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인간과 거의 똑같이 생긴 ‘리플리컨트’라 불리는 복제인간들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복제인간들은 처음부터 성인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간처럼 성장 과정을 겪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이들 복제인간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상의 어린 시절 기억을 주입당해 마치 인간처럼 삶을 살아온 존재라는 착각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기억의 조작으로 인해 기계는 단순히 인간의 기능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감정과 정체성까지 지니게 된다. 1982년 소개된 지 40년이 더 지난 이 영화는 오늘날 인공지능과 결합한 디지털 트윈 개념을 예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예견한 디지털 트윈이란 무엇일까? 기억의 조작과 디지털 트윈의 관계는 무엇이며 이러한 기술이 제조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제조 산업의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제조 디지털 트윈의 기술적, 산업적 의미를 설명하고 인공지능과 결합한 디지털 트윈이 만든 제조의 혁신적인 개념인 소프트웨어 기반의 제조(Software-Defined Factory, SDF)를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디지털 트윈의 세 가지 구성 요소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기계 장비나 공장 설비를 디지털 환경에서 정확히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통신을 통해 실제 장비나 설비의 움직임을 가상 시뮬레이션에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현실 세계의 대상과 가상 세계의 시뮬레이션이 마치 쌍둥이처럼 동일하게 작동하고 변화한다.
장영재yjang@kaist.ac.kr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장영재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 우주항공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기계공학, MIT 경영대학원(슬론스쿨)에서 경영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MIT 기계공학과에서 불확실성을 고려한 생산운영 방식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본사 기획실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과학적 방식을 적용한 원가 절감 및 전략적 의사결정 업무를 담당했다. 2020년 KAIST 연구소 기업인 ‘다임리서치’를 창업해 인공지능과 디지털 트윈 등의 혁신 기술을 제조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